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안 가본 길에 대한 미련
여러분, 혹시 스스로 했던 선택에 대한 후회나 미련 때문에 힘들었던 적 있으신가요? 내가 만약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 이렇진 않을 텐데,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요. 며칠 전, 다니엘 튜더와 제가 함께 시작한 ‘코끼리’ 힐링 앱 앞으로 한 통의 문의가 왔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련이 많아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미련을 내려놓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지 도움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끝없는 선택의 연속
하나 포기하면 다른 하나 얻게 돼
경험을 통해 얻는 배움도 소중
그 글을 읽고 나서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보니 얼마 전 우연히 본 동영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 동영상의 주인공은 미국의 온라인 신문 ‘허핑턴 포스트’를 시작했던 아리아나 허핑턴이었습니다. 그녀는 타임지가 선정한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될 만큼 큰 성공을 이룬 언론인이자 비즈니스 우먼입니다. 제 책이 처음 영어로 출간되었을 때 짧은 추천의 말을 해줘서 저는 그녀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20대 후반에 참 힘든 선택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 런던에 살던 그녀는 어느 유명 작가와 깊은 사랑에 빠졌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그녀와는 달리 아이를 전혀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남자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경험과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고, 더불어 그의 지지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녀는 당혹스러웠고, 오랫동안 고심하다 결국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 후 상처를 안고 뉴욕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남자가 아이 갖기를 희망하지 않았기에 미국으로 올 수 있었고, 그 후 결혼을 해서 가장 소중한 두 딸과 자신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준 허핑턴 포스트가 생겼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40년 전, 뉴욕에 막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그녀는 그가 원하던 대로 아이 갖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 그와 함께 런던에서 지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나 미련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마치고 나서 얻게 된 것들을 생각해보면 그때 그 선택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안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도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습니다. 한국으로 온 후로는 운전을 잘 안 하지만,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은사 스님 절에서 학교까지 운전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시간이 되면 퇴근 차량으로 종종 길이 막혀서 두 시간 반이면 갈 길을 네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하루는 길이 꽉 막혀 길게 정체되자 안 가봤던 길로 가볼 생각으로 고속도로를 벗어나 봤습니다.
막 고속도로를 빠져나왔을 때는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지면서 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빨간 신호등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운 좋게 파란 신호등을 몇 개 연이어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빨간불에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이쯤 되면 정체구간을 이미 지났겠지 하고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아까 고속도로를 빠져나왔을 때 보았던 동일한 트럭이 바로 또 제 앞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안 가본 길로 가면 훨씬 나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속도로를 벗어났지만, 돌고 돌아온 그곳은 같은 자리였던 것입니다.
안 가본 길에 대한 상상을 할 때 우리는 보통 지금보다 좋은 상황만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미련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안 가본 길로 가게 되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몰랐던 그 나름대로 어려움과 기대했던 것보다 좋지 못한 결과가 우리를 기다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가면서 지금 당장의 상황은 그리 평탄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봤을 때 아리아나 허핑턴과 같이 “그때 그런 결정을 해서 오히려 천만다행이다”라고 감사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내 과거의 선택으로 인해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배우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러기에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앙일보 2020.7.22 | 마음 산책 - 혜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