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드디어 다시 때가 온 것 같다.
감정과 정동이 경제의 언어 속으로 침투할 때가.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화된 부채의식과 죄책감을 들춰낼 때가.
법에 만연해 있는 감정을 읽어낼 때가.
국가의 ‘감성 기획’이 필연적으로 내재한 흠집을 드러낼 때가…….
이 책은 감성이 감정, 정서, 감수성, 감각과 어떻게 다른지를 파고들지 않는다. 또한 철학의 특정 학파나 감정사회학의 계보, 심리학적 입장을 공유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개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에 대해 인문학의 공통 언어와 문법을 찾아 논해보려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감성은 어떻게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
감성은 하나의 존재하는 현상이며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실체다. 감성은 일상 문화 속의 ‘비-문자’ 언어다. 말하자면 감성은 언어라는 문화자본을 습득하지 않은 존재에게도(예컨대 아동), 그리고 그것을 능숙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에게도(재현 능력), 또한 공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힘(문화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일지라도 언제나 일상에서 경험하고 인지하는 하나의 뚜렷한 의미-기호다. 그리고 그것은 공감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미 ‘사회화’되어 있으며, 경험적으로 축적되고 기록되어왔다는 점에서 ‘역사화된’ 산물이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표현되거나, 일부러 배제하고 통제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메타적 시선’의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감성사회: 감성은 어떻게 문화동력이 되었나』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사업단이 ‘감성과 공공성’이라는 리서치 워킹그룹을 만들어 3년간 연구한 결과물이다. 국문학, 역사학,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중국문학 등 서로 다른 연구의 이력과 관심도 저마다 다른 전공자들이 모여 연구하고 토론한 결론은, ‘감성’은 타고난 천성이나 기질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점이다. 또한 감성을 ‘시각’으로 상정했을 때, 문화적으로 위계화된 사회와 주체의 의식과 무의식을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는 성찰성이 확보된다는 점이다.
이번 책은 인류가 역사와 문화권에 따라 끊임없이 ‘감성을 통제’해왔음을 보여준다. 감성규율의 문화규칙과 정치학을 드러낸 것이다. 조선시대의 윤리와 예법, 동아시아적 차원의 중심의 문화억압, 반공의 이념이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일상화되는 것, 일종의 ‘사회적 범죄’가 되어버린 감정 표현 등을 추적했다. 비고용,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로잡은 불안의 감성은 금융의 상품화를 추동했으며, 고도의 자살률과 대형인재 등으로 살아 있는 행복과는 다른,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을 떠안게 되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구체적인 텍스트를 정하지 않고 사회와 문화 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시각’으로서의 감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감성이 어떻게 문화와 사회를 보는 하나의 시각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일상과 경험을 토대로 연구했다. 금융화 시대에 불안과 공포의 감성이 어떻게 상품화의 매개가 될 수 있는지에서부터(서동진), 세계 자살률 1위에 이른 불명예의 나라에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부채의식에 관해 다룬 도덕감정론(김왕배)까지, 그리고 법과 감정의 분리 불가능성에서부터 논쟁적 대립과 화해를 다룬 조선시대 판례의 연구(김지수)와 옥안과 판부에 서술된 감정에 관한 법 해석 및 공감의 역학 연구(강혜종), 신분과 젠더 차이에 따른 감정의 위계화를 다룬 연구(소영현)에 이르기까지, 감성을 통해 문제적 사회와 문화, 역사를 비판하고자 했다.
2부는 감성 연구의 보편 이론을 찾으려는 연구 관점을 견지한채 구체적인 텍스트를 대상으로 공감적 감성과 공통 감각을 분석한 것이다. ‘사랑’의 감정을 중심으로 감성의 문화적 힘과 사회적 동력에 대한 탐구(최기숙)에서부터, 지역과 인종에 따라 위계화된 감정 문법의 사례(후샤오전), 문화 교류에서 감성의 역할(김기완), 감성 기획으로서의 이데올로기와 문화(이하나), 동아시아 공통 감각의 가능성에 대한 타진(앤서니 펑·최기숙) 등이 논의되었다.
현대사회에선 누구나 법적인 규제나 보호를 받는 듯 보이지만 경험적 차원의 현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작동함을 알려준다. 이러한 것을 인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감성’이다. 동시에 이것을 포착해서 공론화하게 하는 힘 또한 감성이라는 비평적 시각이다. 개인이 일상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감성 요인은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문화적 힘을 발휘해낼 수 있다. 예컨대 개인이 혼자서 겪은 어떤 고통이나 상처가 어쩐지 억울한 느낌이 든다면, 거기에는 사회나 역사가 개인에게 압박하는 정치적 부조리, 사회적 압력, 역사적 상처 등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개인이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역사·사회적으로 합의되어온 행복의 의미 기호에 대한 인지와 개인의 성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개인의 감성 재현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집단 감성을 이루었을 때, 이것은 사회와 역사를 성찰하거나 변혁시키는 하나의 실질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한류 현상도 감성적 힘이 아니었다면 그만한 파급력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작이 같은 드라마를 통해 동아시아 공통 감각의 가능성과 차이에 주목하거나, 동아시아의 감성 교류에 관한 전통의 사례를 연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의 감성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철학이 혼융된 복잡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감성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접근과 연구가 수행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경험-언어’로서의 감성과 ‘분석-언어’로서의 감성을 모두 고려했다. 그리고 감성이 개인과 사회를 넘나들며 상호적으로 의미를 규정하는 역사화된 활동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학문 간 대화, 학문과 사회가 대화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이 책은 감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잘 단련된 하나의 학적 이슈를 사회에 던지려는 것이 아니다. 타자의 윤리를 생성하고 공생적 공감사회를 만드는 실천적 밑거름을 마련하려는 것이 바로 이 책에 실린 글들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는 집필의 심적 동력이다.
‘감정’은 어떻게 상품화에 복무하는가
“드디어 다시 때가 온 것 같다. 감정과 정동情動, 靜動이 경제의 언어 속으로 침투할 때가 말이다. 이제 감정과 정동이 경제의 타자가 아니라 경제를 인식하기 위해 기꺼이 참조해야 할 격자가 된 듯 보인다.” 서동진은 우선 경제라는 차갑고 고요한 바다에 풍랑과 격동이 일게 된 역사적 과정을 정성껏 묘사한다. 민스키의 경제불안정성론, 뒤이은 행동경제학과 사회경제학의 흐름은 ‘이성·합리·자가조절=시장’이란 공식을 예전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비이성적(이상) 과열’이 경제를 추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요상한 것은 경제의 불완정성을 지적하는 ‘감성적 요소들(공포·충동·본능 등)’이, 어느새 금융자본주의의 ‘가치’나 선동도구가 되어 있는 현실이다. 서동진은 ‘정동情動/靜動’이라고 부르는 요소들이 어떻게 ‘실제 노동력과 노동현실’을 배제한 ‘화폐자본주의’의 허상을 달콤하게 뽑아내는 데 기여하는지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정동’이 가동시키는 기만적인 상품화 앞에서 ‘분노’하지 못하고 ‘환멸·증오’에만 빠져드는 또다른 정동적 현실을 환기시킨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단순히 전체 노동시간을 평균한 값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이중적이다. 선반 일, 재봉 일, 제빵 일처럼 특정한 사회적 쓸모를 가진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으로서의 구체적인 노동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추상적이다. 그 추상성은 모든 상품 사이의 교환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상품이 교환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예외적인 상품이 존재해야 한다. 물론 그 상품의 이름은 노동력이다. 그 상품의 가치는 전연 자명하지 않다. 그것은 순전히 경제 외적인 폭력을 통해 강요되고 또한 노동자 스스로의 저항을 통해 보장되거나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오직 자본의 자기운동만을 알 따름이다. 죽어 있는 노동의 체현물로서의 자본은 결코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금융위기가 단순히 부의 총계보다 더 많은 화폐의 양 때문도, 도덕적인 해이나 투기적인 탐욕 때문도 아닌, 그 위기의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 위기의 원인은 노동이 부재하는 화폐와 신용의 자기운동 속에서 표상되는 경제의 세계다.”
