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로마, 하루아침에 재발견되지 않았다!! Roma, Non uno die!!
칼을 외부의 적으로 향하게 할 때 필요한 것은 용기다. 칼이 내부의 세계로 향하면, 그것은 광기로 변한다. 아무리 내부 세계가 지옥이더라도 칼을 내부로 돌려선 안 된다. 복례에 필요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정신의 무기다. 베르길리우스는 그 무기로 인내와 관용을 바탕으로 하는 피에타스를 제시한다. 보기에 지저분하고,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시원스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해서, 한 판에 싹쓸이해야 한다는, 한 번에 다 씻어내야 한다는 조급증은 이럴 때 가장 위험한 생각이기에. 조급증은 이런 상황에서 칼과 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그 사회는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기원전 80년 술라 독재의 로마를 보라! 정신의 힘은 효과가 당장 드러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정신의 힘, 곧 인문 교양이 필요한 단계로 접어든 사회는 더딤과 답답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원래 더딘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잉태된 반성이 생겨나다
원래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인간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예컨대 인간에게 가장 재앙이라 일컫는 판도라도 제우스의 선물이라는 점은 신들이 인간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인간들과 신들은 갈등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들은 틈만 나면 신의 세계에 도전하곤 했고, 수가 틀리면 다른 이름의 신을 섬기겠다고 협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아폴로 신이 인간에게 한 경고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에서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요즘 말로 하면 “너나 잘 하세요!”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 말은 그리스 제7 현인 중의 한 사람인 스파르타 출신 킬론이 델피 신전에 봉헌한 헌사로, 사원 앞의 주랑에 새겨져 있다(파우사니아스 제10권 24장 1절). 물론 신들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수치(aidos)를 보내고, 다음엔 정의(dike)를 파견하고, 나중엔 이도 저도 안 되자, 홍수와 지진으로 협박하기도 하고, 전쟁으로 위협도 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 중 인간만한 별종은 없는지라 신들도 끝내는 손을 놓고 말았다. 신들이 떠난 지상은 온통 서로 치고 받고, 맞고 때리고, 붙고 떨어지는 인간들의 싸움질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아수라장의 한 복판에서 ‘이러면 안 된다’, ‘인간답게 사는 법(humaniter vivere)’을 찾아야 한다는 반성(reflexio)이 인간 스스로에게서 자생(自生)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잉태된 반성이 제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등장한 때는 기원전 62년, 장소는 로마의 한 법정이었다. 이 법정은 이렇게 해서 열리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기원전 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는 대중영합주의로 세력을 얻은 폼페이우스 일파가, 로마의 부랑민과 폭력배 청산을 한다는 핑계로 대대적인 외국인 추방 운동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 운동의 결과로 소위 ‘ 파피우스’법이 제정되는데, 이 법에 따라 아르키아스(기원전 119~44년)라는 그리스계 안티오키아 출신의 한 시인이 추방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키케로가 나서서 그를 구해준다.
최상의 힘’을 발휘하는 인문학
키케로가 아르키아스를 구제하기 위해 나선 것은 바로 학문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문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학문은, 평상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 번은 꼭 ‘최상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답게 살고자 할 때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종종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 힘이 되고, 더 나가서 국가 공동체의 운명까지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는 더욱 더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키케로 본인에게는 그랬다. 키케로가 저토록 강조하고 있는 저 학문, 평상시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저 학문,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인문학(humanitas)’이라 부르는 학문이다…(2. 저 삶의 한 복판에서 탄생한 인문학)
근대화를 촉발시킨 한 사건
(중략)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에 문제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결정적인 순간은 한 외딴 장소의 벽 뒤에 처박혀 가만히 숨죽인 채 거의 눈에 띄지도 않게 지나갔다. 어떤 영웅적인 행위도, 이 위대한 변화의 현장을 후세에 증언해줄 관찰도도 없었다. 천지개벽할 변화의 순간이면 으레 나타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상냥하지만 약삭빠르고 기민해 보이는 인상의 한 30대 후반의 덩치 작은 사내가 한 도서관의 서가를 둘러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아주 오래된 필사본 하나를 발견하고 꺼내 들었다. 책을 살펴보고 그는 매우 흥분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책을 필사하도록 지시했다.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했다.(스티븐 그린블렛,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19~20쪽, 이하 《1417년》)
사내는 포조 브라치올리니(Poggio Bracciolini, 1380~1459)였고, 책은 루크레티우스(Lucretius, 기원전 98/96~55/53년)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였다. 《1417년》은 사내와 책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혹은 세계를 어떻게 근대화시켰는가를 다룬다. 책의 원제목은 THE SWERVE: How the World became Modern이다. 따라서 《일탈: 세계는 어떻게 근대화되었는가?》 정도가 서명에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 그린블랫의 관심은 문헌학적 전통의 추적보다는 ‘일탈’ 개념의 지성사의 탐구에 더 가깝게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탈’ 개념이 서양 근대화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책의 근본적인 저술 동기로 파악되기에.
