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216회 - " 마음바다 이야기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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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8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작고 귀여운 물고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다른 물고기에 비해 머리가 동글게 생겨 모두들 ‘동글이’라 불렀다. 동글이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물고기와는 달리 먹이를 찾아 먹는 일이나 또래 물고기로부터 인기를 얻는 일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직 동글이의 관심은 자기를 키워 주신 할아버지 물고기로부터 들었던 ‘바다’라고 불리는 위대하고 신성한 존재를 만나는 것뿐이었다.
할아버지 물고기에 따르면 바다라는 분은 지금 동글이 눈에 보이는 모든 만물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절대로 나서거나 뽐내는 법이 없는 분이라고 하신다. 항상 자애로우셔서 모든 생명을 위해 많은 영양분을 만들어내 살리지만, 차별을 두어 누구를 더 사랑하거나 누구를 덜 사랑하지 않고 모두를 받아 주시는 분이라고 하셨다. 동글이가 무서워하는 괴팍한 상어 아저씨나 못생긴 가재 아줌마에게까지도 똑같은 사랑을 주신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불어 우리는 그분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은 항상 우리 가까이 계셔 만물의 움직임을 다 아신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물고기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 위대하고 성스러운 존재인 바다에게 기도를 올리며 귀한 진주 보석이나 값진 음식을 바치는 풍습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위대한 존재 바다를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나 본 물고기는 손꼽을 정도로 적다고 전해져 내려왔다. 몇몇 특별한 물고기들만이 긴 구도 여정 끝에 간신히 만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이 했던 구도의 여정은 뼈를 깎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어서 보통 물고기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집을 떠나기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음식의 양을 평소의 3분의 1로 줄이고, 이성을 가까이 해도 안 되며, 마음속에 삿된 욕망이나 잡스러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바로 참회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고된 시간들이 지난 후 마음 안에 고요함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집을 떠나 산호초들이 없는 어둡고 추운 ‘죽음 동굴’이라는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동굴은 아주 길고 어두워 마치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 동굴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데, 보이지는 않지만 바다님이 항상 내 곁 가까이에 계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동굴을 지나는 그 시간이 너무도 길고 무서워 아무리 믿음이 강하고 고요함이 충만한 물고기라 하더라도 중도포기하거나 한번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때문에 동글이가 밥을 굶고 참회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할아버지는 격려의 말씀보다는 걱정의 눈빛을 보내셨다. 괜히 동글이에게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후회를 하시는 것 같았다. 동글이 역시 자신이 죽음 동굴에서 다치거나 돌아오지 못한다면 혼자 계신 할아버지를 누가 보살펴 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바다라는 위대한 존재를 만나고 싶은 열망은 모든 걱정과 두려움보다 강해서 결국 할아버지를 설득해 구도의 여정에 올랐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후 간신히 죽음 동굴 앞에 이른 동글이는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다. “제 곁에 계신 자애한 바다님, 만나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기도와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이 동글이를 감쌌다. 헤엄쳐 들어온 지 반나절쯤 지났을까. 완벽한 어둠 속에 있으니 마치 시간은 정지된 것 같고 자신의 몸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꿈이 없는 깊은 잠 속으로 빠진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두려웠던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평화로운 침묵이 점점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 아주 멀리서 바늘만 한 불빛이 보였다. 동글이는 그 불빛을 향해 본능적으로 헤엄쳐 나갔다. ‘드디어 동굴 밖으로 나가면 바다님을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오랜 침묵을 뚫고 불쑥 올라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동글이의 머리를 스치는 통찰이 있었다. 혹시 내가 그토록 찾던 바다님은 바로 침묵 안에 살아계신 분이 아닐까? 침묵의 심해를 뚫고 올라온 생각을 보니 바로 침묵이 살아서 생각을 만들어 내고, 그 생각을 침묵이 또 아는 것이다. 결국 생각처럼 눈으로 보이는 다른 형상들도 역시 침묵으로부터 나왔고, 그러기에 나 역시 침묵 속 바다의 일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즉 한순간도 바다님은 나를 떠난 적이 없고 내가 곧 바다님 안에 항상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평화롭게 노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동글이는 형상이 있는 물고기들 말고도 형상이 없는 바닷물 안 투명한 침묵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2016.9.30 마음산책 - 혜민스님]