‘도덕감정’의 아비투스
도덕감정은 비교적 오랜 상호 작용의 산물이며 ‘구성적’이고 사회문화적이며, 사람들의 특정한 성향disposition이나 기질을 드러내는 아비투스다. 도덕감정의 바탕 감정이 부채의식과 감사, 그리고 죄책감이다. 그와 같은 감정들의 연결점에는 타자 성찰, 즉 공감이 놓여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부모든, 사회든 타자에 대해 부채의식과 감사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갖게 되는 죄책감은 도덕감정의 결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가 개인에게 지워주는 부채는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즉 부채를 졌으나 감사가 뒤따르지 않는 변제 의도만이 있다. 강요된 부채에 대해 채무자가 느끼는 것은 단순 상환에 대한 부담이며, 때로 그들은 부채의 정당성에 대해 분노하거나 상환 불가에 대한 자신의 무능력에 좌절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죄책감이 뒤따르지 않는다. 공적 영역에서 기관으로부터 받은 채무, 예컨대 은행 대부를 졌다면 그 대가로 이자를 얹어 원금을 상환하면 그만이다. 동등하게 쌍방적이고 일시적인 도구적 호혜관계가 설정되어 있기에 어떤 도덕적 의무나 감사의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처럼 현실세계에는 감사하지 않아도 될 많은 부채가 있고, 즉 도덕감정과 상관없는 부채의식들이 있고, 오히려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는 부채들이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부채로부터 나오는 의식은 감사와 죄책감을 수반하는 부채의식이 아니라 피해의식에 가깝다. 이러한 사회 조건들은 공동체에 대한 도덕감정의 약화를 초래하고, 도덕감정의 부재는 무관심한 방관자들을 낳는다. 사회가 개인에게 부채의식의 당위를 제공하지 못할 때, 그래서 개인들이 스스로 협약을 통해 자기 삶의 방패막이로 만들었던 ‘도덕’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될 때 공동체성은 사라진다.
법과 감정은 어떻게 동거해왔나
유교에 바탕을 둔 『대명률』에 근거하여 성립되는 조선의 법 전통에서는 감정에 대한 이해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감정이 법에 만연해 있다’라는 표현은 전근대와 근대 초기까지 조선의 법문화를 매우 적절히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예로 조선의 조정에서는 법적 규정력에서 감정이 지니는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소원訴?제도’를 통해 논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원’이란 ‘억울함을 호소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원통함 또는 억울함’을 지시하는 한자 ‘원?’은 영어권에서 흔히 불만grievance이나 부당함injustice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이 용어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 요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저자는 15세기 중반 상류층 여성인 정씨 부인과 그녀의 사위 강순덕 사이에서 발생했던 재산 분쟁에 초점을 맞춰 법적 관례에 반영되었던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거기에 작용한 사회문화적 힘은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탐구했다. 이를 위해 인정人情이 부모 자식 간의 효와 부부 사이의 열烈이라는 윤리와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이러한 감정 요소가 조선사회에서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주목했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조선의 감성 정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는데, 그 고을에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는 상소문에서 보이는 고대 천인감응의 교감 논리는 옥사獄事에 대한 인식에도 반영된다. 숙종은 혹시라도 옥안이나 사체死體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사건의 원인을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면, 억울함과 원망이 일어나 “천지에 수한水旱(장마와 가뭄)의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법의학서 『세원록집증洗寃錄集證』은 “죽은 이의 원?이 풀리지 않으면 산 자의 원이 또한 이루어지니, 하나의 목숨으로 인해 두 목숨, 여러 목숨이 죽게 되며 원수 갚음이 계속 일어나게 되니 참혹함이 어찌 그칠 것인가”라고 말한다. 산 자의 ‘원’이 확대되어 공권력이 통제력을 잃고 공동체의 질서 유지가 불가능해질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하늘을 움직이는 ‘공공의 감동’을 만들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덕치를 지향하는 유가의 통치 시스템에서 형벌에 대한 공포가 아닌 ‘수치’의 내면화를 통한 교화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다. 예컨대 무늬가 있는 돌嘉石에 앉혀놓고 그 무늬를 보고서 자신도 그렇게 아름답게 되기를 반성하도록 만든다거나, 죄상을 기록한 판자를 등에 짊어지게 해 수치심을 품고 반성토록 하는 명형明刑뿐만 아니라 고통을 주는 신체형이나 노역형도 그 목적이 같았다.
『흠흠신서』 「경사요의經史要義」에는 이처럼 범인의 감정을 읽어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싣고 있다. 그중에서 ‘소리를 듣고 살인자를 알아내다聞聲知殺’의 사례 다섯 가지 모두가 간부姦夫와 음행을 저지르고 남편을 죽인 여성들의 거짓 곡소리를 알아낸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하녀는 어떻게 규율되고 추방되었는가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 하위주체, 즉 근대적 직업여성으로서의 하녀를 대상으로 공적/사적 영역의 유동성 문제와 연관된 하녀의 위상을 추적했다. “하루 종일 한번 안저보지도 못하고, 산덤이 가튼 빨래를 종일 해야 하며, 새벽에 또 일즉이 일어나야 하”며, 좀 나은 처지라 해도 “바누질, 밥 짓는 일, 어린애 보는 일, 물건 사는 심부림, 주인마마 代書, 유치원 다니기”로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신세, 남의집살이의 고충이 신산하기 그지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고용의 불안정성’이었다. 주목할 점은 하녀에게 요구된 노동에는 “주인의게 대한 모든 예절과 주인을 속이지 안어야 된다는” 직업윤리(계급적 충성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1935년 이후 발흥한 ‘식모(하녀)폐지론’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하녀가 맡았던 노동이 본래 주부의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된다고 지적한다. 식모폐지론은 결과적으로 하녀를 가족 단위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으로 작동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적 직업이었던 하녀의 등장과 함께 ‘노동’으로 분류되던 ‘가사’가 다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서 여성-주부가 떠맡아야 할 의무로 재규정되었다.
춘향전을 둘러싼 조선시대 감정 유희「도월기」와 명청 문인들의 로컬 감성
(고)소설에 나타난 감정과 공감의 문제는 당대 사회의 관습과 제도를 확고하게 전달하는 ‘감정 교육’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감정 유희를 경험하는 것이었고, 작중 인물의 반응에 대한 공감과 호오好惡는 독자들이 감정을 발견하고 해소하는 즐거움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춘향전」이야말로 개인의 감각과 경험이 어떻게 타인에게 전달되며 또한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감정의 차원에서 치밀하게 탐구한 텍스트다. 이 글은 「춘향전」의 여러 버전 중 「남원고사」에 나타난 감정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지식사적 천착, 사회적 탐구다. 사랑을 경험하는 주인공 이도령과 춘향의 자기 관찰과 이해, 사랑이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관습과 통념에 기대어 성립하다는 것. 개인의 내적 경험인 사랑이 인간관계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 개인의 감정적 경험이 어떻게 통치 대상으로 변용되는지, 사회는 왜 개인의 감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에 관한 성찰 등을 행한다.
