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45회 - " 이순신과 함께한 일주일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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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7
한국사에는 많은 영웅이 있다. 대표적으로 나는 이순신·이승만·박정희를 꼽는다. 3인은 누구보다도 드라마틱(dramatic)하기 때문이다. 3인은 업적이 크려고 시련이 컸고, 역경이 깊은 만큼 성취가 높았다. 3인 중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에게는 나는 항상 가까이 있었다. 여러 자료가 많지만 특히 언론인 안병훈이 편찬한 사진집 2권이 있다. 왜소하여 우울할 때 나는 사진집을 뒤적인다. 그러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순신에 대해선 가까이 하지 못했다.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접한 것도 건성건성이었고 아산 현충사에 다녀온 기억도 아득하다.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이렇게 소홀해도 되는지 나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주 다소나마 이런 심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화 ‘명량(鳴梁)’의 시사회에 다녀왔고 난중일기에 빠졌던 것이다. 여러 국역본 중에서 나는 1998년에 나온 『이순신의 일기』를 택했다. 집필자가 특이했기 때문이다. 박혜일을 비롯한 4명이 모두 서울대 출신 핵물리학자다.
이순신이 처한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부정부패가 널려 있고, 거짓과 모함이 심하고, 방비는 허술해 나라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순신은 반듯했다. 모함으로 세 번이나 파직(罷職)당하고 감옥에도 갔으나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가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한양 고관들이 탁상공론(卓上空論)을 벌일 때 그는 현장을 돌며 방비(防備)를 갖췄다. 거북선을 만들고 병사를 훈련시켰다. 자신은 장수들과 활을 쏘았다. 왜군 침략 두 달 전 일기다. “아침에 여러 방비와 전선(戰船)을 점검해보니 모두 새로 만들었고 무기도 어느 정도 완비되어 있었다.” 왜란이 터지고 보름 후 그는 장수들을 모았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것이 과연 의사(義士)라 할 만하다.”
이순신은 단호하고 엄격했다. 개탄에 머물지 않고 칼을 빼 행동했다. 일기에는 곤장을 때리고 목을 베는 일이 자주 등장한다. “군관과 색리(色吏)들이 병선을 수선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색리 11명을 처벌했다. 매양 거짓말로 꾸며대 왔기에 이날 목을 베어 효시했다.”
전선의 이순신은 무거운 압박감에 시달렸다.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걱정과 승리에 대한 간구(懇求)··· 처절함은 꿈에 나타나고 병으로 터졌다. “새벽 꿈에 왜적들이 항복을 빌면서 육혈총통 5자루를 바쳤다.” "꿈에 어떤 곳에 이르러 영의정(유성룡)과 이야기했다. 잠시 함께 속 아랫도리를 끄르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서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털어놓다가 끝내는 가슴이 막히어 그만두었다.” “종일 누워 신음했다. 허한(虛汗)이 무시로 흘러 옷이 젖었다.”
난중일기는 여느 역사책과는 진실의 감도(感度)가 다르다. 전쟁터 장수의 육필(肉筆)이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장군은 초 한 자루 켜놓고 붓을 들어 하루를 기록했다. 우주를 마주한 그 시간에 누가 거짓을 적겠는가. 원래 문과를 원했던 이순신은 글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일기로 못 채우면 시를 지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광화문 동상의 큰 칼이 날아와 내 작은 몸의 옆구리에 앉는 것 같다.
『이순신의 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영화 ‘명량’이 떠올랐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이순신이 장계(狀啓)를 쓰는 모습이다. 원균의 함대가 왜군에게 대파됐다. 이순신은 지휘권을 다시 잡았으나 배는 몇 척 되지 않았다. 왜선은 모두 330여 척이었다. 걱정하는 임금에게 이순신은 붓을 들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두려움은 천근(千斤)이고 용기는 만근(萬斤)이다.
이순신의 드라마 이후 400여 년이 지났다. 전쟁은 없지만 나라는 여전히 혼란과 불안에 싸여 있다. 중국의 패권과 일본의 역사 도발 사이에서 한국은 샌드위치다. 북한 김정은은 언제 핵 미사일을 들고 마지막 도박을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라는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한다. 수십 년간 전쟁을 하지 않은 군대는 군화 끈이 풀어져 있다. 대다수 지식인은 시류(時流)에 밀려 시비(是非)를 제대로 가리지 않는다. 핵심적인 야당 지도자들이 대통령 주변을 거짓으로 모함한다. 많은 국민이 ‘새정치’라는 위장 깃발에 속았다.
