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그것을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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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제 딸이 올해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사위가 몸이 허약하고 기운이 없는 것처럼 보여 제가 장모 된 도리로 좋은 한약을 한 제 지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사위가 그 한약을 먹고 오히려 몸에 탈이 나고 부작용들이 생겼다고 하네요. 그래서 딸과 사위가 지금 저를 원망합니다. 저는 딸 내외를 생각해서 한 건데,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들고 걱정도 되고, 어쩌면 좋을까요?"

 

한번은 연세가 지긋하신 한 어머니께서 내게 이런 고충을 토로하셨다. 이처럼 살다 보면 우리의 순수하고 좋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각지도 못한 원망의 화살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모·자식 간에는 이런 경우가 더욱 빈번하다.

 

그것은 아마도 의도가 좋으면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착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하지만 내 판단으로 좋은 것이 상대에게도 좋으리란 법은 없다. 또한 상대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가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가 있다. 그런데 나에게 그것을 원하는지 제대로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주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내 삶의 주도성을 침해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고마운 마음보다는 자칫 결과가 좋지 않으면 원망의 마음만 올라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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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에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다. 그 종교를 믿고 나서 내가 이렇게 좋아졌으니 너도 빨리 내가 믿는 종교를 따르라고들 한다. 즉,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은 다르다. 기존에 믿는 다른 종교가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은 종교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 말을 하고 싶지만 상대는 다른 종교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없어 보인다. 또한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교회나 성당·절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역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종교보다 휴식의 시간이 더 절실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실수는 일상생활에서 종종 범하게 되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루는 지인들과 모임을 한 후 함께 식사하러 식당에 들어가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켰다. 나는 같이 나누어 먹을 생각으로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했다. 샐러드가 내 앞에 놓여 나는 자연스럽게 집게를 들었다. 내 접시에만 샐러드를 더는 건 좀 염치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좋으니 지인들 앞에 놓인 앞접시에 골고루 샐러드를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때 그들에게 샐러드를 원하는지 묻는다는 것을 깜박 잊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중 한 분이 리코타 치즈를 싫어하셨다. 내가 물어보지도 않고 마구 나누어 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놓기는 했지만 식사를 마칠 때까지 샐러드는 그대로였다. 아마 그분 입장에서는 나누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억지로라도 이 샐러드 접시를 비워야 하나 식사 내내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도 이런 유사한 장면들이 나온다. 주인공 김지영은 명절에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와 함께 시댁 식구들이 먹을 여러 음식을 만드느라 많이 애쓴다. 시어머니에게는 일 년에 한두 번 이렇게 식구들이 모였을 때 음식을 손수 장만해 먹이는 것이 즐거움이자 보람이었다.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사골국을 끓이고 송편을 빚고 각종 전과 나물을 준비한다. 하지만 며느리 김지영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라 해도, 친한 친구 관계라 해도 함부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 친하다는 이유로,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이유로 그 선을 묻지 않고 자주 넘게 되면 그 좋았던 의도가 어느 순간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친할수록 지켜야 할 선을 잘 지켜야 좋은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나 또한 상대를 생각한다는 이유로 그 선을 쉽게 침범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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