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미지를 못 읽는 사람은 너무 많다.
● 디지털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새로운 세계와 사물
●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 디지털은 예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1. 디지털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새로운 세계와 사물
― 이 책이 말하다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돼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처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왔을 때, 아날로그 매체와 구별되는 디지털의 특성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한 오늘날, ‘디지털’은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이 되었다. 이미지를 텍스트로, 텍스트를 다시 이미지로 변환하는 디지털 기술은 일상으로 체험된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이 이미지의 원리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문자로 그린 그림’이다. 이러한 기술적 형상은 그 아래에 복잡한 텍스트를 깔고 있는 일종의 아이콘이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나, 그 바탕의 텍스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예술가, 인문학자, 엔지니어)와 함께 미학 이후의 미학인 디지털 미학, 미디어 미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쉬지 않았던 진중권. 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등장한 제2차 영상문화, 제2차 구술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미지 인문학》을 출간하였다.
《이미지 인문학》은 ‘무한한 이미지’의 세계를 이미지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미학을 횡단하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인간의 정신을 기술적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회화, 사진 등 전통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생물, DNA, 비트, 나노까지도 포함한다.
우리는 전자책의 책장을 마치 실제 책인 양 손가락으로 짚어 넘긴다. 이렇게 디지털 가상이 아날로그 현실의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다가올 때, 그 익숙함 속에서 디지털 매체의 진정한 본성은 슬쩍 은폐되기 쉽다. 이는 디지털의 대중을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망각’의 상태로 이끌어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망각 속에서도 디지털의 논리는 화려한 가상 아래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 기제는 늘 의식되고 반성되어야 한다. (…) 과거에는 책이 사람을 형성했다면,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 본문 8~9쪽
2.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 이 책을 보다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메타포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파타포의 능력이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의 논리’다.”
‘파타피직스’(pataphysics)는 디지털의 문화이다. 파타피직스는 20세기 중반 유럽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신학문으로,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 철학(혹은 과학)을 가리킨다. 1948년 프랑스에서 ‘파타피직스 학회’가 만들어지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호안 미로와 마르셀 뒤샹, 외젠 이오네스코와 장 주네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 학회의 초기 멤버였으며,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도 한동안 자신을 파타피지션(pataphysician)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이미지 인문학 1》은 철학사의 근본적 단절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어떻게 사라지는지 살펴본다. ‘철학’은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데서 출발했다. 플라톤 같은 관념론자든, 데모크리토스 같은 유물론자든, 모든 철학자들은 가상의 베일 뒤에 숨은 참된 실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상상과 이성, 허구와 사실, 환상과 실재 사이의 단절을 봉합선 없이 이어준다. 이로써 가상과 현실 사이에 묘한 존재론적 중첩의 상태가 발생한다. 이것이 ‘파타피직스’이다.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역사이전의 현상이었다. 선사인의 의식에서는 가상과 현실이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상의 원인이 현실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주술의 원리였다. 역사시대가 되면서 사라졌던 이 상징형식이 디지털 기술형상의 형태로 되돌아온다.
선사인의 상상이 주술적 현상이었다면, 우리의 상상은 어디까지나 기술적 현상이다. 선사인의 상상이 공상이라면, 우리의 상상은 기술에 힘입어 현실이 된다. 이것이 역사이전의 마술과는 구별되는 역사이후의 ‘기술적 마술’이다.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디지털 이미지 자체의 특성인 것이다.
과거에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메타포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파타포의 능력이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의 논리’다.
