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존경하는 마음은 나를 보호합니다

영광도서 0 606

혹시 내 마음속 등대처럼 존재하는 존경하는 분이 계신가요? 적개심으로 가득한 지금 현대 사회에 존경하는 분이 계신다면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내가 미래에 되고 싶은 롤 모델일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중요한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할 때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정신적 나침반이 되어주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가깝게는 부모님이나 학교 은사님, 직장 선배님같이 나와 인연이 깊은 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멀리서 한두 번 뵈었던 존경하는 정치인이나 종교인, 기업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직접 뵌 적 없는 고인이나 외국인, 책이나 매스컴·명성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된 위인이나 연예인·운동선수·인플루언서 등일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가끔씩 저에게 존경한다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거나 강연 후에 그 마음을 표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때마다 제가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제 말이나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책의 어떤 구절이 그분의 마음에 닿아서, 혹은 종교인으로서의 저를 좋게 봐주셔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다가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마음이 아직은 너무 어색하고 송구해서 그 자리를 피하기에 급급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존경하는 마음은 존경받는 사람보다 존경하는 마음을 품은 그 사람에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 분들은 남들로부터 존경받기 위해 그런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뵌 어른 스님들의 경우, 그분의 수행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스님의 공부와 수행하는 시간을 흩트려놓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 어른 스님 역시 그저 자기의 인생을 본인 가치관에 맞게 계속 살아오신 것일 뿐 남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이나 판단과는 상관없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당신 삶을 사십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존경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훌륭한 점, 본받고 싶은 점을 가슴으로 기억하면서 살아갑니다. 빠른 시간 내에 그분과 같은 삶을 살 순 없어도 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그분의 훌륭한 점을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하는데, 본인이 닮고 싶고 존경하는 사람을 자꾸 생각하고 떠올리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을 닮아가게 됩니다. 마치 멀리서 빛나고 있는 등대 불빛처럼 그분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잃지 않고 그쪽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저에게도 고등학생 때부터 존경하는 큰 스님이 한 분 계십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으시지만 지금도 그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어린 저에게도 큰 가르침을 주시고 몸소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에서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삶의 여러 방향 앞에서 막막함이 찾아올 때, 혹은 조소와 조롱으로 가득한 세상과 맞닥뜨릴 때 저는 그 스님만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희망이 차오릅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존경하는 이유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그분의 말과 행동이 도덕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어떤 대의를 위해 희생하거나 남을 위해 노력과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참 훌륭하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그 분들이 삶의 궁극적인 가르침이나 이유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존경하는 분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닮아 가게 돼

5월, 존경 표현하기 좋은 달

 

 

두 번째는 그분의 재능으로 어떤 분야에 큰 성과를 낸 경우입니다. 기술 분야든 예술 분야든 학문 분야든 부단한 노력으로 자기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분들을 또 존경합니다. 

  

5월은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서 그 누군가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참 좋은 시절입니다. 혹시 내 마음속에 존경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한번 천천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도 좋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분이면 더 좋습니다.   

  

아무리 옳아도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게 되면 결국 나에게 좋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은 부정적인 뉴스가 세상 가득해도 나를 그것들에 물들게 하지 않는 정신적 보호막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2019.5.1 중앙일보 - 마음산책 |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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