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발끈하지 말고 너그럽게 살자

영광도서 0 616

“스님, 나는 이상하게도 내부에서 다툼이 있었던 절에 주지로 임명이 자주 나.” 

  

새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되는 절이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친한 선배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성품이 따뜻하고 이치에 맞는 말씀을 잘하셔서 그 스님 옆에 있으면 항상 배우는 것이 많다. 워낙 경험도 많으시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신 분이라 이번에도 구원 투수로 그 스님이 임명된 것 같았다. 특히 절 신도들 사이에서 다툼이 있었거나, 아니면 전 주지 스님과 신도들 간에 마찰이 있었던 경우, 선배 스님은 갈등 중재를 잘하셨다.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스님께서는 자고 나면 별것 아닌 일인데 사람들이 너무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흥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하셨다. 즉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기가 했던 생각으로부터 거리감이 생겨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가지 생각에 마음이 꽂이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설득하려 하고 그것이 안 되면 강요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본인처럼 생각하지 않거나 본인 생각에 반대하는 경우 발끈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분노, 짜증, 미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공격하는 방향으로 갈등이 심화된다. 

  

하지만 선배 스님의 말에 따르면 그런 감정들은 보통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구름처럼 지나가는 것이라 하셨다. 특히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맞장구만 쳐주지 않아도 그런 감정들은 증폭되지 않고 거품이 사그라지듯 어느덧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흘려보낼 수도 있는 일시적인 감정들을 누가 옆에서 옳고 그름을 한번 따져보자는 식으로 흐르지 못하게 붙잡는다. 특히 경험이 많지 않은 신참 주지들은 전에 어떤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자세히 조사해본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꾸 연락해 물어보고 따지다 더 큰 오해를 쌓고 갈등을 다시 점화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만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많은 경우 의도와는 달리 더 큰 문제와 오해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선배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나와 인연이 있는 김미경 선생님께서 예전에 하신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살다 보면 가족 안에서도 가까운 올케나 동서지간, 형제지간에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가 있다. 그럴 때 나를 섭섭하게 했던 가족을 명절에 불러다 한번은 그래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내가 서운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상대도 나에게 서운했던 과거의 일들을 다 끄집어낼 확률이 크고, 그렇게 시비를 가리다 보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같이 할 수 있었지만 큰 싸움을 한번 하고 나면 아예 서로 얼굴 보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많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통찰이 담긴 말씀이다. 

  

사실 나도 사십 대 중반을 넘어가게 되니 주변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젊었을 때보다 덜 예민하면서도 그와 반비례하게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에 대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험담을 좀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어도 이전처럼 발끈해서 하나하나 대응하기보단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마음에 두지 않고 대충 흘려보내고 싶다. 어른 스님께 혼이 나도 나의 변명이나 이유를 찾기보다는 “예 잘못했습니다. 다음번에는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내 부족한 면을 잘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요구했던 것을 상대가 들어주지 않아도 계속해서 해줄 때까지 싸우거나 안 해 준다고 원망하지 않고, 좀 더 유연하게 때를 기다리거나 내 마음을 돌이켜 잘 넘기고 싶다. 거절을 좀 당해도 가슴에 새기지 말고, 가까운 이가 작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냥 모르는 척해주고 싶다. 내 습관과 다소 다른 아랫사람을 만나도 내 식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바꾸라는 말을 해서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몇 번 시도했지만 안 되는 일에는 너무 또 애쓰지 말고,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싶다. 관계가 나빠졌던 사람과도 일정 시간이 지나 처음 좋았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고, 작은 것을 포기해서 마음의 큰 평온을 얻게 된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면서 살고 싶다. 

  

생각하는 바를 몸소 실천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일평생이 걸린다 하더라도 좀 더 너그러운 덕 있는 어른으로 나는 늙어가고 싶다. 

 

[중앙일보 2019.3.6 마은산책 | 혜민스님 -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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