특히 「남원고사」는 경험과 감각, 신체성과 삶의 현장성을 제도나 이념보다 우선시하는 관점의 승리를 구현했다. 여기에는 작중 인물의 감성에 독자를 끌어들여 ‘감정 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문화 규약이 작용했다. 이러한 서사 전략을 통해 「남원고사」는 감성 주체로서의 인간을 새롭게 발굴했고, 그 결과 춘향전 이본 중에서는 특권화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남원고사」는 감정의 문법에 충실한, 소설이라는 ‘낮은(천한/비주류의/제도권 바깥의) 장르’를 통해, 인간을 감성 주체로 다시 세우려는 실험적 기획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이는 당시의 비주류 문자인 ‘언문’을 통해 실현되었다. 감성의 문제가 신분/젠더/지역의 차이성과 문화 권력의 차원을 가로지르며 세상을 읽는 하나의 새로운 시선을 창출하려는 문화 기획의 진원지이자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다.
「도월기」와 명청 문인들의 로컬 감성
“남녀가 발을 구르며 노래하다가 밤이 되면 서로를 유혹하는데, 이를 ‘도월’이라고 한다. 동묘東苗들은 모두 부들피리를 불면서 빙빙 돌며 노래를 하는데, 남녀가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짝을 짓는다. 이를 일러 ‘도월’이라고 한다”에서 보듯 도월은 중국 서남지역의 풍속이다. 도월을 기술한 작품 중에 문학적 감화력이 가장 강한 것은 육차운의 「도월기」다.
“몇 명의 남자가 경쟁하듯 한 여자에게 접근해 여자가 누굴 피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경우도 있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떨어지고, 서로 떨어져서는 서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눈으로 허락하고 마음으로 맺어져 바구니와 생황을 주고받다보면 갑자기 의식이 끝난다. 그러면 어여쁜 자는 어여쁜 자를 업고, 못생긴 자는 못생긴 자를 업는다. 못생긴 남자와 못생겨서 남에게 업히지 못한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업는다. 못생긴 자가 못생긴 자를 아무리 보아도 도저히 업을(업힐) 상대가 없을 때는 눈물을 흩뿌리며 돌아가면서 업힌(업은) 자를 보기조차 부끄러워한다.”(218~219쪽)
허나 이 장면은 여러 책을 모아 엮은 것의 일부일 뿐 육차운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도월기」에 나타난 소리와 형상의 회화적 표현들은 사실 아름다운 상상과 도덕에 대한 기대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강희 연간에 살았던 진정陳鼎이란 사람의 도월 묘사는 육차운의 고심 어린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에는 못 미친다. 감정에 대한 이해도 그저 “질펀히 장난치며 웃고 노래한다”가 전부여서 그것이 어느 정도의 깊은 감정인지를 표현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의 서사에는 다른 기록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오락과 매매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명청 시기 문인들의 여러 기록에서 도월은 주로 사랑과 음탕함, 혼인 풍속 혹은 혼례 등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어떤 것이든 모두 남녀 사이에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감정 표출이라는 면에 치중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의 서사에는 본래 존재하던 남과 여 사이에 이와 또 다른 지위 권력을 딛고 서 있던 제삼자가 개입되어 있다. 이 제삼자의 설정은 외부로부터 온 한족이 실존하는 서남지역의 남녀에게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아름다운 형상을 덧씌우고, 거기에 마치 상품같이 가격표를 거칠게 붙이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묵연 속에 지은 집, 이국의 벗을 향한 그리움
조선 후기의 문인들은 자기가 살기 원하는 가상의 주거 공간을 꿈꾸고 설계하는 ‘의원기意園記’류의 산문 창작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이런 유행에는 명 왕세정王世貞, 명말 청초의 문인 황주성黃周星 같은 중국 문인들의 정원 관련 문학작품이 끼친 영향이 컸다. 그런데 필자가 이 글에서 다룬 내용들은, 조선 문인이 자신의 거처를 스스로 상상하고 설계하는 행위와 창작 동기 및 성격상 완전히 동질적이지는 않다. 문인 혼자서 자신이 꿈꾸는 거주지를 자유롭게 산문으로 쓰는 일과, 중국 문인에게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그림으로 그리고 시문 속에서 재현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학 경험에 속한다. 또한 이 글에서 언급한 신위, 이상적, 홍현주, 오경석 등의 집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상 속의 집이라기보다는, (설령 거기에 상징적 미화와 비실제적 재현이 덧붙여졌다 할지라도) 조선 어딘가에 이미 현존하면서 의미상으로는 그 집 주인의 인격과 존재감을 지시하는 실재의 공간이었다.
19세기 이러한 성격의 거주지 그림들이 직업화가가 아니라 국제 교유의 당사자인 조·청 문사들(문인화가) 자신에 의해 직접 그려지곤 했던 것은 이러한 ‘비형사적 지향’의 강화에 더욱 일조했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직업적 전문화가의 그림이 사실성 쪽으로 기울어진 반면, 문인화는 형상성보다도 다른 차원의 정신성을 더 중시한다는 인식이 있어왔다. 이 글에서 살펴본 19세기 조·청 문인들의 거주지 그림은 불특정 다수의 관람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에 앞서 일차적으로 수신인과 발신인 간의 관계 내지 시서화를 주고받는 교유 인물들 간 개인적 친분의 맥락이 중요하게 전제되어 있다.
교통수단의 비약적인 발달로 중국, 일본은 물론 상당수의 나라가 일일 생활권 안으로 들어온 오늘날과는 달랐던 조선시대에, 한번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생전에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하기 힘들었던 조선-청 문인들이 지속적인 그리움의 서식지로 명명했던 것은, 결국 그림 속의 공간, 문학의 공간이었다.
‘감성’으로 반공주의 다시 보기
반핵·평화·인권 옹호의 이름으로 반북 정서는 더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남북 갈등 이전에 남남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반공주의를 극복하려면 그 이념성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기마다 어떻게 다른 의미를 돌출시키며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는지에 대한 역사성을 추적하는 일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반공주의의 정서는 대체로 공포, 증오, 적개심, 반감, 이질성 등으로 이뤄진 배제의 감정으로 이는 이해, 연민, 동질성 등을 바탕으로 하는 통합의 감정과 배치된다. 이 양쪽의 감정은 때로 결합되기도 하는데, 예컨대 북한에 대해 적개심과 연민이 모호하게 섞여 공존하거나 양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된 양립 가능성은 이미 그 자체로 반공적 감수성에 흠집을 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반공주의를 감성 차원에서 파악한다는 것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반공주의의 다면성과 중층성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그 실체에 좀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둘째, 그동안 사적 영역에 한정되어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던 감성/감정의 문제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집단과 공공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셋째, 국가의 정체성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비되는 저항적 공공성이 싹틀 여지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를 소비·수용하는 관객은 지배 권력으로부터 억압과 통제와 동의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대중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향유 속에서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하는 가운데 지배적 감수성과 불화하거나 그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잠재적 능동성과 저항성을 가진 존재다. ‘반공영화’는 증오를 기반으로 하는 반공주의를 지지하는 외양을 띠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한 반공주의가 항상 도전과 저항의 가능성에 직면한 불안한 감수성이었음을 은연중 웅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또한 잠재적 공공적 주체인 대중에게 내재된 은밀하고 모반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에서도, 전형적이면서도 모순적인 ‘감성 기획’이었다.
감성은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텔레비전이라는 대중 매체에 의해 담론이 형성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텔레비전이 문화적 투쟁의 장임을 인정해야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상상력은 그 지역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맥락에 의해 크게 제약받는다. 정치적으로 좀더 자유로우며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한국에서는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자들이 주어진 현실에 도전장을 내밀거나, 또는 적어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회적인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사실적 재현이라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욕망과 조율하며 상상적으로 재구성된 방식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드라마는 감성을 강력한 공감적 요소로 전제하면서 이를 사회 불평등도 뛰어넘을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상정하는 문법을 보이며, 감성적 힘의 교환이 계급과 문화의 차이를 초월할 수 있고 사회적 불평등을 좁힐 수도 있다고 보는 상상적 구도를 드러냈다. 그리고 시청자는 드라마 내부에서 지나치게 과장된 불평등의 요소를 유머와 오락으로 소비하면서 사회 비판적 시선을 유희적으로 전치하는 시청자의 위치를 생성해냈다.
