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73회 - " 출판사 '도서 사재기' 베스트셀러만 사는 독자들 책임은 없을까 "

영광도서 0 412


‘사재기 독서’. 오래전에 이 말은 지성의 얕음을 분식(粉飾)하려고 읽지도 않는 책을 잔뜩 사서 서가에 꽂아놓는 과시형 독서를 비웃을 때 썼다. ‘정원은 꽃으로 꾸미고, 방의 네 벽은 책으로 채운다’는, 나름 지성의 우월성이 존중받던 시절의 얘기다. 당시 책의 많고 적음은 지성의 크기를 가늠하는 척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위 지성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집 안엔 방과 마루에 책이 넘쳐났다.

 ‘도서 사재기’. 책을 사는 주체가 독자가 아닌 출판사다.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려고 의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정황을 이른다. 최근 도서 시장이 또다시 사재기 논란에 휘말렸다.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1990년대부터 2~3년 주기로 같은 소동이 반복된다. 한마디로 고질병이다. 이번엔 사재기 의혹에 휘말린 작가들이 책을 회수하기에 이르렀다. 소설가 황석영·김연수, 문단에선 무게감이 남다른 두 분이 이런 논란에 휩싸여 절판까지 선언했다니 괜히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를 놓고 출판계에선 또 매번 반복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에서 탈피하려는 출판인의 의식전환이 절실하다는.

 한데 출판인이 의식만 바꿔 해결되는 일이라면 어째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런 논란이 반복돼 왔을까. 여기엔 베스트셀러 한두 권에 사활이 걸린 영세한 출판업계의 속사정과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의 문제 등 구조적 문제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베스트셀러 선정 자체에 이렇게 많은 편법과 속임수가 있다는 사실이 20여 년간 ‘도서 사재기 논란’ 등으로 증명돼 왔지만 여전히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만 산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책을 팔아야 먹고사는 출판인들이 사재기를 해서라도 베스트셀러를 만들려는 유혹을 어찌 떨쳐버릴 수 있겠는가.

 소비자들의 쏠림과 줄서기. 어쩌면 도서시장뿐 아니라 우리 시장을 왜곡시키는 근원적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나온 이후 줄 서는 집의 줄은 더 길어지고, SNS에서 추천받지 못한 집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소비자들의 선택기준이 남들이 한 것, 본 것, 간 곳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하긴 최근 한 이동통신사도 이렇게 줄 서는 곳을 비추고,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남들이 하는 대로 선택하라고 강조하는 광고를 하기도 했다.

따라하기와 양(量)이 압도하는 소비자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양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는 상술이 판을 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성의 척도라는 책에서도 과시용이든 베스트셀러 조작이든 사재기까지 해가며 양이 압도하는 게 씁쓸할 따름이다.

[중앙일보 2013.5.11 분수대 -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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