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왜 연보로 구성한 사진집인가?
당신이 지금 시속 100km로 달리는 전차를 운전하고 있는 기관사라고 상상해보라. 멀리 선로 위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공교롭게도 브레이크가 고장이다. 조금 있으면 이들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옆에 비상철로 하나가 나 있는 것이 아닌가. 비상철로에는 인부 한명이 쉬고 있다. 당신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그대로 가던 길을 가서 다섯 명의 인부를 희생 시킬 것인가? 아니면 비상철도로 옮겨가 한 명의 인부를 희생시키는 결단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아예 탈선을 해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 모두를 희생시킬 것인가?
2010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 교수가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제시한 흥미로운 예 중 하나이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박정희’는 박정희 재임 18년간 그가 행한 선택이 숱한 고민 끝에 내린,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는지를 방대한 사진자료를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 책은 1960,70년대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상황에서 한 인간으로, 군인으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박정희가 내려야했던 결단들과 그런 결단이 나오게 된 시대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엮은이 안병훈은 박정희의 업적이 아닌 연보 위주로 사진집을 구성했다.
예를 들어, 1975년 4월 8일 이루어졌던 긴급조치 7호는 한 달 전 일어났던 북한 제2땅굴의 발견이나 같은 달 벌어진 월남 패망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347p~349p) 그러나 엮은이는 이 책에서 이런 연결고리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을 담담하게 사진으로 나열해 독자가 직접 그 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흥미로운 사진들과 사실들
이 책에는 1961년 5.16 이 일어났던 해부터 시작해서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던 중요한 일들이 빠짐없이 시간 순으로 나열돼 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진들과 사실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미 케네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박정희의 모습(46p)도 요새의 정상회담에서는 사뭇 찾아보기 힘든 재밌는 장면이며, 한결 젊어 보이는 케네디와 박정희가 1917년생 동갑내기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47p 본문중)
그가 부정적으로 묘사될 때 항상 나오는 선글라스 쓰는 습관이 사실은 상대방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얼굴 표정에 나타날까봐 하는 행동이라는 일화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72p)
1960년대 중반 KIST 연구원들 중 대통령보다 많은 봉급을 받는 이들이 많았을 정도로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집념이 강했었다는 점(150p) 등 다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또한 사진 찍기를 좋아하여 주변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모습들(540p)과 이승만 대통령시절부터 있었다는 낡은 오르간을 두드리는 모습(541p) 그리고 그림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기르던 개 방울이를 그린 스케치 및 딸 근영을 그린 작품들(526~527p)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박정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육영수여사 서거 후 남긴 자작시도 흥미를 끈다.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343p)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손때, 당신의 체취
당신이 앉았던 의자, 당신이 만지던 물건, 당신이 입던 의복,
당신이 신던 신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한 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24년 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 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
대통령 당선인인 딸 근혜양의 사진도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청와대 뒤뜰에서 찍은 칼라 사진(522p)속의 근혜양은 헤어스타일이나 얼굴이 지금과 똑같아 요새 사진을 죽은 아버지와 함께 넣은 합성사진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박정희 대통령을 위주로 한 사진집이지만 당시의 복식, 시내 풍경을 볼 수 있어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에서처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외서 모은 1만여 자료 중 1,030점을 엄선하여 수록
사진집 제작을 위해 먼저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박정희관련, 사진과 자료들을 모두 모았다.
우선 서울 상암동에 세워진 박정희기념도서관을 개관하면서 수집 사용한 모든 사진과 자료를 박대통령기념사업회로부터 제공받은 것을 비롯하여, 박정희대통령 서거 20주년때 추모사진집을 낸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좋아하는 모임이 보관중인 모든 사진, 그동안 쌓아 두었던 박대통령 사진자료를 새롭게 정리한 정수장학회 소장의 모든 자료, 국가기록원 대통령관의 모든 사진, 1998년 건국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개최했던 전시회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에 관련된 사진과 자료, 민족중흥회가 펴낸 휘호집 [위대한 생애]에 수록된 자료, 박정희대통령 회보, 박정희대통령 인터넷기념관 자료 등 모을 수 있는 사진은 거의 다 모았다. 1만여 점이 되는 귀중한 자료였다. 자료를 하나하나 체크하여 촬영하거나 스캔하여 사진 919점, 휘호 39점, 자료 72점 등 1천30점을 엄선하여 수록했다.
사진과 함께 수록된 박대통령에 관한 글은 주로 조선일보기사와 조갑제씨가 지은 [박정희 전13권]에서 인용했고 김정렴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아, 박정희!]등과 오원철 경제수석비서관의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만들었나]등을 비롯한 이석제 정일권 등 60여 명의 저서와 회고록 등에서 발췌했다.
▣ 작가 소개
편자 : 안병훈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편집인,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평생을 언론 일선에서 보냈다. 그동안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LG상남언론재단 이사장, 방일영 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 서재필기념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내면서
제1부 1961~1979 혁명가, 횃불을 들다
민족중흥과 조국 근대화 이룩
1961년 혁명의 새벽
- "주사위는 던져졌어!"
-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금조 미명을 기해 3권을 장악…“
- 장면(張勉) 총리 피신, 각료 체포하고 청와대 포위했으나 불안한 이틀
- 매그루더, 윤보선에 진압요청 “나에게는 통수권이 없다!”
- “올 것이 왔구나!”
- 윤보선, 박정희와 첫 대면
- 혁명의 성공은 5월 18일
- 윤보선 대통령, 하루 만에 하야 번의(?意)
- 국가재건최고회의 발족, 혁명내각 구성
- 첫 기자회견
- 최고회의, 민의원 건물 내에 둥지 트다
- 쿠데타 닷새 만에 2천여 용공분자 체포, 깡패들 거리 행진
- 국민재건운동을 전개, 본부장에 유진오 고려대 총장
- 5·16 아흐레 만에 농촌 「고리채 정리령」공포
- 장도영, 44일 만에 거세되다
- 군사혁명 실세 박정희, 전면에 등장하다
- 박정희, 혁명 후 87일 만에 육군 소장에서 중장으로
- “총선거 실시 후 민정 이양하겠다”
- “4천년 이어져온 가난을 추방하자!”
- 모내기, 벼 베기 18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아
- 미국 방문길에 일본 들러, 김종필이 극비리 주선
- 한일 정상, 만나자마자 실질 단독회담
- 케네디와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 파병 용의’ 밝혀
- “군정(軍政) 필요 이상 연장 않겠다.”
