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22회 - "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다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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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모바일 메신저에 낯선 이름이 눈에 띈다. 준혁은 자신을 고교 후배라고 소개했다. “저희들 회심의 역작, 한번 봐주시고 소감 부탁드립니다.” 며칠 후 도착한 소포는 모교에서 특강했던 기사가 담긴 교지였다. 펼치자 눈길을 끈 건 1학년 1반부터 3학년 17반까지의 급훈이었다.
1학년 1반 급훈이 예사롭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다’. 밋밋하지 않다. 번뜩이지 않은가. 기회 있을 때마다 ‘교실 안의 시청률’ 높이자고 주제넘게 떠들었는데 이분(담임 송희성)은 ‘PD 마인드’를 가진 교사임이 분명하다. 넘기다 보니 3학년 5반(담임 전성호) 급훈은 정반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급훈은 교실의 슬로건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하지만 우려는 없다. 두 분 선생님은 ‘같은’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거니까.
1학년 1반 담임은 여러모로 ‘센스쟁이’다. 다른 분들은 다 얼굴을 공개했는데 본인은 드러내지 않았다. 식당 앞에 작은 칠판을 세워둔 사진으로 대신했다. ‘오늘의 추천 메뉴 안 알랴쥼(안 알려줌)’. 그리고 밑의 작은 글씨. ‘드루와 드루와(들어와 들어와)’. 진짜 들어가고 싶다. 호기심이 정점에 이를 때 사진 위로 영어 세 단어가 눈에 걸린다. ‘man of action’, 행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일 게다. 느낌이 온다. “시간은 소중히 사용하고 희망은 행동으로 옮겨라.”
페이지를 넘긴다. ‘늙은’ 선배가 준비해 간 요리 중에 아이들은 뭘 밥상에 올렸을까. 교지 끝자락에 큰 글씨로 박힌 두 줄짜리 내 자작시. 제목은 ‘존중’이다. ‘난 이렇게 살다 죽을게/ 넌 그렇게 살다 죽으렴’. 얼핏 제목을 ‘저주’라고 혼동할 수 있겠다. 취지는 다르다. 깊이 생각하고 굳게 결심했다면 밀고 나가라는 거다. 남의 삶에 지나치게 끼어들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도 담았다.
오늘은 3월 3일. 작심3일이 아니고 3월 3일이다. 결심하기 좋은 날이다. 주말에 보니 여기저기 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조는 아이들 흔들어 깨우며 말씀하셨다. “인생은 42.195킬로미터다. 너희는 지금까지 얼마나 달렸느냐.” 돌아보니 그때 고작 8킬로 넘을까 말까였다.
늦었다고 말하는 그대 누구인가. 인생은 드라마(DRAMA)와 비슷하다. 액션(Action)은 정중앙(Dream/Romance/Action/Mystery/Adventure)에 있다. 건강한 결심은 세상을 바꾸는 원기소다. 후배들아. 마음먹기 달렸으니 마음먹고 달려라. 꿈꾸고 사랑하고 실천하라. 그깟 수능에 순응하지 마라. 왜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지 의문(미스터리)이 들면? 해답은 늘 문제집 끝에 있다는 걸 기억하라.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도전 골든벨’은 ‘모험’하는 자의 손을 들어준다.
[중앙일보 2014.3.3 분수대 - 주철환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