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너무나 인간적인 카를 마르크스의 ‘사랑의 생애’!
사랑과 가정과 친구, 그리고 가난과 투쟁과 망명생활……
사상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르크스의 숨겨진 사생활 이야기
마르크스 서거 130년을 맞아, ‘인간 마르크스’를 새롭게 조명하는 책!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를 이야기할 때 마르크스, 즉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서 논할 수 없을 만큼 마르크스는 죽은 지 1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작가인 아이자이어 벌린은 저서 "카를 마르크스"에서 마르크스를 “시대를 앞선 사람”이라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세기 사상가 중 마르크스처럼 인류에게 직접적이고 체계적이며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다. 그는 살아서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도 추종자들에게 지적,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강렬하면서도 정력적인 성격, 개념이 분명하면서도 포괄적인 견해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대한 폭넓고 탁월한 분석에는 적들조차도 매료되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이 이렇게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그의 구체적인 삶, 인간적인 모습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러한 내용을 다룬 책 역시 만날 수 없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지적한다. “마르크스가 과학적인 천재였다는 것, 그리고 그의 갖가지 발견이 낡은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은 심지어 그의 적조차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인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다른 전기와 달리 마르크스의 사랑의 생애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마르크스의 ‘감정 생활’의 측면에서만 바라본 이 전기를 통해서 ‘인간 마르크스’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마르크스의 사랑"은 그동안 우리들이 이처럼 간과했던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모습, 즉 마르크스와 부인 간의 사랑,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 마르크스와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사랑, 친구들과 나눈 각별한 우정, 그리고 마르크스 집의 가정부인 헬레나 데무트와 마르크스와 부인 예니 사이에 얽힌 진실 등을 자세히 들려준다. 또한 마르크스가 어떤 시대에 살았는지, 추방당하고 쫓겨 다니는 망명생활의 슬픔과 고통이 어떤 것인지, 지독한 가난과 질병이 가져오는 역경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서 저술활동과 투쟁을 계속했는지 등을 한 편의 기록영화처럼 보여준다. 특히 마르크스가 부인, 자녀, 친구 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자료 등을 풍부하게 동원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처절한 비화들을 들려준다.
‘사랑의 생애’를 통해 ‘마르크스의 삶’ 전체를 조망해보는 "마르크스의 사랑"은 독자들에게 혁명가와 투사와 사상가 마르크스가 아닌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인간 마르크스’라는 새로운 마르크스를 만나게 해줄 것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빈부 양극화의 확대, 사회적 갈등의 격화 등으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 세계적으로 마르크스가 다시 읽히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올해는 특히 마르크스가 사망(1883년 3월 14일)한 지 130년이 되는 해여서 이 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데 좋은 기여를 할 것이다.
개인적인 고뇌와 사랑,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마르크스와 주변 인물들의 편지-사적인 관계와 생활을 엿보는 데 이보다 좋은 자료는 없을 것이다-들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의 삶을 보여준다. 마르크스 부부의 사랑의 편지, 마르크스와 그의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 평생의 친구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나눈 편지, 마르크스의 부인 예니가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편지, 아버지로서 딸의 남자친구에게 보낸 마르크스의 편지 등은 마르크스의 ‘사랑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나는 당신에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입맞춤을 퍼부으며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신음하듯 속삭이오. ‘예니,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그렇게도 상냥한 사람, 나의 사랑하는, 나의 오직 한 사람뿐인 사람” 등 적극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 마르크스의 사랑의 고백은 그의 순수한 열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거짓 없이 보여준다.
“아버지 곁을 떠났을 때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저를 위해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세계가.… 예술도 예니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라는 아들의 편지에 “왕자라 할지라도 그녀를 네게서 떼어 놓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는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편지는 아들의 연애를 함께 고민하는 마르크스 부자 간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금의 처지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네.” “아내는 지난 몇 달 사이 몸의 상태가 가장 좋지 않으며, 집안의 혼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지경일세.” “이처럼 돈에 곤란을 받으면서 돈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고 생각하네. 이 제목을 다룬 저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연구 제목과 온전히 사이좋게 지냈기 때문이지.” “돈 한푼 없이 산다는 것은… 우리 집에서는 만성병이 되어 있다네.” “내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자살했을 것이네.” “나는 이미 온갖 종류의 불운을 경험해 왔지만, 이번(첫째 아들의 죽음)에야 비로소 진짜 불행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네. 산산이 부서진 듯한 심경에 빠져 있다네.”라고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썼다. 엥겔스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마르크스의 편지와, “아무튼 개 같은 자들이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통해서 자네를 금전적 궁지에 몰아넣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물심양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엥겔스의 편지는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감동적인 것이었는지 알게 해준다.