디지털의 몰입 기술은 게이머들을 모니터 속 가상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하지만 게이머의 경우 앨리스와 달리 정신만 가상으로 몰입하고 신체는 아직 현실에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비디오게임은 여전히 메타포 상태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의 상상력도 그동안 서서히 메타포에서 파타포의 상태로 진화해왔고, 게임에 증강현실의 기술이 적용됨에 따라 그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최근 비디오게임의 인터페이스는 점점 더 현실과 가상을 중첩시키는 파타포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닌텐도 위Wii를 생각해보자. 과거 핑퐁게임의 게이머들이 정신만 가상에 몰입한 채 현실에서는 그저 손가락만 움직였다면 ‘닌텐도 위’의 게이머들은 마치 현실의 테니스코트에서 경기하듯 온몸을 움직여 라켓을 휘둘러야 한다. 닌텐도 위로 테니스를 치는 이를 옆에서 관찰한다면 아마 광인처럼 보일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예술적으로 추구하던 일상과 몽상의 중첩이 여기서 기술적으로 실현된 셈이다. ― 본문 128~129쪽
3. 디지털은 예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 이 책에서 듣다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가 더 이상 과거의 회화일 수 없었듯이, 컴퓨터의 발명 이후 사진도 더 이상 과거의 사진일 수 없다. 사진의 발명으로 바뀐 예술의 전체 성격은,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해 다시 어떻게 바뀌었을까?”
“일찍이 사람들은 사진의 예술성 여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많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이에 선행되어야 할 물음, 즉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전체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은 제기하지 않았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의 한 대목이다. 이제 벤야민의 물음을 고쳐 물을 때이다.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해 혹시 예술의 전체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닌가?”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가 더 이상 과거의 회화일 수 없었듯이, 컴퓨터의 발명 이후 사진도 더 이상 과거의 사진일 수 없다. 사진의 발명으로 바뀐 예술의 전체 성격은,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해 다시 어떻게 바뀌었을까? 컴퓨터에 기초한 오늘날의 디지털 미학은 사진술에 기초한 벤야민의 모더니즘 미학과 어떻게 대립하는 것일까?
변화의 요체는 몽타주의 무기적unorganic 미학이 디지털 합성의 유기적organic 미학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모더니스트들은 이를 비판하나, 이것이 단순히 고전주의 미학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합성은 시각적 파편들을 균열의 흔적 없이 봉합한다. 여기서 ‘유기적 총체성’이라는 고전예술의 미학과 ‘파편들의 조립’이라는 모더니즘 미학이 묘한 종합을 이룬다. 디지털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매체다. 모더니스트들의 오해와 달리 디지털 합성의 ‘유기적’ 미학은 디지털 매체의 특성과 정확히 부합한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면 이른바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의 논쟁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은 디지털 영상에 여전히 사진과 영화의 미학을 적용하려 했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변화한 취향을 옹호하면서도 그 변화의 바탕에 깔린 물질적 토대의 변화와 의미를 제대로 의식하지는 못한 듯하다. 모더니즘의 몽타주 미학이 가상의 허구성을 폭로함으로써 ‘진리의지’Wille zur Wahrheit를 드러낸다면, 디지털 이미지는 진리가 사라진 시대의 허무에 창조의 기쁨으로 대항하는 “가상의지”Wille zum Schein를 대변한다. ― 본문 14~15쪽
4. 이 책의 주요 내용
1장 디지털의 철학
여기서는 빌렘 플루서의 논문 〈디지털 가상〉을 중심으로 먼저 디지털의 존재론과 인간학을 살핀다. 이것이 책 전체에 철학적 준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주체(인간)-객체(세계)’라는 근대철학의 패러다임을 무너뜨린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은 주체(Subjeckt)에서 기획(Projeckt)으로서 진화하고, 세계는 주어진 것(Datum)에서 만들어진 것(Faktum)으로 변화한다.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가상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이미지를 낳았다. 여기서는 주술시대의 세 가지 전설을 인용하여 디지털 가상이 과거의 아날로그 영상과 성격이 전혀 다른 ‘기술적 마술’의 산물임을 부각시킨다.
2장 리얼 버추얼 액추얼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약화한다. 여기서는 세 명의 작가를 들어 오늘날 사진 속에 이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오늘날 현실과 가상은 서로 자리를 맞바꾸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예도 빼놓을 수 없다.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것은 미디어아트의 특권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본디 ‘가상성’(virtuality)이라는 말은 ‘허구성’과 ‘잠재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플라톤 이후 철학이 가상을 그저 허구로 여겼다면, 오늘날 가상은 그냥 가짜가 아니라 실현해야 할 잠재성으로, 그리하여 또 다른 모드의 실재로 정의된다.