▣ 작가 소개
저 : 서동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계간 『리뷰』 편집장, 『당대비평』 편집위원을 지냈고, 대안청소년센터인 하자센터 창립 멤버였으며, 웹진 『컬티즌』을 창간하는 데 참여했다. 성공회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상원 강사를 거쳐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당비의 생각』 기획주간을 맡고 있다. 자본주의와 문화의 관계를 묻고 공부를 하다 디자인문화에 관심을 갖고 틈틈이 글을 쓰고 있으며, 인터넷 매체인 ''디자인플럭스''에 “앨리스”라는 생뚱맞은 필명으로 글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디자인, 문화, 정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서 비판적인 디자인문화연구를 조직할 수 있는 담론의 씨앗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
저서로는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 『록, 젊음의 반란』, 『혁명의 문화사』(공저), 『디자인 멜랑콜리아』,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공저), 『왜, 지금, 청소년? - 하자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공저),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공저), 『한국의 디자인 02 :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공저), 『미노타우로스의 눈』(공저)『무엇이 정의인가?』(공저) 등이 있다.
저 : 김왕배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도시, 공간, 생활세계』,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 『동아시아의 사회적 포섭과 배제』(공)가 있고, 역서로 『사회학이론』, 『자본주의 도시와 근대성』 등이 있다.
저자 : 김지수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 저서 The Emotions of Justice: Gender, Status, and Legal Performance in Early Modern Korea(근간), 논문 “Crossing the Boundary of Inner Quarters: Elite Women’s Petitioning Activity in Late Chos?n Korea” 외 다수.
저자 : 강혜종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보조원. 논문 「다산의 글쓰기와 공공성: 『경세유표』의 구성과 서술방식」 「환희기재론: 연암의 정치적 알레고리 분석의 일고」 「20세기 여성 문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여성의 사회 참여 방식: 『송설당집』과 『소파여사시집』을 중심으로」 외 다수.
저자 : 소영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저서 『문학청년의 탄생』 『부랑청년 전성시대』 『분열하는 감각들』 『프랑케슈타인 프로젝트』, 공저 『감정의 인문학』 『속물과 잉여』, 공편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외 다수.
저자 :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저서 『처녀귀신』 『환상』, 논문 「언문소설의 문화적 위치와 문자적 근대의 역설」 「조선시대 감정론의 추이와 감정의 문화 규약」 「혜환, 무명자, 항해의 비평적 글쓰기를 통해 본 ‘인-문’의 경계와 글쓰기의 형이상학」 외 다수.
저자 : 후샤오전胡曉
| 대만 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 교수. 저서 『新理想, 舊體例與不可思議之社會―淸末民初上海「傳統派」文人與閨秀作家的轉型現象』 『才女徹夜未眠―近代中國女性?事文學的興起』, 편저 『經典轉化與明淸?事文學』 『日常生活的論述與實踐』 외 다수.
저자 : 김기완
연세대 강사. 공저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공역 『풀어쓰는 국문론집성』, 논문 「조선후기 사대부 초상화찬 연구」 「노론의 학통적 맥락에서 본 송시열 초상화찬」 외 다수.
▣ 주요 목차
머리말 감성은 어떻게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제1부 사회 비판으로서의 감성
1장 정동의 경제, 경제의 정동
―금융화된 주체의 증오와 환멸 그리고 분노 | 서동진
불안과 안전의 변증법 | 금융화된 경제와 그 표상―정동의 경제 | 정동의 경제인가 적대의 경제인가
2장 도덕감정
―부채의식과 죄책감의 연대 | 김왕배
도덕감정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 도덕감정을 구성하는 하위 감정들 | 도덕감정론의 계보 | 부채의식과 감사 그리고 죄책감의 순환 | 부채와 감사의 균열 그리고 향후 과제
3장 법과 감정은 어떻게 동거해왔나
―조선시대 재산 분쟁을 둘러싼 효·열의 윤리와 인정 | 김지수
역사 속에서 법과 감정은 어떻게 동거해왔나 | 공간의 젠더화―고려와 조선 여성, 상층과 하층 여성의 차이 | 재산 분쟁에서 ‘효’와 ‘열’은 어떻게 대립하고 감정화되는가 | 개인의 감정은 어떻게 공론화되는가
4장 살인사건을 둘러싼 조선의 감성 정치
―옥안獄案의 내러티브, 공감대를 위한 청원 | 강혜종
옥안과 판부에서 감정을 읽다 | 전통시대에 ‘공감’은 어떻게 표현되었나 | 조선시대 형정의 집행과 ‘부끄러움’의 통치술 | 공감의 역학―누구의 공감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 감형의 전략―다투어 죽으려 하다 | 법리 적용과 공감의 내러티브―복수를 허할 것인가 | 의분―모독을 갚아주다 | 공감되지 못한 감정―‘여성의 편협한 성품’ | 공감을 위한 지식으로서의 법
5장 감정의 위계와 감정의 규율
―1920~1930년대 ‘하녀’의 노동과 감정 | 소영현
여성 하위주체의 ‘노동’과 ‘감정’ | 하녀의 위상학 | 여성 하위주체의 감정규율 | 식민지-여성 하위주체와 국가적 감정규율
제2부 문화의 감성과 공통감각
6장 춘향전을 둘러싼 조선시대 감정 유희
―감정의 복합성·순수성·이념화 | 최기숙
지식으로서의 감정, 역사화된 감정의 공감 구조 | 「남원고사」의 감성 기획과 혼종성의 서사 전략 | ‘감성적 인간’의 발견과 감정 공동체의 형성 | 감정의 복합성과 순수성 | 감정의 이념화와 도덕적 위계 | 사랑을 둘러싼 공론장의 형성 | 공감적 주체와 소설이라는 감정 공동체
7장 남녀 간 사랑의 갈구와 위계화된 감정
―「도월기」와 명청 문인들의 로컬 감성 | 후샤오전
지식 체계와 감정 서사―명청 시기 문인들의 서남지역 서술에 관한 재탐색 | 「도월기」 감성 서사는 어떻게 전승되었나 | 감정의 오락화―진정의 도월 서사
8장 묵연 속에 지은 집, 이국의 벗을 향한 그리움
―19세기 한중교유와 동아시아적 문예 공감대 | 김기완
‘회인’의 풍경 | 꿈과 그림, 서로 다른 시공간의 병치 | 초상화와 집 그림, 내면 풍경으로서의 거주 공간 | 한중 묵연 속에 집을 짓다 | 가볼 수 없는 그리운 곳을 그리기 | 국경을 넘은 그리움의 재생처로서의 ‘집’
9장 반공영화라는 감성 기획은 왜 실패했나
―반공주의의 내면 풍경 | 이하나
‘감성’으로 반공주의 다시 보기 | 반공주의 훈육의 위기와 감성 프로파간다로서의 영화 | 반공영화 논쟁의 쟁점들 | 반공영화의 딜레마 | 반공영화, 모순된 감성 기획
10장 감성은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 동아시아 「꽃보다 남자들」이 보여준 감성 재현의 동화와 거리화 | 앤서니펑·최기숙
동아시아 감성의 공감대와 거리화 |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문화자본과 감성의 상호 관계 및 지역별 특성 | 계급 갈등―화해인가 저항인가 | 사회적 격차―좁아지는가 넓어지는가 | 한국과 중국 드라마에서 문화자본과 감성의 역할 | 열린 사회에서의 감성적 관계
드디어 다시 때가 온 것 같다.
