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70회 - " 인간의 대지 - 무의미했던 것이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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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21:58
그 낡은 버스는 이제 없어졌지만, 그 버스의 엄격한 분위기와 불편한 의자는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버스는 우리들의 직업으로 맛볼 수 있는 가혹한 기쁨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버스에서는 누구나 지나칠 정도로 절제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레크리벵 조종사의 죽음을 그 버스 안에서 몇 마디의 말도 오고가기 전에 알아차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안개 낀 어느 날에 영원히 세상에서 은퇴한 100여 명의 조종사 동료들 중 한 사람이었다.
새벽 3시 무렵의 그날도 역시나 침묵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통제관이 감독관을 향해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을 들었다.
"레크리벵이 오늘 밤 카사블랑카에 착륙하지 않았답니다.”
"아! 그래요?”
감독관이 대답했다. 단꿈을 꾸던 중에 억지로 깨어난 그는 진정으로 걱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양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아! 그래요? 그가 통과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까? 되돌아왔습니까?”
그 물음에 대해서는 버스 저 안쪽에서 그저 “아니요”라는 대답만이 들려왔다. 우리는 그 다음 말을 계속 기다렸지만 단 한마디도 뒤따르지 않았다. 1초, 2초 시간이 흐를수록 이 ‘아니요’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따르지 않으리라는 것이 최종적으로 명백해졌다. 레크리벵은 카사블랑카에 착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도 착륙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더 분명해졌을 뿐이었다.
첫 비행 날 새벽에 나는 내 직업의 성스러움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그러나 가로등이 빛을 반사해 번들거리는, 비에 젖은 도로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차츰 자신이 없어졌다. 도로에 고인 물 위로 바람이 스치자 커다란 종려나무 잎 같은 무늬들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첫 비행인데, 정말로 난 운이 없는 걸.’
나는 감독관을 쳐다보며 물어보았다.
"날씨가 더 나빠질까요?”
감독관은 피곤한 눈초리로 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지”라며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이 나쁜 날씨의 조짐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기요메는 전날 저녁에, 선배들이 우리에게 겁주던 불길한 모든 조짐들을 단 한 번의 미소로 지워버렸지만, 지금 그것들이 내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항로에 놓인 조약돌 하나하나까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눈보라를 만나면 그건 큰일이지. 그럼, 큰 일이고말고.’
이렇게 겁을 줘가며 자신들의 위신을 세우며 존경심을 유지했던 선배들은, 동정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타고 온 그 낡은 버스는 우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은신처로 이용되었을까? 60명? 80명? 비 오는 날 아침, 늘 과묵한 운전사가 운전하는 그 버스를 탄 사람들 말이다.
나는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붉은 점들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담뱃불이 저마다 명상의 점을 찍는 것 같았다. 늙은 고용인들의 겸허한 명상들을 말이다. 우리들 중의 몇 사람에게나 이 동행인들은 마지막 수행원 노릇을 했을까?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나의 세계는 지금 이 공간뿐이다. 혼자 방에 있을 때면 내 세계는 이 방안에 한정되어있다. 한 교실에서 동급생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 순간은 그 동급생들이 내 세계의 주민들이다. 생텍쥐페리가 처녀비행을 하기 전에 타야하는 버스 안에 있는 동안은 그 버스 안이 그의 세계의 전부이다.
누구나 비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 버스를 타고 갔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그 버스를 타지 못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한 사람도 수십 명을 넘었으니, 지금 타고 있는 그 공간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곳에 함께 있는 이들은 어쩌면 마지막을 향해 나가는 조종사들의 마지막 동행인일 수도 있다. 그 생각을 하면 인간의 생명이란 참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맡기고도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일, 두렵긴 하지만 얼마나 성스러운 직업이란 말인가.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여,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도착하지 못했으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그는 이제 산 사람이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면, 그들은 동정의 눈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이 버스가, 지금 있는 공간이 마지막 머무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나와는 상관없던 그 모든 것들이 커다란 의미부여를 하며 다가오는 것이다.