1962년 제3공화국 탄생
- 단기(檀紀) 폐지하고 서기(西紀)로
- ‘한강의 기적’ 스타트, 야심찬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태화강변에 펼쳐진 울산공업단지의 꿈
- “4천년 빈곤을 씻기 위해 이곳 울산에 왔다.”
-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국화된 ‘행정적 민주주의’
- 윤보선 대통령 사임, 정치정화법은 실패작
- 박 의장,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청와대 입주
- 5.16 기념식서 개헌 구상 밝혀
- 소박 검소한 대통령과 농부
- 증권파동 등 4대 의혹사건 터져
- ‘환’이 ‘원’으로 바뀐 것뿐, 실패한 화폐개혁
- 김종필과 오히라, 한일국교정상화 원칙 합의
- 제3공화국 헌법, 국민투표 통해 확정
- 최고위원 전원, 군복 벗고 민정 참여
- 조야(朝野) 세 영수(領袖)회담
- 군정 연장 여부 국민투표 보류
1963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
- 1년 7개월 만에 정치활동 재개되다
- “군의 중립, 정치 불보복 등 수락하면 민정에 불참하겠다.”
- 김종필, “초야의 몸이 되겠다!”며 공직 사퇴
- 정국수습을 위한 공동 선서식
- 박 의장, 군정 4년 연장을 제의 “부결되면 정권 이양하겠다.”
- “민정 이양 약속을 지켜라.”
- 건군 이래 첫 군인데모, “군정 연장하라!”
- 최고위원들도 민정참여 준비
- 박정희?윤보선, 여야 대선 후보로 지명
- 박정희 대장 전역(轉役)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 전역 즉시 민주공화당 입당, 706611번째 당원
- 사상논쟁 시작
- 박정희, 대통령에 당선 15만 여 표 차로 신승
- 암살당한 케네디 장례식에 참석
- 6대 국회의원 선거, 여당이 압승
- 군정 끝나, 최고회의도 해산
- 946일 만에 헌정 부활
제3공화국 발족 5대 대통령 취임
1964년 수출1억 달러 돌파
- ‘가난 쫓고 근대화의 길로’ 대혁신 운동을 제창
- 미 케네디 법무장관 방한
형의 저서 『용기있는 사람들』 선물
- 러스크 미 국무장관의 짧은 방한
한일회담 조속한 타결 공동성명
- “한일회담 중지하라!” 서울 도심서 데모
4천여 대학생 경찰과 충돌, 투석전
- 박 대통령, 11개 대학 대표 만나 이례적으로 ‘김?오히라 메모’ 공개
- 정일권 ‘방탄(防彈) 돌격내각’ 등장
-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 선포 … 6?3사태
- 일반인 탑승객과 함께 떠난 초라한 여로(旅路)
- 똑같은 분단국 서독(西瀆)을 가다
- “아우토반은 독일 경제부흥의 상징입니다.”
- 에르하르트의 충고, “독일과 프랑스는 42번이나 전쟁을 했습니다.”
- 대통령도, 육 여사도, 광부도, 간호원도 모두 울었다!
- ‘수출의 날’로 정해진 1억 달러 돌파일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 ‘새해는 일하는 해’ 증산, 수출, 건설이 국정지표
- “3년 안에 식량의 자급자족 이룩하겠다.”
- 한일 기본조약 가조인 일본정부, 식민통치에 첫 사과
- 미국 방문, 깍듯한 국빈 대접
- ‘월남 지원에 긴밀 협조’, 박?존슨 공동성명
- 뉴욕시에서의 영웅행진
- 한일 국교정상화 협정 정식 조인
반대데모 파란 속 14년 협상매듭
- “대체 이 서류 몇 개를 가져오는 데 몇 년이 걸린건가….”
- 서울 일원에 위수령 발동
- 월남 파병, 전투부대 제1진 청룡부대 결단식
- 제2영원 화전(火電) 준공
- 섬진강댐 준공
1966년 월남파병
- “7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 배로 올리자.”
-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다
- 13년만의 매듭, 한미 행정협정 조인
- “이기고 돌아오라!” 백마, 맹호, 청룡부대 환송식
- 참전국 가운데 최초로 월남 전선을 방문한 대통령
- 마닐라 베트남 참전 7개국 정상회담
- 존슨, 열광적 환호 속에 방한
- 특별 동차(動車) 안에서도 이어진 박?존슨 회담
1967년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 “공업입국 전면 작전에 돌입하자”
- 56함, 북한 육상포에 피격 침몰
- 태백산 누비는 정선선(旌善線) 개통
- 대선 후보로 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윤보선 선출
- 뤼브케 서독 대통령 방한
- 태국, 호주 수상도 잇달아 방한
- 모교 구미초등학교를 찾아 감회에 젖다
- 이수근(李穗根), 판문점서 극적탈출 제3비(肥), 제4비 잇달아 준공
- 28개 수출 전용 공장 입주한 구로(九老) 수출산업공단 준공
- 과학기술처 개청식
- 또 다른 혁명의 해,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 선거 유세장을 몰래 찾아간 육영수 여사
- 윤보선과의 두 번째 대결서도 압승
- 시인 구상(具常), 축시 낭송
- “소박하고 정직하고 서민적인 민주사회 건설하겠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 올해는 ‘건설의 해’
- 북한 무장공비 31명, 청와대를 습격
- “청와대 까러 왔다!”
-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피납
-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치사에서
- 사격하는 대통령, 부인에게도 가르쳐
- “향토예비군 250만 무장시키겠다.”
- 한 달 반 만에 향토예비군 창설
- 존슨 대통령, 한국 달래느라 밴스 특사 급파
- 평양 폭격 가능한 팬텀기 1개 대대
- 수출만이 살 길이다
- 북 남침에 한미 즉각 공동 행동
호놀룰루서 박정희-존슨 정상회담
- 충무공-세종대왕 동상 제막
- JP, 공화당 탈당하여 박정희 3선 길 터주어
- 에디오피아 셀라시에 황제 내한
- 호주, 뉴질랜드 방문
- 주민등록제도 도입
- 제주도 개발
- ‘국적(國籍) 있는 교육’ 국민교육헌장 반포
- 「광화문」 41년 만에 제자리 찾아
1969년 3선 개헌안 국민투표
- ‘일면 국방, 일면 건설’
- 연두 기자회견에서 3선 개헌 여운 남겨
- 국토통일원 발족
- 당인리발전소 5호기 준공
- “울산공업단지 외곽에 방책을 구축하라.”
- 우리나라 첫 추기경 김수환
- 우유소비량 62년 100g, 80년엔 106배로 늘어나
- 3선 개헌, “국민투표로 신임 묻겠다!”
