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항상 구하는 마음 [출처: 중앙일보] [마음산책] 항상 구하는 마음
친한 동창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반가운 연락이 왔다. 최근 자기가 다니는 법인회사에서 운 좋게 파트너로 승진했다는 소식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머리도 좋았지만 노력형이었던 그 친구에게 직장에서 좋은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를 사겠다는 말에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모처럼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친구에게 일어난 좋은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메밀국수 두 그릇, 김치전 한 접시를 두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 어떤 성찬보다 풍족했다. 땡볕 더운 여름 날씨에는 잘게 썬 파와 무를 갈아 넣은 시원한 국물에 메밀국수를 담가 먹는 그 맛이 최고다. 함께 먹는 김치전도 생각보다 음식 궁합이 잘 맞았다. 맛있게 먹는 친구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행복이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파트너로 승진할 것인가 못할 것인가는 법인회사에 다니는 40대 직장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만큼 회사에서 해주는 대우도 다르고, 개인 자동차와 사무실도 따로 내준다고 했다. 심지어 개인 비서도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 얼굴은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막상 파트너가 되고 보니 파트너 안에서도 등급이 나뉘어 있어 본인처럼 막 승진한 가장 낮은 등급의 파트너는 별 권한이 없다는 이야기가 뒤따랐다. 최소한 지금보다 등급이 두 단계는 더 높아져야 회사 안에서 제대로 된 권한이 생긴다고 했다. 파트너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아직은 만족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을 다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친구에게 축하도 위로도 해주기 조심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삶이 그렇다. 오랫동안 원했던 목표를 이루고 꿈꾸던 새로운 세계에 입성하고 나면 그 안에는 또 다른 등급이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차별이 기다리고 있다. 그 세계에 도달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들이 다 사라질 것만 같았는데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그 세계는 그 세계에 맞는 새로운 규칙과 계급, 미묘한 차별이 기다리고 있다.
나만 해도 그랬다. 처음엔 출가해서 머리 깎고 수행하고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행자 생활을 마치고 사미승이 된 후에는 비구승이 되기 위한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고, 비구가 되어서도 승가고시를 봐서 4급에서부터 1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구조였다. 학생 때도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다. 하버드에서 공부하기만 하면 행복할 것만 같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나같이 종교를 공부하는 대학원생보다는 학부생들이나 법 혹은 MBA를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 학교 안에서 더 알아주고 대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국 내가 원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해서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하나를 이루고 난 후 다른 더 큰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행복을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오는 느낌이라고 정의 내릴 때 문제가 찾아온다. 먼저 그 느낌이 오래가면 좋겠지만 그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더 크고 좋아 보이는 새로운 목표는 점점 더 빠르게 찾아오고,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지금은 절대로 쉬면 안 될 것 같아 달리고 또 달리게 된다. 마음이 항상 바쁘기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발견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기 원하는 행복이나 만족, 평화로움은 계속해서 뭔가를 구하는 마음이 쉴 때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아니면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우리가 잠시 행복한 것은 그 대상이 행복을 주었다기보다는, 항상 정신없이 무언가를 구하는 내 마음이 잠시 멈추고 쉬기 때문에 경험되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오랫동안 원했던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거나, 집이나 차를 사거나, 아름다운 옷이나 최신 전자 제품의 구입을 통해 행복한 것은 그 외부적 대상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 이유는 그렇지 않다.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잠시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구하는 내 마음이 쉬기 때문에, 조용해졌기 때문에 만족스럽고 평화롭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행복을 줄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을 계속해서 바꾸어가면서 잠시 동안의 마음의 쉼을 얻기 위해 평생을 분투하기보다는, 마음 자체를 쉬게 만드는 명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로움이나 만족감은 결국 내 마음이 느끼는 것이지, 옷이나 차나 아파트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성취한 후에야 마음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전제를 내려놓으면 행복은 바로 이 자리에 있다.
[2018.7.25 중앙일보 | 마음산책 - 혜민 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