‘딸바보’ 마르크스의 부성애(父性愛)
많은 편지 중에서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할 만큼 자식사랑이 남달랐던 마르크스가 딸과 결혼하려는 남자친구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는 딸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아버지 마르크스를 잘 보여준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끼는 딸을 향한 애정어린 충고, 그리고 혁명가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의 대한 회한 등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다.
마르크스는 둘째 딸 라우라가 결혼하기 전 그의 사위가 될 폴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썼다.
“실례인 줄 아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어 주기 바라네. 자네가 내 딸과 계속 사귀고 싶다면 자네의 ‘언행’ 포현방법을 잘 생각해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네.… 겨우 1주일 동안에 자네의 행동이 날마다 변해 가는 것을 보고 나는 두려움을 금할 수 없네.… 만약 자네가 라우라와 교제하는 데 런던의 풍토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자네는 라우라를 멀리서 사랑하는 데 그쳐야 할 것이네.… 자네와 라우라의 관계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전에 나는 자네의 경제적 처지에 대해 솔직한 것을 알고 싶네.… 나는 혁명을 위한 투쟁 속에서 모든 재산을 희생으로 제공해 왔네.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네. 그럴 뿐 아니라 내가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나는 같은 길을 걸을 것일세. 다만 그 경우엔 결혼은 하지 않을 작정이지. 나는 힘닿는 데까지 내 딸이 암초에 걸리지 않게 해 주고 싶네.… 자네의 현재의 처지는, 내 스스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결코 나를 안심시켜 주지 못하고 있네.… 자네는 결혼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훌륭한 인간이 되어 있어야 하네. 그리고 자네와 내 딸을 위해서는 긴 시련의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마르크스의 고백
이 책에는 이처럼 마르크스의 솔직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 많다. 특히, 딸의 설문조사에 성실히 답한 마르크스의 ?고백?은 때로 익살스러운 것임에도 적잖게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짧은 답변 속에는 사상가이자 혁명가, 그리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학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행복이란 투쟁하는 것이고, 불행이란 복종하는 것이며, 자신이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결점은 쉽게 믿는 것이고, 가장 혐오하는 결점은 노예근성이었다. 또한 취미로는 헌책방 뒤지기를 꼽았으며, 좋아하는 이름으로는 자신의 딸들의 이름인 라우라와 예니(아내의 이름이기도 함)라고 답했다. 그중에서 특히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남녀평등의 신봉자인 마르크스가 남성의 특성으로는 힘을 들고 여성의 특성으로는 연약함을 들었다는 점이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계속되는 방랑의 망명생활
마르크스와 예니는 “이제 막 그리스도교 신자가 됐을 뿐인 유대인과 대대로 프로테스탄트 집안인 베스트팔렌의 자손 사이의, 평민 학생과 귀족의 딸의” 만남이라는 장벽을, 하지만 그 무엇보다 “(4살) 연상의 처녀와 연하 남자”라는 커다란 장애를 극복하며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파리, 브뤼셀, 다시 파리에서 런던(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으로 이어지는 고달픈 망명 생활은 마르크스 가족에게는 떨쳐낼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들에게 늘 따라다녔던 가난은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엥겔스가 자신의 책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저작권을 마르크스에게 양도하고 마르크스를 위해 의연금을 모집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들은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 약방이나 빵 가게나 식료품 가게나 석탄 가게에 외상값을 갚을 돈 한 푼 없이 힘겹게 살았다.” 결국 둘째 아들(기도)과 셋째 딸(프란치스카)은 태어난 지 1년여 만에 연이어 죽었다. 특히 딸의 죽음은 마르크스 부부에게 비참함을 더해주었다. “사랑하는 그 아이가 죽은 것은 우리가 가장 궁핍했던 시기였습니다. 나는 부근에 사는 프랑스 인 망명자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을 표시하면서 나에게 2파운드를 빌려주었습니다. 그 2파운드 덕택에 우리는 관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 요람조차도 갖지 못했는데, 마지막 잠을 자야 하는 관조차도 그 아이를 오랫동안 거절한 것입니다.” 몇 년 뒤 장남 에드가르도 10년여 만에 죽었다. 