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현의 나를 찾는 여행
| 최복현 |
*제82회 - " 인간의 대지 - 바람직한 관계와 부적절한 관계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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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21:58
이러한 교훈을 메르모즈와 다른 동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직업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치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치는 아마도 인간관계일 것이다.
오직 물질적인 재산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건 자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다. 살 만한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잿더미와 같은 돈을 가지고 스스로 고독하게 틀어박히는 것이다.
나의 추억 가운데 가장 최고의 순간과 가장 가치 있는 애정을 받았던 시간을 되새겨보면, 그것이 재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메르모즈와 같은 동료들에게서 얻은 우정과 그들과 함께 겪은 시련을 결코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비행하던 밤을 수놓았던 수많은 별들, 마음의 평정, 나만이 몇 시간 동안 누렸던 하늘의 세계는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들이다.
힘겨운 구간을 지난 뒤에 보게 되는 세상의 새로운 모습, 새벽녘에 우리에게 방금 다시 주어진 생명에 의해 생생하게 빛을 발하는 저 나무들, 저 꽃들, 저 여인들, 저 미소들, 우리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하찮은 것들의 그 향연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던 지역에서의 비행을 체험한 그날 밤, 그 밤의 추억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관계에 따라 바람직한 관계도 있고, 부적절한 관계도 있다.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좋은 과정을 가져온다고 해서 바람직한 관계라고 할 수는 없다. 둘이는 좋아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부적절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바람직한 관계는 주변으로부터도 축하를 받을만한 관계이다.
이렇게 서로의 기쁨을 위한 관계도 있고, 공동의 목적을 위한 관계, 요컨대 직업으로 만나는 관계도 있으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관계도 있다. 그러한 이익을 위한 관계만을 원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그 좁은 우리 안으로 기어들어가 속박당하는 꼴이 된다. 때로는 과감히 이익을 포기한 관계, 정의를 위한 관계이거나 인간다운 관계를 맺을 때 또 다른 삶의 환희와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거대한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키며 산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관계들에 대해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러다가 막상 그 관계가 부서질 때 다시 스스로 돌아본다. 더구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마지막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는 우리와 맺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관계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고난을 함께 하며 이루어 놓은 관계 속에 나와 그대가 있을 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고, 주변 모두를 새롭게 하며, 아름답게 장식해 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를 많이 맺은 사람은 인생의 부자이다.* -최복현-
오직 물질적인 재산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건 자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다. 살 만한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잿더미와 같은 돈을 가지고 스스로 고독하게 틀어박히는 것이다.
나의 추억 가운데 가장 최고의 순간과 가장 가치 있는 애정을 받았던 시간을 되새겨보면, 그것이 재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메르모즈와 같은 동료들에게서 얻은 우정과 그들과 함께 겪은 시련을 결코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비행하던 밤을 수놓았던 수많은 별들, 마음의 평정, 나만이 몇 시간 동안 누렸던 하늘의 세계는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들이다.
힘겨운 구간을 지난 뒤에 보게 되는 세상의 새로운 모습, 새벽녘에 우리에게 방금 다시 주어진 생명에 의해 생생하게 빛을 발하는 저 나무들, 저 꽃들, 저 여인들, 저 미소들, 우리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하찮은 것들의 그 향연은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던 지역에서의 비행을 체험한 그날 밤, 그 밤의 추억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관계에 따라 바람직한 관계도 있고, 부적절한 관계도 있다.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좋은 과정을 가져온다고 해서 바람직한 관계라고 할 수는 없다. 둘이는 좋아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부적절한 관계라 할 수 있다. 바람직한 관계는 주변으로부터도 축하를 받을만한 관계이다.
이렇게 서로의 기쁨을 위한 관계도 있고, 공동의 목적을 위한 관계, 요컨대 직업으로 만나는 관계도 있으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관계도 있다. 그러한 이익을 위한 관계만을 원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그 좁은 우리 안으로 기어들어가 속박당하는 꼴이 된다. 때로는 과감히 이익을 포기한 관계, 정의를 위한 관계이거나 인간다운 관계를 맺을 때 또 다른 삶의 환희와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거대한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키며 산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관계들에 대해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러다가 막상 그 관계가 부서질 때 다시 스스로 돌아본다. 더구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마지막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는 우리와 맺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관계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고난을 함께 하며 이루어 놓은 관계 속에 나와 그대가 있을 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고, 주변 모두를 새롭게 하며, 아름답게 장식해 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를 많이 맺은 사람은 인생의 부자이다.* -최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