- ‘현 대통령에 한해 3선 허용’ 개헌안 발의
- 유진오 총재, “개헌안 국회서 부결될 것 확신하다.”
- 인간, 달에 서다
- 닉슨과 두 차례 정상회담, 방위공약 준수 공동성명
- ‘3선 개헌 거당적 추진’ 공화당 전당대회
- 일요일 새벽의 기습, 국회 제3별관서 3선 개헌안 변칙통과
- 착공 7년 6개월 만에 남강댐 완공
- 3선 개헌안 가결
- 한국과학기술원(KIST) 준공
- 경부고속도로 천안-대전 구간 개통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준공
- “전국을 1일 생활권이 되게 하겠다.”
- 포항종합제철 착공식
- 호남고속도로 기공식
- 국립묘지 현충문에 시한폭탄, 박 대통령 암살 시도
- 경부고속도로 개통, 재임 중 9개 고속도로 건설
-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의 길이다.”
- 청와대 집무실이 온통 지도로 덮여
- 남산 어린이 회관 개관
- “민주주의와 공산독재, 어느 체제가 더 잘 사는지 경쟁하자.”
- ‘설(設)’이 ‘현실’로 바뀐 주한미군 감축
- 미 지상군 일부 철수, 팬텀 비행단 상주
- 5년만의 여야 영수회담
- 박 대통령, ‘기적의 볍씨’ 첫 추수
- 호남고속도로(대전-전주) 개통
1971년 통일벼 신화
- 주월 한국군 단계적 철수 검토
- KAL기 납북(拉北) 모면, 공군기 출동 저지
- 미 7사단 2만 명 철수, 고별식 참석
- 서울대를 동숭동에서 관악산 기슭으로 옮기다
- 서울 지하철 1호선 기공
- 박 대통령, 세 번째 임기에 도전
- 박정희-김대중, 대도시에서 치열한 ‘집권공방’
- “이제 그 따위 놈의 선거는 없어!”
- 제7대 대통령에 당선
- 대통령 당선 되자마자 8대 총선 지원유세
- ‘가난한 농촌의 아들로 태어난’ 3선 대통령
- 보릿고개 넘어온 길, 자나 깨나 농민 생각
- 통일벼 신화 “쌀 없으면 자립도 없다.”
- 박 대통령 내외 수해지구 시찰 위문
- 한국에 처음 그린벨트 지정
- 세계를 놀라게 한 닉슨의 중국 방문 발표
- 최두선 한적총재, 남북 이산가족 찾기 제의
- 분단 26년만의 첫 남북 대면, 판문점서 1차 예비회담
- 5?16 광장 개설식, 지금은 여의도 공원
- “학원질서 파괴자 추방하라.”
- 8개 대학에 무기휴업령
- 서울 일원에 위수령(衛戍令) 발동
- 기능공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 칭호
- 영동고속도로 첫 구간 개통
- 국가비상사태 선언
- 해방 후 첫 민방공(民防共) 훈련
- 대연각호텔 화재, 최악의 참사
- ‘대통령에 비상대권’ ‘국가보위볍’ 새벽3시 전격 통과
1972년 10월 유신 선포
- “총력 안보체제 확립하자.”
- 울산에 대단위 조선소 착공
- 국산병기 시사회(詩射會)
- 북에 4대 군사노선 포기 요구
- 135차례나 이어진 수출진흥확대회의
-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 “나무 베는 사람은 애국심을 논할 자격이 없다!”
- “청산가리도 가져갑니다.” 이후락 정보부장 평양 밀행(密行)
- “평양에 갔다 왔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 자유경제체제에서는 상상 못할 ‘8?3 사채동결’ 조치
- 평양서 남북적십자회담 역사적 개막
- 두 번째 헌정중단, 10?17 비상사태
10월 유신(維新) 선언
-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대통령 간선(間選) 등 유신헌법 확정
- “보릿고개 몰아내듯 가뭄 없는 농토를 물려주자.”
전천후 영농 돼야… 4대강 유역 개발 본격 추진
- 박성철 등 북한 측 조절위원 만나
- 제4공화국 출범, 간선으로 8대 대통령 당선
1973년 포항제철 준공
- “새해엔 유신이념 구현, 유신질서 정착시키겠다.”
- ‘중화학공업화’ ‘전 국민의 과학화’ 선언
- 유신체제 스타트, 원내 여당 2원적으로
- 베트남 휴전 조인, 12년 전쟁 끝나
- 주월 한국군 돌아오다, 8년만의 개선
- 유진산 신민당수와 두 번째 영수회담
- 할슈타인 원칙 지양한 6?23선언
- 북한에 UN 동시가입을 촉구
- 포항종합제철 준공, 중화학공업 선언의 첫 결실
- 포철 신화(神話), 연출 박정희, 주연배우 박태준
- 김대중 씨 도쿄에서 피납, 실종 닷새 만에 서울 자택에
- “사전에 알지도, 지시한 바도 없다.” 김종필, 다나카에 ‘유감’ 표명
-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천마도(天馬圖) 발굴
- 소양강 다목적 댐 완공
- 정수직업훈련원 시찰
- 호남?남해고속도로 개통식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 “10월 유신은 특정 정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재야인사들, 유신에 저항
- 대통령 긴급조치 제1, 2호 선포
- 남북한 불가침협정 제의
- 서울시내 주요 대학, 유신철폐 데모 긴급조치 4호 발동
- 인천항 제3도크 준공
- 아산, 남양만 방조제 준공
- 착공 8년 만에 팔당댐 준공
- 유조선 아틀란틱호 명명식
- 대통령 저격 모면, 육 여사 피격 운명
- 문세광, 검열 받지 않고 들어오다
- “하던 얘기 계속 하겠다”며 연설 마친 박 대통령
- 문상객 받는 대통령 가족
- 육영수 여사 국민장 엄수
- 다나카 총리의 친서를 가져온 시이나 특사
- 드디어 지하철 시대 개막
- 북한 남침용 땅굴 발견
- 포드 미 대통령 방한
- “주한미군 감축 없다.” 피침 땐 즉각 지원 약속
1975년 월남 패망과 유신헌법 국민투표
- “분열 일 삼으면 북한의 재침 자초할 것”
- “북한 위협 있는 한 개헌 안 해!” 한국의 유엔 가입 방해 말라
- 유신헌법 찬반 국민 투표 실시
국민 73%가 유신헌법 찬성
- 기시 전(前) 일본 총리 등 접견
- 철원 동북방에서 북한 제2 땅굴 발견
- 긴급조치 7호, 고려대에 휴교령
- 월남 패망, 공산군 사이공 무혈 입성
박 대통령 일기 “지키지 못하면 다 죽어야 한다.”
