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우리 안의 원시인

영광도서 0 570

'우리 아니면 남’의 부족 중심 사회로 되돌아간 듯한 세상

SNS 등에서 ‘내 부족’ 밖 적을 공격하는 사람들 많아져

 

 

영국이 유럽연합으로부터 탈퇴한다는 뉴스가 나올 때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그러더니 곧 미국에선 언론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독일에선 나치 이념과 가까운 극우 정당이 의회에 다시 입성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중국은 올해 임기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을 하면서 시진핑 주석의 1인 독재가 합법화되었고, 러시아에서 19년간 장기집권을 해왔던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 6년간 더 집권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금 세계 뉴스를 보고 있으면 시계가 마치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강대국들은 자국 우선주의로 회향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고, 지난 근·현대 역사를 통해 배운 것들을 완전히 다 잊은 듯하다.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나 제국주의, 유대인 대학살에서 보여준 야만적인 행동들은 앞으로 다시는 나타나서도, 나타날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민족주의 분위기가 심화되면서 세계 경제 침체가 다시 한번 크게 찾아온다면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의 지금과 같은 상황은 원시 부족사회에 가졌던 인간의 마음이 다시 깨어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부족을 이루며 살았던 인간들은 항상 생존의 문제를 고민했고, 때문에 마음의 출발은 자신들의 부족이 잘사는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 것을 다른 부족민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쉽게 말해 “우리 먹고살 것도 없는데 왜 남을 주냐?”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원시인의 눈에는 세상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조화로운 유토피아가 아닌 약육강식의 모습을 한 “우리 아니면 남”인 사나운 세상이다. 우리만 잘살면 되지 굳이 타인에게까지 잘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불안한 세상 속에 사는 우리 마음은 항상 내 것이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이 잘살면 내가 힘들어지는 제로섬 게임 속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한 다른 부족민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이상하고 그래서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선(善)인데 우리와 다른 그룹인 이상한 그들은 악(惡)이라 생각되어 먼저 공격해서 힘을 꺾든 없애든 해야 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렇게 상황이 변한 원인들을 찾아보면 우선 전 세계적인 양극화로 중산층의 몰락이 가장 큰 것 같다. 잘 사는 사람은 너무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욱더 어려워지니 기존 중산층에서 하층으로 떨어진 소외된 서민들의 마음이 ‘남 도와주는 것은 그만하고 우리 부족부터 먼저 챙겨라’ 하는 메시지를 선거를 통해 전한 것이다. 유럽의 경우는 자신들과는 언어도, 종교도, 입는 옷도 다른 낯선 시리아 이민자들이 내 이웃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과 자신들의 세금이 저들을 위해 쓰인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생긴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페이스북과 같은 SNS도 이러한 부족 중심의 마음을 훈련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소셜네트워크 안에 들어온 친구들이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생각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공통의 적을 만들어 친구 간의 정신적 연대감을 강화시키면서 그 공통의 적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에 힘을 쏟는다. 이 일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가져다준다고 믿으며 내 부족 밖에 있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원수처럼 미워하면서 그 미움으로 정체성으로 삼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어디서도 볼 수가 있다. 그 부족이 어느 때는 국경선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종교나 성별, 인종, 나이, 고향, 정치적 성향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부족 중심의 마음은 지금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만 하더라도 세계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전체를 보지 못하고 우리 부족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오존층은 더 파괴되고 바다는 플라스틱으로 더 오염되고 자욱한 미세먼지 속에 갇혀 살게 된다. 이처럼 부족 중심의 마음은 짧은 시간엔 이익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훨씬 더 많은 문제를 자기 부족에게 가져온다는 사실을 우리 인류가 다시 빨리 깨닫기를 소망한다. 

 

[중앙일보 2018.4.4 마음산책 | 혜민스님 - 마음치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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