3장 파타피직스
가상이 또 다른 양상의 현실로 여겨질 때 은유와 실재가 중첩된 ‘파타피지컬’한 상태가 발생한다. 한때 초현실주의의 미학적 원리였던 ‘파타피직스’가 오늘날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가 되었다. 파타피지컬한 인터페이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세대는 당연히 ‘현실’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가상에 실재의 지위를 부여해 가짜를 진짜처럼 대우해주고, 실재에 가상의 지위를 부여해 현실을 거대한 게임으로 바꾸어놓는 데에 익숙하다. 여기에서는 디지털 대중이 파타피직스의 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을 기술하고, 그 양상을 ‘게이미피케이션’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4장 지표의 상실
먼저 최후의 사진 이론인 바르트의 ‘푼크툼’ 이론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등장으로 존립 근거를 잃는 과정을 살핀다. 디지털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선행한 두 이미지, 즉 사진과 회화를 하나로 통합한다. 최근 회화적 사진이 귀환한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카메라의 눈’은 이제 ‘컴퓨터의 눈’으로 대체된다. 이에 따라 몽타주에 기초한 모더니즘의 ‘파편성의 미학’은 디지털 합성에 기초한 ‘총체성의 미학’으로 진화한다. 끝으로 디지털 이미지의 도전에 대한 몇몇 아날로그 사진작가들의 대응을 살펴본다. 그들은 디지털 가상의 미적 효과를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연출하려 한다.
5장 실재의 위기
디지털 사진에서는 사진매체의 본질로 여겨졌던 지표성이 사라진다. 디지털 사진은 일종의 그래픽이고, 그래픽 이미지는 굳이 피사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로써 디지털 사진은 현실의 ‘기록’으로서 성격을 잃는다. 여기에서는 사진이 아직 실재의 ‘기록’으로 기능했던 보도, 과학, 역사의 영역에서 디지털 이미지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살핀다. 오늘날 보도사진은 예술작품으로 변용되고, 역사는 서사와 오락의 소재로 전락하고, 과학의 실험은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을 닮아가고 있다. 실재는 위기에 처했다. 다큐멘터리 의식은 약화되고, 역사주의의 의식은 설 자리를 잃는다.
▣ 작가 소개
저 : 진중권
陳重權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국내에 있을 때에는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였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간부로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했다. 귀국한 뒤 그는 지식인의 세계에서나마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하며, 그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지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로 재직 하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를 대중적 논객으로 만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박정희 숭배’를 열성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과 작가 이인화씨, 근거 없는 ‘주사파’ 발언으로 숱한 송사와 말썽을 빚어온 박홍 전 서강대 총장,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 작품 〈선택〉으로 논란을 낳은 작가 이문열씨 등에 대한 직격탄이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 풍자를 뒤섞은 경쾌하면서도 신랄한 그의 문장은 ''진중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비판적 논객으로서가 아닌 미학자로서의 행보를 보여주는 책은 바로,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미학오디세이』이다. 이 책은 ‘미’와 ‘예술’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선물한 귀중한 교양서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면서 꾸준하게 여러 세대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이 책은 근육질의 기계 생산에서 이미지와 컨텐츠의 창조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에는 벤야민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 등의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탈근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로운 미학을 이야기한다.
이를 이어가는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는 “과연 예술은 진리의 신전(하이데거)인가? 오늘날 예술은 왜 이리도 난해해졌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탈근대 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철학자 8명을 골라 그들을 통해 탈근대 미학의 주요 특징을 살핀다. 근대 미학과 탈근대 미학을 반복적으로 대비하면서, 패러다임의 변화의 핵심을 포착하고 탈근대 미학의 요체가 숭고와 시뮬라크르임을 밝힌다. 차갑고 짧은 문장이 덜쩍지근한 포스트모던을 새롭게 보도록 만든다.
삶의 시원 ''에로스''를 탐색한 성의 미학을 거쳐 삶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타나토스''로 이어지는 죽음의 미학을 다룬 『춤추는 죽음』은 렘브란트, 로댕 뭉크, 고야 서양미술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천재 화가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삶의 유한성을 명상할 줄 아는 예술가들은 죽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공포를 창작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저작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인문적, 미학적 사유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식 틀과 벤야민에게서 받은 영감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그는 개략적으로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혀내는 글쓰기를 계획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히는 것, 철학.미학.윤리학의 근원적 통일성을 되살려 새로운 미적 에토스를 만드는 것, 예술성과 합리성으로 즐겁게 제 존재를 만드는 것 등이다.