- 억류된 이대용 공사의 구출을 엄명
- 북한이 남침해 오면 그들은 자멸
월남 패망 하루 전날 대국민 담화
- 김영상 총재와 2시간 단독 요담
- 휴전선 부대 시찰
- 사이공 함락 직전 북한 기갑사단 휴전선 집결
- ‘남침하면 북의 심장부 강타’, 한미 국방장관 경고
- 영일지역 특수 사방공사 5년 만에 완수
- 가봉, 봉고 대통령 내한
- 세계 제일의 조선(造船) 강국으로 부상
- 깔끔하게 내린 핵개발 포기 명령
슐레진저 미 국방장관의 핵 포기 강요 압력
-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
- 힘없는 반공(反共)은 환상
5?16광장서 국군의 날 기념사
- 영동-동해 고속도로 개통
- 전자공업과 김완희 박사의 귀국 결심
- 함대함(艦對艦) 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
- 기계 금속 등 19개 분야 기술자격 검정제도 실시
- 성탄 전날, 최전방 보병초소 참호 시찰
1976년 중동진출
- 신년사, 증산과 절약 통한 자조자립 성취
- “영일만서 석유가 나왔다!” 그러나…
- 사우디 주베일 항만 공사 수주, 단일공사론 세계 최대
- 첫 고유모델 ‘포니’ 자동차 시판
- 뉴질랜드 멀둔 수상 방한
- 오죽헌과 칠백의총에서
- 천호대교 준공
- 미군 장교 2명 판문점에서 피살, 북괴병 30명 도끼 만행
- 전쟁 일보 전… 긴박했던 45분 간의 미루나무 제거 작전
-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 시작
- 안동댐 준공, 4대강 유역에 다목적댐 건설 완료
1977년 수출100억 달러 달성
- “일하고 또 일하는 민족의 위대한 전통을 창조하다.”
- 북한에 남북 불가침협정 제의
- 우리 전력(戰力) 북한을 앞지를 단계
방위산업 1978년 말이면 마무리될 것
- 임시 행정수도 건설 계획
- 아들 지만 군, 육사에 보내
-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 동시 추진
- 핵, 전투기 제외한 모든 병기 1980년에 양상단계 돌입
- 지만 군의 모교 중앙고 어학관 개관식 참석
- 카터, 주한미군 철수 일방 발표
박정희, ‘선 보완 후 철군’ 요구
- “핵무기 가져가면 우리가 개발하겠다.”
- 싱글러브 소장,〈워싱턴 포스트〉와 철군 반대 인터뷰
- “그는 참으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카터 특사 떠나자마자 이철승 대표와 영수회담
- 6년 반을 준비한 부가가치세
- 의료복지제도의 신기원을 이룩
- 박 대통령에 카터 친서 ‘침략 받으며 신속 지원’
- 한미연합사 설치, 핵우산 보호 계속
1978년 내 미군 6천 명 1차 철수
- 남해화학 여수공장(7肥) 준공
주곡(主穀) 생산을 위한 비료 자급체제 갖춰
- 한해 극복의 승전보, 전 농토의 수리안전답화(水利安全畓化)
- 병인?신미양요 강화(江華)격전지 복원 정화
- 경주에 통일전 세워
- 세종대왕 숭모제전 참석
- 자연보호운동을 제창
- 수출 100억 달러 돌파, 1억 달러 달성한 지 13년 만에
- 탁월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
- 전국 새마을지도자 대회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 새 수출목표 달성해 세계 경제대국으로!
- “우리경제, 북한에 10~15년 앞서 있어 이미 결판이 났다.”
헬기와 함정 양산체제, 80년대 중반엔 항공기도 생산
- 초도순시, 전 분야를 커버하는 실무확인 행정
- 현신규(玄信圭) 박사에게 5?16민족상
- ‘팀 스피리트78’훈련, 11만 명 참가
- 국산 전차(戰車) 양산 시작, 자유진영서 9번째
- 세종문화회관 개관
- 서울대 관악캠퍼스 들러
- 대덕(大德)연구단지 시찰
- 박 대통령의 과학기술개발 열정
- 남산 3호 터널 개통
- 천지개벽의 농촌주택개량
- 주곡의 자급달성과 녹색혁명 성취
-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 날 모내기 현장으로….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 9대 대통령 당선, 유신2기 정권 출범
유신반대 세력 저항도 드세어져
- 고리(古里)원자력 1호기 완공, 21번째 핵발전(核發電)국으로
- 지부티공화국, 스와질랜드 왕국 수상 부부 방한
- 종합 우승한 기능올림픽 대표에 훈장
- 국산미사일 1호 ‘백곰’ 발사성공
세계 7번째 유도탄 개발국으로
- 판문점서 ‘북한 제3땅굴’ 발견
- 한미연합군사령부 발족
- 같은 날 취임, 같은 날 퇴임
‘한강의 기적’ 도운 김정렴, 남덕우
- 제9대 대통령 취임
1979년 운명의 날
- ‘새해는 민족웅비의 분수령’
- “남북한 당국, 무조건 만나자!”
- 과학기술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과학기술 대통령’ 박정희
- 카터 미 대통령 방한, 김포서 첫 대면 5분
- 카터와의 악연
- 온산 공업단지 시찰
-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 그리고 그 날 밤…
- 박정희 대통령 유고(有故), 권한대행에 최규하 총리
-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
- 박정희 대통령 서거(逝去),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 계획된 범행, 박 대통령에 총탄 3발
- 대통령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 석학들이 보는 박정희 대통령
제2부 1917~1960 파란만장한 세월을 누비다
짧은 교단(敎壇) 긴 군문(軍門)의 길
1917~60 이 땅에 태어나서
- 나의 소년시절
- 대구사범학교 시절
-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
- “공부 잘 해 굳센 조선여성이 되어달라.”
- 만주 군관학교-일본육사 시절
- 조선경비사관학교에 들어가다
- 숙군(肅軍) 수사 때 체포되다
- 박정희 육영수 결혼
- 가난했던 군인의 길
- 6?25전쟁 중의 박정희
제3부 육영수, 학처럼 곱게 산 퍼스트레이디
서민의 어머니로… 청와대의 야당으로
육영수여사
- 육 여사가 걸어온 길
가족과 더불어
출입기자, 수행원과 더불어
부록
1917~1979 연보
참고문헌
왜 연보로 구성한 사진집인가?
