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49회 - " 같이 잘 사는 법 "

영광도서 0 547

가을 안거 결제에 동참하기 위해 봉암사에 들어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윤달이 있는 해라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100여 명의 스님이 올가을 안거에 방부를 들여 수행 중이다. 이 많은 스님 가운데는 예전에 다른 대중처소에서 함께 살았던 반가운 얼굴들도 있지만, 전혀 일면식이 없는 스님들과 공동생활을 하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은 스님들 역시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처음엔 좀 어색하고 긴장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해야 대중이 서로 마음 맞춰 잘 살 수 있는지, 서로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다.

 나 같은 경우엔 우선 먼저 ‘자기 기준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지 않기’이다. 전국 각지에서 사셨던 스님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다 보면 좀 재미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예불을 할 때 스님들의 염불 소리를 들어보면 속도나 톤이 다 제각각이다. 송광사에서 생활하셨던 스님들은 염불 소리가 느리고 차분한 데 반해 해인사와 인연이 깊으셨던 스님들은 가야산 산세만큼이나 염불 소리 또한 빠르고 기운차다. 즉 어디서 처음 염불을 배웠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염불 소리의 기준이 정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기준이 너무 강해 서로에게 맞추려는 노력이 없으면 불협화음의 엇박자인 아주 듣기 싫은 염불 소리가 돼 버린다. 본래 기준이라는 것은 본인이 살아왔던 익숙한 방식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므로 객관적으로 옳다 그르다 말하기 어렵다.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뭔가를 할 때는, 자신에게 익숙한 기준을 스스로 먼저 양보하고 조정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다음은 ‘내가 조금 더 일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기’이다. 보통 안거가 시작되기 전날에 대중이 모여 개별 소임을 결정한다. 부엌에서 밥을 하는 공양주 소임부터 법당이나 선방을 청소하는 지전 소임, 주변 산을 보호하는 산감 소임 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런 소임들은 한 명이 맡아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명이 모여 한 가지 소임을 같이 보게 된다. 이럴 경우 잘못하면 시비가 생기기 쉽다. 며칠 일을 같이 하다 보면 꼭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조금 더 일을 하는 것 같고, 어떤 이들은 일을 건성으로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나의 모습을 못 보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할 때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계산하는 분별심을 아예 내지 않으면 좋겠지만, 설사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 해도 처음부터 ‘내가 조금 더 일해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내 마음이 편안하다.

 또 하나는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이다. 안거 시작 전에 보통 연배별로 머무는 처소가 결정된다. 연배가 높은 스님일수록 1인 1실이나 2인 1실이 주어지고 일반 대중은 큰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이번 가을 안거 땐 조금 아쉽게도 내 바로 앞 스님까지는 2인 1실이 주어지고 나부터는 큰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결정 났다. 이럴 때 마음을 잘못 쓰면 안거 내내 불만일 수가 있다. 하지만 마음을 빨리 돌려보면 처음에 나쁘게 보이는 것 안에서 좋은 것을 찾을 수 있고, 반대로 좋아 보였던 것 안에서 나쁜 것이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가만히 찾아보니 여러 명이 같이 쓰는 방이 갖고 있는 장점이 많았다. 우선 혼자 방을 쓰면 간혹 너무 피곤해 새벽 3시 목탁 소리를 듣지 못해 예불 시간을 놓칠 위험이 있는데 여러 명이 같이 지내니 마음 놓고 잠을 자도 됐다. 그리고 사중 안에서 일어나는 공지사항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밤에 모기가 방 안에 들어와도 혼자 있으면 모기에게 물릴 확률이 높지만 여러 명이 자는 방에선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까지 있었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생기거나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을 때 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화두 참구가 잘될 때는 내 마음 보기도 바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즉 다른 사람의 흠은 어떻게 보면 내 마음 거울에 비친 내 흠이기도 하다. 이런 때일수록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던 초발심으로 돌아가 처음 마음먹었던 계획을 흔들리지 말고 차분히 해 나가면 된다.

[중앙일보 2014.8.29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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