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전화통화, 이메일, 신용카드 기록, CCTV…
왜 세상은 우리를 감시하는가?
왜 우리는 감시사회에 침묵하고 협조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이 밝히는 감시사회의 본질
빅브라더, 우리를 감시하는 권력
#1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이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쓸어 모아 개인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의 60%는 스노든이 “국가안보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응답했다. 국가안보를 위해 NSA의 감시활동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2 한 지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CCTV 설치를 확대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중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 감시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150쪽)
#3 사람들은 주목을 받고자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올려놓는다. 사적인 것은 이미 가벼운 관계의 ‘사용자들’과 무수히 많은 ‘친구들’이 찬양하고 소비할 수 있는 공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4 한 무인비행체가 2011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투하했다. 죽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22명의 결혼식 하객. 희생자 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단추를 누른 조종자들은 ‘수많은 정보로 범벅이 된’ 화면 때문에 판단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130쪽)
#5 국민카드 등 카드 3사의 고객 정보가 유출되었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카드사가 요구한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이렇게 자발적 감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을 ‘빅브라더’라고 불렀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NSA의 ‘지구적 정보감시 체제’를 폭로하자 세계 각국의 언론은 ‘빅브라더’의 존재 자체를 다시금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감시 권력은 우리 주위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학교 생활기록부, 건강보험 정보, 은행 거래 내역 등 각종 정보와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까지 알아낼 수 있는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원의 감시체제, 경찰의 시위자 감시, 카드 3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태, 각 기업들의 노동자 감시 등. 그리고 ‘주민등록번호 체제를 재고하자’ 등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요즘 뉴스에서 감시에 대한 기사는 이처럼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감시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서 급격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현상을 반영한다. 오늘날의 시민들, 노동자들, 소비자들 그리고 여행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모니터되고, 추적되고, 조사당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감시’가 그 자신들의 협조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명석한 사회 사상가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런 ‘감시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감시사회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언 캐나다 퀸즈 대학 교수와 대담한 책이다. 퀸즈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는 1990년대부터 감시 연구에 집중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바우만은 이 책에서 위의 예시에서처럼 현대의 감시사회가 ‘빅브라더’로 상징되는 감시권력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는 하나 현대인들의 ‘자발적 복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어판 제목을 친애하는 빅브라더(원제는 유동하는 감시Liquid Surveillance)라고 붙이게 되었다. 현대인들이 빅브라더로 대표되는 감시사회를 의식하고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빅브라더를 용인하고 오히려 이에 충성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현대적 감시에서 전면으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감시에 순응하고 그것에 약간의 의혹을 제기하지만 감시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감시 게임에 가담하겠다고 결심하는 보통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는 시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서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점검과 감시, 시험을 받고, 평가되며, 값이 매겨지고, 판정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바우만은 묻는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감시가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대인들이 이런 감시사회의 의미를 제대로 감지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감시의 기원을 탐구하면서 감시가 확장되는 것에 따른 정치적 물음들뿐만 아니라 윤리적 물음들도 제기하고 있다.
