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210회 - " 성인이 된 아이는 놓아주고 친구를 챙기세요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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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8
출가할 당시만 하더라도 스님이 되면 본인의 깨달음을 위해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보살심을 발휘해서 중생 구제를 하더라도 우선은 내가 깨달은 후에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절에 있다 보면 실상은 절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절을 찾는 신도님께서 갑자기 힘든 일이 생겨 많이 괴로워하시는데 그분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차라도 함께 나누면서 힘든 상황을 따뜻하게 들어주고 위로의 한마디라도 해드리면, 비록 문제를 해결해드리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조금은 홀가분해하신다. 어떻게 보면 심리상담가가 없던 그 옛날에는 종교인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내게 힘든 심정을 토로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와 부모 사이 관계에서 비롯한 문제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아니면 지금 힘든 아이 상황을 보는 것이 괴롭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나 기대, 아니면 반대로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아파한다.
예를 들면 서른이 넘은 아이가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시는 분이 유독 많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미혼으로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부모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마치 미완성인 그림을 보는 듯한 심정이신 것 같다.
더불어 결혼 말고도 부모님들은 아이의 직장 문제로 또 고민하신다. 요즘 워낙 취업이 힘들다 보니 몇 년째 취업 공부만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능력이 크게 없는 부모 처지가 미안하기까지 하다. 올해도 취직 시험에 떨어진 아이를 보면서 그만 공부하게 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1년 더 지켜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기껏 어렵게 입사해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갑자기 아이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장사를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또 고민하신다. 장사 밑천이 없으니 부모 도움이 필요한데 노후를 위해 준비해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맞는지, 그냥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아이 문제로 상담하시는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나도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진다. 획기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지만 그분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해드리고 지금 현재 상황을 좀 더 수용하면서 안정을 찾으시도록 몇 마디 해드려야만 할 것 같아서다.
예를 들면 미혼 자녀 때문에 걱정이라는 분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저는 아이가 결혼을 안 한 것이 꼭 불행이라거나 미완성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 그렇게 많은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데도 그분들은 본인 인생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서두르다 보니 배우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한 결혼 때문에 자신의 삶이 싱글 때보다 불행해졌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식의 직장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께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해드린다. “공무원 시험이나 각종 고시 같은 시험 준비를 하는 자녀가 작년에 이어 이번 시험에서도 떨어졌는데 본인은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아이에게 다짐을 받으세요. 딱 1년만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만약 내년에도 떨어지면 깨끗하게 단념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요. 그리고 직업의 종류는 3만 가지나 되는데 너무 하나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리 지혜로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실제로 꿈의 직장에 취직이 된 사람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1~2년 안에 이직을 꿈꾸는 경우가 아주 많으니까요. 그냥 생각으로 직장을 고르는 것과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노후 준비 자금으로 자녀를 도와주는 것이 맞는지를 물어보시는 분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우리나라 노년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라고 합니다. 노년이 찾아왔을 때 자식들이 부모가 해준 것만큼 다시 해주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본인들 살기도 힘들고 바쁘기 때문에 그것이 쉽지가 않아요. 재산이 있으면 또 자식들 간에 다툼이 생길 수 있어 심리적으로 힘든 노년을 맞는 분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된 자식은 본인의 삶을 살도록 좀 놓아주고 나 자신과 배우자, 친구들을 좀 더 챙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은퇴 후 내 마음을 살찌울 공부를 한다던가 여러 친구들과 운동이나 취미, 종교, 봉사활동 등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밥을 같이 먹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은퇴 후 20~30년을 더 사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 삶의 중심을 너무 자식으로만 두지 말고 나 자신과 배우자, 그리고 특히 친구들과 함께하는 충만한 삶으로 설계하세요.”
[2016.6.17 중앙일보 마음산책 - 혜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