당신이 지금 시속 100km로 달리는 전차를 운전하고 있는 기관사라고 상상해보라. 멀리 선로 위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공교롭게도 브레이크가 고장이다. 조금 있으면 이들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옆에 비상철로 하나가 나 있는 것이 아닌가. 비상철로에는 인부 한명이 쉬고 있다. 당신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그대로 가던 길을 가서 다섯 명의 인부를 희생 시킬 것인가? 아니면 비상철도로 옮겨가 한 명의 인부를 희생시키는 결단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아예 탈선을 해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 모두를 희생시킬 것인가?
2010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 교수가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제시한 흥미로운 예 중 하나이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박정희’는 박정희 재임 18년간 그가 행한 선택이 숱한 고민 끝에 내린,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는지를 방대한 사진자료를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 책은 1960,70년대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상황에서 한 인간으로, 군인으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박정희가 내려야했던 결단들과 그런 결단이 나오게 된 시대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엮은이 안병훈은 박정희의 업적이 아닌 연보 위주로 사진집을 구성했다.
예를 들어, 1975년 4월 8일 이루어졌던 긴급조치 7호는 한 달 전 일어났던 북한 제2땅굴의 발견이나 같은 달 벌어진 월남 패망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347p~349p) 그러나 엮은이는 이 책에서 이런 연결고리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을 담담하게 사진으로 나열해 독자가 직접 그 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흥미로운 사진들과 사실들
이 책에는 1961년 5.16 이 일어났던 해부터 시작해서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던 중요한 일들이 빠짐없이 시간 순으로 나열돼 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진들과 사실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미 케네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박정희의 모습(46p)도 요새의 정상회담에서는 사뭇 찾아보기 힘든 재밌는 장면이며, 한결 젊어 보이는 케네디와 박정희가 1917년생 동갑내기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47p 본문중)
그가 부정적으로 묘사될 때 항상 나오는 선글라스 쓰는 습관이 사실은 상대방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얼굴 표정에 나타날까봐 하는 행동이라는 일화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72p)
1960년대 중반 KIST 연구원들 중 대통령보다 많은 봉급을 받는 이들이 많았을 정도로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집념이 강했었다는 점(150p) 등 다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또한 사진 찍기를 좋아하여 주변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모습들(540p)과 이승만 대통령시절부터 있었다는 낡은 오르간을 두드리는 모습(541p) 그리고 그림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기르던 개 방울이를 그린 스케치 및 딸 근영을 그린 작품들(526~527p)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박정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육영수여사 서거 후 남긴 자작시도 흥미를 끈다.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343p)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손때, 당신의 체취
당신이 앉았던 의자, 당신이 만지던 물건, 당신이 입던 의복,
당신이 신던 신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한 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24년 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 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
대통령 당선인인 딸 근혜양의 사진도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청와대 뒤뜰에서 찍은 칼라 사진(522p)속의 근혜양은 헤어스타일이나 얼굴이 지금과 똑같아 요새 사진을 죽은 아버지와 함께 넣은 합성사진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박정희 대통령을 위주로 한 사진집이지만 당시의 복식, 시내 풍경을 볼 수 있어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에서처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외서 모은 1만여 자료 중 1,030점을 엄선하여 수록
사진집 제작을 위해 먼저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박정희관련, 사진과 자료들을 모두 모았다.
우선 서울 상암동에 세워진 박정희기념도서관을 개관하면서 수집 사용한 모든 사진과 자료를 박대통령기념사업회로부터 제공받은 것을 비롯하여, 박정희대통령 서거 20주년때 추모사진집을 낸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좋아하는 모임이 보관중인 모든 사진, 그동안 쌓아 두었던 박대통령 사진자료를 새롭게 정리한 정수장학회 소장의 모든 자료, 국가기록원 대통령관의 모든 사진, 1998년 건국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개최했던 전시회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에 관련된 사진과 자료, 민족중흥회가 펴낸 휘호집 [위대한 생애]에 수록된 자료, 박정희대통령 회보, 박정희대통령 인터넷기념관 자료 등 모을 수 있는 사진은 거의 다 모았다. 1만여 점이 되는 귀중한 자료였다. 자료를 하나하나 체크하여 촬영하거나 스캔하여 사진 919점, 휘호 39점, 자료 72점 등 1천30점을 엄선하여 수록했다.
사진과 함께 수록된 박대통령에 관한 글은 주로 조선일보기사와 조갑제씨가 지은 [박정희 전13권]에서 인용했고 김정렴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아, 박정희!]등과 오원철 경제수석비서관의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만들었나]등을 비롯한 이석제 정일권 등 60여 명의 저서와 회고록 등에서 발췌했다.
▣ 작가 소개
편자 : 안병훈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편집인,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평생을 언론 일선에서 보냈다. 그동안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LG상남언론재단 이사장, 방일영 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 서재필기념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내면서
제1부 1961~1979 혁명가, 횃불을 들다
민족중흥과 조국 근대화 이룩
1961년 혁명의 새벽
- "주사위는 던져졌어!"
-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금조 미명을 기해 3권을 장악…“
- 장면(張勉) 총리 피신, 각료 체포하고 청와대 포위했으나 불안한 이틀
- 매그루더, 윤보선에 진압요청 “나에게는 통수권이 없다!”
- “올 것이 왔구나!”
- 윤보선, 박정희와 첫 대면
- 혁명의 성공은 5월 18일
- 윤보선 대통령, 하루 만에 하야 번의(?意)
- 국가재건최고회의 발족, 혁명내각 구성
- 첫 기자회견
- 최고회의, 민의원 건물 내에 둥지 트다
- 쿠데타 닷새 만에 2천여 용공분자 체포, 깡패들 거리 행진
- 국민재건운동을 전개, 본부장에 유진오 고려대 총장
- 5·16 아흐레 만에 농촌 「고리채 정리령」공포
- 장도영, 44일 만에 거세되다
- 군사혁명 실세 박정희, 전면에 등장하다
- 박정희, 혁명 후 87일 만에 육군 소장에서 중장으로
- “총선거 실시 후 민정 이양하겠다”
- “4천년 이어져온 가난을 추방하자!”
- 모내기, 벼 베기 18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아
- 미국 방문길에 일본 들러, 김종필이 극비리 주선
- 한일 정상, 만나자마자 실질 단독회담
- 케네디와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 파병 용의’ 밝혀
- “군정(軍政) 필요 이상 연장 않겠다.”
