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33회 - " 영웅을 가질 수 있는 자격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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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너무 소홀하게 그를 보냈다. 국가적 슬픔에 경황이 없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따뜻하게 그를 보냈더라면 더 좋았겠다.
사흘에 걸친 고별무대 좌석이 판매 30분 만에 매진되고 TV 중계가 되긴 했다. 그래도 18년 선수생활을 마감한 김연아의 앞날엔 보다 많은 축복이 함께해야 마땅했다. 단군 이래 그만큼 이 (별 볼 일 없는) 나라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 영웅이 또 있었던가.
외국에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미국 시카고트리뷴의 필립 허시 기자는 이렇게 썼다. “내가 취재한 10번의 겨울올림픽을 통틀어 2010년 김연아의 연기가 가장 위대했다.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캐나다의 한 방송인도 “피겨계의 비욘세가 은퇴했다”며 섭섭해했다.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를 가로챈 러시아의 국영언론조차 “피겨스케이팅의 진정한 전설이 됐다”고 추어올렸다. 김연아의 안무를 맡았던 데이비드 윌슨은 “너와 함께한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해 끝내 김연아를 울리고 말았다.
정작 한국에선 벌써 옛 이름이 되고 있지 않나 싶다. 메달로만 기억해서 그렇다. 앞으론 금메달을 따올 일이 없을 테니 관심 끝이다.
흔히 옛것은 버리고 새것만 찾는 게 그런 이유다. ‘염가계 애야치(厭家鷄 愛野雉)’란 말 딱 그대로다. 집에서 기르는 닭은 돌보지 않고 들에 사는 야생 꿩만 쫓는 것과 같단 말이다.
영웅을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사회는 영웅을 가질 자격이 없다. 사실 김연아는 우리에겐 분에 넘치는 복덩이였다. 그런 영웅조차 쉬이 버리면서 어찌 새로운 영웅이 하늘에서 떨어지길 기대할 수 있겠나. 우리가 천안함 사건 때의 영웅 한주호 준위를 소중하게 기억했다면 이번에 또 다른 영웅적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을 터다.
할리우드식 영웅 아이언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웅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영웅은 이름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얘기다. 영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바꿔 말하면 이렇게 되겠다. “영웅이란 이름만으로 기억할 게 아니라 그가 한 일을 되새겨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들이 모였을 때만이 한주호 같은 영웅은 다시 생겨나지 않고, 김연아 같은 영웅을 다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조성될 수 있을 터다.
[2014.5.9 중앙일보 - 이훈범 국제부장]
사흘에 걸친 고별무대 좌석이 판매 30분 만에 매진되고 TV 중계가 되긴 했다. 그래도 18년 선수생활을 마감한 김연아의 앞날엔 보다 많은 축복이 함께해야 마땅했다. 단군 이래 그만큼 이 (별 볼 일 없는) 나라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 영웅이 또 있었던가.
외국에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미국 시카고트리뷴의 필립 허시 기자는 이렇게 썼다. “내가 취재한 10번의 겨울올림픽을 통틀어 2010년 김연아의 연기가 가장 위대했다.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캐나다의 한 방송인도 “피겨계의 비욘세가 은퇴했다”며 섭섭해했다.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를 가로챈 러시아의 국영언론조차 “피겨스케이팅의 진정한 전설이 됐다”고 추어올렸다. 김연아의 안무를 맡았던 데이비드 윌슨은 “너와 함께한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해 끝내 김연아를 울리고 말았다.
정작 한국에선 벌써 옛 이름이 되고 있지 않나 싶다. 메달로만 기억해서 그렇다. 앞으론 금메달을 따올 일이 없을 테니 관심 끝이다.
흔히 옛것은 버리고 새것만 찾는 게 그런 이유다. ‘염가계 애야치(厭家鷄 愛野雉)’란 말 딱 그대로다. 집에서 기르는 닭은 돌보지 않고 들에 사는 야생 꿩만 쫓는 것과 같단 말이다.
영웅을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사회는 영웅을 가질 자격이 없다. 사실 김연아는 우리에겐 분에 넘치는 복덩이였다. 그런 영웅조차 쉬이 버리면서 어찌 새로운 영웅이 하늘에서 떨어지길 기대할 수 있겠나. 우리가 천안함 사건 때의 영웅 한주호 준위를 소중하게 기억했다면 이번에 또 다른 영웅적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을 터다.
할리우드식 영웅 아이언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웅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영웅은 이름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얘기다. 영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바꿔 말하면 이렇게 되겠다. “영웅이란 이름만으로 기억할 게 아니라 그가 한 일을 되새겨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들이 모였을 때만이 한주호 같은 영웅은 다시 생겨나지 않고, 김연아 같은 영웅을 다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조성될 수 있을 터다.
[2014.5.9 중앙일보 - 이훈범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