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69회 - " 행복한 5분의 독서<인간의대지>-설렘과 긴장속에서 보는 세상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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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21:58
인간의 대지 - 설렘과 긴장 속에서 보는 세상
그들은 또한 이 밤이 주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지금 어디선가 준비를 갖추고 있을지도 모를, 내 첫 번째 비행을 복잡하게 만들 눈보라의 신호인 것이다.
저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해도 거리를 걷는 행인들은 그 의미를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비밀을 알고 있다. 나는 비행에서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적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게 막중한 책임을 지워주는 이 밤이 건네는 지령을 크리스마스 선물들로 장식된 불빛이 환한 쇼윈도 옆에서 받았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진열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위험에 휩싸인 한 명의 전사였기에 저녁 식탁을 위하여 화려한 빛을 발하는 수정그릇과 전등갓, 좋은 책들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 이미 머릿속에서는 나는 우편 비행 조종사로서 안개가 자욱한 하늘을 날고 있었고, 야간 비행이라는 쓰디쓴 과일에 끌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깨운 시각은 새벽 세 시였다.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혀 비가 내리는 것을 지켜본 나는 침착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30분 후, 나는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보도 위에 올려놓은 조그마한 트렁크 위에 앉아 나를 태울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보다 앞서 많은 동료들이 처녀비행을 앞두고 가슴을 졸이며 지금의 나처럼 기다렸을 것이다.
드디어 쇠붙이가 깨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낡은 버스 한 대가 거리 모퉁이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 버스에 오른 나는 잠이 덜 깬 세관원과 비행장 관리, 몇몇 동료들 사이를 비집고선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이 버스는 곰팡내를, 먼지가 잔뜩 낀 관공서 냄새를, 오래되어 낡은 사무실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버스는 500미터마다 멈추어 서서 서기관, 세관원, 감독관 한 사람씩을 더 태웠다. 이미 차 안에서 잠들었던 사람들은 웅얼거림으로 차에 오른 새로운 승객들의 인사를 받았다. 나중에 탄 사람도 그럭저럭 자리를 비집고 앉아서는 이내 잠들었다. 우리는 툴루즈의 고르지 못한 도로 위를 굴러가는 일종의 서글픈 짐들과도 같았다. 하늘 위의 조종사도 관리들의 틈에 섞여서 그들과 구별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로등은 휙휙 지나가고, 비행장은 점점 가까워져 갔다. 흔들리는 그 낡은 버스는 변형된 사람들을 토해 내는 하나의 회색 번데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동료들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오늘과 비슷한 아침에, 감독관에게 순종하느라 그의 신경질을 참아내야 하는 부하의 위치에 있었던 자신이 드디어 스페인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우편기의 책임자로서 탄생하는 것을 말이다.
세 시간 후면 번개 속에서 오스피탈레의 용과 맞서게 될 조종사가, 네 시간 후에는 그 용을 물리친 뒤 바다로 우회할지 알코이 산악지대를 직접 공격할지를 완전한 자유의사로 결정하며, 이로써 뇌우와 산악과 대양과 대등하게 대결할 조종사가 탄생하는 것을.
다섯 시간이 지나면 북극의 눈비를 헤치며 겨울을 거부하고, 속력을 늦추기 위해 엔진의 회전수를 줄여서 여름이란 계절 속으로, 알리칸테의 찬란한 태양 아래로 내려가는 승리자가 자신임을 느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설렘과 긴장, 비행이란, 더구나 야간비행이란 설렘보다는 죽음을 내어 맡긴 위험한 비행이다. 야간비행이 어려운 것임에도 어떻게든 빨리 소식을 전하기 위한 소명으로 그들은 항로개척 당시에 위험한 비행을 계속한다. 이렇게 전선에 나가는 병사와 같은 긴장감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설렘이 교차하여 거리를 거닐면서 미간을 찡그리기도 하고, 뜻 모를 미소를 짓기도 할 처녀비행사의 마음을 그 누가 알 것인가.
아마도 이유 없이 혼자 싱글거리며 걷는 이름 모를 처녀도 뭔가 혼자만의 비밀을 갖고 있을 터이다. 생텍쥐페리의 이 밤도 그런 기분이다. 무심코 타고 다녔던 버스가 오늘따라 새롭게 보이고, 올라타는 모든 승객들에게 관심이 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가만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남들이 내 마음의 사연을 알지 못하듯이 나 또한 남들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가 올라 탄 낡은 버스는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상 속이다.
내 기분에 따라 그들의 사연도 서글퍼 보이고, 내 기분에 따라 그들의 사연도 아름다운 꿈으로 보인다. 야간비행은 하늘의 별 사이를 항해하는 것이니 그만큼 아름다울 테지만, 자칫 폭풍우라도 몰아치면 하늘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나를 집어 삼키는 무서운 용으로 변하기도 하니, 사람들의 삶이란 잠시 후도 알 수 없는 신에게 볼모로 잡힌 불쌍한 군상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사연을 안고 산다. 만 사람이면 최소한 1만 이상의 사연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최복현-
그들은 또한 이 밤이 주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지금 어디선가 준비를 갖추고 있을지도 모를, 내 첫 번째 비행을 복잡하게 만들 눈보라의 신호인 것이다.
