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196회 - " 태산과의 한판 승부 "

영광도서 0 588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고 할 때, 태산은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꿈의 은유로 들린다. 돌이켜보니 불가능한 꿈을 꾸어본 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실현 가능성을 이리저리 재다 보니 어느덧 내 꿈엔 낭만의 향기나 열정의 온도가 사라져버렸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나니.” 우리가 미처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태산들은 실제로 얼마나 높은 것일까. 어쩌다가 태산을 바라보기만 하고 올라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을까. 태산은 알고 보면 그다지 높지 않다. 중국 산둥성의 태산(泰山)은 높이가 1532m로 한라산(1950m)보다도 훨씬 낮고, 백두산(2744m)보다는 한참 낮다. ‘갈수록 태산’이라 치부하며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 산들은 알고 보면 우리가 이미 오른 산들보다도 턱없이 낮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점점 비대해지는 조직과 기업, 국가와 자본의 힘 앞에서 사람들은 ‘나 하나의 힘’은 너무 미약하다고 느낀다. ‘개인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일상은 한 사람의 기분, 한 사람의 열정, 한 사람의 실천 앞에서 크게 좌지우지된다. 엄마가 행복해지면 온 집안이 화목해지듯, 한 사람의 감정상태가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한탄 않기 위해서는, ‘태산과 나’의 관계설정부터 다시 하자. 태산은 생각보다 높지 않고, 나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은 존재다.

 전혜린은 ‘먼 곳에의 그리움’이라는 아름다운 수필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 있을 때만 찬란한 것이 아닐까? 이루어짐 같은 게 무슨 상관 있으리요?” 읽을수록 멋진 문장이다. ‘이 꿈이 이루어질까 말까’를 계산하기에 앞서 그저 미친 듯이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아직 젊다는 증거다. 자신이 이토록 유명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고흐의 편지에도, 이렇게 다만 꿈꾸는 자의 무구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자본이 거의 없는 개인의 노력이 미래의 씨앗이 될지 몰라.”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은 마치 사랑할 때처럼 일순간 우리를 무한으로 인도하지.”

미친 듯이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아직 젊다는 증거가 아닐까


 자신이 ‘영향력 있다’고 뻐기는 사람들은 좀 더 ‘태산의 높음’을 곱씹는 명상이 필요하고, 자신이 ‘나약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태산이 생각보다 높지 않음’을 느껴보는 담력 훈련이 필요하다. 현실은 거꾸로다. ‘자신의 힘’을 겸허하게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힘을 마구 휘두르며 그릇된 쾌감을 느끼고, 자기 안의 힘을 한 번도 제대로 쓰지 못한 사람들은 힘의 존재조차도 느끼려 하지 않는다. ‘태산이 높기만 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태산에 오르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을 미리부터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산의 높이를 가늠만 해보는 것보다는, 그러다가 태산의 등반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중도에 돌부리에 걸려 호되게 넘어지더라도 일단 한번 굳세게 올라가보는 것이 낫다.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로 남은 것은 후회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아직 뒤집어보지 않은 패들’만이 뼈아픈 후회로 남는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시간은 ‘잘 안 될 것 같은 이유’만을 상상하다가 ‘잘될 수 있는 기회’조차 놓쳤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아닐까.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성실한 농부는 자신이 결코 그 열매를 보지 못할 씨앗을 심는다고. 나는 이 ‘성실한 농부’를 ‘위대한 농부’로 바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위대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니까. 결코 그 결과를 확실히 보장할 수 없을지라도, 보이지 않는 미래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위대함의 본질이다. 그러니 태산의 명성에 짓눌려 ‘나’의 힘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벗들이여, 당신 안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 태산과 우리의 관계맺음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으니, 어깨를 활짝 펴고 천리 길을 시작하는 ‘한 걸음’의 무게를 소중히 여기자. 나와 태산과의 한판 승부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중앙일보2016.1.2. 삶의향기-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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