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강봉덕 시인은 물화된 세상의 구태의연한 외양을 타파하고 마치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듯 전인미답의 방식으로, 경이로운 말하기와 글쓰기의 방식으로 시의 형상을 축조한다. 그래서 그의 고양이는 “난간에 쪼그려 앉아 두꺼운 골목을 읽는” 투시력이 있고(「고양이가 골목을 읽다」), “저녁 식탁에 암술과 수술이 꽂혀” 있는 풍경이 가능하다(「꽃의 침묵」). 그런가 하면 “잠시 고래였다가/다시 슬몃 고래가 되었다가/내가 고래가 되기도 하는” 가역적 변신도 연출할 수 있다(「고래의 일몰」). 이렇게 보면 시인의 자유로운 생각과 몸의 운용이 무소불위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실상에 있어서 그 운신 폭의 확대는 견고한 시적 조직성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허황한 시적 유희에 그치고 말 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잊어버린 것 천천히 가슴으로부터 멀어진 것
눈알이 캄캄해 놓쳐 버린 것 움켜쥐다 빠져나간 것
가령, 이런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돌아오는 것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차가운 암각화나 눈물 같은 별자리 속이거나 아니면,
당신이나 나의 가슴 저 깊숙한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고래의 발
―「고래의 발」 부분
사라진 고래의 발은 이 시인의 세계에서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라진 것은 돌아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동안의 행적을 유추하던 온갖 생각이 모두 노래가 되고 시가 된다. 이 반복적이고 반역적인 언어의 문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기에 그에게는 “금요일의 꼬리”가 있고(「금요일의 꼬리들」), 그의 기차는 “안착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발이 없다(「달려라 기차」). 시인의 발화 방식, 담론 전개의 방식은 제3부에 와서 한껏 탈 우주적인 개방과 확대의 논리를 열어 둔다. 그런데 그 무한대로의 개방은 곧 자신의 시세계가 가진 무저갱 지향의 내면과 일종의 균형성을 획득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달리는 종족”인 기차의 “안착하고 싶은 욕망”을 말했을 터이다. 「별」과 「사막 건너기」, 「구름 외판원」 같은 시들은 모두 이 양가적 측면이 배태하는 초절주의의 기호들이다.
강봉덕의 시는 일상과 초극, 현실적인 삶과 존재론의 우주를 잇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호소력을 지녔다. 그의 전복적 상상력과 초극에의 꿈이 더 활달하고 설득력 있는 경계를 열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작가 소개
1969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2006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등단, 201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계간 《동리목월》 신인상을 수상했다.
목 차
제1부
감은사
그 여자, 마네킹
블랙홀1
블랙홀2
장마의 시간
복산 유곽
아름다워라, N포처럼
새
홀쭉한 등
고양이가 골목을 읽다
짧은 휴식을 위한 변명
꽃의 침묵
고래의 발
화분 사이의 식사
더 깊은 바깥
아름다운 냄새
수몰지구
제2부
금요일의 꼬리들
눈 내리는 방식
풍경소리
빙판을 건너가다
꽃, 날아오르다
저녁의 우화
실비도
꿈은 붉은빛이다
신불산
새들의 정치학
비밀의 방
나를 끓이다
불면
마술
반품되다
물구나무
반구대
옷걸이에 걸린 별은
제3부
슬픈 예감
달려라, 기차
WINDOWS 10
소금의 #N세대
먼, 곳
문수구장 동문4
사각 수박
구름 외판원
소리를 조립하다
사막 건너기
별
태평양 횟집
마지막 순대
눈동자는 허공을 뚫고
고래의 일몰
원형감옥
해설 김종회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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