감정과 정동이 경제의 언어 속으로 침투할 때가.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화된 부채의식과 죄책감을 들춰낼 때가.
법에 만연해 있는 감정을 읽어낼 때가.
국가의 ‘감성 기획’이 필연적으로 내재한 흠집을 드러낼 때가…….
이 책은 감성이 감정, 정서, 감수성, 감각과 어떻게 다른지를 파고들지 않는다. 또한 철학의 특정 학파나 감정사회학의 계보, 심리학적 입장을 공유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개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에 대해 인문학의 공통 언어와 문법을 찾아 논해보려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감성은 어떻게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
감성은 하나의 존재하는 현상이며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실체다. 감성은 일상 문화 속의 ‘비-문자’ 언어다. 말하자면 감성은 언어라는 문화자본을 습득하지 않은 존재에게도(예컨대 아동), 그리고 그것을 능숙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에게도(재현 능력), 또한 공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힘(문화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존재일지라도 언제나 일상에서 경험하고 인지하는 하나의 뚜렷한 의미-기호다. 그리고 그것은 공감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미 ‘사회화’되어 있으며, 경험적으로 축적되고 기록되어왔다는 점에서 ‘역사화된’ 산물이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표현되거나, 일부러 배제하고 통제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메타적 시선’의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감성사회: 감성은 어떻게 문화동력이 되었나』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사업단이 ‘감성과 공공성’이라는 리서치 워킹그룹을 만들어 3년간 연구한 결과물이다. 국문학, 역사학,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중국문학 등 서로 다른 연구의 이력과 관심도 저마다 다른 전공자들이 모여 연구하고 토론한 결론은, ‘감성’은 타고난 천성이나 기질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점이다. 또한 감성을 ‘시각’으로 상정했을 때, 문화적으로 위계화된 사회와 주체의 의식과 무의식을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는 성찰성이 확보된다는 점이다.
이번 책은 인류가 역사와 문화권에 따라 끊임없이 ‘감성을 통제’해왔음을 보여준다. 감성규율의 문화규칙과 정치학을 드러낸 것이다. 조선시대의 윤리와 예법, 동아시아적 차원의 중심의 문화억압, 반공의 이념이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일상화되는 것, 일종의 ‘사회적 범죄’가 되어버린 감정 표현 등을 추적했다. 비고용,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로잡은 불안의 감성은 금융의 상품화를 추동했으며, 고도의 자살률과 대형인재 등으로 살아 있는 행복과는 다른,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을 떠안게 되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구체적인 텍스트를 정하지 않고 사회와 문화 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시각’으로서의 감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감성이 어떻게 문화와 사회를 보는 하나의 시각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 일상과 경험을 토대로 연구했다. 금융화 시대에 불안과 공포의 감성이 어떻게 상품화의 매개가 될 수 있는지에서부터(서동진), 세계 자살률 1위에 이른 불명예의 나라에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부채의식에 관해 다룬 도덕감정론(김왕배)까지, 그리고 법과 감정의 분리 불가능성에서부터 논쟁적 대립과 화해를 다룬 조선시대 판례의 연구(김지수)와 옥안과 판부에 서술된 감정에 관한 법 해석 및 공감의 역학 연구(강혜종), 신분과 젠더 차이에 따른 감정의 위계화를 다룬 연구(소영현)에 이르기까지, 감성을 통해 문제적 사회와 문화, 역사를 비판하고자 했다.
2부는 감성 연구의 보편 이론을 찾으려는 연구 관점을 견지한채 구체적인 텍스트를 대상으로 공감적 감성과 공통 감각을 분석한 것이다. ‘사랑’의 감정을 중심으로 감성의 문화적 힘과 사회적 동력에 대한 탐구(최기숙)에서부터, 지역과 인종에 따라 위계화된 감정 문법의 사례(후샤오전), 문화 교류에서 감성의 역할(김기완), 감성 기획으로서의 이데올로기와 문화(이하나), 동아시아 공통 감각의 가능성에 대한 타진(앤서니 펑·최기숙) 등이 논의되었다.
현대사회에선 누구나 법적인 규제나 보호를 받는 듯 보이지만 경험적 차원의 현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작동함을 알려준다. 이러한 것을 인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감성’이다. 동시에 이것을 포착해서 공론화하게 하는 힘 또한 감성이라는 비평적 시각이다. 개인이 일상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감성 요인은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문화적 힘을 발휘해낼 수 있다. 예컨대 개인이 혼자서 겪은 어떤 고통이나 상처가 어쩐지 억울한 느낌이 든다면, 거기에는 사회나 역사가 개인에게 압박하는 정치적 부조리, 사회적 압력, 역사적 상처 등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개인이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역사·사회적으로 합의되어온 행복의 의미 기호에 대한 인지와 개인의 성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개인의 감성 재현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집단 감성을 이루었을 때, 이것은 사회와 역사를 성찰하거나 변혁시키는 하나의 실질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한류 현상도 감성적 힘이 아니었다면 그만한 파급력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작이 같은 드라마를 통해 동아시아 공통 감각의 가능성과 차이에 주목하거나, 동아시아의 감성 교류에 관한 전통의 사례를 연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의 감성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철학이 혼융된 복잡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감성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접근과 연구가 수행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경험-언어’로서의 감성과 ‘분석-언어’로서의 감성을 모두 고려했다. 그리고 감성이 개인과 사회를 넘나들며 상호적으로 의미를 규정하는 역사화된 활동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학문 간 대화, 학문과 사회가 대화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이 책은 감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잘 단련된 하나의 학적 이슈를 사회에 던지려는 것이 아니다. 타자의 윤리를 생성하고 공생적 공감사회를 만드는 실천적 밑거름을 마련하려는 것이 바로 이 책에 실린 글들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는 집필의 심적 동력이다.
‘감정’은 어떻게 상품화에 복무하는가
“드디어 다시 때가 온 것 같다. 감정과 정동情動, 靜動이 경제의 언어 속으로 침투할 때가 말이다. 이제 감정과 정동이 경제의 타자가 아니라 경제를 인식하기 위해 기꺼이 참조해야 할 격자가 된 듯 보인다.” 서동진은 우선 경제라는 차갑고 고요한 바다에 풍랑과 격동이 일게 된 역사적 과정을 정성껏 묘사한다. 민스키의 경제불안정성론, 뒤이은 행동경제학과 사회경제학의 흐름은 ‘이성·합리·자가조절=시장’이란 공식을 예전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비이성적(이상) 과열’이 경제를 추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요상한 것은 경제의 불완정성을 지적하는 ‘감성적 요소들(공포·충동·본능 등)’이, 어느새 금융자본주의의 ‘가치’나 선동도구가 되어 있는 현실이다. 서동진은 ‘정동情動/靜動’이라고 부르는 요소들이 어떻게 ‘실제 노동력과 노동현실’을 배제한 ‘화폐자본주의’의 허상을 달콤하게 뽑아내는 데 기여하는지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정동’이 가동시키는 기만적인 상품화 앞에서 ‘분노’하지 못하고 ‘환멸·증오’에만 빠져드는 또다른 정동적 현실을 환기시킨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단순히 전체 노동시간을 평균한 값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이중적이다. 선반 일, 재봉 일, 제빵 일처럼 특정한 사회적 쓸모를 가진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으로서의 구체적인 노동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추상적이다. 그 추상성은 모든 상품 사이의 교환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상품이 교환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예외적인 상품이 존재해야 한다. 물론 그 상품의 이름은 노동력이다. 그 상품의 가치는 전연 자명하지 않다. 그것은 순전히 경제 외적인 폭력을 통해 강요되고 또한 노동자 스스로의 저항을 통해 보장되거나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오직 자본의 자기운동만을 알 따름이다. 죽어 있는 노동의 체현물로서의 자본은 결코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금융위기가 단순히 부의 총계보다 더 많은 화폐의 양 때문도, 도덕적인 해이나 투기적인 탐욕 때문도 아닌, 그 위기의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 위기의 원인은 노동이 부재하는 화폐와 신용의 자기운동 속에서 표상되는 경제의 세계다.”
