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오랜 시간 이 병을 숨기고 변명하고 거짓말하느라 너무 지쳤다”
기분도 몸무게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갔던 숱한 날들에 대한 고백
‘그 쉬운 밥 먹는 일’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와 고통이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 이야기를 좀 할 필요가 있다.
_김겨울, 작가·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어느 날, 저자는 위산이 배를 난도질하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얼떨결에 생라면을 흡입하고는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자취방 한가운데서 토하고 만다. 이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는가? 더러워진 방을 걱정하거나 위와 식도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았다. 단지 음료 없이 생라면을 먹으면 토하기가 몹시 어려우므로, 다음에 또 그런 종류의 딱딱하고 마른 음식을 먹게 된다면 꼭 물이랑 같이 먹어서 더 쉽게 토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들은 삶에 치명적인 해를 입혔다. 위염과 식도염이 생기고, 머리카락과 근육이 빠져가고, 생리가 멈췄다. 앙상한 몸은 어디에 앉거나 눕는 것조차 뼈가 눌려 불편하게 만들었고, 36킬로그램일 때는 덮고 자는 이불조차 무거웠다. 이런 신체적 고통 외에 사회적 기능 역시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직장에서나,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나, 애인과 데이트를 할 때에도 주로 하는 것이 먹는 일인데 그걸 못 하니 인간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직장 동료들은 단 한 번도 그가 밥 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정신병자로 몰리고, 직장에 다닐 자격을 논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불행했다. 가까스로 살을 빼고 유지하는 와중에 들려오는 ‘날씬해서 예뻐 보인다’는 말이 그를 가장 슬프게 했다. 그 말 때문에 먹는 것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그만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외모 집착, 가족 트라우마, 불안, 우울, 강박…
갖은 어둠의 재료들로 끓여 낸 섭식장애의 세계
어쩌다 다른 병도 아니고 밥을 못 먹는 병에 걸리게 되었을까? 여느 정신질환이 그렇듯 섭식장애의 원인도 어느 한 가지로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생물학적 요인, 신경증에 취약한 성향, 외모에 대한 가치 기준, 사랑에 대한 갈구, 존재감을 느끼기 위한 잘못된 선택, 자기 파괴 행위 같은 여러 가지가 맞물려 있다.
저자의 대학생 때 인생 목표는 43킬로그램의 몸무게와 올 A+ 성적이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혼자 살며 자기 힘으로 생계를 책임져 온 그는 고생하며 산 여자라고 무시당하기 싫어서, 공부도 일도 잘하고 예쁘기까지 한, 무엇 하나 모자란 것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아득바득 살았다. 파릇하고 상큼한 대학생이고 싶었지만 늘 지쳐 있었고 외로웠다.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지만 만날수록 더 외로워지는 얄팍하고 공허한 관계들 속에서, 사람들이 더 자주 자신을 찾고 더 깊이 좋아해 주길 바랐고, 이런 갈망이 비뚤어진 방향으로 나아가 외모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어려서 ‘갈비’라고 불리던 그가 10대 후반에 처음 살이 찐 건 가난해서 생긴 식탐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을, 근본적으로는 도움을 바랐지만 살찐 겉모습은 그와 정반대의 것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또한 무력감에 잠식당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 겪은 학대의 기억은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위협과 고통에 맞닥뜨릴 때,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을 때마다 늘 먼저 포기하고 당하기만 한 채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무력감이 팽배한 사람에게 두 가지 기쁨이 있었으니, 바로 공부와 거식 행위였다. 공부는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 결실로 돌아왔다. 손해 보거나 당하거나 억울할 일이 없었다. 먹는 것 역시 그랬다. 먹지 않으면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났고, 주변의 부러움과 관심까지 받을 수 있었다.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음식을 통제하는 것은 가장 쉽고 빠르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거식증에 중독되었다.
난독증을 겪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졸업 논문을 쓰고,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그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고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무리하고 있으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멈출 용기는 없었다. 차라리 몸이라도 망가져 쓰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더 먹지 않았다. 하루 종일 물만 마셨다. 환자가 되고 싶었고, 되어야만 했다. 퇴사하고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온전히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가장 학대받았던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20대 시절, 사실 그는 늘 죽음을 생각했다. 죽음을 희망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큰 모순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의 자신은 너무 잘 살고 싶어서 죽고 싶었다는 것을. 조금 실수해도, 지금 넘어진 상태여도, 살이 쪄도, 내 삶이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알기까지 그는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음식에 대한 두려움과 갈망 사이, 자기 몸에 대한 통제와 파괴 사이에서,
나와 싸우며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이 책의 후반부는 저자가 섭식장애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고 입원 치료부터 약물, 상담, 식단 일기, 명상 등 온갖 방법을 섭렵하며 분투한 과정을 담고 있다. 거식증이 완치되기까지 환자들은 여러 차례 일시적으로 증상이 나아지는 부분 관해를 겪는다. 하지만 한번 몸에 익은 거식 행위는 삶이 위태로워질 때마다 강력한 유혹으로 다시 나타난다. 나아진 것 같다가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그 괴롭고도 익숙한 굴레를 벗어나기까지 스스로의 동기 못지않게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절망과 희망 사이 어지러운 나선을 돌고 돌아 기어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 이야기의 끝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 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다.
각종 정신 질환을 가졌다는 사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이해와 위로를 얻고 있음에도, 섭식장애 환자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깊이 숨어 지낸다.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하고 때로는 죽고 싶다는 데에는 공감을 얻어도, 먹는 게 무서워서 굶거나 토한다는 말에 이해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섭식장애를 고백한 뒤 많은 주변 사람들이 그를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병에도 끝이 올 수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싶어서다. 그의 고백이 용기가 필요한 또 다른 이들의 마음에 가 닿기를, 혼자 아파했을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 소개
정유리
20대의 어느 순간 시작된 섭식장애, 정확히는 폭식·제거형 거식증을 13년째 앓고 있으며, 그 외에도 물귀신 같은 여러 정신 질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36킬로그램과 63킬로그램을 오가며 울고 웃는 날들을 무한히 겪고도 여전히 먹는 일이 두렵다. 가장 먹고 싶지만 못 먹는 건 치킨과 프라푸치노. 그래도 요즘은 과자를 먹고도 토하지 않는 날들이 늘어 간다. 숨은 동지들에게, 언젠가 섭식장애에도 끝이 올 수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싶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브런치에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를 연재했다.
목 차
프롤로그: 먹방과 먹토 사이
1부 섭식장애 13년차입니다
날씬해서 예쁘다고요?
액체류를 즐겨 먹는 사람
망가지고 잃어버린 것들
왜 하필 이런 병에 걸려서
2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느냐고요
불행의 이유는 제각각이라지만
무력감을 이기는 거식의 기쁨
지금 먹지 않으면 안 돼
내 것 같지 않은 내 몸
희망만큼 절망했던 날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너무 잘 살고 싶어서 죽고 싶었다
3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치료를 시작하며
나를 구할 사람은 나뿐이니까
관해와 완치
외롭지 않은 맛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술
상담과 약물 치료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흉터로 슬픔을 잴 수는 없겠지만
수치심에 지지 않기
독립과 고백은 신중하게
궁극의 치료 조건
+ 안심하고 먹으라고 제발
4부 인생은 나선형
롤러코스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상 시 대처 요령
안다는 것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에필로그: 엔딩 없는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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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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