‘일탈’로 시작된 근대로의 변화
‘일탈!’, 책은 이 개념이 근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문헌 전거를 통해서 설득력 있고 내용적으로도 새로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개념은 원자 개념과 함께 에피쿠로스(Epikuros, 기원전 341~271년) 철학의 씨앗-생각 가운데에 하나이다. 하지만 이 개념을 에피쿠로스 자신이 명시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정할 수 없다. 남아 있는 전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말을 에피쿠로스의 생각이라고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루크레티우스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제2권 216행~293행의 일탈에 대한 전거 덕분이다.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일탈’은 자연의 생성 원리이다. ‘일탈’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은 ‘declinare’(제2권 221행)이다. 이 단어는 ‘기울다’를 뜻한다.… 루크레티우스는 이 기울기에 ‘약간의(paulum)’라는 규정을 준다. 아마도 이 ‘약간의’에 무게의 힘이 반영되고, 이 힘에 비례에서 기울기를 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paulum’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매달리고 있다. 이 빗겨남의 경로들에 대한 연구가 근대 물리학의 주요 주제가 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운동을 설명하는 법칙의 해당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루크레티우스에게는 근대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기술할 수 있었던 표현 방식과 표현 기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고대와 근대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세계의 근대화의 해명과 관련해서 왜 루크레티우스의 ‘일탈’ 개념이 중요한지가 드러나는 것이! 원자가 그 자체의 무게로 인해 움직이는 것이고 그 움직임이 일탈이기에, 그것을 접근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든 움직임을 특정의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보고 접근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학문이 근대의 자연과학이라면 말이다.…‘일탈’!, 이런 단순한 개념이 세계를 근대화시켰다니! 그 비밀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일탈 개념 자체 안에 숨어 있기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인식, 이에 기반해 발견된 것이 소위 근대 과학이 규명하려는 객관의 세계이기에. 따라서 이런 객관 법칙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선입견과 편견, 아니 인간적인 감정과 논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22. 근대의 탄생)
텍스트와 ‘비판’의 개념
모든 텍스트는 소통을 위해 태어난다. 텍스트는 대개 문헌을 통해 전승된다. 이 문헌은 언어로 기록되는 매체다. 하지만 언어는 변한다. 언어의 이런 속성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텍스트 내용도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일례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들 수 있다. 《일리아스》는 원래 이오니아 지방의 방언으로 불려진 서사시다. 요컨대, 서사시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된 후 대략 400년이 지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면, 《일리아스》는 최초의 원전에서 많이 벗어나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게 된다. 이 시기에 이르면 원전이라 할 수 없는 내용도 많이 삽입되기 때문이다. … 서양 사람들은 소위 ‘원본’이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정본’ 개념을 상정한다는 것은, 후대의 문헌학자가 만든 ‘정본’이 원본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비판정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비판’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정본과 원본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대의 문헌학자들이 만든 본문이 원저자가 쓴 원문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가 ‘비판’이라는 말에 함의되어 있다.
