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칼럼

경멸의 시대

영광도서 0 566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의 롤모델이었던 미국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의 책은 그 당시 나 같은 종교학과 학생들에겐 전설에 가까웠다. 기존 학계에서 상식이라고 통용되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그분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박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 매사추세츠 주 시골 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었을 때, 그분과 학회에서 우연히 말을 나눌 기회가 생겼고 어느 날부터 그분과 나는 SNS 친구가 되어 있었다.

 

경멸하는 마음은 중독성 강해

정치인·미디어가 부채질하더라도

동조치 말고 존중하는 마음 중요

 

인터넷상에서의 친구이긴 했지만 존경하는 분의 일상과 사유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쁘고 신기했다. 탈고하기 전 책들이 흩어져 있는 그분의 서재 사진이나, 내가 아직 가보지 못했던 유럽 학회의 모습이나,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SNS에 올라왔다. 더불어 사진 말고도 올리는 메시지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대부분 미국 정치인들과 관련된 그 교수님의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새로 알게 되는 이야기도 많고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아 흥미롭게 읽었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분은 특정 정당의 정책을 단순히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 정치인과 그들에 동조하는 모든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경멸이라는 감정은 단순히 동의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감정을 넘어서 소위 토가 나올 정도의 혐오감이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내 편과 상대편으로 갈라,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지하거나 양심이 없거나 부패한 적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러한 경멸감은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관점에서 시작해서 잘못하면 ‘모든 문제는 바로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라는 탓하는 마음으로 번지게 된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저런 사람들만 없어지면 지금의 문제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힘을 모아 저 사람들을 없애야 한다’라는 폭력의 씨앗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경멸감은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마치 담배나 술·도박이나 게임 중독처럼 자신의 문제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심리적 도피처가 된다고 설명한다. 어느 그룹을 경멸하는 사람들을 동조하기 시작하면, 전에 없던 생동감이 생기면서 옳은 일을 함께한다는 느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도 상대편 탓으로 돌리면 되기 때문에 내 책임이 덜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은 안다. 공공의 적들이 사라져 꿈꾸던 세상이 온다 해도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내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제의 원인은 내 밖에도 존재하지만 내 안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원인을 항상 외부에서만 찾으면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더불어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나를 변화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그리고 그 경멸하는 마음의 피해는 나의 경멸을 받게 되는 그들과 더불어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나에게도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전에 읽은 아서 브룩스의 책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에서 보면 지금 전 세계는 경멸하는 마음들로 넘쳐난다고 했다. 특히 SNS의 등장 이후 원시 시대의 부족 마인드로 돌아가 내 부족민만 챙기고 다른 부족민들은 내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적으로 간주해 거침없이 공격한다. 덧붙여, 이런 경멸의 마음을 정치인들과 미디어가 더 높은 지지율과 더 높은 시청률을 위해 끊임없이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갈등을 심화해서 문제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 뿐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서 브룩스는 우선 반대하는 의견을 내되 그것은 그 안건에 대한 반대였지 그 사람을 향한 경멸이 아니라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생각과 일치하는 사람들만 만나지 말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만나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경멸을 부추기는 행동을 보면 그것에 동조하지 않고 존중과 관용의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너무 경멸의 길로 가는, 같은 팀의 사람을 보면 뒤에서 붙잡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경멸하는 마음은 쉽지만 존중하는 마음은 어렵다. 부디 쉬운 길보단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우리가 그 배 자체를 절반으로 쪼개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갈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중앙일보 2019.10.16 | 마음 산책 -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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