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최복현

[약력]
서강대에서 불어교육학 석사학위,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해서 [새롭게 하소서] [맑은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등의 시집, [도둑일기][몽롱한 중산층][에로틱문학의 역사] [정신적 희롱][어린 왕자] [별][틱낫한, 마음의 행복][낙천주의자 캉디드]등의 번역서, 생활철학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삶을 사랑하는 지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탈무드의 지혜] 등이 있으며, 생활철학 에세이 [행복을 여는 아침의 명상] [하루를 갈무리하는 저녁의 명상]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작은 기쁨으로 함께 하는 마음의 길동무] [가난한 마음의 행복]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쉼표 하나... <더 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32- 나는 모심기 선수였다.

영광도서 0 523

어려서부터 뚱뚱한 적은 없었지만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다부진 편이었다. 몸에 비해 다리 힘은 있어서 지게질도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다. 짐을 짊어지고 억지로라도 일어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 무거운 짐을 원하는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이마에 땀이 남보다 덜 나서 오해를 받을 수는 있어도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했다. 그래서 어른들의 인정을 받았다. 덕분에 품을 팔아야 할 곳이 생기면 동네 어른들은 나를 데리고 다녔고 비록 열여섯 나이밖에 안 되었지만 어른 품값을 똑같이 적용해 주었다.

 

내가 특히 잘하는 건 모심기였다. 오로지 기계의 도움이 없이 손으로 모를 심었기 때문에 모를 남보다 빨리 심으면 동네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를 무척 빨리 심었다. 가령 다른 어른들이 모를 심는 소리는 ‘첨벙첨벙’이었다면 내가 모를 심는 소리는 ‘쪼록쪼록쪼로록’이었다.

 

모를 빨리 심는 사람과 모를 빨리 심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소리로도 구분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모를 심는 자세라든가 함께 모를 심을 때 같은 시간에 얼마나 빨리 심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가령 줄을 치면서 모를 심을 경우, 논두렁 양쪽에서 줄을 잡는다. 그러면 모를 심을 사람들은 줄 앞에 줄지어 선다. 줄이 넘어오기 바쁘게 자기 앞에 줄을 따라 모를 심는다. 한번은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심고, 한번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심는다. 그렇게 서로 손이 닿는 곳까지 모를 심으면 그 줄이 채워진다. 그렇게 줄이 채워지기 바쁘게 ‘줄’하는 소리와 함께 줄이 넘어간다. 느리게 심다가 미처 고개를 들지 못하면 진흙에 묻은 줄에서 튀기는 흙물을 얼굴에 뒤집어써야 한다. 이렇게 줄지어 모름 심는 것을 보면 금세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이 확연히 드러난다.

 

줄을 넘기면서 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줄잡이 없이 모를 심어도 모를 잘 심는 사람은 줄이 웬만큼 잘 맞아 곧게 뻗는다. 이럴 경우는 각자 일정한 공간을 심어 나간다. 내가 2미터를 잡아서 심어 나가면 옆에 사람 역시 그만큼 이어서 심어나간다. 그렇게 한 논에서 일정한 공간을 대략 나누어 심어나간다. 그렇게 심어나가다 보면 손이 빠른 사람은 한쪽에서 저만치 심어나는 데 비해 느린 사람은 뒤에 처져서 애를 쓰면서 채워 나온다. 그 속도가 잘 맞지 않으면 빠른 사람이 자기 구역보다 좀 더 넓게 그 사람의 구역까지 3미터를 심어 나온다. 그러면 느린 사람은 1미터만 심으면서 따라 나오면 된다. 그렇게 한 논씩 모를 심는다.

 

나는 보통사람보다 세 배는 빨리 심었다. 때문에 어른들은 나를 모심는 기계라 불렀다. 어린 마음에 그것도 자랑이라고 더 신이 나서 열심히 심었다. 모를 종일 심으려면 때로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허리가 아프다고 허리를 펴면 펼 때는 좋지만 다시 굽히려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억지로 참으면서 허리를 펴지 않고 그대로 쉴 시간까지 굽힌 채 모를 심기도 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모를 빨리 심을 수 있었다.

 

또한 모를 빨리 심으려면 오령이 필요한데, 왼손으로 미리미리 한 폭 될 만큼 엄지손가락으로 밀어놓는다. 오른손으로 미리 나눠진 모를 잡아 심는다. 왼손을 무릎에 올리는 순간부터는 현저히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왼손을 최대한 지면에 가깝도록, 오른손이 모를 심을 곳에 최대한 가깝게 따른다. 그렇게 왼손과 오른손이 가까이 움직여야 모를 빨리 심을 수 있다. 심다 보면 힘이 들어 왼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참고 처음 자세를 끝까지 유지해야 빨리 심을 수 있다. 그러니 모를 심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의지와 인내를 필요로 한다.

 

모를 빨리 심을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어른들 따라 모를 심으러 뽑혀 다녔다. 도급모라고 해서 보통 사람들 하루 일당보다 세 배를 더 받을 수 있었다. 도급모를 심는 사람들은 팀을 짰다. 팀에는 모를 빨리 심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모심기 선수들이었다. 나는 열여섯부터 그 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선수들 중에서도 제일 빨리 심었으니 늘 환영받았다. 보통 하루 한 사람이 심는 면적은 150평 한 마지기였다. 그런데 우리 팀은 하루 그 세 배를 심었다.

 

우리 팀은 인기가 있었다. 어른들에 내가 끼어 다섯 명이었는데, 집에 따라 다섯 마지기를 심어주기를 원하면 우리 팀은 그 집 일은 한나절에 마치고 다른 집 모를 더 맡아 하루를 채웠다. 마지기당 품삯을 주었으므로 열 마지기를 맡으면 보통 품삯의 배를 버는 셈이었다. 그런 날은 하루 일이 빨리 끝났고, 한 사람 당 세 마지기를 맡은 날은 새벽부터 어스름 저녁까지 모를 심어야 했다. 평균적으로 우리 팀은 하루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를 벌었다. 모를 심는 일이 일단 시작되면 뽑혀 다니기 시작하면 보통 일 년에 한 달 이상을 족히 불려 다녔다.

 

모 심으러 가면 일단 새벽부터 못자리에서 모를 찌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모를 찌는 실력은 내가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때문에 어른들은 일단 모를 심을 논이 준비되면 선수 중에 선수들에겐 모를 찌는 대신 모를 심는 일을 하게 했다. 그렇다 보니 나는 거의 종일 모를 심는 게 주 업무였다. 그렇게 한 달 이상을 모를 심다 보면 오른손가락들은 퉁퉁 부었다. 손가락이 지면에 닿는 순간 짜릿짜릿 아팠다. 그럼에도 그걸 참아야 했다. 참다 참다 보면 나중엔 손가락 끝은 뚝살이 배기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이면 계산해서 받는 품삯, 빳빳한 지폐 여러 장을 받으면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엄마 손에 쥐어드렸다.

 

힘들긴 했지만 스스로 대견스러웠던 날들, 모내기철이면 엄마나 아버지보다 어린 나이에 많은 품삯을 받아다 드려 기분을 좋게 해드렸던 날들, 그럼에도 새벽에 일을 나가는 나를 측은하게 여기시던 엄마, 곤히 잠든 나를 어쩔 수 없이 깨워야 했던 아버지의 손길, 엄마와 아버지의 그 새벽의 시선들이 지금은 아리게 다가온다. 어른이 되니 알겠다. 자식을 두고 보니 알겠다. 미처 잠을 깨기 전에 깨워서 일을 내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과 아버지지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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