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섞이지 않는 흐름

영광도서 0 591

한강의 시원지를 대개는 태백산 검룡소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제강점기에 현대적인 지리 개념이 도입되면서 최장 거리에 입각해 확정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한수지원(漢水之源), 즉 한강의 시원은 오대산 금강연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봄과 가을에 관원을 보내 시원제를 올렸다는 내용도 살펴진다.

 

인공위성이 없었던 시절, 강에서 가장 먼 시원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서 가장 멀다고 생각되는 물줄기 중 최고의 물이 솟아올라오는 곳을 강의 시원지로 확정했다. 그렇다면 최고의 물이라는 평가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먼저 대상지의 물을 떠 온 후 그릇에 가득 붓고 계속해서 바늘을 투입한다. 이렇게 되면 표면장력에 의해 물이 넘치지 않으면서 그릇 위로 볼록하게 솟아오르게 된다. 이때 최후까지 넘치지 않고 더 많은 바늘을 감당하는 물을 최고로 평가한다. 즉 표면장력이 큰물이 최고인 셈이다.

 

모든 물에는 불순물이 녹아 있으며, 물맛을 결정하는 정체 역시 실은 이 불순물이다. 불순물에 이로운 금속성이 많이 녹아 있으면 무거운 물이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표면장력이 커지게 된다. 이 때문에 '지리지'나 양촌 권근의 기록에도 무거운 물이라는 점과 함께 오대산의 물이 중국 양쯔강의 중령천과 비견되는 최고의 물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중령천은 장우신의 '전다수기(煎茶水記)'에 따르면 차의 성인인 육우가 천하의 물을 품평할 때 13번째 등급으로 평가한 물이다. 또 당나라의 유백추는 이를 천하제일천, 즉 중국 최고의 물로 품평했다. 그런데 무거운 물은 한강을 흘러도 물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중앙으로 낮게 흐르면서 다른 물과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즉 함께 흐르기는 하지만 섞여서 흐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혼탁해지기는 쉽지만 맑기는 어렵고, 더불어 가면서 흔들리지 않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옛사람들은 거스르지 않고 흐르되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무거운 물을 최고로 평가한 것은 아닐까! 이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몰두하는 들뜨기 쉬운 현대에 매우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2019.10.1 매일경제 - 매경춘추 | 자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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