정본의 가치와 우리 인문학의 미래
한국 고전 연구의 전통이 서양고전 문헌학 전통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춘향전》을 지금 한글로 옮긴다면, 어느 판본을 선택해야 할까? 아마도, 각기 자신이 소장하는 판본을 내세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가람본을 표준 정본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당장 시작 부분만 살펴보아도, 이전 판본들과 《춘향전》의 이해가 달라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결론적으로, 판본과 판본의 비교 연구가 시급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설령 문헌학적인 판본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춘향전》에 대한 이해를 외국에 소개한다고 할 때, 도대체 어느 판본을 기준으로 삼을지에 대한 것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본 사업은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성공이 가능한 사업이다. 이는 구조적인 이유에서 그렇다. 그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정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문헌들을 수집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개인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감당하기 어렵고, 또한 개별 소장 문고에 접근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인이 지속적으로 작업하기에는 정본 작업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국가가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연구 기반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서양에서도 일부 출판사들은 정본 작업을 지원한다. 예를 들면, 독일의 토이브너(Teubner) 출판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출판사는 이를 수행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대학 출판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 사정을 감안할 때에 정본 사업은 결국은 국가가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정본 사업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기본적으로, 지금까지의 한국의 인문학은 ‘수입인문학’이다. 백년 전까지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한문 문헌에서 빌어다 사용했다. 최근까지도 일본어 문헌에서 가져다 썼고, 요새는 주로 영어 문헌에서 많이 빌어다 쓰고 있다. 물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한글로 된 문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문헌들이 한국의 현재 지식 시장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지식 시장에서 한글 문헌이 차지하고 있는 몫이 아주 작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인문학이 수입인문학이 지배적인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한국 인문학이 자생인문학으로 나아가는 길 가운데 하나가 정본 작업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전 장악 능력이 부족하면, 결국은 소위 권위자들의 의견을 빌어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대개 그 권위자들이 해외에 있다. 동양학의 경우는 일본과 중국, 요즘은 서양에도 많다. 얼마 안 있으면, 한국학의 경우도 구미의 학자들에게 담론의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독자적인 이론 구성 능력과 관련해서 동양의 인문학자들이, 물론 인정하긴 싫지만, 서구의 학자들에 비해서 밀리고, 정본 작업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권위자의 의견이 탁월해서 수입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는 원전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근대 학문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시작이 원전에 대한 해석, 그런데 그 원전에 대한 해석의 기본적인 주도권을 원천적으로 쥐고 있는 정본 만들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이 또한 정본 사업을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와 같은 정본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문헌은 하나의 텍스트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출판을 통해서 국가의 공동 자산이 된다…(27. 왜 정본인가)
▣ 작가 소개
저자 : 안재원
서울대에서 언어학 학사, 서양고전학(협동과정) 석사(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나타난 호메로스의 수용과 변용 연구) 학위를 받은 뒤 독일 괴팅엔 대학 서양고전 문헌학과에서 로마의 수사학자인 알렉산더 누메니유의 《단어-의미 문채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키케로의 《수사학》(비판정본-주해서), 도서출판 길, 2006), 《서양고대인물사》(공저, 도서출판 길, 2006), 《동서양고전의 이해》(공저, 한국방통대학교 출판부, 2011), 《Hagiographica Coreana II》(비판정본), Italy Pisa: Pacini-editore 2012), 《로마의 문법학자들》(비판정본-주해서, 한길사, 2013) 등의 저술과 아담 샬, 순치제, 소현 세자(2012), 쿠플레의 역경 이해: 겸 괘의 라틴어 번역을 중심으로(2012), 쿠플레의 《중국인 철학자 공자》의 서문-Natura(性) 개념의 이해 문제를 사례로(2012), 아이네아스의 방패에 나타난 세계상(imago mundi)(2013), 키케로의 수사학과 바움가르텐의 미학(2013), 서양인문교육에서 고전 전범의 확립과정에 대하여(2013) 등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
▣ 주요 목차
여는 말
1 헤르메스와 필로로기아의 결혼
2 저 삶의 한 복판에서 탄생한 인문학
3 앎과 삶의 긴장에서 등장한 철학
4 광기와 이성의 대결
5 아폴론 대 디오니소스
6 새로운 영웅의 탄생
7 시민의 탄생
8 개인의 발견
9 로마 인민의 권리에 대해서
10 국가와 국가-공동체의 차이
11 자유에 대하여
12 평화에 대하여
13 화합에 대하여
14 로마 제국의 탄생
15 로마의 사회적 최소 공통성에 대하여
16 로마의 문법 교육에 대하여
17 로마의 수사학 교육에 대하여
18 이상적 연설가에 대하여
19 라틴어의 가난함에 대하여
20 라틴어의 풍부함에 대하여
21 르네상스에 대하여
22 근대의 탄생
23 책, 고전에 대한 사랑에 대하여
24 고전 문헌학의 성립에 대하여
25 서양고전 문헌학의 새로운 영역을 찾아서
26 영원한 고전에 대하여
27 왜 정본인가
다시 돌아가는 말!/참고문헌/색인
로마, 하루아침에 재발견되지 않았다!! Roma, Non uno die!!