1962년 제3공화국 탄생
- 단기(檀紀) 폐지하고 서기(西紀)로
- ‘한강의 기적’ 스타트, 야심찬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태화강변에 펼쳐진 울산공업단지의 꿈
- “4천년 빈곤을 씻기 위해 이곳 울산에 왔다.”
-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국화된 ‘행정적 민주주의’
- 윤보선 대통령 사임, 정치정화법은 실패작
- 박 의장,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청와대 입주
- 5.16 기념식서 개헌 구상 밝혀
- 소박 검소한 대통령과 농부
- 증권파동 등 4대 의혹사건 터져
- ‘환’이 ‘원’으로 바뀐 것뿐, 실패한 화폐개혁
- 김종필과 오히라, 한일국교정상화 원칙 합의
- 제3공화국 헌법, 국민투표 통해 확정
- 최고위원 전원, 군복 벗고 민정 참여
- 조야(朝野) 세 영수(領袖)회담
- 군정 연장 여부 국민투표 보류
1963년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
- 1년 7개월 만에 정치활동 재개되다
- “군의 중립, 정치 불보복 등 수락하면 민정에 불참하겠다.”
- 김종필, “초야의 몸이 되겠다!”며 공직 사퇴
- 정국수습을 위한 공동 선서식
- 박 의장, 군정 4년 연장을 제의 “부결되면 정권 이양하겠다.”
- “민정 이양 약속을 지켜라.”
- 건군 이래 첫 군인데모, “군정 연장하라!”
- 최고위원들도 민정참여 준비
- 박정희?윤보선, 여야 대선 후보로 지명
- 박정희 대장 전역(轉役)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 전역 즉시 민주공화당 입당, 706611번째 당원
- 사상논쟁 시작
- 박정희, 대통령에 당선 15만 여 표 차로 신승
- 암살당한 케네디 장례식에 참석
- 6대 국회의원 선거, 여당이 압승
- 군정 끝나, 최고회의도 해산
- 946일 만에 헌정 부활
제3공화국 발족 5대 대통령 취임
1964년 수출1억 달러 돌파
- ‘가난 쫓고 근대화의 길로’ 대혁신 운동을 제창
- 미 케네디 법무장관 방한
형의 저서 『용기있는 사람들』 선물
- 러스크 미 국무장관의 짧은 방한
한일회담 조속한 타결 공동성명
- “한일회담 중지하라!” 서울 도심서 데모
4천여 대학생 경찰과 충돌, 투석전
- 박 대통령, 11개 대학 대표 만나 이례적으로 ‘김?오히라 메모’ 공개
- 정일권 ‘방탄(防彈) 돌격내각’ 등장
-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 선포 … 6?3사태
- 일반인 탑승객과 함께 떠난 초라한 여로(旅路)
- 똑같은 분단국 서독(西瀆)을 가다
- “아우토반은 독일 경제부흥의 상징입니다.”
- 에르하르트의 충고, “독일과 프랑스는 42번이나 전쟁을 했습니다.”
- 대통령도, 육 여사도, 광부도, 간호원도 모두 울었다!
- ‘수출의 날’로 정해진 1억 달러 돌파일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 ‘새해는 일하는 해’ 증산, 수출, 건설이 국정지표
- “3년 안에 식량의 자급자족 이룩하겠다.”
- 한일 기본조약 가조인 일본정부, 식민통치에 첫 사과
- 미국 방문, 깍듯한 국빈 대접
- ‘월남 지원에 긴밀 협조’, 박?존슨 공동성명
- 뉴욕시에서의 영웅행진
- 한일 국교정상화 협정 정식 조인
반대데모 파란 속 14년 협상매듭
- “대체 이 서류 몇 개를 가져오는 데 몇 년이 걸린건가….”
- 서울 일원에 위수령 발동
- 월남 파병, 전투부대 제1진 청룡부대 결단식
- 제2영원 화전(火電) 준공
- 섬진강댐 준공
1966년 월남파병
- “7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 배로 올리자.”
-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다
- 13년만의 매듭, 한미 행정협정 조인
- “이기고 돌아오라!” 백마, 맹호, 청룡부대 환송식
- 참전국 가운데 최초로 월남 전선을 방문한 대통령
- 마닐라 베트남 참전 7개국 정상회담
- 존슨, 열광적 환호 속에 방한
- 특별 동차(動車) 안에서도 이어진 박?존슨 회담
1967년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 “공업입국 전면 작전에 돌입하자”
- 56함, 북한 육상포에 피격 침몰
- 태백산 누비는 정선선(旌善線) 개통
- 대선 후보로 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윤보선 선출
- 뤼브케 서독 대통령 방한
- 태국, 호주 수상도 잇달아 방한
- 모교 구미초등학교를 찾아 감회에 젖다
- 이수근(李穗根), 판문점서 극적탈출 제3비(肥), 제4비 잇달아 준공
- 28개 수출 전용 공장 입주한 구로(九老) 수출산업공단 준공
- 과학기술처 개청식
- 또 다른 혁명의 해,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 선거 유세장을 몰래 찾아간 육영수 여사
- 윤보선과의 두 번째 대결서도 압승
- 시인 구상(具常), 축시 낭송
- “소박하고 정직하고 서민적인 민주사회 건설하겠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 올해는 ‘건설의 해’
- 북한 무장공비 31명, 청와대를 습격
- “청와대 까러 왔다!”
-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피납
-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치사에서
- 사격하는 대통령, 부인에게도 가르쳐
- “향토예비군 250만 무장시키겠다.”
- 한 달 반 만에 향토예비군 창설
- 존슨 대통령, 한국 달래느라 밴스 특사 급파
- 평양 폭격 가능한 팬텀기 1개 대대
- 수출만이 살 길이다
- 북 남침에 한미 즉각 공동 행동
호놀룰루서 박정희-존슨 정상회담
- 충무공-세종대왕 동상 제막
- JP, 공화당 탈당하여 박정희 3선 길 터주어
- 에디오피아 셀라시에 황제 내한
- 호주, 뉴질랜드 방문
- 주민등록제도 도입
- 제주도 개발
- ‘국적(國籍) 있는 교육’ 국민교육헌장 반포
- 「광화문」 41년 만에 제자리 찾아
1969년 3선 개헌안 국민투표
- ‘일면 국방, 일면 건설’
- 연두 기자회견에서 3선 개헌 여운 남겨
- 국토통일원 발족
- 당인리발전소 5호기 준공
- “울산공업단지 외곽에 방책을 구축하라.”
- 우리나라 첫 추기경 김수환
- 우유소비량 62년 100g, 80년엔 106배로 늘어나
- 3선 개헌, “국민투표로 신임 묻겠다!”