소수가 다수를 주시하는 파놉티콘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 개념으로 유명하다. 즉 오늘날 현대사회는 너무나 가변적이어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움직이는 ‘유동’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권력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로이 흘러 다닌다. 그러면서 장벽, 울타리, 국경 등을 초월하여 움직이고,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단단한 결속’이나 연대를 깨뜨려버린다. 감시도 마찬가지로 유동하고 있다(‘유동하는 감시’). “수많은 이론가들은 한때는 단단하고 고정된 것이었던 감시가 점점 더 신축성을 가지고 쉽게 변하며 잘 스며드는 현상, 나아가 삶의 중심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주변부 영역으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전의 감시는 ‘고정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감시권력이 누구인지 파악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동하는 현대’에 와서는 감시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조차 없이 도처에 퍼져가고 있다. 특히 소비 영역에 이르면 감시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제러미 벤담이 기안한 ‘파놉티콘’이라는 감옥을 생각해보자. 그리스어를 꿰맞춰서 만든 이 용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장소’(‘pan’은 ‘모두’, ‘optic’은 ‘본다’를 뜻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파놉티콘 감옥은 감방을 반원형으로 배열함으로써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설계되었고, 중앙부의 ‘교도관’은 수감자들 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감방을 감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우만에 따르면 오늘날의 세계는 탈파놉티콘적이다. 오늘날의 감시자들은 과거의 파놉티콘적 감시자들과는 달리 자리를 지키고 앉아 감시를 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감시가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빠져나감으로써 홀연히 사라질 수 있다. 현대의 감시 권력은 장벽, 울타리, 국경 등을 초월해버린다. 이런 현상은 다른 얼굴을 한 통제 형식을 가능케 했다. 이제 디지털 기술과 통계적 추론을 활용한 감시는 노동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측정하고, 노동자와 소비자가 스스로 감시받고, 감시하게 만든다.
다수가 소수를 주시하는 시놉티콘과 소셜미디어
유동하는 현대세계는 소비자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현대세계에서 감시는 색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제 파놉티콘 방식에서 시놉티콘 방식으로 이동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사회학자 토마스 마티센이 말한 시놉티콘은 ‘소수가 다수를 주시’하던 파놉티콘과 달리 ‘다수가 소수를 주시’하는 오늘날의 매스미디어를 대비시키면서 만든 말이다. 즉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터넷의 익명성을 통해 다수가 소수를 주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우만은 시놉티콘이 ‘DIY식 파놉티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유동하는 현대를 구성하고 있는 소비자가 스스로 감시사회를 만들어간다고 것이다. 이전의 감시 권력은 많은 비용을 들여 다수를 감시했지만, 이제는 그 감시를 소비자 자신에게 전가시켜 스스로를 감시사회에 협조하고 충성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이들은 고백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 감시는 공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지 않고, 무시받지 않고, 방치되지 않고, 가입이 거부되지 않는 희망을 재구성하게 된다. 즉 주목받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즐거움이 폭로의 두려움을 억제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커머스에서 사적인 것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을 공적 미덕이자 책무로 알고 살아간다. 그들은 상품 홍보자인 동시에 그들이 홍보하는 상품 자체인 것이다.
바우만은 소셜미디어의 긍정적인 측면도 언급하고 있다. ‘아랍의 봄’과 ‘점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대중 참여에서 이루어진 연대와 정치적 조직화가 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언급한다. 소셜미디어의 탄생 자체가 상업적 목적에 의해 이루어졌고(“소셜미디어는 사용자에 대한 모니터링과 타인에게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에 의존하여 존재한다”),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다수의 소비자들 또한 별다른 저항 없이 그 소비사회에 의해 스스로를 감금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유동화된 세계에서는 결속을 위한 원천이 없는데다가, 소셜미디어에 내재되어 있는 감시 권력의 존재는 고질적인 것이자 소셜미디어 자체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바놉티콘과 배제된 사람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오늘날의 감시가 조지 오웰이나 푸코 등이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이른바 ‘단단히 고정된 근대’의 파놉티콘적 감시와 달리 ‘유동하는 현대’의 조건 속에 존재하는 현대의 감시는 이 존재 조건의 변화에 상응하여 몇 가지 상이한 질적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