저서로는 『미학 오딧세이』『춤추는 죽음』『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천천히 그림읽기』『시칠리아의 암소』『페니스 파시즘』『폭력과 상스러움』『앙겔루스 노부스』『레퀴엠』『빨간 바이러스』『조이한·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춤추는 죽음』『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첩첩상식』『호모 코레아니쿠스』『한국인 들여다보기』『서양미술사』『이론과 이론기계』『컴퓨터 예술의 탄생』『진중권의 이매진 Imagine』『미디어아트』『교수대 위의 까치』 등의 공저서와 여러 권의 번역서가 있다.
▣ 주요 목차
지은이의 말
1장 디지털의 철학
01 디지털 가상
가상의 복권 / 존재에서 실존으로 / 모상에서 모형으로 / 관조에서 이론으로 / 역사적 사유에서 형식적 사유로 / 연속과 단절 / 비트의 분산 / 그림에서 문자로 / 문자에서 그림으로 / 창세기적 기술 / 주체에서 기획으로 / 데모크리토스, 헤겔 그리고 니체
02 탈역사적 마법
마법으로서 영상 / 예술가의 전설 /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 미립자와 인공생명 / 탈역사적 마법 / 억압된 것의 회귀
2장 리얼 버추얼 액추얼
03 파사드 프로젝트
가상의 구제 / 재현에서 제현으로 / 파사드 프로젝트
04 프레임의 미학
낯설게 하기 / 가상의 현실화, 현실의 가상화
05 역사적 현재
관계적 건축 / 문화적 기억의 시차/ 문화적 기억의 시차
06 리얼 버추얼 액추얼
비실재로서 가상 / 잠재성으로서 가상 / 가상현실과 현실가상 / 가상의 업로딩 / 미디어적 에포케
3장 파타피직스
07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상상적 해결의 과학 / 일상의 파타피직스 /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 촉각적 인터페이스 /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08 패러다임 게임
텔레비전의 현상학 / 재매개 / 토털 게임 / 리포터와 아바타 / 촉각성 / 온라인?오프라인 / 노동과 유희 / 역사와 서사
09 웹캐스트에서 팟캐스트로
디지털 구술문화 / 역사에서 신화로 / 파타피직스 / 상상력은 환각으로 / 전유와 기능전환
10 디지털 성전
정치의 게이미피케이션 / ‘병신’ 게임 / 애국서사 / 절대시계 / 홀리 워크래프트
4장 지표의 상실
11 사진 이론의 역사
사진적 행위 / 세계의 그림 / 관념의 텍스트 / 세계의 흔적
12 밝은 방
스투디움과 푼크툼 / 세부, 공간의 푼크툼 / 죽음, 시간의 푼크툼 / 도상, 상징, 지표 / 유아론과 회고주의 / 근본적 위험
13 회화적 사진의 귀환
예술이냐 기록이냐 / 픽토리얼리즘 / 다큐멘터리 포토 / 콤비네이션 프린팅 / 몽타주의 미학
14 사진은 회화처럼
카메라의 회화 / 라이트 박스 타블로 / 연속성의 몽타주 / 파편성과 총체성의 변증법
15 물신적 숭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 컴퓨터의 눈 / 냉담한 아름다움 / 현대의 물신적 숭고
16 사진 이후의 사진
디지털의 물리적 특성 / 사진 이후의 사진 / 전유의 전략 / 사진의 해방
5장 실재의 위기
17 다큐멘터리의 종언
회화적 기념비로서 다큐멘터리 / 크로노토피아 /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 데드팬에서 더블클릭으로
18 허구로서 과학
과학과 예술의 경계 / 환상의 과학적 재현 / 스톤헨지 밑의 자동차
19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재발명 / 소비에트 스냅숏 / 사회주의 팝아트 / 역사의 산증인 / 픽션의 재료가 된 역사
주
초고 수록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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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못 읽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미지를 못 읽는 사람은 너무 많다.
