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명상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영광도서 0 575

최근 들어 나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명상·심리 앱 ‘코끼리’를 영국 친구 다니엘 튜더와 함께 만들어 출시한 후, 어떻게 하면 명상을 접한 적 없는 이들에게 쉽게 가이드해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서양에선 지난 90년대 말부터 명상이 현대인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불면증·우울감 등을 치유하고 행복감과 집중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무수한 과학적 검증이 있었다. 그래서 병원이나 학교뿐 아니라,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에서도 명상을 가르쳐왔고 하버드 대학 등에서도 명상 관련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선 명상을 종교적 수행 차원으로 접근하는 까닭에 일반인들에겐 조금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명상은 과학…종교 초월하는 것

생각과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 치유하고 자유로워지기를

 

오늘도 역시 ‘코끼리’ 오피스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며칠 전에 업데이트한 ‘직장인을 위한 명상’ 반응이 좋아 상사나 동료 등 관계 문제로 힘든 분을 위한 명상, 고객을 응대하며 감정노동을 하는 분을 위한 명상, 출근길 축복 명상 등이 더 필요하겠다는 의견이 먼저 나왔다. ‘잠이 잘 오는 명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는 분들이 많아, 새로운 숙면 명상을 보충하고 엄마나 싱글 여성들을 위한 특별 명상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다니엘도 밤에 듣는 영어 동화를 예상보다 많이 들으니 어린 왕자 동화를 녹음하러 가겠다고 한다. 부디 우리의 노력이 듣는 분들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심리적인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길 소망한다.

 

내가 명상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 나는 한 번도 내 마음이 어떤지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감정 속에 빠져 그것들과 동일시했을 뿐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명상을 접하고 나니 더 이상 내 생각이나 감정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었다. 내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바로 즉시 그 고통스러운 심리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명상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이나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가르쳐준다.

 

명상이 내게 가르쳐준 또 다른 가르침은 바로 생각이 감정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울한 생각을 하면 우울한 감정이 일어나고,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한 감정이 일어난다. 이것을 잘 응용하면, 지금 내 안에 있는 우울한 감정이나 불안한 감정도 생각을 바꾸면 마음의 감정 상태도 바꿀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자기 마음 안에 올라온 생각을 의도적으로 바꿔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의 포로로 잡혀 산다. 하지만 명상은 이 모든 과정을 도와준다. 나와 타인을 축복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상상하고, 감사함과 자신감을 일으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명상을 하다 보면 우리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 또한 명상의 이점이다. 만약 마음이 힘들 때 오른손을 내 심장 부분에 올려놓고 가볍게 쓰다듬기만 해도 신기하게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위로받는 느낌을 받는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의도적으로 숨을 깊게 쉬기만 해도 몸이 편안해지고 마음 역시 고요해진다. 몸의 신체감각에 집중하는 바디스캔 명상법을 통해 지금 내 몸의 어느 부분이 긴장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면 서서히 그 긴장이 풀린다. 즉, 우리의 고통은 지금 그렇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만 해도 해결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다. 많은 경우,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신의 문제 안에 갇혀 시달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명상의 이점은, 고요함이라는 쉼 안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 쉬고 나면 우리의 두뇌는 예전에 알고 있었지만 서로 연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결시키며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맥락을 보게 된다. 또한 생각이 많아 잠을 잘 못 이루는 분에게도 명상은 도움이 된다. 잠을 잘 못 자는 불안한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 가이드에게 따라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불안한 생각이 아닌 다른 좋은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보다 수월하게 잠에 들게 된다.

 

우리는 몸 건강을 챙기며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하지만 높은 자살률과 불면증·스트레스·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몸 근육 기르듯 건강한 마음의 근육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하루에 10분씩만 가져보면 내 삶은 바뀔 수 있다.



[2019.12.11 중앙일보 - 마음산책 | 혜민스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