‘유동하는 현대’의 감시는 일차적으로 ‘배제’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소비사회의 무분별한 경쟁 과정에서 결함 있는 이들로 판정된 사람들은 체계적 분류를 통해 정상사회로의 진입이 거부되어 내던져진 사람들로 영원히 배제된다. 현대의 감시는 이 배제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새롭게 조정되었다. 이러한 감시 유형은 바놉티콘이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바놉티콘 개념은 아감벤의 영향을 받아 장 뤽 낭시가 발전시킨 ‘추방(ban)’ 개념과 푸코의 ‘옵티콘(opticon)’ 개념을 연결시켜 만든 것입니다. 이 장치는 배제되는 사람의 범주를 만들어냄으로써 누가 환영받고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국민국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확실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그리고 연합 집단을 형성하지는 못한 세계적 권력으로부터 제공되는 것입니다. 바놉티콘의 주요 목적은 쓰레기를 적절한 제품에서 떼어놓아 쓰레기 처리장으로 이송시킬 것을 확실히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동하는 현대’에서 이루어지는 배제적 감시의 동학은 국가와 같은 거대한 억압적 통치 기구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체들의 참여를 통해 의도하지 않게 작동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유동하는 현대’에서 각 개체들은 각 기업과 기관들이 자신의 신상 정보와 행동 궤적을 전자적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감시가 불행한 사고를 방지해줌으로써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감시는 지배와 억압으로서만이 아니라 안전과 돌봄이라는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편리, 안전, 돌봄이라는 이익을 이유로 감시를 허용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자유의 유예 혹은 포기를 의미한다. 각 기업과 국가 및 사회 기관에게 자신의 신상 정보와 사생활을 자발적 혹은 자동적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이미 감시의 자발적 용인이 제도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감시에 대한 도덕적 무감각
-누구도 감시에 따른 배제에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감시에 대한 이러한 무감각은 배제를 용인하게 만든다. 국가는 자신에게 자발적으로 제공된 개인 정보를 기초로 하여 ‘테러 용의자’나 ‘사회적 쓰레기들’을 ‘정상인들’과 구분하여 배제할 수 있다. 기업은 자동적으로 제공된 신상 정보를 통해 소비 능력을 상실했거나 정상적 소비를 지속할 능력이 없는 이들을 선별하여 서비스 제공에서 배제한다. 배제의 공포를 갖게 된 사람들은 국가나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누락되지 않기 위해 경쟁한다. 누구도 감시에 따른 배제에 의문을 표하지 않으며, 누구도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아직은 쓸모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서비스 제공 기간을 갱신하는 경쟁에 전력을 다할 뿐이다. 이른바 ‘유동하는 현대’판 ‘자발적 복종’이다.
한 무인비행체가 2011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투하했다. 죽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22명의 결혼식 하객. 희생자 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단추를 누른 조종자들은 ‘수많은 정보로 범벅이 된’ 화면 때문에 판단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문화와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을 신청한 이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는데도 출입국 심사자는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감시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희망을 희망하자
현대의 감시는 이처럼 복합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우만은 현대의 감시가 비록 긍정적 잠재력을 지닐지언정 그것이 유동하는 현대인의 특징인 도덕적 무감각의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 긍정적 잠재력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보인다. 그렇다면 도덕적 무감각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현대인에게 부여되고 있는가? 인류의 사회와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실천하게끔 격려해주고 가르침을 주었던 모든 것은 사라졌다. 종교적 믿음은 소멸했으며, 정치적 이념은 붕괴되었다. 도덕적 규범의 신성성을 간직했던 모든 것은 유동하는 현대의 세속화 과정에 직면하자마자 힘없이 쓰러졌다. 인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우만은 희망을 희망하자고 말한다. 다만 희망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삼가야 한다고 말한다. 희망을 희망하면서도 그것을 의심하면서 희망하자. 의심은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보다는 그것을 건강하게 해주므로. 바우만이 인용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말에 바우만의 뜻이 담겨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마치 우리가 미래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그리하여 우리가 하는 말과 행위에 계속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미래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행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래를 실제로 살지는 못해도 그것을 살아간다는 느낌은 갖게 되는 것입니다.”
▣ 작가 소개
저 :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등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났다. 이스라엘로 건너갔지만, 시온주의의 공격성과 팔레스타인의 참상에 절망을 느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잠시 가르치다 1971년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교와 바르샤바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다.