할아버지 물고기에 따르면 바다라는 분은 지금 동글이 눈에 보이는 모든 만물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절대로 나서거나 뽐내는 법이 없는 분이라고 하신다. 항상 자애로우셔서 모든 생명을 위해 많은 영양분을 만들어내 살리지만, 차별을 두어 누구를 더 사랑하거나 누구를 덜 사랑하지 않고 모두를 받아 주시는 분이라고 하셨다. 동글이가 무서워하는 괴팍한 상어 아저씨나 못생긴 가재 아줌마에게까지도 똑같은 사랑을 주신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불어 우리는 그분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은 항상 우리 가까이 계셔 만물의 움직임을 다 아신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물고기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 위대하고 성스러운 존재인 바다에게 기도를 올리며 귀한 진주 보석이나 값진 음식을 바치는 풍습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위대한 존재 바다를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나 본 물고기는 손꼽을 정도로 적다고 전해져 내려왔다. 몇몇 특별한 물고기들만이 긴 구도 여정 끝에 간신히 만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이 했던 구도의 여정은 뼈를 깎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어서 보통 물고기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집을 떠나기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음식의 양을 평소의 3분의 1로 줄이고, 이성을 가까이 해도 안 되며, 마음속에 삿된 욕망이나 잡스러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바로 참회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고된 시간들이 지난 후 마음 안에 고요함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집을 떠나 산호초들이 없는 어둡고 추운 ‘죽음 동굴’이라는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동굴은 아주 길고 어두워 마치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 동굴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데, 보이지는 않지만 바다님이 항상 내 곁 가까이에 계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동굴을 지나는 그 시간이 너무도 길고 무서워 아무리 믿음이 강하고 고요함이 충만한 물고기라 하더라도 중도포기하거나 한번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때문에 동글이가 밥을 굶고 참회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할아버지는 격려의 말씀보다는 걱정의 눈빛을 보내셨다. 괜히 동글이에게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후회를 하시는 것 같았다. 동글이 역시 자신이 죽음 동굴에서 다치거나 돌아오지 못한다면 혼자 계신 할아버지를 누가 보살펴 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바다라는 위대한 존재를 만나고 싶은 열망은 모든 걱정과 두려움보다 강해서 결국 할아버지를 설득해 구도의 여정에 올랐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후 간신히 죽음 동굴 앞에 이른 동글이는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다. “제 곁에 계신 자애한 바다님, 만나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기도와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이 동글이를 감쌌다. 헤엄쳐 들어온 지 반나절쯤 지났을까. 완벽한 어둠 속에 있으니 마치 시간은 정지된 것 같고 자신의 몸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꿈이 없는 깊은 잠 속으로 빠진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두려웠던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평화로운 침묵이 점점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 아주 멀리서 바늘만 한 불빛이 보였다. 동글이는 그 불빛을 향해 본능적으로 헤엄쳐 나갔다. ‘드디어 동굴 밖으로 나가면 바다님을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오랜 침묵을 뚫고 불쑥 올라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동글이의 머리를 스치는 통찰이 있었다. 혹시 내가 그토록 찾던 바다님은 바로 침묵 안에 살아계신 분이 아닐까? 침묵의 심해를 뚫고 올라온 생각을 보니 바로 침묵이 살아서 생각을 만들어 내고, 그 생각을 침묵이 또 아는 것이다. 결국 생각처럼 눈으로 보이는 다른 형상들도 역시 침묵으로부터 나왔고, 그러기에 나 역시 침묵 속 바다의 일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즉 한순간도 바다님은 나를 떠난 적이 없고 내가 곧 바다님 안에 항상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평화롭게 노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동글이는 형상이 있는 물고기들 말고도 형상이 없는 바닷물 안 투명한 침묵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2016.9.30 마음산책 - 혜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