▣ 오피니언 칼럼
*제167회 - " 여러분 인생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
영광도서
0
532
2016.12.01 13:08
내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아빠에게 배웠다. 술만 드시면 2차로 손님들을 집에 몰고 오는 아빠 덕에 ‘홍동백서(紅東白西)’보다 술상 차리는 법을 먼저 깨쳤다. 오후 9시면 꿈나라행인 엄마 대신 고사리손으로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고, 사각형 치즈는 삼각형 8개로 잘라 얌전히 담아내곤 했다. 첫 술잔을 입에 댄 것도 아빠 앞이었음은 물으나마나다.
어디 술뿐일까. 시골에서 나고 자라 나무 박사, 꽃 박사인 아빠를 둔 덕분에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로 구박받는 호박꽃이 실은 담박하니 예쁘단 걸 안다. 애기똥풀꽃·며느리밥풀꽃·홀아비바람꽃… 사연처럼 애잔한 들꽃들의 이름을 불러 줄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미팅 자리의 단골 질문이던 “좋아하는 꽃이 뭐예요?”에도 주저 없이 “패랭이꽃!”을 외쳐 남자들 진땀깨나 흘리게 했던 나다.
요즘은 ‘성교육’으로 대체된 이른바 ‘순결교육’을 시켜 준 것도 아빠다. 갓 중학생이 된 딸에게 무슨 영화 속 대사라며 넌지시 ‘손수건론’을 들려주셨다. 깨끗이 빤 새 손수건은 땀도 조심조심 닦지만 한 번 땀을 닦으면 코도 풀게 되고, 이왕 코까지 푼 뒤엔 구두도 쉬이 문지를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린 마음에도 “절대 코 푼 손수건 신세가 되진 않겠다”며 ‘정조 관념’을 확실히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은 아빠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이만큼 사람 구실하기까지 이끌어 준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천둥벌거숭이 같던 나를 갈고 깎고 다듬어 주셨다. 요컨대 그분들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정체가 현재의 나인 셈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퍽 대단한 사람인 듯 느껴지는데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낳자마자 걷고 뛰는 다른 짐승들과 달리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미약한 존재로 세상에 온 우리. 이런 우릴 온전한 사람 꼴 나게 만들어 준 이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는 얘기다.
학교 때 은사들만 해도 그렇다. 학창 시절이라 하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은 일만 떠오른다는 게 남자 동료들의 볼멘소리다. 하지만 한 번 곰곰 생각해 보시라. ‘미친개’‘불곰’이라 불리던 악명 높은 학생 주임들도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한두 마디 안 하셨을 리 없다. 독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약이 되는 가르침도 분명 있었을 터다.
학원도 과외도 금지된 군부 독재 시절, 내게 영어의 세계를 처음 열어 주신 중학교 1학년 때 영어선생님만 해도 그랬다. 원어민 수준은커녕 ‘억수로’ 진한 경상도 억양의 소유자인 선생님은 ‘아이 엠 톰(I am Tom, 나는 톰이야)’ ‘유 아 제인(You are Jane, 너는 제인이지)’으로 시작되는 교과서를 다짜고짜 달달 외우게 하셨다. 이런 무식한 학습법이 있느냐며 툴툴댔지만 그렇게 웅얼웅얼하다 영어랑 친해졌고, 친해진 김에 대학도 영문과에 들어갔고, 지금도 주로 영어로 된 국제 뉴스를 다루는 일을 맡고 있으니 내겐 먹고살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 아닌가.
직장 상사도 마찬가지다. 『미생』의 오 과장과 김 대리뿐 아니라 밉살스러운 마 부장도 스승이 될 수 있단 얘기다. 기자 초년병 시절,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내게 “무슨 여자가 부끄럼도 없이 밥을 그리 많이 먹느냐?”고 타박하던 모 부장. 울컥하는 마음에 “아줌마,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추가요”를 외친 뒤 꾸역꾸역 그 밥마저 다 먹어 치웠다. 그걸론 분이 덜 풀려 밥 많이 먹는 여자가 일도 더 잘한다는 걸 보여 주려고 기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성의 취업과 승진을 가로막는 이른바 ‘유리천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단단하다는 한국에서 26년째 한 직장을 무탈하게 다니는 비결이 뭐겠나. 다 그때 품은 오기 덕분이라 여긴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더니 과연 그렇다. 공자님이 어디 괜한 말씀 하실 분인가. 지금 당신을 많이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덕분에 인격 수양 잘하고 있다”며 외려 고마워할 일이다. 내친김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준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당신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 있노라고.
