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99회 - " 반듯한 생각 곧은 몸가짐 그 시작은 바른말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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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서울 광희동에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마르칸트라는 음식점이 있다. 몇 해 전 처음 찾았을 때 재미난 일을 겪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주인 딸이 주문을 받았는데 한국말을 곧잘 했지만 존댓말은 영 젬병이었다. 숫제 대놓고 “나 존댓말 못 배웠어. 그러니 이해해. 뭐 먹을래?”라고 말하는 이 친구 앞에서 웃고 말았지만 언짢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말에서 존댓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중요한 존댓말이 요즘 수난이다. 커피숍에선 “아메리카노 두 잔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이 예사다. 계산대에 서면 “2만원이세요”라고 한다. 병원에선 채혈하는 직원이 “따끔하실게요”라며 주삿바늘을 찌른다. 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나 느낌에 존댓말을 붙이는 사물존칭은 어법에 어긋나도 단단히 어긋난다. 그럼에도 주로 서비스업계를 중심으로 도도한 흐름이 됐다. 한 친구는 “사람보다 물질이 더 존중받는 세상이라 그런가”라는 우스갯말로 한탄을 대신했다.
그뿐이 아니다. 옷가게에서 직원에게 옷 입어보는 곳을 물었더니 “저쪽으로 가실게요”라고 대답한다. “저쪽에 있습니다”라고 하면 될 일이다. 도대체 누구를 높이기 위한 말인지 알 수 없다. 어느샌가 이처럼 어법은 물론 논리에도 맞지 않는 말이 넘친다. 한 백화점 간부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손님이 있어 이를 고치기도 부담스럽다”라고 했다.
일상에서도 잘못된 우리말 쓰기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예로 윗사람의 부름을 아랫사람에게 전할 때는 “어른께서 오라십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어른께서 오시랍니다”라고 틀리게 말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존댓말을 한 격이 된다.
오늘은 567주년 한글날이다. 23년 만에 공휴일로 돌아왔다. 우리 말글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해서라고 한다. 이제 한국어는 전 세계 51개국의 세종학당에서 가르치는 국제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황당한 우리의 국어 사용 실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매년 한글날에 문화체육관광부나 국립국어원이 ‘올해의 우리말 바로잡기’ 주제를 하나씩 정해 연중 활동을 벌이면 어떨까 싶다. 올해는 ‘사물존칭 추방’, 내년은 ‘디지털 용어 우리말 찾아주기’ 등으로 말이다. 이듬해에 그동안의 성과를 공개하고 다시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면 사회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을 똑바로 해야 생각도 반듯해지고 몸가짐도 올곧아질 것이다. 잘못된 우리말 사용을 바로잡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중앙일보 2013.10.9 분수대 -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