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03회 - " 선방에서의 소소한 즐거움 "

영광도서 0 500


스님들이 안거철에 선방에 가서 참선 정진을 하고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스님, 많이 힘드셨죠?” 내지는 “고생 많으셨어요” 하고 인사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에 10시간, 많게는 14시간씩 방석 위에 앉아 마음을 안으로 모아 한 가지 화두에만 집중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행처럼 보이는 스님들 선방 생활 속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소한 즐거움들이 숨어 있다.

내가 가장 처음 만난 즐거움은 스마트폰으로부터의 자유였다. 가을 안거에 참석했던 문경 봉암사는 조계종 스님들의 전문 수행 사찰로, 일반인들에게는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 오신 날에만 개방한다. 그러다 보니 수행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통신 안테나를 사찰 근처에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인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나 역시 스마트폰이 손에서 떠날 날이 없었으니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스마트폰을 잊고 사니 정말 이보다 더 편한 것이 없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나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틈만 나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 화면을 보던 습관에서 자유로워지니, 이제는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그 리듬에 순응하며 사는 즐거움이 연이어 찾아왔다. 선방 문을 열면 영혼을 맑게 해 주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을비라도 오는 날이면 안개구름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산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고 이른 새벽에 깨어 별들이 서서히 스러지는 모습과 해가 동녘 산에서 떠오르는 장관을 매일 아침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저 이 아름답고 단순한 삶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자연의 리듬과 내가 어느 정도 조율이 된 후에는 도반 스님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찾아왔다. 도반이란 청정한 우리의 본래 성품을 깨닫고자 수행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벗이라는 뜻으로, 수행자들 사이에선 친구라는 말 대신 쓰인다. 도반 스님들 중에서 ‘누룽지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은 아침 공양을 마치고 포행을 할 때면 꼭 호주머니에서 누룽지가 나왔다. 우리에게 그 누룽지를 나누어주시며 “솥에서 만든 누룽지이기 때문에 철분 같은 영양소가 아주 많아요”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도반 스님이 챙겨주는 누룽지를 나눠 먹으며 아침 햇살이 비치는 소나무 숲길을 걷는 맛은 정말로 일품이었다.

 먹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산속 선방에 있으면 접하기 힘든 귀한 먹거리를 접하게 된다. 도반 스님 한 분은 산 타는 솜씨가 대단했는데, 점심 공양 후 포행하는 시간에 산에 들어가 조선 바나나로 불리는 으름 열매며,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다래 열매를 한 봉지씩 따와서 다른 스님들께 나누어주신다. 가을비가 한 차례 내린 후 그 귀하다는 송이를 따와 차를 우려 마시는 행복. 산속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모든 것이 귀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누룽지 한 조각, 열매 한 알, 이렇게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도반 스님들과의 생활은 그야말로 정(情)으로 가득했다. 굳이 본인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화장실 청소를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산사 밖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모습이지 않은가? 첫철이라 모르는 것이 많은 나에게 자신의 공부가 바쁜 와중에도 귀찮은 내색 없이 따뜻하게 알려주고 어려움을 나서서 풀어주는 모습 역시 우리가 잊고 살아온 우리의 본성 아닌가? 두꺼운 승복을 준비하지 않은 나를 보고 한시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옷을 그 자리에서 벗어주는 도반이 있는가 하면, 장시간 좌선을 하느라 등이 아파 힘들어하는 나에게 다가와 자비로운 손길로 등을 어루만져주는 도반이 있었다. 우리가 등이 아플 때 스스로 자신의 등을 어루만질 수 없는 팔 길이를 가지게 된 건 아마 누군가에게 자신의 등을 믿고 맡기라는 뜻이었을 거란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도반이구나 싶은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봉암사에서 마주친 한 어른 스님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았다. 어떤 말씀도 없으셨지만 느낄 수 있는, 그분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완전히 쉬는 듯했고, 아무 걸림 없는 허공을 보는 듯했다. 그분 옆에 있던 내 마음도 그분의 마음에 동화되어 번뇌가 멈추고 편안해졌다. “그렇구나. 나는 저분처럼 푹 익으려면 정말 많은 수행이 필요하겠구나. 나는 아직도 말로 묻고 답하는 수준의 떫은 감이었구나.” 굳이 언어를 쓰지 않아도 당신 존재로서 이미 가르침을 주시는 그런 어른. 언젠가 나도 그런 스승이 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발원해 본다.

[중앙일보 2013.10.25 마음산책 -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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