● 디지털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새로운 세계와 사물
●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 디지털은 예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1. 디지털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새로운 세계와 사물
― 이 책이 말하다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돼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처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왔을 때, 아날로그 매체와 구별되는 디지털의 특성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한 오늘날, ‘디지털’은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이 되었다. 이미지를 텍스트로, 텍스트를 다시 이미지로 변환하는 디지털 기술은 일상으로 체험된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이 이미지의 원리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문자로 그린 그림’이다. 이러한 기술적 형상은 그 아래에 복잡한 텍스트를 깔고 있는 일종의 아이콘이다. ‘이미지’는 눈에 보이나, 그 바탕의 텍스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예술가, 인문학자, 엔지니어)와 함께 미학 이후의 미학인 디지털 미학, 미디어 미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쉬지 않았던 진중권. 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등장한 제2차 영상문화, 제2차 구술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미지 인문학》을 출간하였다.
《이미지 인문학》은 ‘무한한 이미지’의 세계를 이미지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미학을 횡단하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인간의 정신을 기술적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회화, 사진 등 전통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생물, DNA, 비트, 나노까지도 포함한다.
우리는 전자책의 책장을 마치 실제 책인 양 손가락으로 짚어 넘긴다. 이렇게 디지털 가상이 아날로그 현실의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다가올 때, 그 익숙함 속에서 디지털 매체의 진정한 본성은 슬쩍 은폐되기 쉽다. 이는 디지털의 대중을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망각’의 상태로 이끌어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망각 속에서도 디지털의 논리는 화려한 가상 아래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 기제는 늘 의식되고 반성되어야 한다. (…) 과거에는 책이 사람을 형성했다면,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 본문 8~9쪽
2.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 이 책을 보다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메타포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파타포의 능력이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의 논리’다.”
‘파타피직스’(pataphysics)는 디지털의 문화이다. 파타피직스는 20세기 중반 유럽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신학문으로,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 철학(혹은 과학)을 가리킨다. 1948년 프랑스에서 ‘파타피직스 학회’가 만들어지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호안 미로와 마르셀 뒤샹, 외젠 이오네스코와 장 주네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 학회의 초기 멤버였으며,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도 한동안 자신을 파타피지션(pataphysician)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이미지 인문학 1》은 철학사의 근본적 단절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어떻게 사라지는지 살펴본다. ‘철학’은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데서 출발했다. 플라톤 같은 관념론자든, 데모크리토스 같은 유물론자든, 모든 철학자들은 가상의 베일 뒤에 숨은 참된 실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상상과 이성, 허구와 사실, 환상과 실재 사이의 단절을 봉합선 없이 이어준다. 이로써 가상과 현실 사이에 묘한 존재론적 중첩의 상태가 발생한다. 이것이 ‘파타피직스’이다.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역사이전의 현상이었다. 선사인의 의식에서는 가상과 현실이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상의 원인이 현실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주술의 원리였다. 역사시대가 되면서 사라졌던 이 상징형식이 디지털 기술형상의 형태로 되돌아온다.
선사인의 상상이 주술적 현상이었다면, 우리의 상상은 어디까지나 기술적 현상이다. 선사인의 상상이 공상이라면, 우리의 상상은 기술에 힘입어 현실이 된다. 이것이 역사이전의 마술과는 구별되는 역사이후의 ‘기술적 마술’이다.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디지털 이미지 자체의 특성인 것이다.
과거에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메타포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창조성을 대표하는 것은 파타포의 능력이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의 논리’다.
디지털의 몰입 기술은 게이머들을 모니터 속 가상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하지만 게이머의 경우 앨리스와 달리 정신만 가상으로 몰입하고 신체는 아직 현실에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비디오게임은 여전히 메타포 상태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의 상상력도 그동안 서서히 메타포에서 파타포의 상태로 진화해왔고, 게임에 증강현실의 기술이 적용됨에 따라 그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최근 비디오게임의 인터페이스는 점점 더 현실과 가상을 중첩시키는 파타포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닌텐도 위Wii를 생각해보자. 과거 핑퐁게임의 게이머들이 정신만 가상에 몰입한 채 현실에서는 그저 손가락만 움직였다면 ‘닌텐도 위’의 게이머들은 마치 현실의 테니스코트에서 경기하듯 온몸을 움직여 라켓을 휘둘러야 한다. 닌텐도 위로 테니스를 치는 이를 옆에서 관찰한다면 아마 광인처럼 보일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예술적으로 추구하던 일상과 몽상의 중첩이 여기서 기술적으로 실현된 셈이다. ― 본문 128~129쪽
3. 디지털은 예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 이 책에서 듣다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가 더 이상 과거의 회화일 수 없었듯이, 컴퓨터의 발명 이후 사진도 더 이상 과거의 사진일 수 없다. 사진의 발명으로 바뀐 예술의 전체 성격은,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해 다시 어떻게 바뀌었을까?”