‘도덕감정’의 아비투스
도덕감정은 비교적 오랜 상호 작용의 산물이며 ‘구성적’이고 사회문화적이며, 사람들의 특정한 성향disposition이나 기질을 드러내는 아비투스다. 도덕감정의 바탕 감정이 부채의식과 감사, 그리고 죄책감이다. 그와 같은 감정들의 연결점에는 타자 성찰, 즉 공감이 놓여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부모든, 사회든 타자에 대해 부채의식과 감사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갖게 되는 죄책감은 도덕감정의 결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가 개인에게 지워주는 부채는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즉 부채를 졌으나 감사가 뒤따르지 않는 변제 의도만이 있다. 강요된 부채에 대해 채무자가 느끼는 것은 단순 상환에 대한 부담이며, 때로 그들은 부채의 정당성에 대해 분노하거나 상환 불가에 대한 자신의 무능력에 좌절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죄책감이 뒤따르지 않는다. 공적 영역에서 기관으로부터 받은 채무, 예컨대 은행 대부를 졌다면 그 대가로 이자를 얹어 원금을 상환하면 그만이다. 동등하게 쌍방적이고 일시적인 도구적 호혜관계가 설정되어 있기에 어떤 도덕적 의무나 감사의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처럼 현실세계에는 감사하지 않아도 될 많은 부채가 있고, 즉 도덕감정과 상관없는 부채의식들이 있고, 오히려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는 부채들이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부채로부터 나오는 의식은 감사와 죄책감을 수반하는 부채의식이 아니라 피해의식에 가깝다. 이러한 사회 조건들은 공동체에 대한 도덕감정의 약화를 초래하고, 도덕감정의 부재는 무관심한 방관자들을 낳는다. 사회가 개인에게 부채의식의 당위를 제공하지 못할 때, 그래서 개인들이 스스로 협약을 통해 자기 삶의 방패막이로 만들었던 ‘도덕’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될 때 공동체성은 사라진다.
법과 감정은 어떻게 동거해왔나
유교에 바탕을 둔 『대명률』에 근거하여 성립되는 조선의 법 전통에서는 감정에 대한 이해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감정이 법에 만연해 있다’라는 표현은 전근대와 근대 초기까지 조선의 법문화를 매우 적절히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예로 조선의 조정에서는 법적 규정력에서 감정이 지니는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소원訴?제도’를 통해 논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원’이란 ‘억울함을 호소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원통함 또는 억울함’을 지시하는 한자 ‘원?’은 영어권에서 흔히 불만grievance이나 부당함injustice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이 용어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 요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저자는 15세기 중반 상류층 여성인 정씨 부인과 그녀의 사위 강순덕 사이에서 발생했던 재산 분쟁에 초점을 맞춰 법적 관례에 반영되었던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거기에 작용한 사회문화적 힘은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탐구했다. 이를 위해 인정人情이 부모 자식 간의 효와 부부 사이의 열烈이라는 윤리와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이러한 감정 요소가 조선사회에서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주목했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조선의 감성 정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는데, 그 고을에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는 상소문에서 보이는 고대 천인감응의 교감 논리는 옥사獄事에 대한 인식에도 반영된다. 숙종은 혹시라도 옥안이나 사체死體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사건의 원인을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면, 억울함과 원망이 일어나 “천지에 수한水旱(장마와 가뭄)의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법의학서 『세원록집증洗寃錄集證』은 “죽은 이의 원?이 풀리지 않으면 산 자의 원이 또한 이루어지니, 하나의 목숨으로 인해 두 목숨, 여러 목숨이 죽게 되며 원수 갚음이 계속 일어나게 되니 참혹함이 어찌 그칠 것인가”라고 말한다. 산 자의 ‘원’이 확대되어 공권력이 통제력을 잃고 공동체의 질서 유지가 불가능해질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하늘을 움직이는 ‘공공의 감동’을 만들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덕치를 지향하는 유가의 통치 시스템에서 형벌에 대한 공포가 아닌 ‘수치’의 내면화를 통한 교화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었다. 예컨대 무늬가 있는 돌嘉石에 앉혀놓고 그 무늬를 보고서 자신도 그렇게 아름답게 되기를 반성하도록 만든다거나, 죄상을 기록한 판자를 등에 짊어지게 해 수치심을 품고 반성토록 하는 명형明刑뿐만 아니라 고통을 주는 신체형이나 노역형도 그 목적이 같았다.
『흠흠신서』 「경사요의經史要義」에는 이처럼 범인의 감정을 읽어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싣고 있다. 그중에서 ‘소리를 듣고 살인자를 알아내다聞聲知殺’의 사례 다섯 가지 모두가 간부姦夫와 음행을 저지르고 남편을 죽인 여성들의 거짓 곡소리를 알아낸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하녀는 어떻게 규율되고 추방되었는가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 하위주체, 즉 근대적 직업여성으로서의 하녀를 대상으로 공적/사적 영역의 유동성 문제와 연관된 하녀의 위상을 추적했다. “하루 종일 한번 안저보지도 못하고, 산덤이 가튼 빨래를 종일 해야 하며, 새벽에 또 일즉이 일어나야 하”며, 좀 나은 처지라 해도 “바누질, 밥 짓는 일, 어린애 보는 일, 물건 사는 심부림, 주인마마 代書, 유치원 다니기”로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신세, 남의집살이의 고충이 신산하기 그지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고용의 불안정성’이었다. 주목할 점은 하녀에게 요구된 노동에는 “주인의게 대한 모든 예절과 주인을 속이지 안어야 된다는” 직업윤리(계급적 충성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1935년 이후 발흥한 ‘식모(하녀)폐지론’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하녀가 맡았던 노동이 본래 주부의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된다고 지적한다. 식모폐지론은 결과적으로 하녀를 가족 단위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으로 작동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적 직업이었던 하녀의 등장과 함께 ‘노동’으로 분류되던 ‘가사’가 다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서 여성-주부가 떠맡아야 할 의무로 재규정되었다.
춘향전을 둘러싼 조선시대 감정 유희「도월기」와 명청 문인들의 로컬 감성
(고)소설에 나타난 감정과 공감의 문제는 당대 사회의 관습과 제도를 확고하게 전달하는 ‘감정 교육’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감정 유희를 경험하는 것이었고, 작중 인물의 반응에 대한 공감과 호오好惡는 독자들이 감정을 발견하고 해소하는 즐거움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춘향전」이야말로 개인의 감각과 경험이 어떻게 타인에게 전달되며 또한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감정의 차원에서 치밀하게 탐구한 텍스트다. 이 글은 「춘향전」의 여러 버전 중 「남원고사」에 나타난 감정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지식사적 천착, 사회적 탐구다. 사랑을 경험하는 주인공 이도령과 춘향의 자기 관찰과 이해, 사랑이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관습과 통념에 기대어 성립하다는 것. 개인의 내적 경험인 사랑이 인간관계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 개인의 감정적 경험이 어떻게 통치 대상으로 변용되는지, 사회는 왜 개인의 감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에 관한 성찰 등을 행한다.