신예리 JTBC 국제부장·밤샘토론 앵커
[2015.3.17 중앙일보 삶의 향기]
어디 술뿐일까. 시골에서 나고 자라 나무 박사, 꽃 박사인 아빠를 둔 덕분에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로 구박받는 호박꽃이 실은 담박하니 예쁘단 걸 안다. 애기똥풀꽃·며느리밥풀꽃·홀아비바람꽃… 사연처럼 애잔한 들꽃들의 이름을 불러 줄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미팅 자리의 단골 질문이던 “좋아하는 꽃이 뭐예요?”에도 주저 없이 “패랭이꽃!”을 외쳐 남자들 진땀깨나 흘리게 했던 나다.
요즘은 ‘성교육’으로 대체된 이른바 ‘순결교육’을 시켜 준 것도 아빠다. 갓 중학생이 된 딸에게 무슨 영화 속 대사라며 넌지시 ‘손수건론’을 들려주셨다. 깨끗이 빤 새 손수건은 땀도 조심조심 닦지만 한 번 땀을 닦으면 코도 풀게 되고, 이왕 코까지 푼 뒤엔 구두도 쉬이 문지를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린 마음에도 “절대 코 푼 손수건 신세가 되진 않겠다”며 ‘정조 관념’을 확실히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은 아빠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이만큼 사람 구실하기까지 이끌어 준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천둥벌거숭이 같던 나를 갈고 깎고 다듬어 주셨다. 요컨대 그분들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정체가 현재의 나인 셈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퍽 대단한 사람인 듯 느껴지는데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낳자마자 걷고 뛰는 다른 짐승들과 달리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미약한 존재로 세상에 온 우리. 이런 우릴 온전한 사람 꼴 나게 만들어 준 이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는 얘기다.
학교 때 은사들만 해도 그렇다. 학창 시절이라 하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은 일만 떠오른다는 게 남자 동료들의 볼멘소리다. 하지만 한 번 곰곰 생각해 보시라. ‘미친개’‘불곰’이라 불리던 악명 높은 학생 주임들도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한두 마디 안 하셨을 리 없다. 독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약이 되는 가르침도 분명 있었을 터다.
학원도 과외도 금지된 군부 독재 시절, 내게 영어의 세계를 처음 열어 주신 중학교 1학년 때 영어선생님만 해도 그랬다. 원어민 수준은커녕 ‘억수로’ 진한 경상도 억양의 소유자인 선생님은 ‘아이 엠 톰(I am Tom, 나는 톰이야)’ ‘유 아 제인(You are Jane, 너는 제인이지)’으로 시작되는 교과서를 다짜고짜 달달 외우게 하셨다. 이런 무식한 학습법이 있느냐며 툴툴댔지만 그렇게 웅얼웅얼하다 영어랑 친해졌고, 친해진 김에 대학도 영문과에 들어갔고, 지금도 주로 영어로 된 국제 뉴스를 다루는 일을 맡고 있으니 내겐 먹고살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 아닌가.
직장 상사도 마찬가지다. 『미생』의 오 과장과 김 대리뿐 아니라 밉살스러운 마 부장도 스승이 될 수 있단 얘기다. 기자 초년병 시절,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내게 “무슨 여자가 부끄럼도 없이 밥을 그리 많이 먹느냐?”고 타박하던 모 부장. 울컥하는 마음에 “아줌마,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추가요”를 외친 뒤 꾸역꾸역 그 밥마저 다 먹어 치웠다. 그걸론 분이 덜 풀려 밥 많이 먹는 여자가 일도 더 잘한다는 걸 보여 주려고 기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성의 취업과 승진을 가로막는 이른바 ‘유리천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단단하다는 한국에서 26년째 한 직장을 무탈하게 다니는 비결이 뭐겠나. 다 그때 품은 오기 덕분이라 여긴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더니 과연 그렇다. 공자님이 어디 괜한 말씀 하실 분인가. 지금 당신을 많이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덕분에 인격 수양 잘하고 있다”며 외려 고마워할 일이다. 내친김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준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당신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 있노라고.
신예리 JTBC 국제부장·밤샘토론 앵커
[2015.3.17 중앙일보 삶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