하지만 역시 “가난이 극심해서 관을 사기 위해서는 옷을 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엥겔스에게 “가족을 거느리지 않은 자는 행복”하다고 토로할 만큼 마르크스 가족에게 덮친 비참함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가 얼마나 밑바닥 생활에 허덕이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마르크스 가족의 생활이 개선된 건 1870년 이후였고, 그 덕에 무섭게 달려드는 질병에도 그나마 비교적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하지만 가난과 망명생활과 질병이 아무리 그들 앞을 막아서도 마르크스가 아내를,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늘 변함이 없었다. 저자도 자녀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깊은 애착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감정생활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고, W. 리프크네히트도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뒷받침해준다. “마르크스는 그의 자녀들을 이상하리만큼 사랑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그의 자녀들과 함께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매우 끔찍한 아버지였다.” 마르크스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이야기꾼이었으며, 자식들을 친구처럼 대했고, 자신의 염원을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47년 동안 계속되었다. 두 사람을 굳게 맺어준 것은 ‘사상적 일치’였다. “예니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세상에 다시없는 감탄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견해에 완전히 공감했다. 그녀는 남편 일에 협력하고 남편에게 조언하고 남편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는 남편의 비서라고 선언했다. 그녀는 마르크스와 자신의 집에서 열린 정치집회에도 참석했다.” 마르크스가 죽기 1년 전(1882년)에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내에 대한 마르크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이를 “카를 마르크스의 마지막 사랑의 고백”이라 부른다. “지금 내 생각이 거의 모두 아내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내가 만약 부정한다면, 그것은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될 걸세. 나는 내 생애의 가장 좋은 세월을 아내와 함께 지내지 않았던가?”
마르크스 집의 가정부, 헬레나 데무트
마르크스 가족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헬레나 데무트다. 1845년에 마르크스 집에 가정부로 와서 평생을 마르크스 가족과 함께 생활한 인물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예니의 집안에서 더부살이를 한 처녀였는데, 예니가 결혼 후 고생을 거듭하자 친정 엄마가 보내주었다. 예니는 그를 가정부라기보다는 친구로 대하며 존경했고, 마르크스의 아이들도 그를 사랑했다. 그는 좋았던 시절이나 나빴던 시절이나 마르크스 일가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보조자였다.
마르크스 가족에 대한 아주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회상록에 따르면, 마르크스 부인이 병 치료를 할 때나 기분이 언짢을 때는 헬레나가 부인을 대신하고, 아이들에게는 그녀가 언제나 제2의 어머니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또한 “헬레나는 일종의 독재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르크스 부인과 헬레나의 관계를 정확히 말한다면, 집 안에서 독재권을 휘두른 사람은 헬레나였고,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은 마르크스 부인”이었으며, 마르크스는 그 ‘독재자’에게 어린 양처럼 복종했다고 한다.
결국, 급료도 단념하고 마르크스가 새벽 3시까지 일하는 방 안의 거친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집안일을 도맡아 “맹목적으로 헌신했던 몸집 좋은 농민의 딸” 헬레나, 그 헬레나와 마르크스 사이에 사내아이(프레디)가 태어난다. 엥겔스가 그 아이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서둘러 밝히지 않았다면, 마르크스의 신상뿐만 아니라 그의 저작에도, 그의 동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행동을 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지만, 아내 예니의 용서로 다시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예니는 눈물이 마를 만큼 울었지만, 마르크스도 헬레나도 모두 용서하고, 이후 그 일을 결코 입에 올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니는 변함없이 마르크스를 사랑했고, 마르크스도 예니를 전보다 더 사랑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죽고 난 뒤에는 엥겔스의 집에서 남은 생애를 보낸 헬레나는 예니의 부탁대로 마르크사 가족과 함께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혔다. 예니의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엥겔스였다.