특히 「남원고사」는 경험과 감각, 신체성과 삶의 현장성을 제도나 이념보다 우선시하는 관점의 승리를 구현했다. 여기에는 작중 인물의 감성에 독자를 끌어들여 ‘감정 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문화 규약이 작용했다. 이러한 서사 전략을 통해 「남원고사」는 감성 주체로서의 인간을 새롭게 발굴했고, 그 결과 춘향전 이본 중에서는 특권화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남원고사」는 감정의 문법에 충실한, 소설이라는 ‘낮은(천한/비주류의/제도권 바깥의) 장르’를 통해, 인간을 감성 주체로 다시 세우려는 실험적 기획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이는 당시의 비주류 문자인 ‘언문’을 통해 실현되었다. 감성의 문제가 신분/젠더/지역의 차이성과 문화 권력의 차원을 가로지르며 세상을 읽는 하나의 새로운 시선을 창출하려는 문화 기획의 진원지이자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다.
「도월기」와 명청 문인들의 로컬 감성
“남녀가 발을 구르며 노래하다가 밤이 되면 서로를 유혹하는데, 이를 ‘도월’이라고 한다. 동묘東苗들은 모두 부들피리를 불면서 빙빙 돌며 노래를 하는데, 남녀가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짝을 짓는다. 이를 일러 ‘도월’이라고 한다”에서 보듯 도월은 중국 서남지역의 풍속이다. 도월을 기술한 작품 중에 문학적 감화력이 가장 강한 것은 육차운의 「도월기」다.
“몇 명의 남자가 경쟁하듯 한 여자에게 접근해 여자가 누굴 피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경우도 있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떨어지고, 서로 떨어져서는 서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눈으로 허락하고 마음으로 맺어져 바구니와 생황을 주고받다보면 갑자기 의식이 끝난다. 그러면 어여쁜 자는 어여쁜 자를 업고, 못생긴 자는 못생긴 자를 업는다. 못생긴 남자와 못생겨서 남에게 업히지 못한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업는다. 못생긴 자가 못생긴 자를 아무리 보아도 도저히 업을(업힐) 상대가 없을 때는 눈물을 흩뿌리며 돌아가면서 업힌(업은) 자를 보기조차 부끄러워한다.”(218~219쪽)
허나 이 장면은 여러 책을 모아 엮은 것의 일부일 뿐 육차운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도월기」에 나타난 소리와 형상의 회화적 표현들은 사실 아름다운 상상과 도덕에 대한 기대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강희 연간에 살았던 진정陳鼎이란 사람의 도월 묘사는 육차운의 고심 어린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에는 못 미친다. 감정에 대한 이해도 그저 “질펀히 장난치며 웃고 노래한다”가 전부여서 그것이 어느 정도의 깊은 감정인지를 표현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의 서사에는 다른 기록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오락과 매매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명청 시기 문인들의 여러 기록에서 도월은 주로 사랑과 음탕함, 혼인 풍속 혹은 혼례 등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어떤 것이든 모두 남녀 사이에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감정 표출이라는 면에 치중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의 서사에는 본래 존재하던 남과 여 사이에 이와 또 다른 지위 권력을 딛고 서 있던 제삼자가 개입되어 있다. 이 제삼자의 설정은 외부로부터 온 한족이 실존하는 서남지역의 남녀에게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아름다운 형상을 덧씌우고, 거기에 마치 상품같이 가격표를 거칠게 붙이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묵연 속에 지은 집, 이국의 벗을 향한 그리움
조선 후기의 문인들은 자기가 살기 원하는 가상의 주거 공간을 꿈꾸고 설계하는 ‘의원기意園記’류의 산문 창작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이런 유행에는 명 왕세정王世貞, 명말 청초의 문인 황주성黃周星 같은 중국 문인들의 정원 관련 문학작품이 끼친 영향이 컸다. 그런데 필자가 이 글에서 다룬 내용들은, 조선 문인이 자신의 거처를 스스로 상상하고 설계하는 행위와 창작 동기 및 성격상 완전히 동질적이지는 않다. 문인 혼자서 자신이 꿈꾸는 거주지를 자유롭게 산문으로 쓰는 일과, 중국 문인에게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그림으로 그리고 시문 속에서 재현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학 경험에 속한다. 또한 이 글에서 언급한 신위, 이상적, 홍현주, 오경석 등의 집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상 속의 집이라기보다는, (설령 거기에 상징적 미화와 비실제적 재현이 덧붙여졌다 할지라도) 조선 어딘가에 이미 현존하면서 의미상으로는 그 집 주인의 인격과 존재감을 지시하는 실재의 공간이었다.
19세기 이러한 성격의 거주지 그림들이 직업화가가 아니라 국제 교유의 당사자인 조·청 문사들(문인화가) 자신에 의해 직접 그려지곤 했던 것은 이러한 ‘비형사적 지향’의 강화에 더욱 일조했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직업적 전문화가의 그림이 사실성 쪽으로 기울어진 반면, 문인화는 형상성보다도 다른 차원의 정신성을 더 중시한다는 인식이 있어왔다. 이 글에서 살펴본 19세기 조·청 문인들의 거주지 그림은 불특정 다수의 관람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에 앞서 일차적으로 수신인과 발신인 간의 관계 내지 시서화를 주고받는 교유 인물들 간 개인적 친분의 맥락이 중요하게 전제되어 있다.
교통수단의 비약적인 발달로 중국, 일본은 물론 상당수의 나라가 일일 생활권 안으로 들어온 오늘날과는 달랐던 조선시대에, 한번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생전에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하기 힘들었던 조선-청 문인들이 지속적인 그리움의 서식지로 명명했던 것은, 결국 그림 속의 공간, 문학의 공간이었다.
‘감성’으로 반공주의 다시 보기
반핵·평화·인권 옹호의 이름으로 반북 정서는 더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남북 갈등 이전에 남남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반공주의를 극복하려면 그 이념성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기마다 어떻게 다른 의미를 돌출시키며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는지에 대한 역사성을 추적하는 일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반공주의의 정서는 대체로 공포, 증오, 적개심, 반감, 이질성 등으로 이뤄진 배제의 감정으로 이는 이해, 연민, 동질성 등을 바탕으로 하는 통합의 감정과 배치된다. 이 양쪽의 감정은 때로 결합되기도 하는데, 예컨대 북한에 대해 적개심과 연민이 모호하게 섞여 공존하거나 양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된 양립 가능성은 이미 그 자체로 반공적 감수성에 흠집을 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반공주의를 감성 차원에서 파악한다는 것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반공주의의 다면성과 중층성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그 실체에 좀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둘째, 그동안 사적 영역에 한정되어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던 감성/감정의 문제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집단과 공공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셋째, 국가의 정체성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비되는 저항적 공공성이 싹틀 여지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를 소비·수용하는 관객은 지배 권력으로부터 억압과 통제와 동의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대중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향유 속에서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하는 가운데 지배적 감수성과 불화하거나 그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잠재적 능동성과 저항성을 가진 존재다. ‘반공영화’는 증오를 기반으로 하는 반공주의를 지지하는 외양을 띠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한 반공주의가 항상 도전과 저항의 가능성에 직면한 불안한 감수성이었음을 은연중 웅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또한 잠재적 공공적 주체인 대중에게 내재된 은밀하고 모반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에서도, 전형적이면서도 모순적인 ‘감성 기획’이었다.
감성은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텔레비전이라는 대중 매체에 의해 담론이 형성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텔레비전이 문화적 투쟁의 장임을 인정해야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상상력은 그 지역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맥락에 의해 크게 제약받는다. 정치적으로 좀더 자유로우며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한국에서는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자들이 주어진 현실에 도전장을 내밀거나, 또는 적어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회적인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사실적 재현이라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욕망과 조율하며 상상적으로 재구성된 방식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드라마는 감성을 강력한 공감적 요소로 전제하면서 이를 사회 불평등도 뛰어넘을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상정하는 문법을 보이며, 감성적 힘의 교환이 계급과 문화의 차이를 초월할 수 있고 사회적 불평등을 좁힐 수도 있다고 보는 상상적 구도를 드러냈다. 그리고 시청자는 드라마 내부에서 지나치게 과장된 불평등의 요소를 유머와 오락으로 소비하면서 사회 비판적 시선을 유희적으로 전치하는 시청자의 위치를 생성해냈다.