“일찍이 사람들은 사진의 예술성 여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많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이에 선행되어야 할 물음, 즉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전체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은 제기하지 않았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의 한 대목이다. 이제 벤야민의 물음을 고쳐 물을 때이다.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해 혹시 예술의 전체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닌가?”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가 더 이상 과거의 회화일 수 없었듯이, 컴퓨터의 발명 이후 사진도 더 이상 과거의 사진일 수 없다. 사진의 발명으로 바뀐 예술의 전체 성격은,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해 다시 어떻게 바뀌었을까? 컴퓨터에 기초한 오늘날의 디지털 미학은 사진술에 기초한 벤야민의 모더니즘 미학과 어떻게 대립하는 것일까?
변화의 요체는 몽타주의 무기적unorganic 미학이 디지털 합성의 유기적organic 미학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모더니스트들은 이를 비판하나, 이것이 단순히 고전주의 미학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합성은 시각적 파편들을 균열의 흔적 없이 봉합한다. 여기서 ‘유기적 총체성’이라는 고전예술의 미학과 ‘파편들의 조립’이라는 모더니즘 미학이 묘한 종합을 이룬다. 디지털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매체다. 모더니스트들의 오해와 달리 디지털 합성의 ‘유기적’ 미학은 디지털 매체의 특성과 정확히 부합한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면 이른바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의 논쟁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은 디지털 영상에 여전히 사진과 영화의 미학을 적용하려 했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변화한 취향을 옹호하면서도 그 변화의 바탕에 깔린 물질적 토대의 변화와 의미를 제대로 의식하지는 못한 듯하다. 모더니즘의 몽타주 미학이 가상의 허구성을 폭로함으로써 ‘진리의지’Wille zur Wahrheit를 드러낸다면, 디지털 이미지는 진리가 사라진 시대의 허무에 창조의 기쁨으로 대항하는 “가상의지”Wille zum Schein를 대변한다. ― 본문 14~15쪽
4. 이 책의 주요 내용
1장 디지털의 철학
여기서는 빌렘 플루서의 논문 〈디지털 가상〉을 중심으로 먼저 디지털의 존재론과 인간학을 살핀다. 이것이 책 전체에 철학적 준거를 제공해줄 것이다.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주체(인간)-객체(세계)’라는 근대철학의 패러다임을 무너뜨린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은 주체(Subjeckt)에서 기획(Projeckt)으로서 진화하고, 세계는 주어진 것(Datum)에서 만들어진 것(Faktum)으로 변화한다.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가상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이미지를 낳았다. 여기서는 주술시대의 세 가지 전설을 인용하여 디지털 가상이 과거의 아날로그 영상과 성격이 전혀 다른 ‘기술적 마술’의 산물임을 부각시킨다.
2장 리얼 버추얼 액추얼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약화한다. 여기서는 세 명의 작가를 들어 오늘날 사진 속에 이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오늘날 현실과 가상은 서로 자리를 맞바꾸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예도 빼놓을 수 없다.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것은 미디어아트의 특권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본디 ‘가상성’(virtuality)이라는 말은 ‘허구성’과 ‘잠재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플라톤 이후 철학이 가상을 그저 허구로 여겼다면, 오늘날 가상은 그냥 가짜가 아니라 실현해야 할 잠재성으로, 그리하여 또 다른 모드의 실재로 정의된다.
