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1회 - " 인간의 대지 - 오랜 벗은 결코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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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21:58
우리와 같은 직업의 소유자들은 해후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습관이 있다. 이는 항로를 다니는 동료들이 파리에서 칠레의 산티아고에 이르기까지 넓은 세상에 각기 흩어져 있어, 서로 말을 주고받지 못하는 보초병들처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직업 때문에 이렇게 분산돼 있는 우리들이 동료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동일한 항로를 비행하다 우연히 맞닥뜨리는 방법밖에는 없다. 카사블랑카, 다카르, 혹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몇 해 동안 끊겼던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오랜 추억들을 서로가 다시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출발한다. 그래서 대지는 삭막하기도 하고 풍요롭기도 하다. 도달하기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직업으로 다시 찾아가게 되는 그 은밀한 정원들이 있기에 대지는 풍요로운 것이다. 삶은, 동료 冗觀壙 나를 떨어뜨려놓기도 하고 동료들을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 동료들은 어디에든 존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직무에 충실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 그들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하게 되면 그들은 환희의 기쁨을 불꽃처럼 내뿜으며 우리의 어깨를 잡고 흔들리라! 물론이다.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습관이 있으니….
하지만 우리는 그 친구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이제 다시는 영원히 우리에게 들려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은밀한 정원이 우리에게 영원히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결코 가슴을 찢을 듯한 아픔은 아니지만 약간은 씁쓸하기도 한 우리들의 진정한 애도가 그렇게 시작된다.
떠나버린 동료를 대신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랜 벗이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공통된 추억들, 함께 체험했던 수없는 고통의 시간들, 여러 번의 반목, 화해, 마음의 동요로 이루어진 이런 보물들보다 가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우정을 다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떡갈나무를 심은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무의 그늘 아래서 쉬기를 바란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돈을 모아 몇 해에 걸쳐 나무를 심었지만, 시간이 흘러 이 나무들을 베어내는 시절이 오고야 만다. 동료들은 하나둘 차례로 우리에게서 자신들의 그늘을 거두어간다. 그러면 우리의 슬픔에 늙어간다는 비밀스러운 회한이 뒤섞이게 된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공동의 목적으로 함께 하는 이들을 우리는 동료라고 부른다. 매일 칸막이 하나로 마주하는 동료도 있고,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동료도 있다. 그렇게 마주하는 동료는 자칫 일상적인 만남이 되어 무미건조한 관계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어쩌다 절묘하게 시간이 맞아야만 해후하게 되는 동료가 있으니, 우편물을 배달하는 조종사들이다. 이들이 어쩌다 중간 기착지에서 만나게 될 때 얻게 되는 기쁨이란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1000번을 만나도 의미 없는,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단 한번을 만났어도 일생 잊히지 않고 기억되는 눈물 나게 고마운 만남도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동료를 만나는 행운이 필요하다.
그러다 어느 날 몇 번의 만남도 갖지 못한 채 영면하는 동료에 대한 감정이란 얼마나 애틋할 것인가? 비밀스러운 정원, 우리에게 금지된 정원, 그렇다 산자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정원.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가야할 그 비밀의 정원으로 동료를 보내놓고 무거운 이 몸으로 는 만날 수 없는 동료애를 느낄 때 우리는 삶에 대해 얼마나 깊은 철학자로 변신하게 되던지.
이렇게 부재한 동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부재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인생이란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회한으로 다시 한 번 살아있음의 숭고함을 생각한다. 참 좋은 동료, 참 좋은 이웃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를 인정하고 친구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세월을 필요로 하고, 수많은 부대낌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정을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 우정이란 만들어 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이되어 이루어지는 위대한 삶의 쌓여짐이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좋은 친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통곡을 해도 위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 입장이 되지 않고는 그것을 감히 집작도 못한다.
*우정은 씨앗을 심어놓고 그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수도하여 얻어진 동료와의 관계이다.* -최복현-
하지만 우리는 그 친구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이제 다시는 영원히 우리에게 들려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은밀한 정원이 우리에게 영원히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결코 가슴을 찢을 듯한 아픔은 아니지만 약간은 씁쓸하기도 한 우리들의 진정한 애도가 그렇게 시작된다.
떠나버린 동료를 대신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랜 벗이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공통된 추억들, 함께 체험했던 수없는 고통의 시간들, 여러 번의 반목, 화해, 마음의 동요로 이루어진 이런 보물들보다 가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우정을 다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떡갈나무를 심은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무의 그늘 아래서 쉬기를 바란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돈을 모아 몇 해에 걸쳐 나무를 심었지만, 시간이 흘러 이 나무들을 베어내는 시절이 오고야 만다. 동료들은 하나둘 차례로 우리에게서 자신들의 그늘을 거두어간다. 그러면 우리의 슬픔에 늙어간다는 비밀스러운 회한이 뒤섞이게 된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공동의 목적으로 함께 하는 이들을 우리는 동료라고 부른다. 매일 칸막이 하나로 마주하는 동료도 있고,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동료도 있다. 그렇게 마주하는 동료는 자칫 일상적인 만남이 되어 무미건조한 관계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어쩌다 절묘하게 시간이 맞아야만 해후하게 되는 동료가 있으니, 우편물을 배달하는 조종사들이다. 이들이 어쩌다 중간 기착지에서 만나게 될 때 얻게 되는 기쁨이란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1000번을 만나도 의미 없는,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단 한번을 만났어도 일생 잊히지 않고 기억되는 눈물 나게 고마운 만남도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동료를 만나는 행운이 필요하다.
그러다 어느 날 몇 번의 만남도 갖지 못한 채 영면하는 동료에 대한 감정이란 얼마나 애틋할 것인가? 비밀스러운 정원, 우리에게 금지된 정원, 그렇다 산자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정원.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가야할 그 비밀의 정원으로 동료를 보내놓고 무거운 이 몸으로 는 만날 수 없는 동료애를 느낄 때 우리는 삶에 대해 얼마나 깊은 철학자로 변신하게 되던지.
이렇게 부재한 동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부재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인생이란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회한으로 다시 한 번 살아있음의 숭고함을 생각한다. 참 좋은 동료, 참 좋은 이웃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를 인정하고 친구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세월을 필요로 하고, 수많은 부대낌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정을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 우정이란 만들어 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이되어 이루어지는 위대한 삶의 쌓여짐이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좋은 친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통곡을 해도 위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 입장이 되지 않고는 그것을 감히 집작도 못한다.
*우정은 씨앗을 심어놓고 그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수도하여 얻어진 동료와의 관계이다.* -최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