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추사의 일로향실

영광도서 1 630

겨울이 깊어 간다. 살얼음이 얼고, 먼 산은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서 있다. 어느 날에는 바람이 너무 맵고, 공기가 지나치게 차서 허공에 조금의 틈도 없는 것만 같다. 오늘은 혼자 책상에 앉아 법정 스님의 글을 읽었다. 두 대목의 글을 마음에 받아 앉혔다. “아침 예불을 마치고 나면 냉수를 두 컵 마신다. (……) 언젠가, 스님의 건강 비결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냉수 많이 마시고 많이 걷는 일이라고 했다”라고 쓴 대목과 “올 겨울 나는 석창포와 자금우, 이 두 개의 작은 화분을 곁에 두고 눈 속에서 지내고 있다. (……) 이 두 개의 화분이 없다면 겨울철 산방은 춥고 메말랐을 것이다. 밝은 창문 아래 두고 이따금 두런두런 말을 건네고 눈길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는 남이 아닌 한 식구가 된다”라고 쓴 대목을 읽고서 잠깐씩 생각에 잠겼다. 겨울 산방의 모습이 설핏 보이는 것 같았다. 맑게 깨어 있음과 적적함에 대해 생각했다. 조용하고 조금 쓸쓸하게, 또 무심하게 사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근일에 내가 혼잣말로 중얼중얼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적거(謫居)’라는 단어이다. 적거는 귀양살이를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생소한 단어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관에서 알게 되었다. 추사(秋史) 김정희는 1840년 9월 2일에 제주 대정에 유배되었다. 추사가 해배(解配)된 것은 1848년 12월 6일이었다. 추사는 꼬박 8년 3개월을 제주 적거지에서 살았다. 

  

추사는 대흥사 초의 스님과 인연이 두터웠다.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내내 추사는 초의 스님과 교유했다. 추사는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입과 코의 고통은 여러 해가 지나도 그대로이고, 또 눈마저 눈곱이 낍니다. 사대육진이 마에 휘둘리지 않음이 없으니 한탄할 뿐입니다”라고 쓸 정도로 몸에 병환이 있었다. 초의 스님은 추사에게 목련꽃 봉오리 약재인 신이화(辛夷花)를 보냈고, 또 차를 보냈다.

 

 

[일러스트=김회룡] 

 

이 둘의 사귐과 마음의 왕래를 중간에서 도운 이는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걸출한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이었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의 초상을 그려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소동파가 유배 생활을 하던 때에 폭우를 만나 삿갓과 나막신을 빌려 신고 도포를 걷어 올리고 진흙탕을 피해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를 본뜬 것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추사는 제주 유배 시절에 제자 이상적을 기리며 세한도를 그렸다. 발문에 “날이 차가운 이후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라고 써서 이상적의 의리와 절개를 강조했다. 
  
나는 겨울의 이즈음에 추사의 제주도 적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추사가 쓴 ‘일로향실(一爐香室)’이라는 글씨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추사는 차를 보내주는 초의 스님의 성의에 고마운 뜻을 전하기 위해 제자 소치의 인편으로 이 글씨 편액을 써서 보냈다. 
  
일로향실은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는 의미이다. 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던 때의 차의 향이 은은하던 방을 추사는 떠올렸을 것이다.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을 평(評)하여 차를 다리던 때를 회상해보니 눈앞의 속진이 사라진 듯합니다”라고 쓰기도 했으니 말이다. 추사는 유배의 때에 ‘일로향실’ 외에도 ‘명선(茗禪)’과 같은 묵적을 걸작으로 남겼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추사의 글씨는 기름진 것을 덜어내고 골기(骨氣)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로향실의 글씨를 보노라면 추사가 자신을 단속하고 제어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를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일로향실의 공간을 염두에 둠으로써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서도 한가함을 얻으려 했고, 세속의 속됨과 번거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일로향실의 공간은 높고 신성한 정신의 공간이 아닐까 한다. ‘일로향실’은 홀로 있으면서도 순수하고 자유로운 방이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살펴 다스리는 방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이해하고, 자기 내면의 슬픔과 두려움의 수위를 낮추는 방이다. 이 방은 시야를 넓히는 곳이요, 자신에게도 친절을 베풀어 휴식을 주는 곳이다. 마치 석창포와 자금우를 길러 춥고 메마름을 견디려고 했던 법정 스님의 겨울 산방처럼. 그리고 이러한 방은 가상의 공간이든 실제의 공간이든 세파와 속진에 시달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추위가 혹독해지고, 잎들이 시든 이때에 적거지에 살았던 추사를 생각한다. 그 비좁았을 방을 생각한다. 비좁았지만 향이 가득했기에 더없이 넓었을 방을 생각한다. 

[출처: 중앙일보 2018.1.3  마음읽기 -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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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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