칼을 외부의 적으로 향하게 할 때 필요한 것은 용기다. 칼이 내부의 세계로 향하면, 그것은 광기로 변한다. 아무리 내부 세계가 지옥이더라도 칼을 내부로 돌려선 안 된다. 복례에 필요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정신의 무기다. 베르길리우스는 그 무기로 인내와 관용을 바탕으로 하는 피에타스를 제시한다. 보기에 지저분하고,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시원스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해서, 한 판에 싹쓸이해야 한다는, 한 번에 다 씻어내야 한다는 조급증은 이럴 때 가장 위험한 생각이기에. 조급증은 이런 상황에서 칼과 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그 사회는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기원전 80년 술라 독재의 로마를 보라! 정신의 힘은 효과가 당장 드러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정신의 힘, 곧 인문 교양이 필요한 단계로 접어든 사회는 더딤과 답답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원래 더딘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잉태된 반성이 생겨나다
원래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인간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예컨대 인간에게 가장 재앙이라 일컫는 판도라도 제우스의 선물이라는 점은 신들이 인간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인간들과 신들은 갈등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들은 틈만 나면 신의 세계에 도전하곤 했고, 수가 틀리면 다른 이름의 신을 섬기겠다고 협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아폴로 신이 인간에게 한 경고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에서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요즘 말로 하면 “너나 잘 하세요!”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 말은 그리스 제7 현인 중의 한 사람인 스파르타 출신 킬론이 델피 신전에 봉헌한 헌사로, 사원 앞의 주랑에 새겨져 있다(파우사니아스 제10권 24장 1절). 물론 신들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수치(aidos)를 보내고, 다음엔 정의(dike)를 파견하고, 나중엔 이도 저도 안 되자, 홍수와 지진으로 협박하기도 하고, 전쟁으로 위협도 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 중 인간만한 별종은 없는지라 신들도 끝내는 손을 놓고 말았다. 신들이 떠난 지상은 온통 서로 치고 받고, 맞고 때리고, 붙고 떨어지는 인간들의 싸움질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아수라장의 한 복판에서 ‘이러면 안 된다’, ‘인간답게 사는 법(humaniter vivere)’을 찾아야 한다는 반성(reflexio)이 인간 스스로에게서 자생(自生)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잉태된 반성이 제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등장한 때는 기원전 62년, 장소는 로마의 한 법정이었다. 이 법정은 이렇게 해서 열리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기원전 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는 대중영합주의로 세력을 얻은 폼페이우스 일파가, 로마의 부랑민과 폭력배 청산을 한다는 핑계로 대대적인 외국인 추방 운동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 운동의 결과로 소위 ‘ 파피우스’법이 제정되는데, 이 법에 따라 아르키아스(기원전 119~44년)라는 그리스계 안티오키아 출신의 한 시인이 추방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키케로가 나서서 그를 구해준다.
최상의 힘’을 발휘하는 인문학
키케로가 아르키아스를 구제하기 위해 나선 것은 바로 학문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문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학문은, 평상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 번은 꼭 ‘최상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답게 살고자 할 때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종종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 힘이 되고, 더 나가서 국가 공동체의 운명까지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는 더욱 더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키케로 본인에게는 그랬다. 키케로가 저토록 강조하고 있는 저 학문, 평상시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저 학문,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인문학(humanitas)’이라 부르는 학문이다…(2. 저 삶의 한 복판에서 탄생한 인문학)
근대화를 촉발시킨 한 사건
(중략)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에 문제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결정적인 순간은 한 외딴 장소의 벽 뒤에 처박혀 가만히 숨죽인 채 거의 눈에 띄지도 않게 지나갔다. 어떤 영웅적인 행위도, 이 위대한 변화의 현장을 후세에 증언해줄 관찰도도 없었다. 천지개벽할 변화의 순간이면 으레 나타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상냥하지만 약삭빠르고 기민해 보이는 인상의 한 30대 후반의 덩치 작은 사내가 한 도서관의 서가를 둘러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아주 오래된 필사본 하나를 발견하고 꺼내 들었다. 책을 살펴보고 그는 매우 흥분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책을 필사하도록 지시했다.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했다.(스티븐 그린블렛,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19~20쪽, 이하 《1417년》)
사내는 포조 브라치올리니(Poggio Bracciolini, 1380~1459)였고, 책은 루크레티우스(Lucretius, 기원전 98/96~55/53년)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였다. 《1417년》은 사내와 책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혹은 세계를 어떻게 근대화시켰는가를 다룬다. 책의 원제목은 THE SWERVE: How the World became Modern이다. 따라서 《일탈: 세계는 어떻게 근대화되었는가?》 정도가 서명에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 그린블랫의 관심은 문헌학적 전통의 추적보다는 ‘일탈’ 개념의 지성사의 탐구에 더 가깝게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탈’ 개념이 서양 근대화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책의 근본적인 저술 동기로 파악되기에.