3장 파타피직스
가상이 또 다른 양상의 현실로 여겨질 때 은유와 실재가 중첩된 ‘파타피지컬’한 상태가 발생한다. 한때 초현실주의의 미학적 원리였던 ‘파타피직스’가 오늘날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가 되었다. 파타피지컬한 인터페이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세대는 당연히 ‘현실’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가상에 실재의 지위를 부여해 가짜를 진짜처럼 대우해주고, 실재에 가상의 지위를 부여해 현실을 거대한 게임으로 바꾸어놓는 데에 익숙하다. 여기에서는 디지털 대중이 파타피직스의 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을 기술하고, 그 양상을 ‘게이미피케이션’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4장 지표의 상실
먼저 최후의 사진 이론인 바르트의 ‘푼크툼’ 이론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등장으로 존립 근거를 잃는 과정을 살핀다. 디지털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선행한 두 이미지, 즉 사진과 회화를 하나로 통합한다. 최근 회화적 사진이 귀환한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카메라의 눈’은 이제 ‘컴퓨터의 눈’으로 대체된다. 이에 따라 몽타주에 기초한 모더니즘의 ‘파편성의 미학’은 디지털 합성에 기초한 ‘총체성의 미학’으로 진화한다. 끝으로 디지털 이미지의 도전에 대한 몇몇 아날로그 사진작가들의 대응을 살펴본다. 그들은 디지털 가상의 미적 효과를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연출하려 한다.
5장 실재의 위기
디지털 사진에서는 사진매체의 본질로 여겨졌던 지표성이 사라진다. 디지털 사진은 일종의 그래픽이고, 그래픽 이미지는 굳이 피사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로써 디지털 사진은 현실의 ‘기록’으로서 성격을 잃는다. 여기에서는 사진이 아직 실재의 ‘기록’으로 기능했던 보도, 과학, 역사의 영역에서 디지털 이미지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살핀다. 오늘날 보도사진은 예술작품으로 변용되고, 역사는 서사와 오락의 소재로 전락하고, 과학의 실험은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을 닮아가고 있다. 실재는 위기에 처했다. 다큐멘터리 의식은 약화되고, 역사주의의 의식은 설 자리를 잃는다.
▣ 작가 소개
저 : 진중권
陳重權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국내에 있을 때에는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였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간부로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했다. 귀국한 뒤 그는 지식인의 세계에서나마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하며, 그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지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로 재직 하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를 대중적 논객으로 만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박정희 숭배’를 열성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과 작가 이인화씨, 근거 없는 ‘주사파’ 발언으로 숱한 송사와 말썽을 빚어온 박홍 전 서강대 총장,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 작품 〈선택〉으로 논란을 낳은 작가 이문열씨 등에 대한 직격탄이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 풍자를 뒤섞은 경쾌하면서도 신랄한 그의 문장은 ''진중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비판적 논객으로서가 아닌 미학자로서의 행보를 보여주는 책은 바로,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미학오디세이』이다. 이 책은 ‘미’와 ‘예술’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선물한 귀중한 교양서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면서 꾸준하게 여러 세대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이 책은 근육질의 기계 생산에서 이미지와 컨텐츠의 창조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에는 벤야민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들뢰즈 등의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탈근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로운 미학을 이야기한다.
이를 이어가는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는 “과연 예술은 진리의 신전(하이데거)인가? 오늘날 예술은 왜 이리도 난해해졌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탈근대 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철학자 8명을 골라 그들을 통해 탈근대 미학의 주요 특징을 살핀다. 근대 미학과 탈근대 미학을 반복적으로 대비하면서, 패러다임의 변화의 핵심을 포착하고 탈근대 미학의 요체가 숭고와 시뮬라크르임을 밝힌다. 차갑고 짧은 문장이 덜쩍지근한 포스트모던을 새롭게 보도록 만든다.
삶의 시원 ''에로스''를 탐색한 성의 미학을 거쳐 삶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타나토스''로 이어지는 죽음의 미학을 다룬 『춤추는 죽음』은 렘브란트, 로댕 뭉크, 고야 서양미술사에 빛나는 족적을 남긴 천재 화가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삶의 유한성을 명상할 줄 아는 예술가들은 죽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공포를 창작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저작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인문적, 미학적 사유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식 틀과 벤야민에게서 받은 영감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그는 개략적으로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혀내는 글쓰기를 계획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철학사를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 탈근대의 사상이 미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밝히는 것, 철학.미학.윤리학의 근원적 통일성을 되살려 새로운 미적 에토스를 만드는 것, 예술성과 합리성으로 즐겁게 제 존재를 만드는 것 등이다.