바우만은 1980년대 초까지 정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갈등을 중점 연구했다. 이후 안토니오 그람시, 게오르그 짐멜의 영향을 받아 관심 영역을 확장했고, 이어 자크 데리다,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조르조 아감벤 등의 이론을 폭넓게 수용하며 홀로코스트, 근대, 탈근대, 계급, 세계화, 소비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방대한 연구 성과에 비해 다소 늦게 주목을 받았다. 64세 때인 1989년에 발표한 『근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라는 책을 펴낸 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90년대 탈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명성을 쌓았고, 2000년대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 시리즈[Liquid Modernity(2000), Liquid Love(2003), Liquid Life(2005), Liquid Fear(2006), Liquid Times(2007)]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유동하는 근대’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ㆍ제도ㆍ풍속ㆍ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바우만의 독창적인 핵심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탈근대의 조건을 모호성, 불확실성, 상대성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다른 포스트모던 사상가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마르크시즘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가며 회의주의가 아닌 실천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평을 얻고 있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을, 1998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과 함께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바우만의 학문 이력은 2002년 국내에 『자유』가 처음 번역되면서 알려졌다. 바우만의 시선은 전 지구를 포괄할 정도로 넓고, 인간 심리의 저 어두운 밑바닥까지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는 『모두스 비벤디』, 『새로운 빈곤』, 『액체 근대』, 『유동하는 공포』,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등이 번역되어 있다.
역자 : 한길석
하버마스의 공영역 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신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비판이론을 중심으로 한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이다. 대표 논문으로는 근대적 연대 형식과 그 도전들, 공영역과 다원사회의 도전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자의 서재》(공저),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공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과 감사의 글 7
서문|우리를 감시하는 세상 10
1장 무인비행체와 소셜미디어 33
2장 자기 스스로 감시하는 소비자들 81
3장 당신은 단추를 누를 때 이를 악물지 않는다 113
4장 불/안전을 감시하다 143
5장 나는 감시된다, 고로 존재한다 171
6장 감시를 윤리적으로 따져보기 187
7장 희망을 희망하다 201
옮긴이의 말 225
미주 231
찾아보기 242
전화통화, 이메일, 신용카드 기록, CCTV…
왜 세상은 우리를 감시하는가?
왜 우리는 감시사회에 침묵하고 협조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이 밝히는 감시사회의 본질
빅브라더, 우리를 감시하는 권력
#1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이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쓸어 모아 개인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의 60%는 스노든이 “국가안보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응답했다. 국가안보를 위해 NSA의 감시활동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2 한 지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CCTV 설치를 확대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중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 감시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150쪽)
#3 사람들은 주목을 받고자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올려놓는다. 사적인 것은 이미 가벼운 관계의 ‘사용자들’과 무수히 많은 ‘친구들’이 찬양하고 소비할 수 있는 공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4 한 무인비행체가 2011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투하했다. 죽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22명의 결혼식 하객. 희생자 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단추를 누른 조종자들은 ‘수많은 정보로 범벅이 된’ 화면 때문에 판단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130쪽)
#5 국민카드 등 카드 3사의 고객 정보가 유출되었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카드사가 요구한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이렇게 자발적 감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을 ‘빅브라더’라고 불렀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NSA의 ‘지구적 정보감시 체제’를 폭로하자 세계 각국의 언론은 ‘빅브라더’의 존재 자체를 다시금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감시 권력은 우리 주위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학교 생활기록부, 건강보험 정보, 은행 거래 내역 등 각종 정보와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까지 알아낼 수 있는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원의 감시체제, 경찰의 시위자 감시, 카드 3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태, 각 기업들의 노동자 감시 등. 그리고 ‘주민등록번호 체제를 재고하자’ 등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요즘 뉴스에서 감시에 대한 기사는 이처럼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감시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서 급격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현상을 반영한다. 오늘날의 시민들, 노동자들, 소비자들 그리고 여행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모니터되고, 추적되고, 조사당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감시’가 그 자신들의 협조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명석한 사회 사상가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런 ‘감시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감시사회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언 캐나다 퀸즈 대학 교수와 대담한 책이다. 퀸즈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는 1990년대부터 감시 연구에 집중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바우만은 이 책에서 위의 예시에서처럼 현대의 감시사회가 ‘빅브라더’로 상징되는 감시권력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는 하나 현대인들의 ‘자발적 복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어판 제목을 친애하는 빅브라더(원제는 유동하는 감시Liquid Surveillance)라고 붙이게 되었다. 현대인들이 빅브라더로 대표되는 감시사회를 의식하고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빅브라더를 용인하고 오히려 이에 충성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현대적 감시에서 전면으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감시에 순응하고 그것에 약간의 의혹을 제기하지만 감시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감시 게임에 가담하겠다고 결심하는 보통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는 시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서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점검과 감시, 시험을 받고, 평가되며, 값이 매겨지고, 판정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바우만은 묻는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감시가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대인들이 이런 감시사회의 의미를 제대로 감지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감시의 기원을 탐구하면서 감시가 확장되는 것에 따른 정치적 물음들뿐만 아니라 윤리적 물음들도 제기하고 있다.
