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88회 - " 웰빙에서 힐링으로 힐링에서 행복으로 행복 다음은?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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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단순히 기분 좋다를 넘어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얼마 전 주말에 친지의 시골집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뒤란이 바로 숲으로 이어지는 전원주택이었는데, 비 갠 오후 뜰에 나가 야산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광경을 보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내 집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한길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 속에 섞일 때, 귀여운 어린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 어리광 부리는 모습을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이 일곤 한다.
행복이란 말은 1860년대 메이지 유신 즈음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어라 한다.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번역하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탁석산에 따르면 한국에서 행복이란 말이 처음 쓰인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886년 10월 4일자 ‘한성주보’ 기사에 행복이 나온다. ‘바라건대 귀 대신(大臣)은 반드시 최선을 다하여 처리해주십시오. 날로 행복하시기를 빕니다’라는 대목이다. 같은 신문 1887년 2월 28일자 기사에도 행복이 등장한다. 사실 서양에서도 ‘happiness’는 원래 ‘행운’을 뜻했다고 한다. 벤담이 ‘쾌락’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니 행복의 역사는 동서양을 통틀어도 불과 200년 남짓한 셈이다(탁석산, 『행복 스트레스』).
단어의 내력이 일천하다 해서 인류가 느껴 온 행복감의 역사마저 짧은 것은 아닐 것이다. 추상어가 대개 그렇듯 행복도 감싸안는 범위가 꽤 넓다. 사람의 행복감은 저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기쁨·즐거움·희열 같은 다른 것들을 제치고 단어 마을의 강자로 떠오른 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지 싶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그렇게 살고 싶은 상태’가 바로 행복이기 때문 아닐까.
최근 출판시장에서도 행복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웰빙·로하스 바람이 잦아든 자리를 힐링·위로가 차고앉는가 했더니 요즘엔 행복을 내건 책이 부쩍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6억 건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서 열쇠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재작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트위터·블로그·온라인뉴스 등에서 메시지를 뽑아 키워드를 살폈더니, 현재·일상·퇴근 후·소소하다·지르다(소액 충동구매)·혼자 등의 단어가 의미 있는 증가폭을 보였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을 담당한 다음소프트 측은 “미래·국가발전 등 거대 담론보다 개인의 작은 행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일상 속에서 혼자 느끼는 소소한 행복. 고도성장기·민주화운동기 세대에게는 분명 낯선 풍경이다. 행복을 주는 대상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법. 기성세대는 이런 변화를 얼마나 예민하게, 무게 있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국민행복시대’는 박근혜정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2013.7.23 분수대 -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