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요새는 명사가 생각이 안 나”

영광도서 0 587

사람이 나이를 인지하는 것은 정기적금 통장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월급통장에서 자동이체를 걸어놓아 평소엔 잊고 살다가 가끔씩 통장 정리하면서 불어난 숫자를 바라보게 되면 ‘벌써 이렇게나 늘었어?’ 하고 깜짝 놀라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마흔이라는 숫자에 놀랐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흔 중반을 넘어 오십을 향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어르신들이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며칠 전, 비슷한 나이의 대학원 동문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한참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 한 선배가 “난 요새 말하다 보면 명사가 생각이 안 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지요, 선배. 저도 그래요, 저도. 특히 고유명사는 더 생각이 안 나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 거기다 덧붙여 “얼마 전에 아무리 생각해도 ‘면세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 제가 ‘세금 없이 물건 파는 곳’이라고 풀어서 설명하고 있더라고요”라고 했다. 너무 공감되어 나도 박수를 치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만남을 마치고 내 처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언제부터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 하고 느꼈을까 하고 말이다. 제일 처음 생각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가수들의 음악을 잘 찾아 듣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이다.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들은 다들 십 년, 이십 년 전에 유행했던 곡들이고, 요새 어떤 가수나 배우가 유명한지 솔직히 이효리 씨 이후로는 잘 모르고 있다. 음악 프로그램도 ‘프로듀스 101’보단 ‘열린음악회’가 친숙한 나를 보면서 이러다 ‘가요무대’를 좋아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비밀번호들이 가물가물해서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고 두세 번 걸리는 경우가 생겨나면서부터 나이를 또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현상을 ‘디지털 치매’라고 하던데 사실 생각해보면 기억력이 나빠서라기보단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비밀번호 변경도 자주 요구하기 때문에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은행 통장 비밀번호 네 자리만 기억하면 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숫자와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 조합, 이제는 특수 문자도 같이 넣어야 한다고 하니 새로운 비밀번호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도 기억하는 일도 큰일이다. 

  

주변 또래 스님들께 언제 나이 드는 것을 느끼셨냐고 물어보니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다. 예전엔 뭐든 멋있는 것이 좋았는데 지금은 편안한 것이 더 좋다고 느낄 때, 아주 기대되거나 흥분되는 일들이 옛날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러 나라를 돌며 다니는 여행보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좀 더 깊이 체험해보고 싶을 때, 손힘이 약해져 병이 한 번에 잘 따지지 않을 때 등등이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어 좋은 점도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보다 감사함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인생의 절반쯤을 넘고 보니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디스크 때문에 고생하는 지인을 볼 때마다 지금처럼 건강한 몸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은사 스님이나 속가 부모님과의 원만한 관계 또한 크게 감사할 일이다. 더불어 이제는 남들이 나에 대해 뭐라 하든지 덜 마음 쓰면서 사는 배짱이 생겼고, 어렸을 때는 자전거나 브랜드 운동화에 꽂혀서 그것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는데 이제는 소유욕도 많이 줄어 아무리 좋은 물건을 봐도 꼭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반대로 친구들이나 존경하는 어른들을 만나서 우정과 배움의 시간을 갖는 것은 갈수록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 달 이모님 같은 이해인 수녀님께서 서울 올라오시는 길에 연락을 주셔서 수녀원에서 메밀국수 점심을 했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시면서 예쁜 나뭇잎들을 모아 내가 도착하자 선물로 주셨는데 많은 감동과 기쁨이 있었다. 수녀님의 시 ‘보름달에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각이 진 내가 당신을 닮으려고 노력한 세월의 선물로 나도 이제 보름달이 되었네요. 사람들이 모두 다 보름달로 보이는 이 눈부신 기적을 당신께 바칠게요.” 

  

나도 나이가 들수록 보름달처럼 되고 싶다. 단어는 생각이 안 나도 많이 웃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중앙일보 2019.7.24 - 마음산책 | 헤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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