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당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세요

영광도서 0 577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가 1916년에 모국어인 벵골어로 펴낸 시집 ‘길 잃은 새’에는 짧은 시 326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 실린 것 가운데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싱싱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연약한 그릇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컫는 것일 테다. 새날을 맞이하는 우리가 아침에 갖게 되는 생기와 의욕을 싱싱한 생명으로 표현한 것 같다. 

  

또 이런 시구도 있다. “나의 마음이여, 바람과 물의 은혜를 받은 보트처럼 세계의 움직임으로부터 당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세요.” 우리는 바다라는 큰 세계의 움직임 위에 뜬 한 척의 보트이다. 바람과 물의 도움을 받으며 떠 있는 멋진 보트이다. 우리 스스로가 보트처럼 이 세계 위에 떠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의 의지에 의해 운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권고가 이 시구 속에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매일 매일을 살면서 하루 동안 몇 번이나 우리의 삶 속에 싱싱함과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며 지내는 것일까. 

  

얼마 전 나는 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는데, 내게 물어온 질문 가운데 매우 특별한 것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나 사연이 있는 소리를 녹음해서 갖고 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틈이 날 때마다 수시로 생각해보았다.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손님을 부르고 흥정하는 소리, 초여름의 개구리 울음 소리, 아이를 잠재우는 엄마의 자장가 소리 등이 떠올랐다. 저 먼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지금 여기로 불러올 수 있다면 까맣고 작은 새끼 염소가 우는 소리, 아버지께서 쟁기와 써레질을 하면서 소를 모는 소리, 제비가 처마로 돌아와 깨알처럼 재잘거리는 소리, 하얀 모래가 깔린 개울에서 물놀이 하는 소리 등을 담아가고 싶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고민하다 내가 갖고 간 소리는 종소리였다. 사찰의 예불시간에 녹음했던 소종 소리였다. 법당 안에 들여놓고 치는 작은 종이었는데 나는 소종 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언가 한결 차분해지고 조금은 성스러워지고 조금은 조심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쨌든 잠시 동안 잊고 있었던 소종 소리를 서랍에서 꺼내듯 해서 갖고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시간의 서랍에는 소종 소리 외에도 무수히 많은 소리들이 들어 있었다. 마치 우리의 디지털 카메라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풍경들이 저장되어 있듯이. 우리가 이 낱낱을 유의미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냉장고의 음식들처럼 싱싱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보관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이것들 모두는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는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하나의 신선한 시선을 제공한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아온 음악가이다. ‘마지막 황제’,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그리고 작년에 상영되었던 ‘남한산성’ 등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작업을 했다. 이 영화는 인후암 판정을 받은 후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생긴 삶과 작품 세계의 변화 등을 가까운 거리에서 정밀하게 보여준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차 있고, 그것들이 미적인 음악 속에 편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의 소리들을 수집한다. 인파 소리, 숲의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낙엽 밟는 소리, 바람 소리 등등. 쓰나미 피해를 입은 해변 마을을 찾아가거나 빙하가 사라지는 북극 지역에 가서 소리를 채집하기도 한다. 심지어 빗소리를 담기 위해 파란 플라스틱 통을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삶은 한없이 지속될 수 없으며, 또 작고 사소한 수많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그 조각조각들은 모두 가치 있고 고유하다. 비록 그 전부를 활용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일상을 너무 위대한 것으로 여긴다면 비록 하루를 살고 난 후에도 우리의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잡혀 있는 것이,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허공이나 물을 움켜쥐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또 우리의 일상을 비극적이고 암울한 것으로 여긴다면 역시 아무것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둠을 움켜쥐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일상은 작은 소리들, 빛과 어둠, 단순하거나 복잡한 움직임, 불분명한 것, 원인과 결과, 연락과 주고받음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것들이 남긴 사진들과 녹음기에 저장된 음(音)들이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수량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세상에 가득 찬 소리만큼.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움도 그처럼 많다. 

 

[2018.6.20 중앙일보 - 마음읽기 |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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