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79회 - " 내 안의 고통에 먼저 귀 기울이세요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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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상대가 오해가 있어 나에게 화를 내고 사실이 아닌 말을 해도 그것에 대한 반응을 즉시 해서는 안 된다. 뭉치고 막혀 있던 상대의 에너지가 풀어지기 위해서는 서운했던 감정을 다 말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 줘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까닭은 내 안의 고통에 먼저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고, 상대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라는 것을 느껴기 때문이다.
마음이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불안에 머무르려 할 때, 나는 현재 내 몸의 느낌에 집중한다. 지금 내 어깨가 어떤 느낌인지, 혹시 뭉치고 긴장돼 있는 건 아닌지, 지금 내 배와 가슴은 어떤 느낌인지, 주의를 내 몸에 온전히 둔다. 그렇게 하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던 생각이 멈추고 마음이 현재로 오게 된다. 아무리 바쁘고 괴로워도 현재에 마음을 온전히 두면 그렇게 바쁘지도 괴롭지도 않다. 사실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걱정해도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다. 괜히 그러한 상념들이 우리 마음만 어지럽힐 뿐이다.
세계적인 평화운동가이자 영적 스승인 틱낫한 스님께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셨다. 세수가 88세임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중들을 위해 가르침을 주셨다. 감사하게도 나는 스님 법문을 통역하는 소임을 맡게 되었다. 곁에서 뵌 스님은 평화롭고 자애로운 큰 소나무와도 같아서 곁에 있는 내 마음 또한 스님의 넉넉한 그늘 아래서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스님의 법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음 수행이 깊어질수록 관계의 회복이 가능해진다는 말씀이었다. 흔히 ‘수행’이라고 하면 혼자 깊은 산속에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채 도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 수행이 잘 되고 있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어긋났던 관계가 수행의 결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거나 오해가 생겨 관계가 틀어진 경우, 수행자라면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수행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님의 현실적인 수행관은 스님의 깊은 사유에 근거를 하고 있다. 스님의 책 『꽃과 쓰레기』를 보면 꽃과 쓰레기가 서로 단절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땅의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하고, 반대로 꽃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땅으로 떨어져 쓰레기의 모습을 한다. 즉, 이 세상 만물은 따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고 서로 의지하며 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이다.
봄 햇살 같은 따뜻한 관심이 나를 비추면
표출하지 못했던 아픔이 서서히 풀어지고
비로소 다른 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된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면 나는 육체적으로 아프지는 않지만 마음이 편치 않고 나도 따라 아파 온다. 수행자가 구하는 깨달음이라는 것도 이처럼 우리 존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삶 속에서 바로바로 느껴 아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가 틀어져 막혀 있다면 그 관계를 회복하고 소통하는 것이 진리와 가까운 모습이고 참다운 수행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틀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틱낫한 스님은 먼저 우리 자신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 내 몸 어느 부분에서 긴장으로, 혹은 아픔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그곳에 관심을 온전히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 존재를 사랑하는 봄 햇살 같은 따뜻한 관심이 나를 비추면 표출하지 못했던 아픔의 에너지가 서서히 풀어지고, 그때야 비로소 다른 이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관계가 소홀했던 이를 찾아가 그의 아픔을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가 오해가 있어 나에게 화를 내고 사실이 아닌 말을 해도 그것에 대한 반응을 즉시 해서는 안 된다. 뭉치고 막혀 있던 상대의 에너지가 풀어지기 위해서는 서운했던 감정을 다 말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줘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까닭은 내 안의 고통에 먼저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고, 상대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인들의 마음은 내면이 아닌 외부로 많이 향해 있다. 그래서 내 안의 소리를 듣는 일이 익숙지 않고 내 몸의 느낌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어렵다. 틱낫한 스님 말씀을 통역하며 나 역시 ‘나는 내 안의 고통에 충분히 귀 기울였던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소홀했던 분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외부로 향해 있는 우리의 주의를 돌려 우리 안에 존재하는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더불어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 현대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스님의 사무치는 가르침이다.
혜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