너무나 인간적인 카를 마르크스의 ‘사랑의 생애’!
사랑과 가정과 친구, 그리고 가난과 투쟁과 망명생활……
사상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르크스의 숨겨진 사생활 이야기
마르크스 서거 130년을 맞아, ‘인간 마르크스’를 새롭게 조명하는 책!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를 이야기할 때 마르크스, 즉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서 논할 수 없을 만큼 마르크스는 죽은 지 1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작가인 아이자이어 벌린은 저서 "카를 마르크스"에서 마르크스를 “시대를 앞선 사람”이라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세기 사상가 중 마르크스처럼 인류에게 직접적이고 체계적이며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다. 그는 살아서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도 추종자들에게 지적,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강렬하면서도 정력적인 성격, 개념이 분명하면서도 포괄적인 견해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대한 폭넓고 탁월한 분석에는 적들조차도 매료되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이 이렇게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그의 구체적인 삶, 인간적인 모습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러한 내용을 다룬 책 역시 만날 수 없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지적한다. “마르크스가 과학적인 천재였다는 것, 그리고 그의 갖가지 발견이 낡은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는 것은 심지어 그의 적조차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인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다른 전기와 달리 마르크스의 사랑의 생애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마르크스의 ‘감정 생활’의 측면에서만 바라본 이 전기를 통해서 ‘인간 마르크스’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마르크스의 사랑"은 그동안 우리들이 이처럼 간과했던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모습, 즉 마르크스와 부인 간의 사랑,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 마르크스와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사랑, 친구들과 나눈 각별한 우정, 그리고 마르크스 집의 가정부인 헬레나 데무트와 마르크스와 부인 예니 사이에 얽힌 진실 등을 자세히 들려준다. 또한 마르크스가 어떤 시대에 살았는지, 추방당하고 쫓겨 다니는 망명생활의 슬픔과 고통이 어떤 것인지, 지독한 가난과 질병이 가져오는 역경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서 저술활동과 투쟁을 계속했는지 등을 한 편의 기록영화처럼 보여준다. 특히 마르크스가 부인, 자녀, 친구 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자료 등을 풍부하게 동원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처절한 비화들을 들려준다.
‘사랑의 생애’를 통해 ‘마르크스의 삶’ 전체를 조망해보는 "마르크스의 사랑"은 독자들에게 혁명가와 투사와 사상가 마르크스가 아닌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인간 마르크스’라는 새로운 마르크스를 만나게 해줄 것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빈부 양극화의 확대, 사회적 갈등의 격화 등으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 세계적으로 마르크스가 다시 읽히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올해는 특히 마르크스가 사망(1883년 3월 14일)한 지 130년이 되는 해여서 이 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데 좋은 기여를 할 것이다.
개인적인 고뇌와 사랑,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마르크스와 주변 인물들의 편지-사적인 관계와 생활을 엿보는 데 이보다 좋은 자료는 없을 것이다-들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의 삶을 보여준다. 마르크스 부부의 사랑의 편지, 마르크스와 그의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 평생의 친구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나눈 편지, 마르크스의 부인 예니가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편지, 아버지로서 딸의 남자친구에게 보낸 마르크스의 편지 등은 마르크스의 ‘사랑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나는 당신에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입맞춤을 퍼부으며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신음하듯 속삭이오. ‘예니,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그렇게도 상냥한 사람, 나의 사랑하는, 나의 오직 한 사람뿐인 사람” 등 적극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 마르크스의 사랑의 고백은 그의 순수한 열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거짓 없이 보여준다.
“아버지 곁을 떠났을 때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저를 위해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세계가.… 예술도 예니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라는 아들의 편지에 “왕자라 할지라도 그녀를 네게서 떼어 놓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는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편지는 아들의 연애를 함께 고민하는 마르크스 부자 간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금의 처지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네.” “아내는 지난 몇 달 사이 몸의 상태가 가장 좋지 않으며, 집안의 혼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지경일세.” “이처럼 돈에 곤란을 받으면서 돈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고 생각하네. 이 제목을 다룬 저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연구 제목과 온전히 사이좋게 지냈기 때문이지.” “돈 한푼 없이 산다는 것은… 우리 집에서는 만성병이 되어 있다네.” “내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자살했을 것이네.” “나는 이미 온갖 종류의 불운을 경험해 왔지만, 이번(첫째 아들의 죽음)에야 비로소 진짜 불행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네. 산산이 부서진 듯한 심경에 빠져 있다네.”라고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썼다. 엥겔스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마르크스의 편지와, “아무튼 개 같은 자들이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통해서 자네를 금전적 궁지에 몰아넣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물심양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엥겔스의 편지는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감동적인 것이었는지 알게 해준다.
