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걱정하는 마음이 사랑인 거야”

영광도서 0 572

혹시 여러분의 부모님도 제 부모님과 비슷하신가요? 아니면 그런 부모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떠나셨는지요. 제 속가 아버지는 제가 성인이 된 지 아주 오래되었는데도 저에 대한 걱정이 태산입니다. 마흔 중반을 넘어 오십으로 가는 출가한 승려라는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아버지 눈에 비친 저는 나이가 얼마를 먹었건 사회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그저 항상 아이일 뿐인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저에게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길까 끝없이 걱정을 하십니다. 딱히 걱정할 일이 없는데도 저를 볼 때마다 걱정 어린 조언을 하십니다. “종교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쪽으로 편향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항상 겸손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일일이 간섭하며 걱정하는 부모

어릴 땐 조정당하는 듯 싫었지만

부모가 되니 걱정이 사랑이었네

 

제가 했던 강의나 인터뷰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통해 나오면 가장 먼저 보시고는 전화를 하십니다. “이번에 한 그 이야기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으니 잘 풀어서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더구나.”

 

한번은 사무실 전세 계약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혹시라도 전세 자금 떼일까 봐 등기부 등본을 반드시 직접 떼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최근에는 작년에 독감 때문에 혼이 났으니 이번에는 꼭 독감 주사 맞으라고 계속 문자를 보내십니다.

 

물론 다 옳으신 말씀이시고 도움이 되는 조언입니다. 사실 부모님 아니면 이 세상에 누가 나에게 이런 관심을 주겠나 싶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이런 아버지의 걱정이 하나같이 지나친 간섭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심리와 철학 공부를 해서 머리가 좀 커졌을 때는 아버지의 불안에 대해 심리 분석을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아버지의 과도한 걱정은 아이 시절 한국 전쟁 때 겪은 생존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요. 그러나 지금은 옛날처럼 생존을 위협받는 일은 잘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드려도 절대로 걱정을 멈추지는 않으셨습니다.

 

얼마 전, 중국인 친구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오래전에 북경 유학을 할 때 알게 되어 지금까지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냅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친구가 만든 영화가 여러 영화제에 초대되고, 또 큰 상도 받았다고 해서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그 친구의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참으로 흥미로운 장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친구의 어머니와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어머니가 제 속가 아버지와 아주 비슷하게도 끝없이 제 친구를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제 친구의 어머니는 제 친구에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는 평소에 말합니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격의 단점과 장점 모두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입니다. 친구 어머니처럼 그 친구도 불안함을 자주 느끼는 편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는 영화도 아름다운 영상미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보다는 어둡고 불안한 주인공이 등장하고 깊은 갈등이 살아 있는 영화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친구는 정이 많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면도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재능 역시 불안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다고 합니다.

 

 

 

영화는 최근 자신의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부모가 된 제 친구가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을 이해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강요하고 하나하나 조정하려고 드는 가족들이 싫어 집을 떠나 멀리서 생활했던 친구였습니다. 명절이 되어 자기 아이와 함께 본가로 돌아가 보니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부모님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화 속 그 친구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가 답하셨습니다.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걱정하는 마음이 사랑인 거야.”

 

안타깝게도 친구의 어머니는 영화가 방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했지만 암의 진행이 깊어 예후가 좋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어머니 수술 후 그 친구를 만났을 때, 친구는 어머니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어쩌면 자기 존재의 일부분을 잃는 것과 같다고요. 간섭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다 사랑이었다고요.

 

[중앙일보 2019.11.13 | 마음산책 -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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