- ‘현 대통령에 한해 3선 허용’ 개헌안 발의
- 유진오 총재, “개헌안 국회서 부결될 것 확신하다.”
- 인간, 달에 서다
- 닉슨과 두 차례 정상회담, 방위공약 준수 공동성명
- ‘3선 개헌 거당적 추진’ 공화당 전당대회
- 일요일 새벽의 기습, 국회 제3별관서 3선 개헌안 변칙통과
- 착공 7년 6개월 만에 남강댐 완공
- 3선 개헌안 가결
- 한국과학기술원(KIST) 준공
- 경부고속도로 천안-대전 구간 개통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준공
- “전국을 1일 생활권이 되게 하겠다.”
- 포항종합제철 착공식
- 호남고속도로 기공식
- 국립묘지 현충문에 시한폭탄, 박 대통령 암살 시도
- 경부고속도로 개통, 재임 중 9개 고속도로 건설
-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의 길이다.”
- 청와대 집무실이 온통 지도로 덮여
- 남산 어린이 회관 개관
- “민주주의와 공산독재, 어느 체제가 더 잘 사는지 경쟁하자.”
- ‘설(設)’이 ‘현실’로 바뀐 주한미군 감축
- 미 지상군 일부 철수, 팬텀 비행단 상주
- 5년만의 여야 영수회담
- 박 대통령, ‘기적의 볍씨’ 첫 추수
- 호남고속도로(대전-전주) 개통
1971년 통일벼 신화
- 주월 한국군 단계적 철수 검토
- KAL기 납북(拉北) 모면, 공군기 출동 저지
- 미 7사단 2만 명 철수, 고별식 참석
- 서울대를 동숭동에서 관악산 기슭으로 옮기다
- 서울 지하철 1호선 기공
- 박 대통령, 세 번째 임기에 도전
- 박정희-김대중, 대도시에서 치열한 ‘집권공방’
- “이제 그 따위 놈의 선거는 없어!”
- 제7대 대통령에 당선
- 대통령 당선 되자마자 8대 총선 지원유세
- ‘가난한 농촌의 아들로 태어난’ 3선 대통령
- 보릿고개 넘어온 길, 자나 깨나 농민 생각
- 통일벼 신화 “쌀 없으면 자립도 없다.”
- 박 대통령 내외 수해지구 시찰 위문
- 한국에 처음 그린벨트 지정
- 세계를 놀라게 한 닉슨의 중국 방문 발표
- 최두선 한적총재, 남북 이산가족 찾기 제의
- 분단 26년만의 첫 남북 대면, 판문점서 1차 예비회담
- 5?16 광장 개설식, 지금은 여의도 공원
- “학원질서 파괴자 추방하라.”
- 8개 대학에 무기휴업령
- 서울 일원에 위수령(衛戍令) 발동
- 기능공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 칭호
- 영동고속도로 첫 구간 개통
- 국가비상사태 선언
- 해방 후 첫 민방공(民防共) 훈련
- 대연각호텔 화재, 최악의 참사
- ‘대통령에 비상대권’ ‘국가보위볍’ 새벽3시 전격 통과
1972년 10월 유신 선포
- “총력 안보체제 확립하자.”
- 울산에 대단위 조선소 착공
- 국산병기 시사회(詩射會)
- 북에 4대 군사노선 포기 요구
- 135차례나 이어진 수출진흥확대회의
-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 “나무 베는 사람은 애국심을 논할 자격이 없다!”
- “청산가리도 가져갑니다.” 이후락 정보부장 평양 밀행(密行)
- “평양에 갔다 왔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 자유경제체제에서는 상상 못할 ‘8?3 사채동결’ 조치
- 평양서 남북적십자회담 역사적 개막
- 두 번째 헌정중단, 10?17 비상사태
10월 유신(維新) 선언
-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로 한국적 민주주의를….”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대통령 간선(間選) 등 유신헌법 확정
- “보릿고개 몰아내듯 가뭄 없는 농토를 물려주자.”
전천후 영농 돼야… 4대강 유역 개발 본격 추진
- 박성철 등 북한 측 조절위원 만나
- 제4공화국 출범, 간선으로 8대 대통령 당선
1973년 포항제철 준공
- “새해엔 유신이념 구현, 유신질서 정착시키겠다.”
- ‘중화학공업화’ ‘전 국민의 과학화’ 선언
- 유신체제 스타트, 원내 여당 2원적으로
- 베트남 휴전 조인, 12년 전쟁 끝나
- 주월 한국군 돌아오다, 8년만의 개선
- 유진산 신민당수와 두 번째 영수회담
- 할슈타인 원칙 지양한 6?23선언
- 북한에 UN 동시가입을 촉구
- 포항종합제철 준공, 중화학공업 선언의 첫 결실
- 포철 신화(神話), 연출 박정희, 주연배우 박태준
- 김대중 씨 도쿄에서 피납, 실종 닷새 만에 서울 자택에
- “사전에 알지도, 지시한 바도 없다.” 김종필, 다나카에 ‘유감’ 표명
-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천마도(天馬圖) 발굴
- 소양강 다목적 댐 완공
- 정수직업훈련원 시찰
- 호남?남해고속도로 개통식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 “10월 유신은 특정 정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재야인사들, 유신에 저항
- 대통령 긴급조치 제1, 2호 선포
- 남북한 불가침협정 제의
- 서울시내 주요 대학, 유신철폐 데모 긴급조치 4호 발동
- 인천항 제3도크 준공
- 아산, 남양만 방조제 준공
- 착공 8년 만에 팔당댐 준공
- 유조선 아틀란틱호 명명식
- 대통령 저격 모면, 육 여사 피격 운명
- 문세광, 검열 받지 않고 들어오다
- “하던 얘기 계속 하겠다”며 연설 마친 박 대통령
- 문상객 받는 대통령 가족
- 육영수 여사 국민장 엄수
- 다나카 총리의 친서를 가져온 시이나 특사
- 드디어 지하철 시대 개막
- 북한 남침용 땅굴 발견
- 포드 미 대통령 방한
- “주한미군 감축 없다.” 피침 땐 즉각 지원 약속
1975년 월남 패망과 유신헌법 국민투표
- “분열 일 삼으면 북한의 재침 자초할 것”
- “북한 위협 있는 한 개헌 안 해!” 한국의 유엔 가입 방해 말라
- 유신헌법 찬반 국민 투표 실시
국민 73%가 유신헌법 찬성
- 기시 전(前) 일본 총리 등 접견
- 철원 동북방에서 북한 제2 땅굴 발견
- 긴급조치 7호, 고려대에 휴교령
- 월남 패망, 공산군 사이공 무혈 입성
박 대통령 일기 “지키지 못하면 다 죽어야 한다.”