소수가 다수를 주시하는 파놉티콘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 개념으로 유명하다. 즉 오늘날 현대사회는 너무나 가변적이어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움직이는 ‘유동’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권력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로이 흘러 다닌다. 그러면서 장벽, 울타리, 국경 등을 초월하여 움직이고,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단단한 결속’이나 연대를 깨뜨려버린다. 감시도 마찬가지로 유동하고 있다(‘유동하는 감시’). “수많은 이론가들은 한때는 단단하고 고정된 것이었던 감시가 점점 더 신축성을 가지고 쉽게 변하며 잘 스며드는 현상, 나아가 삶의 중심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주변부 영역으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전의 감시는 ‘고정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감시권력이 누구인지 파악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동하는 현대’에 와서는 감시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조차 없이 도처에 퍼져가고 있다. 특히 소비 영역에 이르면 감시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제러미 벤담이 기안한 ‘파놉티콘’이라는 감옥을 생각해보자. 그리스어를 꿰맞춰서 만든 이 용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장소’(‘pan’은 ‘모두’, ‘optic’은 ‘본다’를 뜻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파놉티콘 감옥은 감방을 반원형으로 배열함으로써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설계되었고, 중앙부의 ‘교도관’은 수감자들 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감방을 감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우만에 따르면 오늘날의 세계는 탈파놉티콘적이다. 오늘날의 감시자들은 과거의 파놉티콘적 감시자들과는 달리 자리를 지키고 앉아 감시를 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감시가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빠져나감으로써 홀연히 사라질 수 있다. 현대의 감시 권력은 장벽, 울타리, 국경 등을 초월해버린다. 이런 현상은 다른 얼굴을 한 통제 형식을 가능케 했다. 이제 디지털 기술과 통계적 추론을 활용한 감시는 노동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측정하고, 노동자와 소비자가 스스로 감시받고, 감시하게 만든다.
다수가 소수를 주시하는 시놉티콘과 소셜미디어
유동하는 현대세계는 소비자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현대세계에서 감시는 색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제 파놉티콘 방식에서 시놉티콘 방식으로 이동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사회학자 토마스 마티센이 말한 시놉티콘은 ‘소수가 다수를 주시’하던 파놉티콘과 달리 ‘다수가 소수를 주시’하는 오늘날의 매스미디어를 대비시키면서 만든 말이다. 즉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터넷의 익명성을 통해 다수가 소수를 주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우만은 시놉티콘이 ‘DIY식 파놉티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유동하는 현대를 구성하고 있는 소비자가 스스로 감시사회를 만들어간다고 것이다. 이전의 감시 권력은 많은 비용을 들여 다수를 감시했지만, 이제는 그 감시를 소비자 자신에게 전가시켜 스스로를 감시사회에 협조하고 충성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이들은 고백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 감시는 공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지 않고, 무시받지 않고, 방치되지 않고, 가입이 거부되지 않는 희망을 재구성하게 된다. 즉 주목받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즐거움이 폭로의 두려움을 억제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커머스에서 사적인 것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을 공적 미덕이자 책무로 알고 살아간다. 그들은 상품 홍보자인 동시에 그들이 홍보하는 상품 자체인 것이다.
