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책이랑 친구하려면

영광도서 0 564

아무 간섭 받지 않고,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멍하니 뒹굴 수 있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항상 TV가 켜져 있는 거실, 잠시만 멍하니 있어도 할 일을 찾아주는 부모, 빡빡한 학원 스케줄, 스마트폰에 묻혀 아이들은 심심할 겨를이 없다. 거기에 독서까지 강요되니 책 읽기는 더 이상 즐거운 놀이가 아니다.

 

나는 가끔 재미있게 읽은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권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 신간이 나온 걸 아이들이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또 아이들이 누군가 만든 권장도서 목록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책을 선택하도록 내버려 둔다. 큰아이가 어릴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내게 권했던 오카다 준의 '신기한 시간표', 임정자의 '내 동생 싸게 팔아요'는 아직도 삼남매가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빌려 읽고 좋아하는 책은 반드시 사준다. 자주 봐서 낡은 책은 다시 구입해 책장에 꽂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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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난 식구들이 모두 잠든 뒤에 혼자 깨어 있곤 했다. 달빛 드는 창을 보다 잠이 오지 않으면 '마루방'이라 부르던 서재로 가서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 읽었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나 단어가 나오면 나름의 방식으로 건너뛰며 이해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웠다. 책장 꼭대기까지 올라가 꺼냈던 소설책들, 책장의 가장 아래 칸에 꽂혀 있던 도록이나 연감의 책장을 넘기며 내가 사는 세계의 조각을 추측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상상했다. 함께 놀던 동생이 낮잠 든 시간, 혹은 집에 혼자 남았을 때,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난 늘 그렇게 놀았고 그 놀이 덕분에 다시 힘이 났다.

 

우리 집 아이들은 자신이 겪은 일 을 되짚어보듯 반복해서 읽은 책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그 책들은 아이들에게 친구와 같다. 많은 친구보다 단 한 명의 친밀한 친구가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듯 심심하고 외로울 때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정도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 책은 참 신기한 친구다. 어제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와서 늘 비슷한 놀이를 하지만, 그 놀이는 매번 새롭다. 매번 가슴이 뛴다. 

 

[2018.4.5 조선일보 | 一事一言- 송미경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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