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영광도서 0 669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온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어떠한 계획도 세우고 싶지 않고, 나의 답변을 요구하는 핸드폰 문자나 이메일도 그 하루만큼은 열어보고 싶지 않은 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사항들도 나중으로 좀 미뤄놓고 집안일도 잠시 놓고 그냥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그런 시간들 말이다. 

  

연초에 나에게도 그런 날이 불현듯 찾아왔다. 날씨가 많이 추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지난달 새 책이 출간된 이후 사인회와 강연 일정이 이어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독감으로 몸이 많이 지쳐서 그랬는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는 내 마음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우리가 보통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송장처럼 가만히 누워 있겠다는 뜻은 아니다. 무언가를 사부작사부작 하긴 하지만 어떤 목적이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서 혹은 지금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해서 내 노력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복잡한 일들을 잠시 멈춘다는 이야기다.   

  

대신 우리에게 휴식과 충전을 주면서도 재미있는 일, 편안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게을러진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바쁘게 살아온 나에게 삶의 고요함과 여유로움을 선물하는 시간, 한동안 신경 쓰지 못하고 살았던 내 몸을 챙기는 시간, 스트레스 받았던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시간, 아름다운 자연이나 가까운 이들과의 연결감을 회복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나는 우선 잠을 충분히 자는 것으로 몸을 먼저 아껴주었다. 평소에 일이 많아서 잠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쉬는 날 몰아서 자는 것도 잠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발표를 본 적이 있다. 보약 같은 잠을 자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스트레칭과 기도 명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동네 목욕탕에 가서 추위로 긴장되어 있는 몸을 따뜻한 탕 안에서 녹이고, 서점에 잠시 들러 책을 한 권 사서 사람이 별로 없는 동네 커피숍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여유를 가졌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흥미롭게도 여러 연구 발표 사례에 따르면 살면서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종종 갖는 것이 우리 건강에도 좋고 일의 능률 면에서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 경우와 같이 몸과 마음의 배터리가 많이 방전된 상태일 때 휴식을 통한 치유와 회복도 필요하지만 꼭 이처럼 많이 소진된 상황에 이르기 전에 평소에 틈틈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짧게라도 종종 갖는 것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틈틈이 가지면 스트레스가 줄어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2013년 하버드 대학교의 조사에 따르면 요가나 명상, 깊은 호흡과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시간을 짧더라도 꾸준히 가지는 사람은 그런 습관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병과 싸우는 세포들이 훨씬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습관이 없던 사람도 의도적으로 8주간 몸과 마음을 쉬는 시간을 꾸준히 가지면 그 전에 비해 병과 싸우는 세포들이 훨씬 활발해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 마이요 병원 연구소는 몸과 마음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시간은 소화 작용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런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안한 시간은 일의 능률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내 경우만 하더라도 좀 푹 쉬는 시간이 있고 나면 중요하게 결정해야 할 일들에 대한 해답이 내 무의식에서부터 올라와 선명해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휴식을 취하고 나면 내 삶의 방향도 훨씬 명확하게 보이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한번 시도해볼까 하는 배포와 지혜도 생긴다. 

  

 

창의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창의적인 생각은 우리가 골몰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 속에서 솟아난다. 예를 들어, 글을 쓰거나 마음치유학교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 나는 일단 걷는다. 어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걷는 것 그 자체를 즐기면서 자연과 함께 시간을 갖고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좋은 생각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비누 거품을 가지고 놀다가 우주가 팽창한다는 이론을 생각해냈고, 뉴턴의 경우도 사과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중력의 이론을 생각해내지 않았던가? 

  

혹시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면 죄책감 없이 그런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했으면 좋겠다. 그런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내가 다시 성장하기 위한 수렴과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다. 

 

[중앙일보 2019.1.9 마음산책 | 혜민 -마음치유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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