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주 밭담을 보면서
시인들이 자주 시로 노래하는 대상 가운데 하나로 ‘돌’이 있다. 생명이 없고 딱딱하고 모양이 제각각인 돌에 시인들은 온기와 감정을 불어넣는다. 1998년에 작고한 박두진 시인은 특히 수석에 관심이 많았고, 돌에 관한 다작의 시편들을 남겨 ‘돌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두진 시인은 시 ‘돌의 노래’에서 “오, 돌./ 어느 때나 푸른 새로/ 날아 오르랴./ 먼 위로 어둑히 짙은 푸르름/ 온 몸에 속속들이/ 하늘이 와 스미면,/ 어느 때나 다시 뿜는 입김을 받아/ 푸른 새로 파닥어려/ 날아 오르랴”라고 썼다. 무정물인 돌이 미래의 시간과 희원(希願)을 갖게 하고, 우주 생명 에너지의 응축물로 거듭나게 했다.
흑룡만리 밭담 보며 감탄하게 돼
돌마다 쓰임을 줘서 만드는 밭담
완성된 밭담처럼 배제 없었으면
조지훈 시인은 ‘바위송’을 통해 “사람들아/ 옷깃을 여미고/ 배우자/ 바위/ 영원한/ 부동(不動)의 자세/ 항상 청순(淸純)한/ 그 호흡을”이라고 찬탄했다. 전봉건 시인은 10년 동안 남한강 물줄기를 누비면서 돌을 찾아 다녔고, 그 경험을 연작시집 ‘돌’로 엮어냈다. 그는 돌과의 만남에 대해 “한여름의 돌밭은 한증막, 한겨울의 돌밭은 얼음구덩이. 그리고 돌은 결코 그냥 주워들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들린 듯한, 그리고 중노동과도 같은 찾아 헤맴 끝에 이뤄지는 만남”이라고 회고했다.
제주도에 살면서 아주 흔하게 보게 되는 것으로 단연 돌을 들 수 있다. 돌을 보고, 돌을 내려놓고, 돌을 세우고, 돌을 쌓는 일이 보통의 일이 되었다. 물론 제주의 돌은 한라산, 오름, 해녀, 감귤 등과 함께 제주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 돌들을 쌓아 올린 돌담을 보노라면 시간의 쌓임이 느껴진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적인 돌들을 생긴 그대로 올려놓고 위아래로 맞춰가며 쌓은 것을 보노라면 보통의 솜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돌들을 쌓아올린 돌담의 종류만 하더라도 바닷가 연안에 고기를 가둬서 잡기 위한 원담 혹은 갯담, 소와 말을 키우는 목장에서 울타리로 쌓은 잣성, 집 둘레에 쌓은 집담, 밭가에 쌓은 밭담 등 아주 여럿이다. 특히 검은 현무암으로 쌓은 제주 밭담의 총길이는 지구 반 바퀴를 돌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또 밭담이 구불텅하게 이어지는 모습이 흑룡을 닮았다고 해서 제주 밭담을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도 밭에 나가 밭담을 쌓는 일을 최근에 여러 차례 했다. 종일 돌을 만졌다. 다듬지 않고서 아랫돌 위에 윗돌을 올리는 까닭에 돌과 돌 사이에는 구멍이 생겨난다. 돌과 돌 사이의 구멍이 너무 크면 잔돌로 채우기도 하지만, 웬만한 구멍은 그냥 둔다. 이 구멍으로 바람이 통하게 된다. 돌담을 지나는 동안 바람의 세기는 조금은 약해지고, 또 구멍이 있어서 돌담이 무너지지 않게 된다. 매우 거세고, 매우 잦은 바람에도 제주의 돌담이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고 쌓여있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면 속을 밀밀(密密)하게 꽉 다 채운다고 해서 어떤 구조물이 강하게 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딱딱하면 부러지기 쉬운 까닭일 테다.
돌담을 쌓을 적에 쓸모없는 돌은 하나도 없다. 각진 돌은 각진 돌대로, 둥글거나 자잘한 돌은 또 그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다. 돌을 쌓는 사람이 각각의 돌에 그 적절한 용도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납작하고 반듯한 돌도 필요하지만, 둥글둥글한 돌은 앞뒤의 그 가운데에 들어가 속채움돌로서의 역할을 하고, 또 기다란 돌은 아랫돌을 지그시 눌러주는 묶음돌의 일을 해 돌담의 안정을 돕는다. 세움돌이 있고, 모서리돌이 있고, 틈막이돌이 있고, 속채움돌이 있고, 묶음돌이 있고, 또 제일 위에 올려놓는 덮개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돌들은 나름의 쓰임을 갖고, 그 쓰임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돌담을 가만히 보거나 돌담을 쌓다보면 돌은 보석(寶石)이 따로 있거나 한낱 돌멩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의 돌마다에는 오랜 시간이 숨 쉬고 있고, 갖은 풍상(風霜)이 들어있고, 고독과 견딤이 함께 있다. 그러므로 돌은 우리 인간의 초상이기도 할 터이다. 개개의 인격들이 모여 더 큰 범위의 모임과 관계를 만들어가듯이 개개의 돌들도 모여 원담을 이루고, 잣성을 완성하고, 집담과 밭담이 되는 것이다.
제주 밭담으로 초여름의 바람은 불어와 흰 메밀꽃밭으로 간다. 마늘 수확이 끝난 밭으로도 불어간다.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밭담에 난 구멍을 지나온 바람은 한층 부드러워져 마늘을 뽑는 사람들의 땀을 식혀줬을 것이다. 장마가 오고 장대비가 지나가면 밭담을 손보느라 또 당분간은 돌을 세우고 쌓게 될 것 같다
[2021.6.16 중앙일보 | 마음읽기 -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