가장 심각한 건 청와대에 있는 지도자가 흔들리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지도자는 힘을 많이 잃었다. 적잖은 이가 그의 실패를 걱정한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그는 이순신을 자주 인용했다. 지도자는 지금 휴가 중이다. 진도의 울돌목에 가는 건 어떤가. 이순신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중앙일보 2014.7.30 김진칼럼 -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그런데 이순신에 대해선 가까이 하지 못했다.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접한 것도 건성건성이었고 아산 현충사에 다녀온 기억도 아득하다.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이렇게 소홀해도 되는지 나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주 다소나마 이런 심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화 ‘명량(鳴梁)’의 시사회에 다녀왔고 난중일기에 빠졌던 것이다. 여러 국역본 중에서 나는 1998년에 나온 『이순신의 일기』를 택했다. 집필자가 특이했기 때문이다. 박혜일을 비롯한 4명이 모두 서울대 출신 핵물리학자다.
이순신이 처한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부정부패가 널려 있고, 거짓과 모함이 심하고, 방비는 허술해 나라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순신은 반듯했다. 모함으로 세 번이나 파직(罷職)당하고 감옥에도 갔으나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가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한양 고관들이 탁상공론(卓上空論)을 벌일 때 그는 현장을 돌며 방비(防備)를 갖췄다. 거북선을 만들고 병사를 훈련시켰다. 자신은 장수들과 활을 쏘았다. 왜군 침략 두 달 전 일기다. “아침에 여러 방비와 전선(戰船)을 점검해보니 모두 새로 만들었고 무기도 어느 정도 완비되어 있었다.” 왜란이 터지고 보름 후 그는 장수들을 모았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것이 과연 의사(義士)라 할 만하다.”
이순신은 단호하고 엄격했다. 개탄에 머물지 않고 칼을 빼 행동했다. 일기에는 곤장을 때리고 목을 베는 일이 자주 등장한다. “군관과 색리(色吏)들이 병선을 수선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색리 11명을 처벌했다. 매양 거짓말로 꾸며대 왔기에 이날 목을 베어 효시했다.”
전선의 이순신은 무거운 압박감에 시달렸다.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걱정과 승리에 대한 간구(懇求)··· 처절함은 꿈에 나타나고 병으로 터졌다. “새벽 꿈에 왜적들이 항복을 빌면서 육혈총통 5자루를 바쳤다.” "꿈에 어떤 곳에 이르러 영의정(유성룡)과 이야기했다. 잠시 함께 속 아랫도리를 끄르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서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털어놓다가 끝내는 가슴이 막히어 그만두었다.” “종일 누워 신음했다. 허한(虛汗)이 무시로 흘러 옷이 젖었다.”
난중일기는 여느 역사책과는 진실의 감도(感度)가 다르다. 전쟁터 장수의 육필(肉筆)이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장군은 초 한 자루 켜놓고 붓을 들어 하루를 기록했다. 우주를 마주한 그 시간에 누가 거짓을 적겠는가. 원래 문과를 원했던 이순신은 글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일기로 못 채우면 시를 지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광화문 동상의 큰 칼이 날아와 내 작은 몸의 옆구리에 앉는 것 같다.
『이순신의 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영화 ‘명량’이 떠올랐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이순신이 장계(狀啓)를 쓰는 모습이다. 원균의 함대가 왜군에게 대파됐다. 이순신은 지휘권을 다시 잡았으나 배는 몇 척 되지 않았다. 왜선은 모두 330여 척이었다. 걱정하는 임금에게 이순신은 붓을 들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두려움은 천근(千斤)이고 용기는 만근(萬斤)이다.
이순신의 드라마 이후 400여 년이 지났다. 전쟁은 없지만 나라는 여전히 혼란과 불안에 싸여 있다. 중국의 패권과 일본의 역사 도발 사이에서 한국은 샌드위치다. 북한 김정은은 언제 핵 미사일을 들고 마지막 도박을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라는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한다. 수십 년간 전쟁을 하지 않은 군대는 군화 끈이 풀어져 있다. 대다수 지식인은 시류(時流)에 밀려 시비(是非)를 제대로 가리지 않는다. 핵심적인 야당 지도자들이 대통령 주변을 거짓으로 모함한다. 많은 국민이 ‘새정치’라는 위장 깃발에 속았다.
가장 심각한 건 청와대에 있는 지도자가 흔들리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지도자는 힘을 많이 잃었다. 적잖은 이가 그의 실패를 걱정한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그는 이순신을 자주 인용했다. 지도자는 지금 휴가 중이다. 진도의 울돌목에 가는 건 어떤가. 이순신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중앙일보 2014.7.30 김진칼럼 -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