바우만은 소셜미디어의 긍정적인 측면도 언급하고 있다. ‘아랍의 봄’과 ‘점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대중 참여에서 이루어진 연대와 정치적 조직화가 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언급한다. 소셜미디어의 탄생 자체가 상업적 목적에 의해 이루어졌고(“소셜미디어는 사용자에 대한 모니터링과 타인에게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에 의존하여 존재한다”),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다수의 소비자들 또한 별다른 저항 없이 그 소비사회에 의해 스스로를 감금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유동화된 세계에서는 결속을 위한 원천이 없는데다가, 소셜미디어에 내재되어 있는 감시 권력의 존재는 고질적인 것이자 소셜미디어 자체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바놉티콘과 배제된 사람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오늘날의 감시가 조지 오웰이나 푸코 등이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이른바 ‘단단히 고정된 근대’의 파놉티콘적 감시와 달리 ‘유동하는 현대’의 조건 속에 존재하는 현대의 감시는 이 존재 조건의 변화에 상응하여 몇 가지 상이한 질적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
‘유동하는 현대’의 감시는 일차적으로 ‘배제’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소비사회의 무분별한 경쟁 과정에서 결함 있는 이들로 판정된 사람들은 체계적 분류를 통해 정상사회로의 진입이 거부되어 내던져진 사람들로 영원히 배제된다. 현대의 감시는 이 배제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새롭게 조정되었다. 이러한 감시 유형은 바놉티콘이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바놉티콘 개념은 아감벤의 영향을 받아 장 뤽 낭시가 발전시킨 ‘추방(ban)’ 개념과 푸코의 ‘옵티콘(opticon)’ 개념을 연결시켜 만든 것입니다. 이 장치는 배제되는 사람의 범주를 만들어냄으로써 누가 환영받고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국민국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확실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그리고 연합 집단을 형성하지는 못한 세계적 권력으로부터 제공되는 것입니다. 바놉티콘의 주요 목적은 쓰레기를 적절한 제품에서 떼어놓아 쓰레기 처리장으로 이송시킬 것을 확실히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동하는 현대’에서 이루어지는 배제적 감시의 동학은 국가와 같은 거대한 억압적 통치 기구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체들의 참여를 통해 의도하지 않게 작동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유동하는 현대’에서 각 개체들은 각 기업과 기관들이 자신의 신상 정보와 행동 궤적을 전자적 데이터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감시가 불행한 사고를 방지해줌으로써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감시는 지배와 억압으로서만이 아니라 안전과 돌봄이라는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편리, 안전, 돌봄이라는 이익을 이유로 감시를 허용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자유의 유예 혹은 포기를 의미한다. 각 기업과 국가 및 사회 기관에게 자신의 신상 정보와 사생활을 자발적 혹은 자동적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이미 감시의 자발적 용인이 제도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감시에 대한 도덕적 무감각
-누구도 감시에 따른 배제에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감시에 대한 이러한 무감각은 배제를 용인하게 만든다. 국가는 자신에게 자발적으로 제공된 개인 정보를 기초로 하여 ‘테러 용의자’나 ‘사회적 쓰레기들’을 ‘정상인들’과 구분하여 배제할 수 있다. 기업은 자동적으로 제공된 신상 정보를 통해 소비 능력을 상실했거나 정상적 소비를 지속할 능력이 없는 이들을 선별하여 서비스 제공에서 배제한다. 배제의 공포를 갖게 된 사람들은 국가나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누락되지 않기 위해 경쟁한다. 누구도 감시에 따른 배제에 의문을 표하지 않으며, 누구도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아직은 쓸모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서비스 제공 기간을 갱신하는 경쟁에 전력을 다할 뿐이다. 이른바 ‘유동하는 현대’판 ‘자발적 복종’이다.