저서로는 『미학 오딧세이』『춤추는 죽음』『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천천히 그림읽기』『시칠리아의 암소』『페니스 파시즘』『폭력과 상스러움』『앙겔루스 노부스』『레퀴엠』『빨간 바이러스』『조이한·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춤추는 죽음』『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첩첩상식』『호모 코레아니쿠스』『한국인 들여다보기』『서양미술사』『이론과 이론기계』『컴퓨터 예술의 탄생』『진중권의 이매진 Imagine』『미디어아트』『교수대 위의 까치』 등의 공저서와 여러 권의 번역서가 있다.
▣ 주요 목차
지은이의 말
1장 디지털의 철학
01 디지털 가상
가상의 복권 / 존재에서 실존으로 / 모상에서 모형으로 / 관조에서 이론으로 / 역사적 사유에서 형식적 사유로 / 연속과 단절 / 비트의 분산 / 그림에서 문자로 / 문자에서 그림으로 / 창세기적 기술 / 주체에서 기획으로 / 데모크리토스, 헤겔 그리고 니체
02 탈역사적 마법
마법으로서 영상 / 예술가의 전설 /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 미립자와 인공생명 / 탈역사적 마법 / 억압된 것의 회귀
2장 리얼 버추얼 액추얼
03 파사드 프로젝트
가상의 구제 / 재현에서 제현으로 / 파사드 프로젝트
04 프레임의 미학
낯설게 하기 / 가상의 현실화, 현실의 가상화
05 역사적 현재
관계적 건축 / 문화적 기억의 시차/ 문화적 기억의 시차
06 리얼 버추얼 액추얼
비실재로서 가상 / 잠재성으로서 가상 / 가상현실과 현실가상 / 가상의 업로딩 / 미디어적 에포케
3장 파타피직스
07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상상적 해결의 과학 / 일상의 파타피직스 /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 촉각적 인터페이스 /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08 패러다임 게임
텔레비전의 현상학 / 재매개 / 토털 게임 / 리포터와 아바타 / 촉각성 / 온라인?오프라인 / 노동과 유희 / 역사와 서사
09 웹캐스트에서 팟캐스트로
디지털 구술문화 / 역사에서 신화로 / 파타피직스 / 상상력은 환각으로 / 전유와 기능전환
10 디지털 성전
정치의 게이미피케이션 / ‘병신’ 게임 / 애국서사 / 절대시계 / 홀리 워크래프트
4장 지표의 상실
11 사진 이론의 역사
사진적 행위 / 세계의 그림 / 관념의 텍스트 / 세계의 흔적
12 밝은 방
스투디움과 푼크툼 / 세부, 공간의 푼크툼 / 죽음, 시간의 푼크툼 / 도상, 상징, 지표 / 유아론과 회고주의 / 근본적 위험
13 회화적 사진의 귀환
예술이냐 기록이냐 / 픽토리얼리즘 / 다큐멘터리 포토 / 콤비네이션 프린팅 / 몽타주의 미학
14 사진은 회화처럼
카메라의 회화 / 라이트 박스 타블로 / 연속성의 몽타주 / 파편성과 총체성의 변증법
15 물신적 숭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 컴퓨터의 눈 / 냉담한 아름다움 / 현대의 물신적 숭고
16 사진 이후의 사진
디지털의 물리적 특성 / 사진 이후의 사진 / 전유의 전략 / 사진의 해방
5장 실재의 위기
17 다큐멘터리의 종언
회화적 기념비로서 다큐멘터리 / 크로노토피아 /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 데드팬에서 더블클릭으로
18 허구로서 과학
과학과 예술의 경계 / 환상의 과학적 재현 / 스톤헨지 밑의 자동차
19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재발명 / 소비에트 스냅숏 / 사회주의 팝아트 / 역사의 산증인 / 픽션의 재료가 된 역사
주
초고 수록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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