▣ 작가 소개
저 : 서동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계간 『리뷰』 편집장, 『당대비평』 편집위원을 지냈고, 대안청소년센터인 하자센터 창립 멤버였으며, 웹진 『컬티즌』을 창간하는 데 참여했다. 성공회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상원 강사를 거쳐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당비의 생각』 기획주간을 맡고 있다. 자본주의와 문화의 관계를 묻고 공부를 하다 디자인문화에 관심을 갖고 틈틈이 글을 쓰고 있으며, 인터넷 매체인 ''디자인플럭스''에 “앨리스”라는 생뚱맞은 필명으로 글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디자인, 문화, 정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서 비판적인 디자인문화연구를 조직할 수 있는 담론의 씨앗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
저서로는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 『록, 젊음의 반란』, 『혁명의 문화사』(공저), 『디자인 멜랑콜리아』,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공저), 『왜, 지금, 청소년? - 하자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공저),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공저), 『한국의 디자인 02 :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공저), 『미노타우로스의 눈』(공저)『무엇이 정의인가?』(공저) 등이 있다.
저 : 김왕배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도시, 공간, 생활세계』,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 『동아시아의 사회적 포섭과 배제』(공)가 있고, 역서로 『사회학이론』, 『자본주의 도시와 근대성』 등이 있다.
저자 : 김지수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 저서 The Emotions of Justice: Gender, Status, and Legal Performance in Early Modern Korea(근간), 논문 “Crossing the Boundary of Inner Quarters: Elite Women’s Petitioning Activity in Late Chos?n Korea” 외 다수.
저자 : 강혜종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보조원. 논문 「다산의 글쓰기와 공공성: 『경세유표』의 구성과 서술방식」 「환희기재론: 연암의 정치적 알레고리 분석의 일고」 「20세기 여성 문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여성의 사회 참여 방식: 『송설당집』과 『소파여사시집』을 중심으로」 외 다수.
저자 : 소영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저서 『문학청년의 탄생』 『부랑청년 전성시대』 『분열하는 감각들』 『프랑케슈타인 프로젝트』, 공저 『감정의 인문학』 『속물과 잉여』, 공편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외 다수.
저자 :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저서 『처녀귀신』 『환상』, 논문 「언문소설의 문화적 위치와 문자적 근대의 역설」 「조선시대 감정론의 추이와 감정의 문화 규약」 「혜환, 무명자, 항해의 비평적 글쓰기를 통해 본 ‘인-문’의 경계와 글쓰기의 형이상학」 외 다수.
저자 : 후샤오전胡曉
| 대만 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 교수. 저서 『新理想, 舊體例與不可思議之社會―淸末民初上海「傳統派」文人與閨秀作家的轉型現象』 『才女徹夜未眠―近代中國女性?事文學的興起』, 편저 『經典轉化與明淸?事文學』 『日常生活的論述與實踐』 외 다수.
저자 : 김기완
연세대 강사. 공저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공역 『풀어쓰는 국문론집성』, 논문 「조선후기 사대부 초상화찬 연구」 「노론의 학통적 맥락에서 본 송시열 초상화찬」 외 다수.
▣ 주요 목차
머리말 감성은 어떻게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제1부 사회 비판으로서의 감성
1장 정동의 경제, 경제의 정동
―금융화된 주체의 증오와 환멸 그리고 분노 | 서동진
불안과 안전의 변증법 | 금융화된 경제와 그 표상―정동의 경제 | 정동의 경제인가 적대의 경제인가
2장 도덕감정
―부채의식과 죄책감의 연대 | 김왕배
도덕감정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 도덕감정을 구성하는 하위 감정들 | 도덕감정론의 계보 | 부채의식과 감사 그리고 죄책감의 순환 | 부채와 감사의 균열 그리고 향후 과제
3장 법과 감정은 어떻게 동거해왔나
―조선시대 재산 분쟁을 둘러싼 효·열의 윤리와 인정 | 김지수
역사 속에서 법과 감정은 어떻게 동거해왔나 | 공간의 젠더화―고려와 조선 여성, 상층과 하층 여성의 차이 | 재산 분쟁에서 ‘효’와 ‘열’은 어떻게 대립하고 감정화되는가 | 개인의 감정은 어떻게 공론화되는가
4장 살인사건을 둘러싼 조선의 감성 정치
―옥안獄案의 내러티브, 공감대를 위한 청원 | 강혜종
옥안과 판부에서 감정을 읽다 | 전통시대에 ‘공감’은 어떻게 표현되었나 | 조선시대 형정의 집행과 ‘부끄러움’의 통치술 | 공감의 역학―누구의 공감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 감형의 전략―다투어 죽으려 하다 | 법리 적용과 공감의 내러티브―복수를 허할 것인가 | 의분―모독을 갚아주다 | 공감되지 못한 감정―‘여성의 편협한 성품’ | 공감을 위한 지식으로서의 법
5장 감정의 위계와 감정의 규율
―1920~1930년대 ‘하녀’의 노동과 감정 | 소영현
여성 하위주체의 ‘노동’과 ‘감정’ | 하녀의 위상학 | 여성 하위주체의 감정규율 | 식민지-여성 하위주체와 국가적 감정규율
제2부 문화의 감성과 공통감각
6장 춘향전을 둘러싼 조선시대 감정 유희
―감정의 복합성·순수성·이념화 | 최기숙
지식으로서의 감정, 역사화된 감정의 공감 구조 | 「남원고사」의 감성 기획과 혼종성의 서사 전략 | ‘감성적 인간’의 발견과 감정 공동체의 형성 | 감정의 복합성과 순수성 | 감정의 이념화와 도덕적 위계 | 사랑을 둘러싼 공론장의 형성 | 공감적 주체와 소설이라는 감정 공동체
7장 남녀 간 사랑의 갈구와 위계화된 감정
―「도월기」와 명청 문인들의 로컬 감성 | 후샤오전
지식 체계와 감정 서사―명청 시기 문인들의 서남지역 서술에 관한 재탐색 | 「도월기」 감성 서사는 어떻게 전승되었나 | 감정의 오락화―진정의 도월 서사
8장 묵연 속에 지은 집, 이국의 벗을 향한 그리움
―19세기 한중교유와 동아시아적 문예 공감대 | 김기완
‘회인’의 풍경 | 꿈과 그림, 서로 다른 시공간의 병치 | 초상화와 집 그림, 내면 풍경으로서의 거주 공간 | 한중 묵연 속에 집을 짓다 | 가볼 수 없는 그리운 곳을 그리기 | 국경을 넘은 그리움의 재생처로서의 ‘집’
9장 반공영화라는 감성 기획은 왜 실패했나
―반공주의의 내면 풍경 | 이하나
‘감성’으로 반공주의 다시 보기 | 반공주의 훈육의 위기와 감성 프로파간다로서의 영화 | 반공영화 논쟁의 쟁점들 | 반공영화의 딜레마 | 반공영화, 모순된 감성 기획
10장 감성은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 동아시아 「꽃보다 남자들」이 보여준 감성 재현의 동화와 거리화 | 앤서니펑·최기숙
동아시아 감성의 공감대와 거리화 |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문화자본과 감성의 상호 관계 및 지역별 특성 | 계급 갈등―화해인가 저항인가 | 사회적 격차―좁아지는가 넓어지는가 | 한국과 중국 드라마에서 문화자본과 감성의 역할 | 열린 사회에서의 감성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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