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제213회 - " 한여름의 피서법과 '진짜 공부'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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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3:08
여름만큼 책 읽기에 적당한 계절이 또 있을까.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 시내 도서관과 카페, 서점에 부쩍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역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냉방된 카페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피서법을 실천하고 있다. 여름이야말로 평소 엄두도 내지 못한 책을 읽기에 맞춤한 계절이다.
일명 '김영란법'을 입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법조계 안팎의 유명한 책벌레라고 한다. 최근 출간한 <책 읽기의 쓸모>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책 중독, 활자 중독에 가깝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에세이집을 읽다 보면, 사회 정의 측면에서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 '김영란법'이 바로 책 읽기, 그중에서도 특히 '쓸모없는' 소설책 읽기 덕분에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에 의하면 소설 읽기는 공감능력을 향상하고 '문학적이기를 요구'하여 재판관이 '공평한 관찰자의 감정'을 갖도록 돕는다. 현실의 구체적 세목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는 문학 작품이 인간 삶의 개별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주목해야 하는 재판관으로의 자질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란 반드시 책 읽기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서를 포함해 여행, 명상, 대화, 만남 등 어떤 방법으로든 공부할 수 있다. 이 책의 뒷날개에는 친절하게도 공부에 관한 정의가 적혀있다. 요약하자면 공부란, '나와 세상에 대해 타인과 함께 고민하는 일,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표현하는 일'이다.
공부가 '먹물들'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건 페터 바이스의 소설 <저항의 미학>이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쓸모없는 책 읽기의 쓸모'를 증명했다면, 페터 바이스는 보다 넓은 범위의 '공부의 쓸모'에 대해 설파한다.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바로 노동자 계층이 왜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공장노동자인 주인공 청년이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부모와 부엌에 모여 토론하는 장면이다. 노동자인 이들은 일과, 즉 "납처럼 무거운 열두 시간 노동"이 끝난 뒤 누군가의 부엌에 모인다. 이들의 토론 주제는 문학, 예술, 역사, 정치 현실 등을 총망라한다. 한 사람이 질문하면 다 같이 고민하고 토론한다.
예컨대 친구 어머니가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 모든 봉기와 반란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발판으로 이용되곤 했는지, 왜 우리는 주체적인 권력의 수립에 언제나 실패했는지."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주인공들은 공부한다. 회화를 감상하고, 책을 읽고, 문화유적지를 방문한다. 그 결과 피카소의 '게르니카', 카프카의 '성', 독일의 페르가몬 신전은 노동자 청년의 개별적인 시선과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된다.
그런데 <저항의 미학>은 빡빡하고 어렵다. 수시로 읽기를 멈추고, 배경이 되는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 예술작품들을 확인한 후 다시 줄거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폭염을 피해 찾아간 도서관이나 카페, 서점이 아니라면 읽기 힘들지도 모른다. 여름철에 읽어야 제격인 소설이다.
돈의 위력이 모든 가치와 신념을 집어삼키는 시대.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쓸모없는' 책 읽기와 '진짜 공부'가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일이며 공동의 품위를 지키는 일인지, 함께 성찰하고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산일보 2016.8.12 공감 | 황은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