‘딸바보’ 마르크스의 부성애(父性愛)
많은 편지 중에서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할 만큼 자식사랑이 남달랐던 마르크스가 딸과 결혼하려는 남자친구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는 딸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아버지 마르크스를 잘 보여준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 아끼는 딸을 향한 애정어린 충고, 그리고 혁명가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의 대한 회한 등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다.
마르크스는 둘째 딸 라우라가 결혼하기 전 그의 사위가 될 폴 라파르그에게 이렇게 썼다.
“실례인 줄 아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어 주기 바라네. 자네가 내 딸과 계속 사귀고 싶다면 자네의 ‘언행’ 포현방법을 잘 생각해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네.… 겨우 1주일 동안에 자네의 행동이 날마다 변해 가는 것을 보고 나는 두려움을 금할 수 없네.… 만약 자네가 라우라와 교제하는 데 런던의 풍토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자네는 라우라를 멀리서 사랑하는 데 그쳐야 할 것이네.… 자네와 라우라의 관계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전에 나는 자네의 경제적 처지에 대해 솔직한 것을 알고 싶네.… 나는 혁명을 위한 투쟁 속에서 모든 재산을 희생으로 제공해 왔네.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네. 그럴 뿐 아니라 내가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나는 같은 길을 걸을 것일세. 다만 그 경우엔 결혼은 하지 않을 작정이지. 나는 힘닿는 데까지 내 딸이 암초에 걸리지 않게 해 주고 싶네.… 자네의 현재의 처지는, 내 스스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결코 나를 안심시켜 주지 못하고 있네.… 자네는 결혼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훌륭한 인간이 되어 있어야 하네. 그리고 자네와 내 딸을 위해서는 긴 시련의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마르크스의 고백
이 책에는 이처럼 마르크스의 솔직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 많다. 특히, 딸의 설문조사에 성실히 답한 마르크스의 ?고백?은 때로 익살스러운 것임에도 적잖게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짧은 답변 속에는 사상가이자 혁명가, 그리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학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행복이란 투쟁하는 것이고, 불행이란 복종하는 것이며, 자신이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결점은 쉽게 믿는 것이고, 가장 혐오하는 결점은 노예근성이었다. 또한 취미로는 헌책방 뒤지기를 꼽았으며, 좋아하는 이름으로는 자신의 딸들의 이름인 라우라와 예니(아내의 이름이기도 함)라고 답했다. 그중에서 특히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남녀평등의 신봉자인 마르크스가 남성의 특성으로는 힘을 들고 여성의 특성으로는 연약함을 들었다는 점이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계속되는 방랑의 망명생활
마르크스와 예니는 “이제 막 그리스도교 신자가 됐을 뿐인 유대인과 대대로 프로테스탄트 집안인 베스트팔렌의 자손 사이의, 평민 학생과 귀족의 딸의” 만남이라는 장벽을, 하지만 그 무엇보다 “(4살) 연상의 처녀와 연하 남자”라는 커다란 장애를 극복하며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파리, 브뤼셀, 다시 파리에서 런던(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으로 이어지는 고달픈 망명 생활은 마르크스 가족에게는 떨쳐낼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들에게 늘 따라다녔던 가난은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엥겔스가 자신의 책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저작권을 마르크스에게 양도하고 마르크스를 위해 의연금을 모집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들은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 약방이나 빵 가게나 식료품 가게나 석탄 가게에 외상값을 갚을 돈 한 푼 없이 힘겹게 살았다.” 결국 둘째 아들(기도)과 셋째 딸(프란치스카)은 태어난 지 1년여 만에 연이어 죽었다. 특히 딸의 죽음은 마르크스 부부에게 비참함을 더해주었다. “사랑하는 그 아이가 죽은 것은 우리가 가장 궁핍했던 시기였습니다. 나는 부근에 사는 프랑스 인 망명자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을 표시하면서 나에게 2파운드를 빌려주었습니다. 그 2파운드 덕택에 우리는 관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 요람조차도 갖지 못했는데, 마지막 잠을 자야 하는 관조차도 그 아이를 오랫동안 거절한 것입니다.” 몇 년 뒤 장남 에드가르도 10년여 만에 죽었다. 