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삶을 풍요롭게 사는 법

영광도서 0 576

며칠 전, 난생처음으로 패션쇼라는 곳에 가봤다. 회색 승복 몇 벌로 일 년을 사는 내게 패션은 그야말로 낯선 미지의 세계다. 필요한 옷가지 몇 벌 사는 쇼핑도 질색하는 난 승복 안에 입을 티셔츠나 속옷, 양말, 신발까지도 한 가지 종류만 고수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내게 패션쇼 초청이 온 것이다. 다름 아닌 올봄부터 정기적으로 만나 우정을 나누어온 머리카락 없는 남자들의 모임인 ‘무모한 형제들’의 맏형 이상봉 선생님이 주최하는 고등학생 패션쇼 경연대회였다. 청소년의 꿈을 응원하는 의미 있는 자리인지라 응원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고등학생들의 디자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재미있으면서도 창의력 넘치는 의상들이 많아 문외한인 나에게도 왠지 모르는 자극이 되었다. 

  

패션쇼 도중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나오자 내 옆에 앉아 있던 ‘무모한 형제들’의 다른 멤버,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근에 딸과 함께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다녀왔는데 4만 명의 팬들이 한 곡 한 곡을 모두 따라 부르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이다. 그 소리가 웅장하고 장엄하게까지 느껴졌다고 말이다. 과연 어떤 광경일까 잠시 상상해보다 4만 명의 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방탄소년단 음악을 찾아 들어봤다. 덕분에 이름만 들어보고 음악은 잘 몰랐던 아이돌 세상과 만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자 격조했던 이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인문학자 고미숙 선생님과 스타강사로 잘 알려진 김미경 선생님과의 만남 역시 그즈음에 이루어졌다. 두 분 다 나보다 십년 인생 선배이지만 철마나 한 번씩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사이가 된 지 어느덧 3년이다. 낙원상가 근처에 있는 한옥마을 익선동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조용한 찻집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미숙 선생님은 공자의 논어를 깊이 이해하려면 주역을 먼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주셨다. 선생님 덕분에 감사하게도 나는 동의보감과 명리학을 만나게 되었고 두 분야를 공부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김미경 선생님은 유튜브의 세계에 대해 들려주셨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는데 벌써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김미경TV’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 나도 김미경 선생님의 방송을 찾아보는데 현대인들에게 유익한 메시지를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해주어 볼 때마다 감탄한다. 새 방송을 올렸다 하면 금세 10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한다 하니 방송을 기다리는 이들에겐 정기적으로 먹는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될 테다. 유튜브 방송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나에게도 해 보라고 적극 권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젊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지인들과의 소소한 만남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이다. 어렸을 때는 내가 해야 할 일들만이 눈에 들어와 사람과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위로나 공감의 즐거움, 새로운 경험이나 대화 속에서 얻는 영감 같은 것의 기쁨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느끼는 것이 삶을 풍요롭고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 중의 하나가 좋아하는 지인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인 덕분에 속상했던 마음도 풀고, 잘 모르던 직업이나 관심 분야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기도 하고,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가보기도 한다. 더불어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이나 좋은 책, 음악, 영화 등을 추천받거나 좋은 새로운 인연과 연결되기도 한다. 즉 내 안의 경험들이 지인들 덕분에 점점 풍부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경험이 풍부해지면 이 세상 그 누구를 만나도 나눌 이야기가 있어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이나 성별, 직업이나 고향이 달라도 어렵지 않게 새로운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서로를 또 끊임없이 성장시킨다. 그러면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인생에 대한 지혜가 쌓이고 남과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도 함께 생기게 된다.  

  

물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느 정도의 수고스러움이 항상 뒤따른다. 상대를 배려해서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고 그를 만나러 내 쉬는 시간을 쪼개어 멀리 찾아가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우정을 나누는 것은 문자로는 느낄 수 없는 더 깊은 차원의 교류를 가능케 한다. 혹시라도 본인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좋은 친구를 사귀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새 친구 덕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인의 세상이 전보다 훨씬 더 넓어져 있을 것이다. 

 

[2018.9.19 중앙일보 | 마음산책 -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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