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첫걸음과 초심

영광도서 0 676

첫걸음을 떼는 일은 어렵다. 아이가 일어서고, 허리를 펴서, 처음 걸음을 내딛는 것을 보는 일은 감격스럽다. 누구에게나 어떤 일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제는 능수능란하게 다루게 된 일이라도 처음의 순간에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던 감정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나는 얼마 전 새로이 문단에 등단한 신예 작가들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신인문학상 시상식장에서의 신예들의 수상 소감은 역시나 신선했다. 

  

갓 시인이 된 수상자는 “시 쓰기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이라 아득했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슬펐습니다. 하지만 시를 쓴 이후는 달랐습니다. 시를 쓰고 난 후에는 절대로 그 이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이 좋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거듭해서 질문하고 또 다른 사람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다 보니, 시를 쓴 이후에는 자신이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고 했다. 

  

소설가가 된 수상자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내내 떨리는 목소리였다. 수상 소감을 메모해 온 쪽지가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아, 왜 이러지? 제가 원래 이러지 않거든요”라고 말해 축하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으로 소설을 써서 어머니께 보여드렸더니 “주인공이 꼭 네 아빠 같구나”라고 평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소설가는 오래오래 생각하고, 뒤돌아보고, 기억하고, 슬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혼자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혼자 쓰는 게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할 때에는 푸릇푸릇하고 꿋꿋한 강단이 느껴졌다. 

  

한 문학평론가는 축사에서 “글쓰기는 생각을 던지고 그것을 언어를 통해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던지는 비범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문학의 시작입니다”라고 말해 새로이 등단한 이들을 격려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시상식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J. D. 샐린저가 처음으로 글을 써서 어머니께 보여드렸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애들과 애들의 말투가 나는 마음에 드는구나.” 어머니의 이 평가는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매우 세심하고 온기가 있는, 용기를 주는 말씀이었다. 소설가가 된 신예 작가의 어머니가 “주인공이 꼭 네 아빠 같구나”라고 다정하게 얘기하셨듯이. 

  

또 한 가지는 다른 시상식장에서 들었던 축사 생각이 났다. 문단의 어른 한 분이 축사를 하면서 등단한 후배들을 망망대해에 막 띄운 종이배에 빗대었다. “여러분은 문학이라는 거친 바다에 띄운 종이배와 같습니다. 언제 침몰할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순간 시상식장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축사는 이어졌다. “종이배도 망망대해를 건널 수 있습니다. 침몰할 듯 침몰할 듯 아직은 침몰하지 않고 나아갑니다. 끝내는 침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등대가 있고, 등대의 그 빛이 갈 곳을 비춥니다. 그 불빛이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시오.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스승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스승입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이 뜨거운 축사가 가끔 생각난다. 무엇보다 이 축사는 솔직하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이 흡족하게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격랑을 만나 침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할 때에 자신에게 의지해서 가라는 이 당부는 뭉클했다. 

  

 

 

깨닫겠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일으키는 것을 초발심(初發心)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라는 말이 있는데, 초발심을 낸 그때가 바로 깨달음을 이룬 때라는 뜻이다. 첫 마음의 순수하고 간절한 상태를 잘 간직하라는 가르침이다. 초발심 그대로 계속 수행하면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신예 작가들의 경우처럼 우리는 초심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선다. 인생의 전환이 되는 순간을 우리는 만난다. 그러할 때에 자신을 믿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을 보거든 힘이 솟아나도록 힘껏 북돋아 주기도 할 일이다. 

  

정현종 시인의 ‘출발’이라는 시는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모든 이들에게 이 시를 드리고 싶다. “모든 게 처음이에요/ 처음 아닌 게 없어요/ 싹도 가지도/ 사랑도 미움도/ 지금 막 시작되고 있어요./ 기왕 시작된 건 없습니다/ (……) / 자, 우리가 출발시켜야 해요/ 구름도 우리가 출발시키고/ (구름이여 우리를 출발시켜다오)/ 바람도 시민도/ 나라도 늙은 희망도/ 우리가 출발시켜야 해요” 

 

[중앙일보 2018.11.7 마음읽기 |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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