‘일탈’로 시작된 근대로의 변화
‘일탈!’, 책은 이 개념이 근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문헌 전거를 통해서 설득력 있고 내용적으로도 새로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개념은 원자 개념과 함께 에피쿠로스(Epikuros, 기원전 341~271년) 철학의 씨앗-생각 가운데에 하나이다. 하지만 이 개념을 에피쿠로스 자신이 명시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정할 수 없다. 남아 있는 전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말을 에피쿠로스의 생각이라고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루크레티우스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제2권 216행~293행의 일탈에 대한 전거 덕분이다.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일탈’은 자연의 생성 원리이다. ‘일탈’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은 ‘declinare’(제2권 221행)이다. 이 단어는 ‘기울다’를 뜻한다.… 루크레티우스는 이 기울기에 ‘약간의(paulum)’라는 규정을 준다. 아마도 이 ‘약간의’에 무게의 힘이 반영되고, 이 힘에 비례에서 기울기를 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paulum’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매달리고 있다. 이 빗겨남의 경로들에 대한 연구가 근대 물리학의 주요 주제가 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운동을 설명하는 법칙의 해당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루크레티우스에게는 근대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기술할 수 있었던 표현 방식과 표현 기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고대와 근대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세계의 근대화의 해명과 관련해서 왜 루크레티우스의 ‘일탈’ 개념이 중요한지가 드러나는 것이! 원자가 그 자체의 무게로 인해 움직이는 것이고 그 움직임이 일탈이기에, 그것을 접근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든 움직임을 특정의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보고 접근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학문이 근대의 자연과학이라면 말이다.…‘일탈’!, 이런 단순한 개념이 세계를 근대화시켰다니! 그 비밀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일탈 개념 자체 안에 숨어 있기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인식, 이에 기반해 발견된 것이 소위 근대 과학이 규명하려는 객관의 세계이기에. 따라서 이런 객관 법칙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선입견과 편견, 아니 인간적인 감정과 논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22. 근대의 탄생)
텍스트와 ‘비판’의 개념
모든 텍스트는 소통을 위해 태어난다. 텍스트는 대개 문헌을 통해 전승된다. 이 문헌은 언어로 기록되는 매체다. 하지만 언어는 변한다. 언어의 이런 속성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텍스트 내용도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일례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들 수 있다. 《일리아스》는 원래 이오니아 지방의 방언으로 불려진 서사시다. 요컨대, 서사시가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된 후 대략 400년이 지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면, 《일리아스》는 최초의 원전에서 많이 벗어나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게 된다. 이 시기에 이르면 원전이라 할 수 없는 내용도 많이 삽입되기 때문이다. … 서양 사람들은 소위 ‘원본’이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정본’ 개념을 상정한다는 것은, 후대의 문헌학자가 만든 ‘정본’이 원본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비판정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비판’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정본과 원본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대의 문헌학자들이 만든 본문이 원저자가 쓴 원문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가 ‘비판’이라는 말에 함의되어 있다.