한 무인비행체가 2011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투하했다. 죽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22명의 결혼식 하객. 희생자 중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단추를 누른 조종자들은 ‘수많은 정보로 범벅이 된’ 화면 때문에 판단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문화와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을 신청한 이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는데도 출입국 심사자는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감시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희망을 희망하자
현대의 감시는 이처럼 복합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우만은 현대의 감시가 비록 긍정적 잠재력을 지닐지언정 그것이 유동하는 현대인의 특징인 도덕적 무감각의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 긍정적 잠재력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보인다. 그렇다면 도덕적 무감각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현대인에게 부여되고 있는가? 인류의 사회와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실천하게끔 격려해주고 가르침을 주었던 모든 것은 사라졌다. 종교적 믿음은 소멸했으며, 정치적 이념은 붕괴되었다. 도덕적 규범의 신성성을 간직했던 모든 것은 유동하는 현대의 세속화 과정에 직면하자마자 힘없이 쓰러졌다. 인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우만은 희망을 희망하자고 말한다. 다만 희망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삼가야 한다고 말한다. 희망을 희망하면서도 그것을 의심하면서 희망하자. 의심은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보다는 그것을 건강하게 해주므로. 바우만이 인용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말에 바우만의 뜻이 담겨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마치 우리가 미래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그리하여 우리가 하는 말과 행위에 계속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미래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행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래를 실제로 살지는 못해도 그것을 살아간다는 느낌은 갖게 되는 것입니다.”
▣ 작가 소개
저 :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등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났다. 이스라엘로 건너갔지만, 시온주의의 공격성과 팔레스타인의 참상에 절망을 느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잠시 가르치다 1971년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교와 바르샤바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다.
바우만은 1980년대 초까지 정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갈등을 중점 연구했다. 이후 안토니오 그람시, 게오르그 짐멜의 영향을 받아 관심 영역을 확장했고, 이어 자크 데리다,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조르조 아감벤 등의 이론을 폭넓게 수용하며 홀로코스트, 근대, 탈근대, 계급, 세계화, 소비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방대한 연구 성과에 비해 다소 늦게 주목을 받았다. 64세 때인 1989년에 발표한 『근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라는 책을 펴낸 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90년대 탈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명성을 쌓았고, 2000년대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 시리즈[Liquid Modernity(2000), Liquid Love(2003), Liquid Life(2005), Liquid Fear(2006), Liquid Times(2007)]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유동하는 근대’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ㆍ제도ㆍ풍속ㆍ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바우만의 독창적인 핵심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탈근대의 조건을 모호성, 불확실성, 상대성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다른 포스트모던 사상가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마르크시즘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가며 회의주의가 아닌 실천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평을 얻고 있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을, 1998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과 함께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바우만의 학문 이력은 2002년 국내에 『자유』가 처음 번역되면서 알려졌다. 바우만의 시선은 전 지구를 포괄할 정도로 넓고, 인간 심리의 저 어두운 밑바닥까지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는 『모두스 비벤디』, 『새로운 빈곤』, 『액체 근대』, 『유동하는 공포』,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등이 번역되어 있다.
역자 : 한길석
하버마스의 공영역 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신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비판이론을 중심으로 한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이다. 대표 논문으로는 근대적 연대 형식과 그 도전들, 공영역과 다원사회의 도전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자의 서재》(공저), 《다시 쓰는 서양 근대철학사》(공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과 감사의 글 7
서문|우리를 감시하는 세상 10
1장 무인비행체와 소셜미디어 33
2장 자기 스스로 감시하는 소비자들 81
3장 당신은 단추를 누를 때 이를 악물지 않는다 113
4장 불/안전을 감시하다 143
5장 나는 감시된다, 고로 존재한다 171
6장 감시를 윤리적으로 따져보기 187
7장 희망을 희망하다 201
옮긴이의 말 225
미주 231
찾아보기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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