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고향 생각

영광도서 0 672

설날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는 것만 같다.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정지용의 시 ‘별똥’이 떠오른다.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 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 밤하늘을 우러러보다 별똥이, 유성(流星)이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많았다. 산등성이 너머로 빗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을 보면서 내가 사는 이 고향의 마을 너머, 새의 둥지처럼 오목한 이곳 너머 다른 세계가, 좀 더 큰 마을과 높은 산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가늠했다. 정지용 시인은 그 별똥이 지는 것을 보면서 별똥이 떨어진 곳을 찾아가 보리라고, 긴 빛의 꼬리를 감추며 사라진 별똥을 주워 보리라고 마음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은 후로 하루 이틀 세월이 물처럼 흐르고 흘러 그 아이가 이젠 훌쩍 다 자라버렸다는 것이다. 별똥을 바라보면서 두 손을 가슴께에 모아 소원을 빌던 어린 시절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왔다는 것이다. 

  

내게도 고향은 점점 멀어져간다. 나는 논두렁과 산길과 대숲과 철길과 저수지와 옛집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동무들과 학교의 교실, 운동장, 눈사람과 썰매, 강아지풀과 잠자리, 토끼와 강아지, 추운 겨울밤과 무서운 이야기, 그리고 열 살 무렵의 나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헤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린 시절은 “새나 부는 바람이 나와 비슷하고 나의 형제였던 옛날”이었다.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신이여, 내 이름이 흙인 것이, 내 입이 열매인 것이 좋습니다”라고 노래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열 살 무렵의 나는 하나의 동산이요, 한 그루의 감나무요, 하나의 볍씨요, 조그마한 도토리요, 풀밭에서 우는 염소요, 노란 병아리요, 찰흙이요, 반달이었다. 물고기 떼처럼 친구들과 골목을 떼 지어 다녔고, 저녁마다 꾸중을 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소복하게 내린 겨울날의 아침에는 쌓인 눈의 그 눈부신 흰 빛이 마음에도 넘칠 듯 찰랑찰랑해서 너무나 벅차고 행복했던 때였다. 가난했지만 근심의 그림자는 없었다. 마음은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마냥 투명했을 뿐. 

  

 

고향에서 함께 살았던 이들은 또 얼마나 푸근했던가. 누나는 내게 털옷을 입혀 주었다. 나는 동생에게 군고구마를 쥐어 주었다. 어머니는 튀밥과 강정을 내놓으셨다. 아버지는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셨다. 큰어머니는 우리 식구 몰래 우리 집 빈 솥 한가운데에 양식거리를 놓아두고 가셨다. 두부나 배추전 등 음식을 손 크게 해서 이웃과 나눠 먹었다. 늦게 돌아오는 식구를 위해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고, 하나의 솜이불로 꿈을 덮어 깊게 잠들었다. 

  

“그 수줍은 표정과/ 목에 두른 은테 목걸이가 나는 좋았습니다/ 검은 조끼와/ 양모로 짠 붉은 치마/ 그리도 신중한 자태/ 순결로 충만한 두 눈/ 미소 지을 땐/ 구릿빛 긴 손가락으로/ 하얀 이와 향기로운 입술을 가렸지요/ 내 고향 질러부터엔/ 얼마나 많은 선망의 눈빛들이/ 그 꿈같은 자태를 따라다녔던가요”. 이 시는 중국의 시인 지디마자가 쓴 ‘누나와 고모들에게’의 일부이다. 지디마자 시인은 소수민족인 이족으로 태어났다. 이 시는 어렸을 적 보았던 누나와 고모들의 아름다운 풍모와 온화한 성품을 표현하고 있다. 나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를 돌봐주던 누나들과 고모들의 다정한 눈빛을 떠올리게 된다. 

  

고향에서는 모두 들꽃 같고, 어느 누구도 모가 난 성격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고향에서는 공평하게 대우받는다. 담 너머에서 누구라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불러낼 수 있고, 나 또한 누구라도 그 이름을 크게 불러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고향은 서로 염려하고, 손을 덜어주고, 등 뒤에 서서 든든하게 응원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한때의 불화로 고향을 등진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고향은 아무것도 그에게 묻지 않고 그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객지에서 힘든 일을 겪었더라도 고향에 돌아가면 자신이 세상에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기운을 얻게 되고, 회복된다. 

  

고향으로부터 떠나온 사람이든 고향을 상실한 사람이든 명절을 앞두고 있으면 고향에서 보냈던 옛 시간을 추억하게 된다. 그것은 고향이 키 큰 느티나무처럼 우리들의 마음속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람처럼, 주춧돌처럼, 온돌방처럼, 가마솥처럼, 담벼락에 따뜻하게 쏟아지는 햇살의 따뜻한 실타래처럼, 졸졸졸 맑게 흐르던 시내처럼, 산울림처럼 고향이 우리의 마음속에 네 계절 내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설날이 가까우니 고향 생각이 간절하다. 

 

[출처: 중앙일보] [마음읽기] 고향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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