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재미있는 대회가 있었다. 이 <멍때리기 대회>는 2014년에 처음으로 실시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대회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퍼포먼스였다. 일을 하면 돈이 벌리듯,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시간을 버는 행위가 되기도 해야 하는데, 벌어놓은 시간은 또 다른 새로운 일들로 채워진다. 때문에 사람은 계속 바쁜 일상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 듯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다 같이 멍때리기를 해보자! 시간의 사치를 부려보자!’라는 취지로 열린 대회였다. 멍하니 있는 것이 시간 낭비라며 생각하고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흥미 있고 생소한 대회였다.
이 대회는 우리가 생각 밖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는지 말이다. 이때도 우리가 바쁘게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나 우리는 이내 그 기억을 잊고,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이의 말을 여유 있게 듣지도 못하고, 아이의 얼굴과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왜일까? 그만큼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우리가 그만큼 바쁘게 살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그런 바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에 순응하는가?
저자는 그 이유를 “깊음”이란 단어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저자는 우리의 행동이 깊음이 없이 관행적으로 행동하는 옅음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하였다. 깊음은 돈도 되지 못하고, 즐거움도 제공하지 못하고, 하물며 깊음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깊음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란 도서를 통해 “깊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깊음”은 항상 우리의 삶터와 우리의 행동에 배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쁨”이란 핑계를 통해 깊음을 망각하거나 배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깊음이란 것을 아예 잊어버리고 그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한 발 더 나아가 깊음을 망각한 사람이 권력을 가짐으로써 나타나는 여러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실로 무섭다고 말한다.
이 <깊음에서 비롯되는 것들>은 저자가 매체에 기고한 짧은 칼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 생활, 교육, 시선, 정치라는 카테고리별로 정리되었다. 1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글에서 언어의 깊이를 말하며, 2장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터전에서 생활의 깊이를 말하고, 3장은 다음세대를 교육하는 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의 깊이를 말하며, 4장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다시 보기를 통해 시선의 깊이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5장은 깊음을 필수적으로 알고 깊게 사고하여 정치를 해야 할 정치의 깊이를 말하고 있다.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옅음보다는 깊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깊음은 물이나 산 같은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웅장한 성당이나 그윽한 사찰 같은 데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도 존재하고 사회나 국가에도 서식하며 생각이나 지식, 기술은 물론 인생이나 예술, 문명에도 스며든다. 어쩌면 우리 삶을 구성하고, 삶터에서 마주하는 것들 대부분에 깊음이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선한 진보는 삶과 삶터에 자리 잡은 깊음으로부터 추동되었다. 개인의 삶부터 국가사회의 존속에 이르기까지 깊음은 없다고 볼 수 없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깊음의 역량과 효능은 차고 넘치게 입증됐기에 그렇다. 깊음은 시대나 지역을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문명의 덕(德)’이었다.
그런 깊음을 우리는 일상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잊고 지낸다. 때문에 깊음을 우리 삶과 사회의 기본 중에 기분으로 다시 갖춰야 하는 까닭이다. 깊음이 없는 이들에게 혹은 깊음을 망각한 이들에게 힘을 부여됨으로써 초래되는 부조리와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나와 우리의 옅음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도리어 주인인 양 행세하는 꼴도 끊어낼 수 있다. 정치적 지지도 조장된 갈등이나 근거 없는 편견, ‘묻지마’ 식 증오에서가 아니라 몇몇 선진국처럼 양식과 이성, 진실 등에서 비롯될 수 있게 된다. 몇 년 전 광장과 거리, 삶터 곳곳에서 촛불로 밝혀 올린 공정함과 평화, 행복, 인간다움 같은 우리 시대의 소명과 가치도 꾸준히 실현해갈 수 있게 된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깊음을 꼭 갖추어야 한다. 깊어져야 비로소 깃드는 것들이 있기에 그렇다. 이를테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당장 이익이 되는 것만 생각지 않으며, 편해 보인다고 하여 그 길만을 걸으려 하지 않는 그러한 역량들이다. 만사만물은 결코 어느 한 측면만을 지니고 단일한 관계만을 맺고 있지 않다. 깊이가 없거나 부족하면 직간접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다수의 측면과 관계를 읽어내지 못한다.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옅음으로는 이들을 보아내지 못한다. 삶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혹은 실패 확률을 줄이려면 보이지 않지만, 또 보고 싶진 않아도 봐야 하는 것들을 보아내고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깊음을 읽어낼 줄 앎은, 그러기 위해 내가 깊어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적어도 성공하고자 하거나 실패하지 않고자 한다면 말이다. 깊어짐으로써 얻는 이로움이 설령 즉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이를 반드시 지녀야 하는 이유다.
작가 소개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20세기 전환기 중국의 문화민족주의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로 고대와 근대 중국의 학술사상과 중국문학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인문적 시민사회’ 구현을 위한 교양교육과 인문교육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 <춘주좌전-중국문화의 원형이 담긴 타임캡슐>, <고전과 놀이> 등이 있으며,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 <문명장치로서의 이야기>, <중국의 지식장과 글쓰기> 등을 공동 저술하였다. 또한 “포스트 휴먼과 죽음”, “선진시기 복수의 인문화 양상”, “‘G2’시대의 중국문학사 교학”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한국일보>에 기명 칼럼을 다년 간 연재하는 등 여러 지면에 칼럼을 연재하였다.