* 절박함은 무의미했던 모든 것을 의미있는 것들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고독은 나를 한 단계 높은 성숙의 세계로 올려놓는다.* - 최복현 -
새벽 3시 무렵의 그날도 역시나 침묵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통제관이 감독관을 향해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을 들었다.
"레크리벵이 오늘 밤 카사블랑카에 착륙하지 않았답니다.”
"아! 그래요?”
감독관이 대답했다. 단꿈을 꾸던 중에 억지로 깨어난 그는 진정으로 걱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양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아! 그래요? 그가 통과하는 데 성공을 했습니까? 되돌아왔습니까?”
그 물음에 대해서는 버스 저 안쪽에서 그저 “아니요”라는 대답만이 들려왔다. 우리는 그 다음 말을 계속 기다렸지만 단 한마디도 뒤따르지 않았다. 1초, 2초 시간이 흐를수록 이 ‘아니요’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따르지 않으리라는 것이 최종적으로 명백해졌다. 레크리벵은 카사블랑카에 착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도 착륙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더 분명해졌을 뿐이었다.
첫 비행 날 새벽에 나는 내 직업의 성스러움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그러나 가로등이 빛을 반사해 번들거리는, 비에 젖은 도로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차츰 자신이 없어졌다. 도로에 고인 물 위로 바람이 스치자 커다란 종려나무 잎 같은 무늬들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첫 비행인데, 정말로 난 운이 없는 걸.’
나는 감독관을 쳐다보며 물어보았다.
"날씨가 더 나빠질까요?”
감독관은 피곤한 눈초리로 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지”라며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이 나쁜 날씨의 조짐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기요메는 전날 저녁에, 선배들이 우리에게 겁주던 불길한 모든 조짐들을 단 한 번의 미소로 지워버렸지만, 지금 그것들이 내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항로에 놓인 조약돌 하나하나까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눈보라를 만나면 그건 큰일이지. 그럼, 큰 일이고말고.’
이렇게 겁을 줘가며 자신들의 위신을 세우며 존경심을 유지했던 선배들은, 동정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타고 온 그 낡은 버스는 우리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은신처로 이용되었을까? 60명? 80명? 비 오는 날 아침, 늘 과묵한 운전사가 운전하는 그 버스를 탄 사람들 말이다.
나는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붉은 점들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담뱃불이 저마다 명상의 점을 찍는 것 같았다. 늙은 고용인들의 겸허한 명상들을 말이다. 우리들 중의 몇 사람에게나 이 동행인들은 마지막 수행원 노릇을 했을까?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나의 세계는 지금 이 공간뿐이다. 혼자 방에 있을 때면 내 세계는 이 방안에 한정되어있다. 한 교실에서 동급생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 순간은 그 동급생들이 내 세계의 주민들이다. 생텍쥐페리가 처녀비행을 하기 전에 타야하는 버스 안에 있는 동안은 그 버스 안이 그의 세계의 전부이다.
누구나 비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 버스를 타고 갔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그 버스를 타지 못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한 사람도 수십 명을 넘었으니, 지금 타고 있는 그 공간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곳에 함께 있는 이들은 어쩌면 마지막을 향해 나가는 조종사들의 마지막 동행인일 수도 있다. 그 생각을 하면 인간의 생명이란 참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맡기고도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일, 두렵긴 하지만 얼마나 성스러운 직업이란 말인가.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여,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도착하지 못했으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그는 이제 산 사람이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면, 그들은 동정의 눈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이 버스가, 지금 있는 공간이 마지막 머무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나와는 상관없던 그 모든 것들이 커다란 의미부여를 하며 다가오는 것이다.
* 절박함은 무의미했던 모든 것을 의미있는 것들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고독은 나를 한 단계 높은 성숙의 세계로 올려놓는다.* - 최복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