- 억류된 이대용 공사의 구출을 엄명
- 북한이 남침해 오면 그들은 자멸
월남 패망 하루 전날 대국민 담화
- 김영상 총재와 2시간 단독 요담
- 휴전선 부대 시찰
- 사이공 함락 직전 북한 기갑사단 휴전선 집결
- ‘남침하면 북의 심장부 강타’, 한미 국방장관 경고
- 영일지역 특수 사방공사 5년 만에 완수
- 가봉, 봉고 대통령 내한
- 세계 제일의 조선(造船) 강국으로 부상
- 깔끔하게 내린 핵개발 포기 명령
슐레진저 미 국방장관의 핵 포기 강요 압력
-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
- 힘없는 반공(反共)은 환상
5?16광장서 국군의 날 기념사
- 영동-동해 고속도로 개통
- 전자공업과 김완희 박사의 귀국 결심
- 함대함(艦對艦) 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
- 기계 금속 등 19개 분야 기술자격 검정제도 실시
- 성탄 전날, 최전방 보병초소 참호 시찰
1976년 중동진출
- 신년사, 증산과 절약 통한 자조자립 성취
- “영일만서 석유가 나왔다!” 그러나…
- 사우디 주베일 항만 공사 수주, 단일공사론 세계 최대
- 첫 고유모델 ‘포니’ 자동차 시판
- 뉴질랜드 멀둔 수상 방한
- 오죽헌과 칠백의총에서
- 천호대교 준공
- 미군 장교 2명 판문점에서 피살, 북괴병 30명 도끼 만행
- 전쟁 일보 전… 긴박했던 45분 간의 미루나무 제거 작전
-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 시작
- 안동댐 준공, 4대강 유역에 다목적댐 건설 완료
1977년 수출100억 달러 달성
- “일하고 또 일하는 민족의 위대한 전통을 창조하다.”
- 북한에 남북 불가침협정 제의
- 우리 전력(戰力) 북한을 앞지를 단계
방위산업 1978년 말이면 마무리될 것
- 임시 행정수도 건설 계획
- 아들 지만 군, 육사에 보내
-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 동시 추진
- 핵, 전투기 제외한 모든 병기 1980년에 양상단계 돌입
- 지만 군의 모교 중앙고 어학관 개관식 참석
- 카터, 주한미군 철수 일방 발표
박정희, ‘선 보완 후 철군’ 요구
- “핵무기 가져가면 우리가 개발하겠다.”
- 싱글러브 소장,〈워싱턴 포스트〉와 철군 반대 인터뷰
- “그는 참으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카터 특사 떠나자마자 이철승 대표와 영수회담
- 6년 반을 준비한 부가가치세
- 의료복지제도의 신기원을 이룩
- 박 대통령에 카터 친서 ‘침략 받으며 신속 지원’
- 한미연합사 설치, 핵우산 보호 계속
1978년 내 미군 6천 명 1차 철수
- 남해화학 여수공장(7肥) 준공
주곡(主穀) 생산을 위한 비료 자급체제 갖춰
- 한해 극복의 승전보, 전 농토의 수리안전답화(水利安全畓化)
- 병인?신미양요 강화(江華)격전지 복원 정화
- 경주에 통일전 세워
- 세종대왕 숭모제전 참석
- 자연보호운동을 제창
- 수출 100억 달러 돌파, 1억 달러 달성한 지 13년 만에
- 탁월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
- 전국 새마을지도자 대회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 새 수출목표 달성해 세계 경제대국으로!
- “우리경제, 북한에 10~15년 앞서 있어 이미 결판이 났다.”
헬기와 함정 양산체제, 80년대 중반엔 항공기도 생산
- 초도순시, 전 분야를 커버하는 실무확인 행정
- 현신규(玄信圭) 박사에게 5?16민족상
- ‘팀 스피리트78’훈련, 11만 명 참가
- 국산 전차(戰車) 양산 시작, 자유진영서 9번째
- 세종문화회관 개관
- 서울대 관악캠퍼스 들러
- 대덕(大德)연구단지 시찰
- 박 대통령의 과학기술개발 열정
- 남산 3호 터널 개통
- 천지개벽의 농촌주택개량
- 주곡의 자급달성과 녹색혁명 성취
-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 날 모내기 현장으로….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 9대 대통령 당선, 유신2기 정권 출범
유신반대 세력 저항도 드세어져
- 고리(古里)원자력 1호기 완공, 21번째 핵발전(核發電)국으로
- 지부티공화국, 스와질랜드 왕국 수상 부부 방한
- 종합 우승한 기능올림픽 대표에 훈장
- 국산미사일 1호 ‘백곰’ 발사성공
세계 7번째 유도탄 개발국으로
- 판문점서 ‘북한 제3땅굴’ 발견
- 한미연합군사령부 발족
- 같은 날 취임, 같은 날 퇴임
‘한강의 기적’ 도운 김정렴, 남덕우
- 제9대 대통령 취임
1979년 운명의 날
- ‘새해는 민족웅비의 분수령’
- “남북한 당국, 무조건 만나자!”
- 과학기술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과학기술 대통령’ 박정희
- 카터 미 대통령 방한, 김포서 첫 대면 5분
- 카터와의 악연
- 온산 공업단지 시찰
-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 그리고 그 날 밤…
- 박정희 대통령 유고(有故), 권한대행에 최규하 총리
-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
- 박정희 대통령 서거(逝去),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 계획된 범행, 박 대통령에 총탄 3발
- 대통령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 석학들이 보는 박정희 대통령
제2부 1917~1960 파란만장한 세월을 누비다
짧은 교단(敎壇) 긴 군문(軍門)의 길
1917~60 이 땅에 태어나서
- 나의 소년시절
- 대구사범학교 시절
-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
- “공부 잘 해 굳센 조선여성이 되어달라.”
- 만주 군관학교-일본육사 시절
- 조선경비사관학교에 들어가다
- 숙군(肅軍) 수사 때 체포되다
- 박정희 육영수 결혼
- 가난했던 군인의 길
- 6?25전쟁 중의 박정희
제3부 육영수, 학처럼 곱게 산 퍼스트레이디
서민의 어머니로… 청와대의 야당으로
육영수여사
- 육 여사가 걸어온 길
가족과 더불어
출입기자, 수행원과 더불어
부록
1917~1979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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