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46- 돈이 된다면 뱀인들 못 잡으랴!

영광도서 0 472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서 햄릿이 한 그 유명한 명구다만, 때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이 생기면 평소에 갖지 못한 용기가 솟는다. 특히 돈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것이라 돈이 된다면 때로 목숨을 걸고 나서기도 한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 나 역시 뱀을 기피했지만 돈 때문에 뱀을 잡는 데 따라다니곤 했으니까.

 

뱀, 딱 한 번 뱀을 먹은 적이 있었다. 열네 살 때 불당골 살 때였다. 재영, 영호, 영삼, 이들 중 재영은 바보다 한 살 더 많았다. 친구는 뱀을 잘 잡았다. 한번은 그 친구가 엄청 큰 꽃뱀을 생포했다. 우리는 늘매기라고 불렀는데 아마 놈이 꽃뱀 또는 유식한 말로 화사인가 싶다. 재영이가 놈을 잡았는데, 그걸 구워먹겠다고 했다. 재영은 놈을 때려죽이더니 껍질을 주욱 벗겼다. 껍질을 벗기자 뱀은 졸지에 하얀 뱀으로 변했다. 놈의 배 안에 흰 알이 무려 스물한 알이 들어 있었다. 아주 작지도 않고 웬만한 새알보다는 컸다. 알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놈을 구워 먹으려니 그것을 물에 씻으려고 재영이 물에 담갔다. 완전히 죽어서 껍질까지 벗겨진 하얀 뱀이 놈이 물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깜짝 놀랐다. 그렇다고 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그것을 꺼내서 냇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불에 구웠다. 나도 한 토막을 주기에 먹었다. 맛은 개구리 중에 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떡먹어리라 부르는 개구리 구운 맛이었다.

 

뱀을 싫어했으나 딱 한 번 먹은 적은 있어도, 돌이나 나무막대기로 탕을 쳐서 죽인 적은 있어도 생포한 적은 없었으나 열네 살 되던 해부터 뱀 생포에 조력한 적은 많았다. 나는 뱀을 싫어하고 무서워했으나 작은형은 뱀을 잘 잡았다. 해서 작은형하고 뱀을 잡으러 많이 다녔다. 때려잡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생포하기 위해서였다. 뱀을 잡을 도구가 변변히 없었기 때문에 작은형은 뱀을 잡을 때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뱀을 발견하면 작은 형은 낫으로 놈의 목 부근을 누른다. 뱀은 쇠가 닿으면 왠지 꼼짝 못한다. 그렇게 누른 낫자루를 작은형은 나에게 넘긴다. 나는 겁에 잔뜩 질리긴 하지만 곧잘 누른다. 그 사이 작은형은 싸리나무 껍질을 벗긴다. 껍질이 노끈처럼 질긴 싸리나무껍질로 홀치기를 만든다. 홀치기를 나무막대기를 꺾어 끝에 매단다. 홀치기를 뱀의 목에 건다. 잡아당긴다. 뱀의 목이 완벽하게 홀쳐진다. 들어올린다. 땅에서 떨어진 뱀은 대롱대롱 매달려 일직선으로 퍼질 뿐 힘을 쓰지 못한다.

 

이렇게 한 마리를 생포한다. 더 잡으려면 비료포대에 놈을 담는다. 그런 식으로 생포를 계속해서 뱀을 모은다. 집으로 모셔온 뱀은 바닥에 흙을 조금 넣은 항아리에 담아둔다. 그렇게 뱀을 모아 놓으면 보름에 한 번 정도 뱀 장사가 온다. 뱀 장사는 한 마리 한 마리 꺼내서 액수를 먹여 누르스름한 천 자루에 뱀을 담고 계산을 해준다. 꽃뱀은 30원, 밀뱀은 가져가긴 해도 어떤 때는 10원, 어떤 때는 다음엔 이런 뱀은 잡지 말라며 돈 안 쳐준다. 독사나 능구렁이는 100원, 까치독사는 150원, 살모사는 크기에 따라 250원내지 300원을 쳐준다.

 

돈 때문에 작은형을 따라다니며 뱀 잡는 일을 도왔다. 그렇게 작은형은 나를 조수로 데리고 다니면서 어떤 날은 살모사만 네 마리를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러면 2000원은 족히 받을 수 있었으니 큰돈이었다. 그때엔 어른들 하루 남의 일 품삯이 500원밖에 안 했으니까. 뱀을 잡아 팔면 당시엔 시골에선 돈벌이 중에 으뜸이었다. 그렇지 않고 돈이 생긴다면 개가 강아지를 여러 마리 낳아주면 그놈들 팔아서 돈을 만들거나 어른이라면 남의 집 김을 매주거나 나무를 해주고 받는 게 거의 전부였으니까. 그렇다고 돈이 내 수중에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돈은 고스란히 엄마 손에 넘어갔다. 그럼에도 돈을 버는 재미는 있었다.

 

주로 많이 잡는 것은 꽃뱀이었으나 나중엔 잘 안 잡았다. 뱀장수들이 그걸 잘 사가려 하지 않았다. 가장 흔하게 잡힌 놈은 독사였다. 각담에는 간혹 까치독사가 있었고, 옆에 양지바른 산에 다니다보면 나무 위로 투닥소리를 내며 가가 들키거나 독을 잔뜩 쓰고 산길에 점잖게 앉아 혀를 날름거리며 있는 놈들은 대부분 살모사였다. 꽃뱀은 사람 만나면 줄행랑치는 게 일이었다.

 

한 번은 집 바로 옆에서 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작은형은 산에 소꼴을 베러 간 후였다. 밀가리 옆에서 발견한 놈은 제법 컸다. 딴에는 놈이 구렁이인가 했다. 돈이 될 것 같았다. 뱀을 무척 싫어했지만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얼른 지게작대기로 놈을 재빨리 눌렀다. 그리곤 엄마를 불렀다. 엄마한테 지게작대기를 인계했다. 누르고 계시라고. 나는 놈을 생포할 용기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작은형을 불러와야 했다. 하여 산으로 작은형을 찾아 나섰다. 급하게 찾은 덕에 작은형을 찾아 함께 집으로 달려왔다. 엄마는 놈을 누르느라 진땀을 흘리고 계셨다. 작은형이 “에게 이건 밀뱀이야. 10원도 잘 안주려고 하는 놈이야.”했다. 맥이 풀렸다. 엄마는 놈이 빠져나가려고 하지 돈이라니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죽어라 하고 누르고 계셨다고 했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있었다. 얼마나 힘을 가하셨는지, 놈의 피부가 조금 벗겨져 있었다.

 

살아 계실 때 엄마는 가끔 그때 일을 되뇌곤 하셨다. 얼마나 그때 그 일이 끔찍했으면 그걸 기억하고 계셨을까 싶다. 뱀을 싫어하셨지만 어린 아들들이 뱀을 잡는다니, 돈이 된다니 무섭고 싫음에도 그걸 누르고 계셨을 때 시간은 얼마나 더디 갔으랴. 물론 나중엔 재미삼아 그때 일을 회상하며 그때 심정을 토로하시긴 했지만, 식은땀을 흘리며 놈을 누르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 아들들이 나타나길 기다리시면서 하셨을 이런 저런 엄마의 생각들, 그리고 아들들이 달려오는 걸 보았을 때 엄마의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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