하지만 역시 “가난이 극심해서 관을 사기 위해서는 옷을 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엥겔스에게 “가족을 거느리지 않은 자는 행복”하다고 토로할 만큼 마르크스 가족에게 덮친 비참함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가 얼마나 밑바닥 생활에 허덕이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마르크스 가족의 생활이 개선된 건 1870년 이후였고, 그 덕에 무섭게 달려드는 질병에도 그나마 비교적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하지만 가난과 망명생활과 질병이 아무리 그들 앞을 막아서도 마르크스가 아내를,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늘 변함이 없었다. 저자도 자녀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깊은 애착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감정생활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고, W. 리프크네히트도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뒷받침해준다. “마르크스는 그의 자녀들을 이상하리만큼 사랑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그의 자녀들과 함께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매우 끔찍한 아버지였다.” 마르크스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이야기꾼이었으며, 자식들을 친구처럼 대했고, 자신의 염원을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47년 동안 계속되었다. 두 사람을 굳게 맺어준 것은 ‘사상적 일치’였다. “예니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세상에 다시없는 감탄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견해에 완전히 공감했다. 그녀는 남편 일에 협력하고 남편에게 조언하고 남편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는 남편의 비서라고 선언했다. 그녀는 마르크스와 자신의 집에서 열린 정치집회에도 참석했다.” 마르크스가 죽기 1년 전(1882년)에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내에 대한 마르크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이를 “카를 마르크스의 마지막 사랑의 고백”이라 부른다. “지금 내 생각이 거의 모두 아내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내가 만약 부정한다면, 그것은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될 걸세. 나는 내 생애의 가장 좋은 세월을 아내와 함께 지내지 않았던가?”
마르크스 집의 가정부, 헬레나 데무트
마르크스 가족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헬레나 데무트다. 1845년에 마르크스 집에 가정부로 와서 평생을 마르크스 가족과 함께 생활한 인물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예니의 집안에서 더부살이를 한 처녀였는데, 예니가 결혼 후 고생을 거듭하자 친정 엄마가 보내주었다. 예니는 그를 가정부라기보다는 친구로 대하며 존경했고, 마르크스의 아이들도 그를 사랑했다. 그는 좋았던 시절이나 나빴던 시절이나 마르크스 일가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보조자였다.
마르크스 가족에 대한 아주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회상록에 따르면, 마르크스 부인이 병 치료를 할 때나 기분이 언짢을 때는 헬레나가 부인을 대신하고, 아이들에게는 그녀가 언제나 제2의 어머니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또한 “헬레나는 일종의 독재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르크스 부인과 헬레나의 관계를 정확히 말한다면, 집 안에서 독재권을 휘두른 사람은 헬레나였고,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은 마르크스 부인”이었으며, 마르크스는 그 ‘독재자’에게 어린 양처럼 복종했다고 한다.
결국, 급료도 단념하고 마르크스가 새벽 3시까지 일하는 방 안의 거친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집안일을 도맡아 “맹목적으로 헌신했던 몸집 좋은 농민의 딸” 헬레나, 그 헬레나와 마르크스 사이에 사내아이(프레디)가 태어난다. 엥겔스가 그 아이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서둘러 밝히지 않았다면, 마르크스의 신상뿐만 아니라 그의 저작에도, 그의 동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행동을 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지만, 아내 예니의 용서로 다시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예니는 눈물이 마를 만큼 울었지만, 마르크스도 헬레나도 모두 용서하고, 이후 그 일을 결코 입에 올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니는 변함없이 마르크스를 사랑했고, 마르크스도 예니를 전보다 더 사랑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죽고 난 뒤에는 엥겔스의 집에서 남은 생애를 보낸 헬레나는 예니의 부탁대로 마르크사 가족과 함께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혔다. 예니의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엥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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