정본의 가치와 우리 인문학의 미래
한국 고전 연구의 전통이 서양고전 문헌학 전통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춘향전》을 지금 한글로 옮긴다면, 어느 판본을 선택해야 할까? 아마도, 각기 자신이 소장하는 판본을 내세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가람본을 표준 정본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당장 시작 부분만 살펴보아도, 이전 판본들과 《춘향전》의 이해가 달라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결론적으로, 판본과 판본의 비교 연구가 시급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설령 문헌학적인 판본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춘향전》에 대한 이해를 외국에 소개한다고 할 때, 도대체 어느 판본을 기준으로 삼을지에 대한 것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정본 사업은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성공이 가능한 사업이다. 이는 구조적인 이유에서 그렇다. 그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정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문헌들을 수집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개인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감당하기 어렵고, 또한 개별 소장 문고에 접근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인이 지속적으로 작업하기에는 정본 작업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국가가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연구 기반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서양에서도 일부 출판사들은 정본 작업을 지원한다. 예를 들면, 독일의 토이브너(Teubner) 출판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출판사는 이를 수행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대학 출판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 사정을 감안할 때에 정본 사업은 결국은 국가가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정본 사업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기본적으로, 지금까지의 한국의 인문학은 ‘수입인문학’이다. 백년 전까지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한문 문헌에서 빌어다 사용했다. 최근까지도 일본어 문헌에서 가져다 썼고, 요새는 주로 영어 문헌에서 많이 빌어다 쓰고 있다. 물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한글로 된 문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문헌들이 한국의 현재 지식 시장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지식 시장에서 한글 문헌이 차지하고 있는 몫이 아주 작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인문학이 수입인문학이 지배적인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한국 인문학이 자생인문학으로 나아가는 길 가운데 하나가 정본 작업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전 장악 능력이 부족하면, 결국은 소위 권위자들의 의견을 빌어다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대개 그 권위자들이 해외에 있다. 동양학의 경우는 일본과 중국, 요즘은 서양에도 많다. 얼마 안 있으면, 한국학의 경우도 구미의 학자들에게 담론의 주도권을 빼앗길지도 모르겠다. 독자적인 이론 구성 능력과 관련해서 동양의 인문학자들이, 물론 인정하긴 싫지만, 서구의 학자들에 비해서 밀리고, 정본 작업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권위자의 의견이 탁월해서 수입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는 원전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근대 학문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시작이 원전에 대한 해석, 그런데 그 원전에 대한 해석의 기본적인 주도권을 원천적으로 쥐고 있는 정본 만들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이 또한 정본 사업을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와 같은 정본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문헌은 하나의 텍스트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출판을 통해서 국가의 공동 자산이 된다…(27. 왜 정본인가)
▣ 작가 소개
저자 : 안재원
서울대에서 언어학 학사, 서양고전학(협동과정) 석사(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나타난 호메로스의 수용과 변용 연구) 학위를 받은 뒤 독일 괴팅엔 대학 서양고전 문헌학과에서 로마의 수사학자인 알렉산더 누메니유의 《단어-의미 문채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키케로의 《수사학》(비판정본-주해서), 도서출판 길, 2006), 《서양고대인물사》(공저, 도서출판 길, 2006), 《동서양고전의 이해》(공저, 한국방통대학교 출판부, 2011), 《Hagiographica Coreana II》(비판정본), Italy Pisa: Pacini-editore 2012), 《로마의 문법학자들》(비판정본-주해서, 한길사, 2013) 등의 저술과 아담 샬, 순치제, 소현 세자(2012), 쿠플레의 역경 이해: 겸 괘의 라틴어 번역을 중심으로(2012), 쿠플레의 《중국인 철학자 공자》의 서문-Natura(性) 개념의 이해 문제를 사례로(2012), 아이네아스의 방패에 나타난 세계상(imago mundi)(2013), 키케로의 수사학과 바움가르텐의 미학(2013), 서양인문교육에서 고전 전범의 확립과정에 대하여(2013) 등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
▣ 주요 목차
여는 말
1 헤르메스와 필로로기아의 결혼
2 저 삶의 한 복판에서 탄생한 인문학
3 앎과 삶의 긴장에서 등장한 철학
4 광기와 이성의 대결
5 아폴론 대 디오니소스
6 새로운 영웅의 탄생
7 시민의 탄생
8 개인의 발견
9 로마 인민의 권리에 대해서
10 국가와 국가-공동체의 차이
11 자유에 대하여
12 평화에 대하여
13 화합에 대하여
14 로마 제국의 탄생
15 로마의 사회적 최소 공통성에 대하여
16 로마의 문법 교육에 대하여
17 로마의 수사학 교육에 대하여
18 이상적 연설가에 대하여
19 라틴어의 가난함에 대하여
20 라틴어의 풍부함에 대하여
21 르네상스에 대하여
22 근대의 탄생
23 책, 고전에 대한 사랑에 대하여
24 고전 문헌학의 성립에 대하여
25 서양고전 문헌학의 새로운 영역을 찾아서
26 영원한 고전에 대하여
27 왜 정본인가
다시 돌아가는 말!/참고문헌/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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