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31회 - " 고민 있으세요? 눈을 감고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원하는 방향을 묵상해보세요 "

영광도서 0 364


인생으로는 후배이고 전공으로 치면 선배인 한 친구를 만났다. 칼럼 잘 보고 있다고 하면서 언젠가 자기도 그 글에 등장할 것 같아 많이 긴장된다며 웃더라. 등장하면 좋겠다는 건지 싫다는 얘긴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런 에피소드 다 인용해서 더 이상 쓸 게 없으면 그땐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 에피소드들이 모여서 우리네 삶이 되는 건데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 한, 그런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지 않겠느냐 대답했다. 그것이 체험 삶의 현장이고 그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터이니 말이다.

 움직여 발길 닿는 곳에 사람들이 있다. 떡집 가면 떡집 아저씨, 굴전 집 가면 굴전 아줌마, 홍삼 집엔 주인아저씨,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 얼굴만 보면 그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고민은 무엇인지가 대충 눈에 들어온다.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아는 척하며 살짝 건들기만 해도 온갖 사연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난 그저 그걸 주우면 된다. 얘길 듣고 속을 들여다보고. 다들 나름 진지하다.

 언젠가 친구 모임에서 손금 볼 줄 안다며 봐주겠다고 했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아는 척을 했는데. 눈은 손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지만 입은 손금과 전혀 상관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어쩜 상관 있는지도 모른다. 해답은 손바닥이 아닌 그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 행동과 얼굴 모습에 적혀 있었으니. 그런데 다들 놀란다. 귀신같이 잘 맞힌단다. 늘 인상을 쓰고 빼빼 마른 친구에게는 ‘배 속이 약한 손금’이라 했고, 늘 하고 싶은 말 다 뱉고 사는 애는 ‘성질이 불 같아서 늘 손해만 볼 손금’이라 했더니 귀신 같다며 손뼉들을 치고 난리다.

 아하, 이래서 점집이나 무당집이나 밥 먹고 사나 보다. 처음엔 두서너 명이 봐달라고 하더니만 나중엔 내 책 출판기념회보다 줄이 훨씬 더 길었다. 늘어나는 수만큼이나 경험이 보태져 프로가 따로 없었다. 한참 지난 다음에야 다 실토하고 다 함께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는데.

 커플 상담. 그것도 똑같다. 눈치로 알고 눈치로 푼다. 해결책도 하소연 속에 다 들어있다. 진지하게 고민만 들어주면 된다. 털어놓으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객관화되고, 자기만의 해결책도 나오고 그러는 모양이다. 그냥 듣고 있다가 ‘그게 해결책이네요’ 하고 콕 집어주기만 하면 된다.


 고민도 유행이 있는가 보다. 다 비슷비슷해서 이제 얼굴만 보면 입도 열기 전에 알아채는 경우도 많다. 따뜻한 봄날, 대학로 한 귀퉁이에 돗자리나 깔아볼까나. 고민 있으세요? 눈을 감고 앉아서 하나하나 되짚어 생각해보고 정리하고, 진정 원하는 방향이 뭔지 혼자서 조용히 묵상해보세요. 참고서 문제지 뒤에 해답 붙어 있듯이, 문제가 일어난 자기 자신 속에도 해결책이 붙어 있던데요.


중앙일보[2012.11.19 분수대 - 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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