목 차
머리말
1부 [언어의 깊음] 말, 글 그리고 인문의 힘
1. 인간의 길, 가축의 길/ 2. ‘불온한’ 성선설/ 3. 꿩들의 극성시대/ 4. 말의 ‘형성적’ 힘/ 5. ‘지언[知言]’의 힘/ 6. 말의 무게/ 7. 문제를 문제 삼기/ 8. 노쇠해도 존중받는 까닭/ 9.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진면목/ 10. <춘추>를 완성하자 난신적자가 떨었다/ 11. 정명[正名]으로 일궈내는 인문사회/ 12. 죽어가는 ‘선한 말’들/ 13. 조조 부자와 인문학/ 14. 장편을 읽지 않는 사회/ 15.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다/ 16. 못난 짓이 역사에 기록된 까닭/ 17. 역사로의 순례, 삶을 지탱해주는 길/ 18. 손 안의 로봇, 로봇 안의 인문/ 19. 형체 없는 것의 대단한 힘/ 20. ‘하늘[天]’과 맞장 뜨기/ 21. 사람을 깊게 만드는 것들
2부 [생활의 깊음] 삶터의 인문적 재구성
1. 지속 가능한 일상/ 2. 인문[文]이 주도하는 정치/ 3. ‘과학경국[科學經國]’의 조건/ 4. ‘양봉[養蜂] 인문학’/ 5. 사람, ‘하늘의 빛’이 깃든 존재/ 6. ‘꼴값’하는 삶/ 7. ‘나’ 대 ‘나c’/ 8. ‘제3항’의 힘/ 9. 기념일과 기술/ 10. 내가 즐거워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11. 상상력이 ‘착한’ 이들의 존엄/ 12. 참된 선배, 썩은 인간/ 13. ‘나’의 생존, ‘다름’과의 공존/ 14. 건설적 비판과 공멸적 비난/ 15. 연암의 ‘상수[相須]론’과 ‘통일+’로 읽기/ 16. 2046년, 우리는 무엇을 기릴 것인가/ 17. 3?1절 그리고 ‘한국인문대전’/ 18. 역사, 악을 태우는 촛불/ 19. 축하[祝賀] 폭력/ 20. 떼창 그리고 ‘따로 또 같이’의 삶/ 21. ‘다음’을 사유하는 힘
3부 [교육의 깊음] 삶으로서의 교육
1. 주인[主人]/ 2.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 3. ‘어른-시민’ 되기/ 4. 스승 삼기/ 5. 스승이라는 문명장치/ 6. 마음공부/ 7. 교정에 ‘깊이’를!/ 8. 대학다움의 죽음/ 9. 명문[名門]의 조건/ 10. 자본주의라는 스펙/ 11. ‘기계[The Machine]’는 모든 것을 읽는다/ 12. ‘기초 지력’과 평생공부의 시대/ 13. ‘소모 교육’에서 ‘누림교육’으로/ 14. 평화와 평생공부/ 15. 교육 너머의 ‘삶-공부’/ 16. ‘신 없는 사회’를 일궈낸 교육과 복지/ 17. ‘교육 사다리’와 ‘교육-나무’/ 18. ‘영혼 없는 피노키오’ 교육부/ 19. 교과서가 없는 단계/ 20. 두 개의 ‘국가 중추대학’/ 21. ‘생각하는’ 국가, 백 년 가는 학술정책
4부 [시선의 깊음] 제국 읽기, 중국 다시 쓰기
1. 코카서스, 실크로드 그리고 제국/ 2. 로마나라, 대당[大唐]제국/ 3. 텍스트의 제국, 중국/ 4. 우리에게는 없고, 중국에는 있는 것/ 5. ‘중국제국’ 재생산의 비결/ 6. 만주 그리고 38선 이남/ 7. 중국이 유방[劉邦]을 자처한 까닭/ 8. 대인[大人] 같은 대국[大國]은 없다/ 9. ‘도덕적 대국’이라는 환상 또는 허구/ 10. 먼 손오공, 가까운 조삼모사/ 11. 진시황이 거대한 동상을 만든 까닭/ 12. 두만강, 진시황 그리고 연변[延邊]/ 13. 유라시안 ‘휴모레일[Humo-rail]’/ 14. 중국, 표어로 가득 찬 거리에서/ 15. 달나라와 달세계
5부 [정치의 깊음] “政, 正也.” -정치[政]는 바로잡음[正]이다.
1. 깨어 있는 슬픔/ 2. 하늘을 여는 힘/ 3. 유능한 부패/ 4. 의로움, 인간과 가축이 나뉘는 경계/ 5. 돌들의 원망 소리/ 6. 헌법이 뺨 맞은 날에 든 단상/ 7. 불의한 ‘갑’들의 보물로 둔갑한 역사/ 8. ‘알고자 하지 않는 민[民]’이라는 적폐/ 9. 시민의 논평은 위정자의 스승/ 10. 무엇을 위한 퇴진이어야 하는가/ 11. 외국인 대통령 영입론/ 12. 학, 말 그리고 개/ 13. 누구의 귀를 잡아당길 것인가/ 14. 도무지 절실하지 않은 그들/ 15. 선거와 ‘빈 배[虛舟]’/ 16. 법가[法家]식 총명과 민주주의/ 17. 남이 살인했다고 내 도둑질이 용서받진 못해/ 18.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적폐/ 19. 공자와 자산, ‘소인들의 영웅’을 처형하다/ 20. 정직하게 되갚아주어라!/ 21. 절은 좋은데 승려가 싫으면?
맺음말_깊음에서 비롯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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