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사회적 거리’와 ‘책과의 거리’

영광도서 1 744

‘사람은 저마다 재물을 탐하지만 나는 오직 내 자녀가 어질기를 바란다. 삶에 있어 가장 보람된 것은 책과 벗하는 일이며 더없이 소중한 것은 부지런하고 알뜰함에 있다. 이를 너희의 가훈으로 삼으라.’

 

조선 전기 김종서 장군(1383∼1453)은 후손에게 이런 유훈을 전했다. 그는 함경도 일대 6진을 개척한 이력으로 인해 장군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문인 출신이다. 삶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 책과 벗하는 일이라는 그의 유훈이 사뭇 이해가 간다.

 

최근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절반에 가까운 성인들은 보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중 44.3%, 즉 100명 가운데 44명은 연간 책(전자책·오디오북 포함)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특히 50대 독서율은 전년 대비 8.7%포인트, 60대 이상은 15.8%포인트 떨어졌다. 미국의 독서율이 7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부끄러운 수치다. 더구나 정기적으로 책을 읽는 비율은 2∼3%에 그쳐 국민 대부분은 ‘어쩌다 한 번’ 책을 접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황폐화된 독서 문화가 가져온 결과는 문해력의 저하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제대로 해석하는 능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한국인의 평균 문해력 지수는 25세를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해 35∼44세부터 평균 아래, 45세 이후에는 하위권, 55∼65세에는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 인터넷에 텍스트의 내용과 동떨어진 댓글들이 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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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뇌를 발달시키고 창의성을 높이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활동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독서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는 것은 늙어가는 뇌가 새로운 자극으로 에너지를 쓰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신체 에너지의 20%를 쓰는 뇌는 가급적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려고 하고, 그를 위해 익숙한 습관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독서를 습관으로 들이지 않았다면 뇌가 독서에 대해 저항한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소장은 “책 읽기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선 책 읽기를 공부 등과 연결하다 보니 책 읽기가 즐거운 경험으로 느껴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장하면서 집 밖 외출이 제한되고 사람 만나기 힘든 요즘이 책 읽는 습관을 들일 적기다. 독서가 좋다는 뻔한 얘기를 다시 하는 이유는 지금처럼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뜻하지 않게 생긴 작은 시간적 여유를 헛되이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 신하들에게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읽으라고 유급휴가를 준 것을 ‘셰익스피어 휴가’라고 칭한다. 그만큼 책 읽기를 중시한 것인데, 우리는 굳이 말하자면 ‘코로나 독서 휴가’를 받은 셈이다.

 

공공도서관들이 문을 닫았지만 드라이브스루 등으로 책 대여는 가능하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서비스도 속속 등장해 마음만 먹으면 책 읽는 환경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독서실태 조사에서 책을 안 읽는 이유로 꼽은 것이 ‘시간이 없어서’였다. 미국 영문학자 수전 와이즈 바우어는 책 ‘독서의 즐거움’에서 “독서는 달리기를 하거나 발성 연습을 하는 것과 비슷한 훈련”이고 “매일 30분 독서에 전념할 시간을 만들라”고 했다. 그것도 많다면 단 10분이라도 좋다. 특히 개학이 연기돼 집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 것은 더 좋다. 사회적 거리는 멀리 두되 책과의 거리는 가깝게 할 때다.

 

[동아일보 2020.3.5 | 오늘과 내일 - 서정보 문화부장]

Comments

움다비
'코로나 독서 휴가' 기간중에 책과의 거리를 가까이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