저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해도 거리를 걷는 행인들은 그 의미를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비밀을 알고 있다. 나는 비행에서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적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게 막중한 책임을 지워주는 이 밤이 건네는 지령을 크리스마스 선물들로 장식된 불빛이 환한 쇼윈도 옆에서 받았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진열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위험에 휩싸인 한 명의 전사였기에 저녁 식탁을 위하여 화려한 빛을 발하는 수정그릇과 전등갓, 좋은 책들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인가. 이미 머릿속에서는 나는 우편 비행 조종사로서 안개가 자욱한 하늘을 날고 있었고, 야간 비행이라는 쓰디쓴 과일에 끌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깨운 시각은 새벽 세 시였다.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혀 비가 내리는 것을 지켜본 나는 침착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30분 후, 나는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보도 위에 올려놓은 조그마한 트렁크 위에 앉아 나를 태울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보다 앞서 많은 동료들이 처녀비행을 앞두고 가슴을 졸이며 지금의 나처럼 기다렸을 것이다.
드디어 쇠붙이가 깨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낡은 버스 한 대가 거리 모퉁이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 버스에 오른 나는 잠이 덜 깬 세관원과 비행장 관리, 몇몇 동료들 사이를 비집고선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이 버스는 곰팡내를, 먼지가 잔뜩 낀 관공서 냄새를, 오래되어 낡은 사무실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버스는 500미터마다 멈추어 서서 서기관, 세관원, 감독관 한 사람씩을 더 태웠다. 이미 차 안에서 잠들었던 사람들은 웅얼거림으로 차에 오른 새로운 승객들의 인사를 받았다. 나중에 탄 사람도 그럭저럭 자리를 비집고 앉아서는 이내 잠들었다. 우리는 툴루즈의 고르지 못한 도로 위를 굴러가는 일종의 서글픈 짐들과도 같았다. 하늘 위의 조종사도 관리들의 틈에 섞여서 그들과 구별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로등은 휙휙 지나가고, 비행장은 점점 가까워져 갔다. 흔들리는 그 낡은 버스는 변형된 사람들을 토해 내는 하나의 회색 번데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동료들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오늘과 비슷한 아침에, 감독관에게 순종하느라 그의 신경질을 참아내야 하는 부하의 위치에 있었던 자신이 드디어 스페인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우편기의 책임자로서 탄생하는 것을 말이다.
세 시간 후면 번개 속에서 오스피탈레의 용과 맞서게 될 조종사가, 네 시간 후에는 그 용을 물리친 뒤 바다로 우회할지 알코이 산악지대를 직접 공격할지를 완전한 자유의사로 결정하며, 이로써 뇌우와 산악과 대양과 대등하게 대결할 조종사가 탄생하는 것을.
다섯 시간이 지나면 북극의 눈비를 헤치며 겨울을 거부하고, 속력을 늦추기 위해 엔진의 회전수를 줄여서 여름이란 계절 속으로, 알리칸테의 찬란한 태양 아래로 내려가는 승리자가 자신임을 느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설렘과 긴장, 비행이란, 더구나 야간비행이란 설렘보다는 죽음을 내어 맡긴 위험한 비행이다. 야간비행이 어려운 것임에도 어떻게든 빨리 소식을 전하기 위한 소명으로 그들은 항로개척 당시에 위험한 비행을 계속한다. 이렇게 전선에 나가는 병사와 같은 긴장감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설렘이 교차하여 거리를 거닐면서 미간을 찡그리기도 하고, 뜻 모를 미소를 짓기도 할 처녀비행사의 마음을 그 누가 알 것인가.
아마도 이유 없이 혼자 싱글거리며 걷는 이름 모를 처녀도 뭔가 혼자만의 비밀을 갖고 있을 터이다. 생텍쥐페리의 이 밤도 그런 기분이다. 무심코 타고 다녔던 버스가 오늘따라 새롭게 보이고, 올라타는 모든 승객들에게 관심이 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가만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남들이 내 마음의 사연을 알지 못하듯이 나 또한 남들의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가 올라 탄 낡은 버스는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상 속이다.
내 기분에 따라 그들의 사연도 서글퍼 보이고, 내 기분에 따라 그들의 사연도 아름다운 꿈으로 보인다. 야간비행은 하늘의 별 사이를 항해하는 것이니 그만큼 아름다울 테지만, 자칫 폭풍우라도 몰아치면 하늘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나를 집어 삼키는 무서운 용으로 변하기도 하니, 사람들의 삶이란 잠시 후도 알 수 없는 신에게 볼모로 잡힌 불쌍한 군상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사연을 안고 산다. 만 사람이면 최소한 1만 이상의 사연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최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